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섬진강 물안개-신들의 부름

찰라777 2010. 8. 11. 09:24

 

 

    ▲섬진강에서 물안개가 일어나 운무와 운해로 변하여 백운산으로 휘감아 도는 풍경

 

 

섬진강을 휘감아 도는 무지개, 그리고 운무와 운해

지리산과 섬진강, 백운산, 계족산 자연과의 교감

 

 

“꼬끼오~” 


새벽이면 닭 우는 소리에 깨어난다. 뒷집 닭장이 바로 담벼락 하나 사이를 두고 있어 닭 우는 소리가 직방으로 들려온다. 닭의 신은 매일 이렇게 나를 깨우고 있다. 저녁에 일찍 잠을 잔 탓도 있지만 닭이 연속으로 우는 바람에 아니 일어날 수가 없다. 시계를 보면 4시에서 5시 사이다. 나는 닭들의 신에게 감사를 드리며 아침을 맞이한다.


문 밖으로 나오면 바로 집 앞에 개울물이 졸졸졸 흘러내리며 새벽의 노래를 부른다. 개울물의 여신이 부드러운 소리로 아침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름 모를 새들도 지저귀며 노래를 한다. 여기저기서 아침을 여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침내 자연의 소리가 하모니가 되어 교향악으로 마을에 흐르게 된다. 자연의 신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백운산에서 먼동이 터 오르면 그 빛이 점점 밝아지며 계족산을 선명하게 보이게 한다. 고개를 북쪽으로 돌리면 섬진강에 낮게 깔려 있던 물안개가 춤을 추며 왕시루봉으로 피어오른다. 물안개는 운무가 되어 왕시루봉을 휘감고 노고단으로 올라간다. 물이 안개가 되고, 안개가 구름이 되고, 구름이 다시 비가 되어 물이 되고, 다시 안개가 되고, 구름이 되고… 자연계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순환을 하는 것이다.

 

섬진강의 물안개는 왕시봉으로 피어오르다가 백운산을 휘돌아 계족산에 걸린다. 그래서 늘 계족산은 신비한 베일에 가렸다가 벗겨지곤 한다. 지리산, 백운산, 계족산 사이에 수평을 이루고 있는 수평리에는 생각보다 넓은 들판이 드리워져 있다. 푸른 들판에 서서 휘감아 도는 신비한 안개와 운무, 운해가 수시로 넘나드는 곳에 살게 되다니... 아, 안개의 신은 베일을 벗으며 내 앞에 지리산의 웅장함을 보여준다. 나는 안개의 여신에게 엎디어 감사를 드린다.


어떤 때는 멀리 노고단에서부터 천왕봉까지 운해가 낮게 드리워져 있다. 운해는 구름이 덮인 바다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보다는 산 밑에 깔려있는 운해는 왜 그리도 신비하게 보일까? 자연은 참으로 위대하다. 자연은 신이며, 신은 자연 속에 있다. 나는 자연의 신에게 경의를 표하며 감사 기도를 올린다.


운해가 걸린 지리산에는 어떤 때는 신이 상주하는 것처럼 보이고, 어떤 때는 신선이 거닐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신과 신선의 차이는 무엇일까? 신은 인간을 넘어선, 보이지 않는 존재? 신선은 인간의 모습을 하면서 죽지 않는 도인? 하여간 지리산에는 신과 신선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신비한 지리산을 매일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이 내게는 위대한 행운이다. 그 산세의 모습이 때로는 네팔 포카라의 안나푸르나봉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며, 알프스 자락에 있는 것 같기도 했으며, 안데스가 내리 뻗은 파타고니아 벌판에 서 있는 느김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이처럼 늦게 오다니 도대체 내 삶이 이해가 안가요?”

“이제라도 왔으니 다행이지 않겠소? 신이 우리에게 내린 축복이요.”

“신은 우리에게 왜 이렇게 늦게 축복을 내려주지요?”

“언제나 늦었다 할 때가 빠르지 않겠소? 그러니 신의 축복은 늦은 법이 없는 것 같아요. 인연과 업에 따라 인간의 길은 가게 되어있으니 말이요. 늦게라도 우리를 불러준 지리산의 신에게 감사 기도를 올려야 하지 않겠소?”

“맞아요. 우리를 불러준 지리산 신이게 감사를 드려야.... 억겁을 두고 우리들과 맺어진 지리산 신과의 인연, 그리고 우리의 업이 지리산 가까이까지 올 수 있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우린 무한한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선재선재!"

 

 

▲ 섬진강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왕시루봉으로 춤을 추며 오르다가 운해로 변해 노고단 밑으로 구름 바다를 이루고 있다. 

 


가끔은 아내와 나는 도시의 삶에서는 나누지 않았던 대화를 하곤 한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  인간을 지배를 받는 것일까?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자연과의 교감, 신과의 교감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곤 하다. 그것은 저 안에, 저 깊숙한 인간의 마음 근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영성이 깨어나고 있는 것일 게다.


그 영성과 신들의 부름이 여기, 지리산과 섬진강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같은 날에는 더욱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섬진강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운무가 되어 왕시루 봉으로 올라가더니 노고단 밑으로 운해가 되어 구름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발 밑에 피어난 보라색 메꽃이 신의 축복을 빛깔로 빚어내고 있다. 아아, 지리산의 신들이시여, 이 땅에 축복을 내려 주소서.

 

(2010.8.9 수평리에서 섬진강 운해를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