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Nepal

가필라성순례[3]-카필라성에 피어난 백련

찰라777 2011. 1. 20. 11:23

▲카필라성 서문 터

 

▲카필라성으로 가는 고행길

 

고티하와를 출발한 버스는 카필라 성으로 향했다. 고티하와에서 카필라 성까지는 약 7km로 그리 멀지않은 거리이다. 그러나 도중에 길이 패여서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길을 보수하여 버스를 겨우 통과시키고, 사람들은 걸서 갔다. 태양이 작열하여 머리는 뜨겁게 했다. 한 가닥 바람이 지나가며 젖은 땀을 식게 하고 벼를 물결치헤 했다.


카필라 성이 있는 틸우라코트(Tilaurakot)에 도착을 하니 아쇼카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숲이 나온다. 카필라바투스(Kapilavastu)라고 적혀진 팻말이 하나 있고, 그 앞에는 농부가 망치로 못질을 하며 수례를 고치고 있다.  노란 수세미 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는 우사에는 소 새 마리가 서서 꼬리를 치고 있다.

 

▲카필라성 입구에 세워놓은 표지판과 마구간의 소

  

성의 규모는 동서 450m, 남북 500m 정도로 아주 작다. 이곳에서 싯다르타 태자가 29년 동안 살아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성 입구를 지나 오른쪽으로 들어가니 서문이 나온다. 태자가 죽은 사람을 보았다는 곳이다.


무성한 보리수나무가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부서진 성터만 남아있는 서문에 서서 2500년 전 인생을 생각하는 태자의 사문유관을 상상해본다. 내가 만일, 그리고 당신이 만일 태자의 시대로 돌아가 동서남북의 성을 돌며 중생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본다면 어떤 생각을 했겠는가?


인생에 있어서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회고하며 앞으로 나아갈 사문유관을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싯다르타 태자의 사문유관을 다시 한 번 회고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더구나 이곳은 태자가 29년 간 살았던 채취를 느낄 수 있는 카필라성이 아닌가? "아는 만큼 느낀다!" 했지 않는가? 카필성을 방문하는 여행자는 반드시 시다르타 태자의 사문유관품을 한번쯤 음미하고 가는 것이 좋다.

 

 

동문 -늙은이를 만나다

 

▲동문 터

 

싯다르타 태자는 야소다라와 결혼을 하여 궁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궁전에는 밤낮으로 재미있고 즐거운 일들이 있었고 세상에서 뛰어난 음악이 있었다. 그러나 태자는 전혀 기쁘게 여기지 않고 언제나 고요히 도업을 닦으며 중생들을 제도할 방법만을 생각하였다.

 

어느 날 왕이 그 수종에게 묻기를 `태자가 비(妃)를 맞이한 이래로 뜻이 어떻더냐'라고 하자, 수종은 왕에게 대답하기를 날마다 근심하고 수심에 차 있는지라 몸이 여위어서 전보다 못하옵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걱정하면서 곧 여러 신하들을 불러 `태자가 기뻐하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소'라고 하자, 신하들이 의논하며 말하기를 `밖으로 내보내어 곳곳을 유람하며 나라의 정사를 자세히 살피게 하면서 도의 뜻을 버리도록 해야 하오리다'라 고 하였다.


이에 왕은 태자에게 이르기를 `다니면서 유람이나 하여라'고 하였다. 태자는 `오랫동안 궁전에 있었는지라 밖에 나가 유람하고 싶었는데, 비로소 소원을 얻었구나' 하고 기뻐하였다.

 

왕은 신하들에게 명하여 태자가 나가게 되는 길거리를 엄히 정돈하되 쓸고 향을 사르며, 비단 번기와 양산을 달고 깨끗하게 정돈하도록 하였다. 태자가 성문을 나서자 천 개의 수레와 만 마리의 말이 장엄한 행렬을 이루어 따르기 시작하였다.

 

▲둥문으로 가는 길

 

때에 수타회천(首陀會天)의 난제화라(難提和羅)는 태자를 빨리 출가 시켜 시방을 구제하고 세 가지 독의 타는 불에 법의 비를 내리어 독의 불을 끄게 하려고 변화로서 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그는 길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머리가 희고 이가 빠졌으며, 살갗은 늘어졌고 얼굴은 주름졌으며, 살은 없고 등은 앞으로 구부러졌다. 뼈마디는 시들어서 굽고 눈물과 콧물과 침은 뒤섞여 흘러 도무지 분간할 수 없었고 얼굴은 상기된 채 어깨로 숨을 쉬고 머리와 손을 쓸데없이 흔들고 몸은 벌벌 떨며 오로(惡露)는 저절로 나오는데 그 위에서 앉았다 누웠다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태자가 물었다.


`저 사람은 무엇하는 사람인가'. 수종이 대답하기를 `늙은이 옵니다'라고 하였다. `무엇을 늙음이라 하는가'. `대저 늙음이란 나이가 많아서 감관이 느리고 모양이 변하고 빛깔이 쇠하며, 기운이 미미하고 힘이 다하며, 소화가 잘 안 되고 뼈마디는 떠나가려 하며, 앉고 일어남에는 사람이 필요하며, 눈은 멀고 귀머거리가 되며, 문득 돌아서면 곧 잊어버리고 말을 하면 갑자기 슬퍼지며,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늙음이라 하옵니다.'

 

태자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사람이 세상을 사는 데에 이런 늙음이란 근심이 있었구나. 만물은 봄에 나서 가을과 겨울이 되면 시들며, 마르고 늙음은 마치 번개와 같거늘 어찌 몸이 편안하리라 믿겠느냐' 하고, 이어 게송으로 말하였다.

