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80일간의티벳일주

200세를 넘게 살아간다는 이상향의 세계, 샹그리라

찰라777 2010. 2. 25. 23:00

<잃어버린 지평선>을 찾아서⑫

설산에 숨겨진 파라다이스, 샹그리라

 

 

말 그 성은 이상하고 거의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현란한 빛깔을 뽐내는 일군의 높은 누각이 라인지방의 성처럼 부자연스런 굳건함이 아니라 험준한 절벽위에 핀으로 꽂은 꽃잎 같은 우아함을 가지고 산허리에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화려하고도 절묘하였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엄숙해지면서 유청색(乳靑色) 지붕으로부터 그 위쪽의 회색빛 암벽과 그린덴발트(스위스의 베르너 고지대) 위에 우뚝 솟은 베터호른(베르너 고지의 높은 봉우리)과도 같은 거대한 암벽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시 그 너머에 카라칼의 경사면이 솟아있고 그것은 눈부신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은 세계에서 제일 경탄할 만한 산의 경치일 것이라고 콘웨이는 생각했다……

 

 

  ▲나파하이에서 바라본 쑴첼링 곰파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타난 라마사원, 쑴첼링 곰파

 

중뎬 구 시가지에서 3번 버스를 타고 쑴첼링 곰파로 향했다. 버스가 언덕을 넘어서니 초원의 끝자락에 금빛 찬란한 사원이 거대한 궁전처럼 다가왔다. 윈난 최대의 티베트 사원인 간덴 쑴첼링 곰파(Ganden Sumtseling Gompa;甘丹松贊林寺)이다. 앞으로는 탁 트인 푸른 초원이, 뒤로는 산등성이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에 황금빛 사원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거대한 요새처럼 다가왔다. 

  

▲윈난에서 가장 큰 티베트 사원 쑴첼링 곰파는 달라이 라마 5세의 명으로 세워졌다.

 

▲마을 전체가 사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맨 밑에 기념품 가게가 있다.

 

 

흰점으로 층층이 테두리를 한 붉은 담장, 그 아래 흰색으로 색깔이 엷어지며 늘어선 승방들이 극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위쪽에 붉은 색이 칠해진 부분은 신의 영역이고, 아래쪽에 흰색이 칠해진 부분은 일반인이 거주는 지역이다. 극도의 단순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해발 2마일의 높은 고원에 이처럼 거대하고 휘황찬란한 사원이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이 사원이 과연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무대에 나오는 라마사원일까?

 

"정말 그 성은 이상하고 거의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현란한 빛깔을 뽐내는 일군의 높은 누각이 라인지방의 성처럼 부자연스런 굳건함이 아니라 험준한 절벽위에 핀으로 꽂은 꽃잎 같은 우아함을 가지고 산허리에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화려하고도 절묘하였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엄숙해지면서 유청색(乳靑色) 지붕으로부터 그 위쪽의 회색빛 암벽과 그린덴발트(스위스의 베르너 고지대) 위에 우뚝 솟은 베터호른(베르너 고지의 높은 봉우리)과도 같은 거대한 암벽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시 그 너머에 카라칼의 경사면이 솟아있고 그것은 눈부신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은 세계에서 제일 경탄할 만한 산의 경치일 것이라고 콘웨이는 생각했다……

 

아래쪽 경치도 상당히 마음을 끌었다. 산허리는 거의 수직으로 밑으로 뻗어나가 있었으며 아득히 먼 옛날 지각변동으로 생겼을 것이 틀림없는 바위 틈 사이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멀리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계곡의 강바닥은 녹색으로 뒤덮여 있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사방이 막혀 있어 바람도 없고 라마교 사원의 지배를 받고 있다기보다는 감시를 받고 있다는 편이 더욱 어울릴 것 같은 그 장소는 만일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면, 위쪽에 치솟아 아득히 높고, 등반이 거의 불가능한 산맥에 의해서 완전히 격절되어 있다는 흠이 있을지언정 콘웨이에게는 그곳이 평화로운 은총으로 가득 찬 땅으로 여겨졌다(이경식 옮김, 문예출판사,2004)"

 

소설속의 주인공 콘웨이가 비행기 추락사고후 처음 라마사원을 보았을 때 묘사된 내용이다. 그러나 이곳 쑴첼링 곰파 주변에는 절벽도, 피라미드 같은 카라칼 설산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녹색으로 뒤덮인 계곡, 외부와 단절사원, 황금빛 지붕, 멀리 겹겹이 쌓여서 아스라히 보이는 설산...... 이런 풍경들이 소설 속의 무대와 흡사하게 보인다. 

