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예의 바른 구례 군민이 되던 날

찰라777 2010. 8. 7. 06:24

 

오늘은 면에 가서 전입신고를 하기로 했다. 나그네처럼 왔다 갔다하는 방랑객으로 주민들한테 비추이는 것도 보기에 좋지 않고 나 자신도 확실하게 귀농을 했다는 마음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는 40년동안 살았던 서울 주소이지만 과감하게 섬진강으로 옮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태어난 땅은 제1의 고향이고, 인생의 거의 모두를 살아온 서울은 제2의 고향이라면, 인생의 말년을 보내게 될 섬진강은 제3의 고향이 되는 샘이다.

 

간전면 사무소는 우리집에 서 그리 멀지가 않다. 자동차로 5분 이내의 거리에 있다. 면사무소에 들어가니 시골 면사무소 답지 않게 제법 건물도 크로 직원수도 의외로 많았다. 여직원에게 전입신고를 마치고 나니 "간전면민이 되신것을 축하합니다."라고 했다. 그래 나는 오늘부터 진짜로 간전 면민인 동시에 구례군민이 된 거다. 주민등록증 뒷면에 변경된 주소지를 기입해 주며 면사무소 아가씨는 축하의 말을 해주었다.

 

"자동차를 가지고 계시면 15일 이내로 번호판을 군청에 가셔서 새 번호판으로 갈아야 합니다."

"그래요. 그럼 지금 당장 가야겠군요.

구례군청으로 가는 아름답다. 간전다리를 건너 좌회전을 하면 토지면이 나온다. 지리산을 휘돌아 섬섬옥수 흐르는 섬진강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인간이 감히 헤이라지 못하는 괴이하게 높은 뜻을 담아두고 있다' 지리산(智異山)! 그 지리산 맥을 휘감고 있는 섬진(蟾津)강은 달 속에 금두꺼비가 내려와 남이 알지 못하게 납작 엎드려 그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토지면에 있는 운조루

 

<토지면>이란 이름은 듣기만 해도 향수에 젖게 하고, 향토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격암유록에 때가 이르면 지리산이 담고 있는 높은 뜻이 지리산 자락 토지면에 펼쳐진다 해서 예부터 도인들이 이곳 토지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파도리란 마을을 지나면 토지면 사무소와 우체국, 보건소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토지초등학교라는 간판도 예쁘게 보인다. 이 지역을 지날 때마다 시간을 내어 카메라에 담아보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토지면을 지나면 우측으로 운조루와 곡전재 등 기와와 황토로 지은 집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보기만 해도 마음의 창이 탁 트이는 풍경이다.

  

▲토지면 운조루가 있는 오미리 

 

화엄사입구를 지나 남원으로 가는 큰 길을 지나가면 이윽고 구례읍이다. 구례! 구례는 예부터 예의를 갖추는 고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친절하고 예의가 바르다. 구례시외버스 터미널을 지나면 로터리가 나오고 로터리 우측으로 구례군청이 시원하게 서 있다.

 

민원실에 들어가 번호판 변경을 신청했더니 바로 넘버를 교부해준다.

"35-6594와 6592 둘 중에 하나를 고르시지요."

"당신생각은 어때?"

"6594보다는 6592가 좋을 것 갔네요."

"그럼 6592로 합시다."

"자동차 번호판 다는 곳은 이 약도로 찾아 가시면 됩니다."

 

약도를 들고 자동차 등록번호 교부처를 찾아가니 아가씨 혼자 앉아 있었다. 자동차 등록증을 건네주자 아가씨는 즉시 번호판을 제조해서 달아 주었다. 개명이름값 43,000원이 이다.

 

지금까지는 3421로 불렀는데, 이부터는 6592로 이름이 바뀐 자동차를 돌아보니 새 차가 된 기분이 들었다. 3421은 다른 여러 개의 자동차 이름들과 함께 사라져 가고 있었다. 번호판 무덤처럼 보이는 곳에 3421이 던져지는 것을 보니 새삼 이름이란 것이 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튼...  이제 6592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여보, 새 번호판을 달고 나니 우리차가 새 차가 되었어요."

"섬진강으로 이사를 온 각하님께 새로 선물하는 멋진 차가 아니오. 하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어가는섬진강  861번 도로

 

 

집으로 돌아올 때는 섬진강 남쪽인 861번 도로를 탔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어가는 아름다운 길이다. 사람도 자동차도 구례군민이 되는 날. 도로 양편에 도열한 벚나무들이 차려 자세로 경례를 하며 하늘거리고 있었다. 마을로 돌아오다가 수평상회 앞에서 이장님을 만났다.

 

 

"어딜 다녀 오슈?"

"네 오늘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하고 오늘 길이구먼유."

"아 그래요. 축하드립니다. 이제 명실 공히 우리 마을 사람이 되었군요."

"감사합니다. 자동차 번호판도 새로 달았어요."

"저런, 입주 축하잔치를 한번 벌려야 겠군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부로 아내와 나는 '구례군 간전면 수평리 중평마을' 주민이 되었다. 어쩐지 마음이 더 떳떳해지고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흐음, 허지만 나는 오늘부터 보다 예의 바른 구례 군민이 되어야 한다. 더 고개를 숙이며 더 겸손해지는 삶을 살아가야지..

 

(2010.8. 3 전입신고를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