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못 말리는 지리산 스님들께 묻다

찰라777 2010. 8. 26. 12:32

못 말리는 지리산 스님들께 묻다

지리산 화개골 홍서원을 가다

 

말벌 집을 제거해야 한다, 그대로 두자하며 아내와 갑론을박을 하고 있는데, 정읍에 살고 있는 박순희 선생님이 순천의 원 여사와 함께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녀는 서울에서 살다가 시어머니가 병이 중하여 시어머니를 돌보고자 정읍 태인 시골마을로 이사를 해서 살고 있는 중년부인이다. 지난번 블루베리를 사기 위해 정읍에 갔을 때 원 여사와는 서로 인사를 나눈 처지여서 김치 담그는 법도 배우고 할 겸 마음먹고 지리산 나들이를 했단다.

 

박 선생과 나는 '숲해설가협회'소속으로 숲 해설을 수년간 해온 인연이 있다. 그녀는 서울 집을 전세를 놓고 정읍외곽에 작은 집을 인수하여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그녀의 남편은 아직 서울에서 직장을 생활을 하고 있다.

 

대부분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를 모시기도 힘들어 할 뿐만 아니라, 시골로 이사를 가는 것은 더더욱 꺼리는데 이처럼 마음을 내어 시골로 이사까지 하여 중병 중에 있는 시어머니를 모시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 중에 하나다. 벌집 이야기를 했더니, 자연주의자인 박 선생은 건드리지 말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하고, 원 여사는 에고 무서워! 하면서 당연히 제거를 해야 한다고 했다.

 

 ▲홍서원 입구에 걸린 종

 

"지리산 홍서원을 한 번 찾아가서 한 번 물어 볼까요?"

"아, 그 못 말리는 수행 이야기를 쓴 지리산 스님들이 머물고 계신 곳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한 번 가고 싶었는데 우리 모두 함께 가서 한 번 여쭈어 보자고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지리산 화개골 맥전 마을에 있다는 홍서원을 찾아 가기로 했다. 스님들이 쓴 책은 구례읍 매천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는 참이었다. 맥전 마을도, 홍서원도 내비게이션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좌우간 쌍계사 근처에 있다고 했으니 우선 쌍계사 쪽으로 차를 몰았다.

 

소낙비가 내렸다 그쳤다 하는 지리산자락의 섬진강은 홍수 뒤에 평정을 되찾아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화개장터에서 어느 노인에게 맥전마을을 물으니 "저리 쌍계사 쪽으로 쑥 올라가쇼." 하며 지리산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홍서원 절집으로 들어가는 길

 

쌍계사 근처에 가도 홍서원이나 맥전 마을 표시는 없었다. 다시 길을 걷는 어느 노인에게 맥전 마을 가는 길을 물었다. "저 우에서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가서 쭉 올라가면 맥전 마을이여." 그 노인도 홍서원이란 절은 몰랐다.

 

다리를 건너 칠불사로 올라가는 길을 한 참을 올라가도 맥전 마을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 삽을 어께에 매고 다리를 절룩이며 걸어가는 노인에게 길을 물었다. "워메, 잘 못 왔네. 저 다리를 건거 왼쪽으로 쭉 올라가. 거기가 맥전 마을이여. 홍서원? 그건 잘 모르 갔고, 거기 가면 절이 많아."

 

그 노인도 홍서원은 몰랐다. 노인이 일러 준대로 가니 '맥전길'이란 화살표가 나왔다. 쌍계계곡을 따라 가는 좁은 길이었다. 움퍽짐퍽 길이 험했다. 그렇게 한 참을 가다가 막다른 길 같은 곳에 트럭이 한 대 서 있었다. 마침 스님이 트럭 운전석에 앉아있어 홍서원을 물으니 "바로 저 집이에요."  

 

 ▲두릎나무에 싸인 홍서원

 

홍서원은 간판도 없이 여느 가정집처럼 나무 사이에 서 있었다. 책에 나온 절은 한 평짜리 토굴이었는데 제법 커 보였다. 두릅나무가 꽃을 피워 무성하게 자라나 있고, 절집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작은 항아리에 파란 수련이 피어 있었다. 금송화가 길 양편에 노란 꽃을 내밀며 길손을 반겨주고 있었다.