 

 ▲대경당으로 올라가는 108계단. 해발 3300m로 계단을 오를 때 숨이차다

 

 ▲사원 입구에 걸려있는 카타(Ka-btags). 예경으로 뜻으로 카타를 올린다.

 

 ▲마니차. 지혜의 통으로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1670년 달라이 라마 5세에 의해 샹그리라 도심에서 5km 떨어진 포핑산(佛屛山) 기슭에 창건된 쑴첼링 곰파는 윈난성 최대의 티베트 게룩파 사원이다. <쑴첼링>은 <3명의 신선이 살던 땅>이라는 뜻으로 라싸의 포탈라궁을 본떠서 10만㎥면적에 건축했다. 그래서 이 곰파는 <작은 포탈라궁>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중앙에 대웅전 격인 대경당(大經堂)과 양대 주전인 자창(扎倉)과 지캉(吉康)이 있고, 중소 불전인 8개의 캉찬(康參), 그리고 그 아래 300개의 크고 작은 승방이 있다. 가장 흥성했던 시기에는 1600여 명의 승려가 수도를 하고 있었으며, 8명의 활불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약 600여 명의 티베트 수도승이 수행을 하고 있는 윈난 최대의 티비트 사원이다.

 

"숨이 차요."

"나는 뒷골이 당기는데…"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

 

  

사원 아래 도착을 하여 몇 걸음도 걷지 않았는데도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걷기가 힘들이 들고 숨이 헉헉 거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샹그리라는 평균고도가 해발 3500m에 달하는 고원지대이다. 고원지구에 한번 올라서면 고도가 떨어지지 않는 지역이다. 만약에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바로 내렸더라면 고산증세는 훨씬 심했을 것이다.

 

해발 '0'미터인 베트남에서 하롱베이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서서히 고도를 높여오며 고도 적응을 해왔기 때문에 고산증의 충격을 덜한 편이었다. 베트남 북부 고지인 사파(2000m)에서부터, 중국으로 넘어온 우리는 쿤밍(1890m), 다리(1,900m), 리장(2,400m), 그리고 이곳 중뎬(3,200m)에 도착했다. 그동안 우리는 세 차례의 트레킹을 통해 고도 적응을 해왔다.

 

200세를 넘게 살아간다는 이상향의 세계, 샹그리라

 

 ▲쑴첼링 곰파로 들어 가는 입구

 

 

중뎬까지 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그 하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향'의 세계인 "샹그리라"를 가보고 싶은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가능하다면 내친 김에 샹그리라에서 '차마고도'의 길을 따라 영혼의 도시 라싸로 입성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상향>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상향의 세계인 샹그리라는 무엇이며 과연 지구상에 존재할까? 샹그리라에 대하여 보다 깊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네팔 여행에서였다. 9.11직후 네팔을 여행하던 중 나는 카트만두의 어느 고서점에서 제임스 힐턴(J. Hilton, 1900~1954)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1933) 영문판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먼지를 툭툭 털며 책장을 넘기다가 나는 소설 속의 샹그리라 세계로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갔다. 네팔에서 돌아온 후 한국어판을 구입하여 다시 내용을 음미하며 여러 차례 읽고 또 읽었다. 이번 여행 시에도 나는 그 책을 배낭 속에 넣어와 다시 한 번 읽다가 다리에서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를 경영하고 있는 다리 문에게 선물로 주었다. 여행중에 읽는 힐턴의 소설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샹그리라가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바로 제임스 힐턴의 이 소설에 의해서였다. 물론 힐턴의 소설에서 나온 샹그리라는 힐턴이 만들어낸 상상의 신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정신적인 공황기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티베트의 어느 외딴 골짜기에 있는 한 종교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상과 격리된 라마사원에는 임박한 재난의위협에 대비하여 인류의 지혜가 축적되어 있다. 당시 서구 문명은 자멸의 길에 접어든 것처럼 보였고, 칼 융은 "불에 탄 냄새가 공중에 떠돈다."라고 할 정도라고 시대의 상황을 혹평했다.

 

갈수록 비관적으로 되어가던 1930년대에 지상낙원을 그린 힐턴의 소설은 큰 인기를 끌었다. 소설은 중앙아시아에서 전쟁과 혼돈으로부터 구조되어 비행기 안에 탄 한 무리의 서구인들이 히말라야 고원의 외딴 골짜기에 불시착하는 데▲<잃어버린 지평선>영화  포스터           서 시작한다.

