지구촌방랑/80일간의티벳일주

[28]망치와 끌로 깎아 만든 아찔한 룽먼석굴-쿤밍 시산

찰라777 2009. 11. 27. 07:42

시산 룽먼석굴

절벽에 망치와 끌로 깎아 만든 룽먼 석굴

  

 

▲쿤밍 시산은 해발 2350m, 뎬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잠자는 미녀처럼 생긴 산이다. 뎬호수는 뎬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쿤밍의 옛 지명이다. 쿤밍(昆明) 일대에서 번성했던 소수민족 국가 뎬국(滇國)은 윈난 최초의 왕국으로 기원전 339년 세워져 200여 년간 독립을 유지하다가 한나라에 복속되었다.

 

쿤밍에서15km 떨어진 시산(西山)은 덴 호수 서편에 기다란 "V"자형 모형의 초원지대 건너편까지 뻗어 있다. 쿤밍에 가면 시산관광을 놓쳐서는 안 된다. 덴 호수에 깎아지른 듯 솟아있는 시산은 해발 2350m에 달하는 꽤 놓은 산이다. 오늘은 시산을 트레킹 하는 거다. 티베트의 고산지대에 적응을 하여면 수시로 고산지대에서 트레킹으로 고도적응훈련을 해야 한다.

 

시산은 봉우리들이 파도처럼 굴곡을 이루고 있는 윤곽이 마치 잠자는 미인 같다고 하여 "잠자는 미인 언덕"으로 불리어진다. 멀리서 올려다보면 마치 삼단 같은 머리채를 바다에 담그고 누워있는 미인을 닮은 형상이다.

 

빵차를 타고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가니 케이블카 종점이 나온다. 빵차 운전수는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시산을 올라가라고 손짓을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중턱에서 내려 2km가량을 걸어가니 도교사원 싼칭거(三淸閣)가 나온다. 싼칭거는 원래는 원나라 왕자의 시골별장이었다가 후에 도교의 세 주신(主神)을 모시는 사원이 되었다.

 

싼칭거 입구에는 빨간색의 재신상이 있다. 툭 튀어나온 눈, 굳게 다문 입술에 턱수염을 기르고 무서운 얼굴표정을 짓고 있는 재신의 왼손엔 금덩이를 들고 있고, 오른손엔 도깨비 방망이 같은 몽둥이를 들고 있다. 발밑에는 호랑이 상을 딛고 있는데 사람들은 호랑이 입에 손을 넣어 재운(財運)을 뽑아낸다. 호랑이 입에 손을 넣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다. 그러니 내 재운은 꽝이다. 공짜를 바라다간 저 무서운 신에게 몽둥이질을 당할  것이니 어서 피하기나 하자.  

 

룽먼 석굴은 사실상 싼칭거부터 시작된다. 싼칭거부터 뤄한산에 절벽을 뚫어 1333개의 돌계단을 아슬아슬하게 만들어 놓았다. 깎아지른 절벽에 3km가 넘는 굴을 만든 것이다. 룽먼(龍門)석굴은 1781년부터 1835년까지 도교의 한 수도승 오래청과 그 동료들이 73년간 깎아낸 대역사다. 석공들은 밧줄에 몸을 의지한 채 끌과 망치를 이용하여 절벽을 쪼아서 이 굴을 만들었다(▲사진:싼칭거 앞에 있는 재물의 신).

 

원래 석공도 아니었던 오래청(吳來淸)은 오직 일념으로 망치와 정 하나로 절벽을 뚫어 길을 만들다가 완성을 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만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일까? 그 뒤 덴 호수 주변에 살던 양씨 부자와 주민들이 동참하여 다톈거(達天閣)에 이르는 석굴을 완성하였다. 다톈거에서 내려다보는 뎬 호수는 어지럽다. 천 길 낭떠러지 절벽에 서 있기가 아찔하지만 한편으로는 신선이 된 기분이 들기도 든다.

 

이 다톈거 조성에 참여했던 한 석공은 결혼을 약속한 정혼녀에게 석굴을 완성시켜 자손만대에 복을 빌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신선상 왼손에 들려있어야 할 연필 끝이 계속 부러졌다. 혼자만 일을 끝내지 못한 그는 비관하여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자살을 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정혼녀는 산 위에 올라 슬퍼 하다가 그대로 봉우리가 되었다고.

 

하여간… 중국의 곳곳의 명소에는 그럴싸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전설은 듣는 자의 판단이다. 전설이 아니라도 어지러워서 그냥 떨어지겠다. 그러니 살아나려면 신선도 정혼녀도 사양하고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쿤밍 시산 룽먼석굴은 천애의 절벽에 망치와 끌로 73년간 인간이 만든 3km에 달하는 석굴이다.

  

절벽 바깥쪽 가장자리를 따라 나 있는 터널은 매우 좁아서 겨우 한두 사람만이 가까스로 빠져나갈 정도이다. 그러므로 공휴일과 주말은 가급적 관람을 피해야 한다. 가장 위험 절벽에서 아름다운 뎬 호수를 바라보겠다는 욕심일까? 룽먼석굴을 숨바꼭질을 하며 바라보는 뎬호수는 신비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풍경은 보는 각도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윈난의 옛 이름은 뎬호수의 이름과 같은 '뎬'(滇이다. 오래 전 쿤밍(昆明) 일대에서 번성하던 소수민족 국가 뎬국(滇國)은 윈난 최초의 왕국으로 기원전 339년 세워져 200여 년간 독립을 유지했다. 뎬국은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비옥한 평지가 수천리 펼쳐져 있다'고 적혀져 있을 정도로 한 때 부강한 나라였다. 뎬국은 한나라에 복속되어 기원후 점차 사라졌지만, 그 이름은 아직도 남아 있다. 

 

 ▲시산 정상에서 쿤밍 대학생들과 함께

 

정상에 오르니 한 때의 중국 대학생들이 떠들며 사진을 찍고 있다. 그들은 한국에서 온 우리들은 보더니 대뜸 사진을 함께 찍자고 한다. 한류의 열풍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들은 저마다 배용준 등 아는 배우들을 들먹이며 까르르 웃는다. 우린 마치 한류 스타나 된 것처럼 그들 사이에 둘러싸여 포즈를 취했다.

 

빵차를 타고 쿤밍 시내로 들어오니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큰 대로 옆에 '한성관'이란 글씨가 크게 클로즈업 되어온다. "김치가 먹고 싶어요." "먹고싶은 건 먹어야지." 빵차를 한성관 앞에서 세웠다. 빵차 기사에게 팁 10위안을 얹어서 140위안을 주었더니 "쎄쎄"를 연발하며 계속 고개를 조아린다. 어디가나 돈의 위력은 크다.

 

한성관에 들어가 김치찌개를 시켜 먹었다. 외국에서 한식을 먹는 것은 결코 싸지 않다. 일반 중국음식의 2~3배 이상의 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김치의 담백한 맛과 고국에 대한 향수가 비싼 값을 대신해 주니 그도 피장파장이다.

 

 

 ▲천대와 룽먼 석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