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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눈 내린 북촌 길

찰라777 2009. 12. 31. 13:07

[송구영신]

눈 내린 북촌길을 걸으며....

 

 

 ▲눈 내린 북촌의 한옥지붕. 다정히 이마를 마주대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다

 

▲눈 모자를 쓴 장독대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 같다. 

 

세밑이다. 2009년도 이제 오늘 하루뿐이다. 한해를 보내며 서울 도심에서 걷고 싶은 길이 있다. 눈 덮인 북촌 길이다. 눈 내린 북촌은 아름답다. 지하철 안국역에서 내려 가회로에 들어서니 붉은 소나무들이 눈을 머금은 채 길손을 반긴다. 서울 도심에서 이렇게 소나무 가로수를 볼 수 있다니 놀랍다. 사람들이 빗자루로 가게 앞의 눈을 쓸고 있다.

 

시골에서 대문 밖 눈을 쓸던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정겨운 풍경이다. 소나무 가로수 밑에는 흰 융단을 깐듯 하얀 눈이 깨끗하게 덮여있다. 새카만 아스팔트와 보도블록만 밟고 걸어 다니던 도심의 삭막한 풍경이 일순 전혀 다른 세상처럼 보인다. 뽀드득 뽀드득 발밑에서 눈이 밟히는 소리가 난다.

 

 ▲눈을 머금은 소나무 길을 빗자루로 쓸어내고 있는 풍경이 정겹기만 하다. 

 

눈 덮인 기와지붕은 하얀 스트라이프 모자이크 무늬를 덮어씌운 것처럼 아름답다. 낮은 담장 사이로 소나무들이 눈꽃을 머금고 있다. 어느 한옥 집에서 한 아이가 대문을 열고 엄마의 손을 잡고 나온다. 학교에 가는 아이를 바래다주는 모양이다. 엄마의 손을 잡고 미끄러질 새라 조심스럽게 종종 걸음으로 걸어가는 풍경은 그저 정겹기만 하다. 도심 속에서 이런 풍경을 보다니, 북촌은 그런 곳이다.

 

▲엄마의 손을 잡고 눈길을 나서는 아이의 모습은 다정하기만 하다. 

 

길가에는 자동차들이 눈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서 있다. 소나무 가로수 옆에 석고처럼 서 있는 자동차들의 모습도 오늘따라 밉지 않게 보인다. 북촌은 높은 건물이 없다. 계단에 올라서서 꽃발을 디디면 이집 저집이 다 보인다.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으니 눈이 편하다. 하늘이 시원하게 보이고, 꼬불꼬불한 골목길과 언덕길도 정겹다.

 

 ▲소나무 가로수가 아름다운 북촌 길

 

서울 한복판임에도 북촌은 시골 소도시의 풍경처럼 한가롭다. 꽃집, 세탁소, 소아과, 치과병원, 목욕탕, 교회, 커피하우스, 야채가게… 고만고만한 작은 가게들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상하다. 이곳에 들어서면 고향의 냄새가 나고, 시간이 바쁘지가 않다. 걸음걸이도 느려져 여유가 있다. 북촌 길을 걷다보면 마음의 여유를 저절로 느끼게 된다.

 

 ▲가회동 31번지에 싱그럽게 서 있는 회화나무

 

가회로에서 돈미약국 좌측으로 난 골목길로 들어선다. 작은 가게들을 지나 구부러진 길을 돌아서니 회화나무가 보인다. 회화나무 가지에도 눈이 붙어 있다. 가지에 붙은 눈이 할머니의 머리처럼 희끗희끗하다. 바람이 불자 눈이 우수수 휘날린다. 눈을 떨어뜨리어질수록 나뭇가지는 연초록색으로 변하며 나무가 갑자기 젊어지는 것 같다. 푸른 하늘에 허허롭게 뻗어있는 가지들이 싱그럽다.

 

 ▲눈을 쓸어내린 돌계단 길

 

가회동 31번지로 들어서는 삼거리에는 계단이 하나 있다. 계단은 누군가가 눈을 쓸어 깨끗하게 보인다. 계단 좌우에는 낮은 담장이 있고, 담장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감나무엔 아직 감이 열려 있다. 감도 눈을 머금고 있다. 푸른 하늘에 비추이는 분홍색 감이 고향의 감나무를 연상케 한다.

 

까치밥을 남겨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까치밥을 남겨두어야 해. 한 겨울엔 까치들이 먹을 것이 없으니.” 할머니의 훈훈한 마음이 가슴 저리게 울려온다. 할머니의 음성은 지금도 들려오는 듯 한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담장 위에 열려있는 감나무. 늦게 달린 감은 추운 겨울 까치들의 밥이다.

  

▲감을 쪼아먹고 있는 비둘기 

 

비둘기 한 마리가 눈 위에 떨어진 감을 쪼아 먹고 있다. 비둘기는 아침식사를 하는 모양이다. 눈 위에 감이 얼마나 차가울까? 비둘기의 식사 방해를 해서는 안 된다. 살금살금 걸어가 비둘기의 모습을 담아본다. 비둘기는 며칠을 굶은 듯 사람이 다가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감을 쪼아 먹고 있다. 감을 다 쪼아 먹은 비둘기는 유유히 걷다가 담장위로 날아간다.

 

담장 너머로 비추이는 낮은 기와지붕에는 온통 흰 눈이 덮여있다. 옹기종기 이마를 맞대고 있는 한옥의 기와가 유난히 다정하게 보인다. 평화롭다. 고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맛과는 사뭇 다르다. 다정하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사람들이 저렇게 이마를 맞대고 다정하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 이해하고 배려해주며 사이좋게 살아가는 이웃보다 아름다운 삶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눈만 뜨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물어뜯고 각자 자기의 이기주의로 저울질을 하며 이전투구를 벌인다. 평화롭게만 보이는 북촌도 한때 세도가들이 떵떵거리던 곳이다.[계속]

  

  ▲눈 덮인 북촌의 한옥. 다정히 이마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