 

좀더 상세히 소설의 내용을 살펴보자. 인도 바스쿨(Baskul)이란 지방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현지 영국영사인 콘웨이는 자국민들을 파키스탄으로 피난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37세의 옥스퍼드 출신 콘웨이(H. Conway), 선교사인 브린쿨로 여사, 영사관원 맬린스 대위, 미국인 바너드 등과 함께 탄 비행기는 엉뚱한 조종사에 의해 목적지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납치 극이라고 생각할 즈음 비행기는 하마터면 히말라야의 산악지대에 충돌할 뻔했다가 간신히 산중에 불시착 하게 된다. 부상한 조종사는 "샹그리라…"라는 한마디를 중얼거리며 숨을 거두고 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히말라야 산중에 꼼짝없이 조난당하게 된 그들 앞에 한 떼의 사람이 나타나고, 그들은 장(Chang)이라는 노인의 안내로 <푸른 달빛의 골짜기>에 도착을 한다.

 

그런데 중국인인 장 노인은 놀랍게도 영어와 영국식 예법을 완벽하게 구사한다. 푸른 달빛의 골짜기에는 현대적 난방 시설, 수도, 식사, 도서실, 음악실 등의 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라마 사원이 있었다. 그들은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 <샹그리라>라고 하는 신천지에 자신들도 모르게 초대된 것이다. 그들은 카푸친 수도회 소속 라마승의 치밀한 계획으로 납치되어 이곳까지 온 것이다.

  

▲푸른 달빛의 골짜기로 여겨지는 메리쉐산

  

 

중국에서 10년 넘게 생활을 했던 콘웨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거의 완벽한 원추형의 눈더미, 피라미드  같은 설산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되고 만다. 그곳 샹그리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보통 200세를 넘게 살았으며, 100세는 아이 취급을 받는다. 쇼팽의 제자인 프랑스의 음악가는 120세, 18세의 소녀처럼 보이는 로첸이라는 중국여성은 100세에 가깝다는 말을 듣는다. 그들은 채식과 녹차를 마시며, 1일 1식을 한다. 그들은 천주교, 불교, 도교, 유교 등 각종 종교가 혼합되어 공존하며, 사람들 간의 갈등과 분쟁이 없고, 중용의 미덕을 숭상하며, 무병장수를 하는 지상낙원이다. 그 어떤 폭력도 물질주의도 없다. 라마교식 한국판 <정감록>이라고나 할까?

 

 

    ▲이상향의 세계로 보이는 샹그리라 상상도 

 

 

1734년 동방선교에 나섰다가 길을 잃고 실종된 카푸친 수도회의 신부 페로는 1789년 90세의 나이로 라마교의 교두가 되어 그곳에 200세 넘게 살고 있었다. 콘웨이는 라마승 페로 교주와 단독 회담을 한다. 페로는 세계대전이 곧 일어나서 서양 문명은 멸망하지만, <샹그리라>는 신세계의 중심이 된다고 콘에이에게 말한다. 죽음의 폭탄을 싣고 대도시로 나는 비행사도 비밀스런 장소인 샹그리라의 상공을 날아갈 리도 없고, 설사 난다 해도 폭탄을 투사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샹그리라는 외세의 그 어떤 폭풍우도 비껴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곧 죽을 것이며 자신을 이어 받을 후계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들이여, 나는 샹그리라의 자산과 운명을 당신의 손에 넘겨주고 싶소." 교두는 이 말을 끝으로 250세의 생애를 마친다.

 

이 소설을 쓴 힐턴은 티베트 근처에 가본 적도 없다. 한마디로 샹그리라는 힐턴의 상상력이 마음껏 발휘된 허구이다. 어떤 학자는 1922~1949년까지 티베트 캄 지방에 살면서 <내셔널지오그래픽誌>의 중국 특파원을 지냈던 조지프 록(Josep Rock;미국의 식물학자)의 기사를 보고, 힐턴이 소설에 대한 영감을 얻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어떤 탐험가는 티베트의 카일라스(Kailas;수미산)산 근처 구게왕국이 있는 차파랑의 도성과 톨링의 모사원이 소설의 무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케임브리지 대학생인 힐턴은 그 시대에 도서관에서 내셔널지오그랙픽지에 아홉 번에 걸쳐 실린 록의 기사와 사진을 보았을 것이고, 차파랑과 톨링의 사원에 대한 사진들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음껏 그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잃어버린 지평선>이란 소설을 완성하였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