 

절집 문 앞에는 학교종이 땡땡땡 했던 종처럼 작은 종이 하나 퀭하니 걸려 있었다. 담백하고 정겨운 모습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고 상하좌우에는 문수보살, 관세음보살, 지살보살, 약사보살 등이 밀랍인형처럼 비로자나불을 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퍽 단아하고 정결하게 보였다. 

 

부처님께 삼배를 하고 앉으니 '못 말리는 수행이야기'를 쓴 주인공인 현현스님은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고, 천진 스님께서 오미자차를 내왔다. 두 스님의 모습만 바라보아도 저절로 선정에 들것만 같은 단정하고 청초한 법향이 풍겨왔다. 수행을 많이 한 분 곁에 가면 이렇게 법향에 저절로 젖어들게 된다.

 

천진스님은 우리들에게 노트로 된 방명록을 적으라며 펜을 건네주었다. 방명록을 적고 있는데, 정봉무무스님께서 약간 구부정한 모습으로 들어오셨다. 우리는 모두 일어나 정봉무무스님께 삼배의 예를 갖추었다.

 

스님께서는 함께 맞절로 우리들을 받아 주었다. 둥그런 타원형의 얼굴에 짙은 눈썹, 분홍 빛을 띠는 볼, 밝은 표정, 가녀리면서도 단단해 보이는 기풍에서 수행의 깊이를 느낄 수가 있었다. 스님께서는 반쯤 앞으로 기우린 자세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경청을 해주었다. 내가 예의 말벌 이야기를 꺼내자 스님께선 웃으며 말했다.

 

"우리 토굴에도 말벌들이 출입문에 집을 짓고 있어요. 그런데도 딱 한번 만 제외하고는 한 분도 벌들에게 침을 맞은 적이 없답니다. 벌집 밑에 모기장을 쳐 두고 아주 조심스럽게 다치지 않도록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지요. 인간이 벌을 해치려는 마음이 없으면 벌도 절대로 인간을 해치지 않아요. 그러니 서로 조심하며 자비와 사랑으로 함께 살아가면 전혀 문제가 없어요."

 

스님은 좌중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눈길을 마주치고 말을 이어 갔다.

 

"채식을 하고 모든 생물과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그 어떤 동물도 인간을 함부로 해치지 않아요. 동물들은 육감으로 그들을 해칠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차리거든요. 인간이 그들을 살해할 마음이 있으면 벌써 그들도 알아차리고 방비책을 세우지요.

 

입구에 들어오다가 항아리에 핀 연꽃을 보았지요. 이곳은 의외로 물이 귀해서 항아리에 물을 담아두자 모기들이 알을 까서 집을 짓고 살고 있어요. 그러자 잠자리와 새들이 날아와서 함께 살아요. 그들은 서로 생존을 할만 큼만 살생을 하고 공존하며 살아가거든요. 그래서 모기약을 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살고 있어도 이렇게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홍서원 앞 산에 몰려오는 먹구름.

 

스님은 '자비와 사랑'을 매일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영원히 행복하고 죽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설파 하셨다. 그러시면서 부처님께서 성도 이후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들려준 '고집멸도' 사성제의 골자를 짧게 이야기해 주셨다.

   

그러면서 '지리산 스님들의 못 말리는 행복이야기'를 담은 책을 일일이 사인을 해서 한권씩 선물해 주었다. 이 책은 행복해지는 비결인 불교의 핵심을 풀어서 담은 부처님의 초기 가르침인 '사성제 팔정도'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행복한가? -고성제

왜 행복하지 않는 걸까?-집성제

100% 행복해질 수 있다-멸성제

어떻게 하면 행복해 질 수 있나요?-팔정도

 

스님과의 면담시간은 불과 10분정도였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한 마음을 들게 하는 그런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만남이란 길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홍서원을 내려오는데 비를 잔뜩 머금은 먹구름이 건너편 산을 덮쳐왔다. 곧 소낙비가 내릴 기세다. 우리는 서둘러 차를 탔다. 좁은 길을 내려오는데 학교종이 땡땡땡 치며 무언의 깨침 소리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말벌과 함께 더불어 살아 봐?

 

"자비와 사랑으로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갈 때 행복은 온다"

-지리산 정봉무무 스님-

 

(2010.8.25 지리산 화개골 홍서원을 내려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