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벌레들과의 약속-늘어만 나는 식구들

찰라777 2010. 8. 25. 10:03

늘어만 나는 식구들

벌레들과의 약속

 

"엇! 악!"

 

밤중에 잠을 자는데 서재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형님께서 꿈을 꾸시는지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지난주엔 서울에 사시는 형님과 형수 두 분, 그리고 장조카가 이사 온 저희 집에 둘러보시겠다고 내려와 계십니다. 다음 날 아침 형님께 물었습니다.

 

"형님, 어제 밤에 무슨 악몽이라도 꾸셨습니까? 소리를 막 지르시던데."

"응, 그게 꿈이 아니라 갑자기 얼굴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고, 무언가 기어가기에 지네인줄 알고 혼비백산했지 뭔가? 동생한테 지네물린 이야기도 듣고 하여, 불을 켜보니 지네가 아니가 청개구리가 이리저리 뛰어 가더군. 허허."

"아이고, 크게 놀라셨겠네요?"

  

 

▲화분의 나무가지에 붙어 있는 청개구리. 녀석들은 가끔 방안으로 들어와 탁한 공기에 압사를 한다.

 

 

그런데 그 청개구리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더니 형님께서 가신 뒤로 방을 청소를 하는데 청개구리가 말라비틀어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앗, 불사! 방충망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청개구리는 방안에서 그만 질식을 하여 죽고 만 것입니다.

 

방 안에서 발견되는 것은 비단 청개구리만 아니라 지네, 모기, 귀뚜라미, 바퀴벌레 등 수많은 벌레들이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그만큼 방안의 공기는 이들 벌레들이 살기에 탁한 공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서울에서 청개구리를 보신 적이 있는지요? 청개구리는 아주 청정한 지역에서만 사는 파충류입니다.

 

처음에는 이들 벌레들을 보는 죽죽 "살생중죄 금일참회" 하며 약을 치거나 파리채로 쳐서 죽였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건 보통 살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해치지 않는 한 나 역시 그들을 죽이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원래 나보다 보금자리를 먼저 튼 터주 대감들을 함부로 죽인다는 것이 어쩐지 꺼리낌하고 미안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블루베리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말벌

 

 

우선 나는 집 전체 창문의 방충망과 틈새를 세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청개구리 같은 벌레들이 들어와 압사를 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찢어진 방충망을 보수를 하고 창문 틈새를 실리콘을 발라서 단단하게 막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집게를 준비하여 청개구리나 지네가 들어오면 집게로 집어서 멀리 집 밖으로 방생(?)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한번은 청개구리 한 마리가 방충망과 유리창 사이에 끼어서 몸살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녀석을 살살 달래서 밖으로 나오게 하여 집게로 집어 집 앞 개울가로 방생을 하여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방안에서 말라 죽는 청개구리를 보는 것보다 한결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화장실 창문 방충망 폼 잡고 앉아 있는 청개구리. 녀석은 비만 오면 이 자리에 올라와 앉아있다.

 

이곳 섬진강변으로 이사를 온지 두달째인 우리 집에는 점점 식구가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들이 야옹~ 하며 집 주위를 맴돌곤 합니다. 들 고양이에게 절대로 음식을 주지 말라는 아내의 충고를 무시하고 나는 가끔 그들에게 고기 덩어리를 던져주곤 합니다.

 

지난번 서울에서 친구들 세 부부가 왔을 때에는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어 먹는데, 검은고양이 한 마리가 주변을 기웃거렸습니다. 친구들이 재미삼아 고깃덩어리를 던져주자 잽싸게 받아먹었는데, 문제는 곧이어 흰 고양이와 또 다른 고양이가 어디선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영역 싸움을 하는지 으르렁 거리며 싸웠습니다. 그날은 고양이들에게 싸우지 말라고 하면서 친구들이 더 많은 보시를 했습니다.

 

 

▲집 앞 담장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말벌들의 집

 

오늘 아침에는 집 앞에 둘러싸인 담쟁이 잎이 떨어진 낙엽을 빗자루로 슬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담쟁이 바위사이에서 말벌들이 윙~ 하고 달려들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만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다시 살금살금 걸어가 담쟁이 사이를 보니 말벌들이 그곳에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녀석들을 직접 건들지는 않고 벌집 앞을 쓸기만 했으니 망정이지 벌집을 건드렸더라면 수십 개의 벌침을 맞을 뻔 했지요.

 

이장님은 에프킬러를 인정사정 없이 방사를 하면 벌들이 죽거나 도망을 간다고 하며 에프킬러로 집중사격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벌집을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내가 녀석들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그들도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사람들은 벌들이 살고 있는 우리 집 담장을 건드릴 리가 없기 때문에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말벌들이 살고 있는 담장에 피어난 닭의장풀꽃

 

 

마당을 늘려서 채소를 심자 새들도 더 자주 날아옵니다. 수련과 물옥잠화가 피어나자 벌들도 더 많이 날아듭니다. 나비와 잠자리 개미들도 더 늘어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자꾸만 늘어나는 식구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먼저 보금자리를 튼 터줏대감들 아닙니까? 그러니 나로서는 그들을 해칠 권리가 없는 샘이지요. 그래서 나는 다음 몇 가지 기준을 마음에 새겨 두고 아내에게도 그렇게 하자고 제의를 했습니다. 아내는 질색을 하며 주변의 벌레들을 소탕하라고 하며 반대를 합니다.

 

1. 벌레가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창문 등 틈새를 철저하게 막아 영역을 정하고, 그들과의 전쟁을 미연에 방지한다.

2. 벌레들이 우리를 해치지 않는 한 우리도 그들을 해치지 않고 공생하기로 한다.

3. 선의로 영역을 침범한 벌레들은 생포하여 방생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4. 약을 치는 것을 억제하여 대량 살상을 금지한다.

 

이러한 공약(?)들이 언제가지 지켜질지는 몰라도 일단 서로를 해치지 않고 공생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하하,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2010.8.25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