 

 

▲카필라 성터

 

늙어지면 곧 빛깔이 쇠하고

병이 들면 광택이 없어지나니

살갗이 느슨하고 살이 쭈그러지며

죽음만이 가까이 닥치는구나


늙으면 모양이 변하여져서

마치 헌 수레와 같을 것이니

법만이 괴로움을 없앨 수 있는지라

마땅히 힘써서 배워야 하리


목숨은 밤낮으로 다하려 하므로

시기에 이르러서 부지런히 힘쓸지니

세간의 진리는 무상한지라

휘말려서 어둠 속에 떨어지지 말지니라


마땅히 배움의 등불 켜야 하고

스스로 익히면서 지혜를 구하며

더러움에 물들지 말 것이요

촛불 잡고 도의 땅을 자세히 살피리라


이에 태자는 곧 수레를 돌려 궁으로 돌아왔는데, 일체 중생에게 이런 큰 근심이 있음을 불쌍히 여기며 깊은 근심에 잠겼다. 왕이 태자의 몸종에게 묻기를 `태자가 나가 노닐다가 무엇 때문에 속히 돌아왔느냐'라고 하자 그 수종은 `길에서 어떤 늙은이를 만나 슬퍼하고 언짢아하더니, 궁중에 돌아와서도 근심을 하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남문 - 병든이를 만나다

 

 

▲ 중앙 왕궁터

 

해가 바뀌자 조금 나아진 태자는 다시 나가 유람하려 하였다. 왕은 나라 안 사람들에게 명하여 태자가 지나는 곳에는 일체의 더러운 것을 금하여 길 곁에 있지 못하도록 하였다.

 

마침내 태자가 수레를 타고 성의 남쪽 문으로 나가는데, 하늘이 변화로서 병든 사람을 길 곁에 두었는데 몸은 파리하고 배는 크며 몸은 샛노랗게 되었으며 기침을 하고 구역질을 하며, 온갖 뼈마디는 몹시 쑤시고 아홉 구멍에서는 썩은 물이 흐르며, 부정한 것이 저절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으로는 빛깔을 보지 못하고, 귀로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신음하면서 숨을 쉬며, 손발은 허공을 더듬으며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짖고 `아내야' `아들아' 하며 횡설수설하는지라 태자가 몸종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무엇을 하는가'라고 하자, 그의 몸종이 대답하기를 `병든 사람이옵니다'라고 하였다."

`어떤 것을 병이라 하느냐.'

`저 사람에게는 네 가지 요소[四大]인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이 있어서 하나의 요소에 백한 가지 병이 있으며, 서로가 모여서 사백네 가지 병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데 이 사람은 극도로 춥고 극도로 덥고 극도로 굶주리고 극도로 배부르고 극도로 마시고 극도로 목마르는 등, 때를 구별하지 못하고 눕고 일어나는 데도 자신의 의지를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병이 걸리게 되었나이다.' 몸종의 말을 듣고 `나는 세상에서 맛나는 음식을 먹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부족함이라곤 알지 못했다. 따라서 스스로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했는데 이러한 내가 그와 무엇이 다르겠느냐' 하고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동문 유적지에서


이 몸이야말로 단단하지 않구나

언제나 네 가지의 요소와 함께 하고

아홉 구멍에서는 부정한 것이 흐르며

늙음이 있고 병환이 있도다


하늘에 가서 남도 모두가 무상하여

늙음과 생로병사의 근심이 있나니

몸을 살피매 마치 비누 거품 같은지라

세간에서 무엇을 즐길 수 있겠느냐


태자는 곧 수레를 돌려 궁중으로 돌아와서는 일체 중생에게 이런 큰 근심거리가 있음을 생각하며 고심하기 시작하였다. 왕은 또 몸종에게 묻기를 `태자가 나가서 노닐었는데, 이번에는 어떻더냐'라고 하자 그 몸종은 대답하기를 `병든 사람을 만나 보고서 다시 근심에 잠겼습니다'라고 하였다."

 


서문 - 죽은자를 만나다

 

▲서문 유적지에 서서

 

해가 바뀌자 조금 나아져서 다시 나가 유람하게 되었는데 왕은 나라 안에 칙명을 내려 태자가 나가게 되는 데는 어디든지 평탄하게 만들고 더러운 것은 길에서 멀리 하도록 하였다. 태자가 서쪽 성문으로 나가자, 상여가 막 성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가족들로 보이는 이들이 상여를 따르면서 `어째서 우리를 버리고 영원히 이별한단 말이오' 하며 울부짖었다. 태자가 묻기를 `이는 무엇하는 것인가'라고 하자, 수종은 말하기를 `죽은 사람이옵니다'라고 하였다.


`어떤 것을 죽음이라 하는가'

`죽으면 생이 다하여 정신이 떠나가는 것이옵니다. 네 가지 요소가 흩어져 혼신(魂神)이 편안하지 못하며, 바람 기운이 떠나가서 숨이 끊어지고, 불기운이 스러져서 몸이 차지며 바람이 먼저요 불이 다음이어서 혼령은 떠나가나이다.

신체는 해지고 다시는 아는 것이 없어지며 십여 일 동안이면 살이 무너지고 피가 흐르며 퉁퉁 부풀고 문드러져 냄새가 나며, 취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몸속에서는 벌레가 나와 살을 뜯어 먹으며, 힘줄과 맥은 문드러지고 뼈마디는 흩어져서 해골은 제 자리를 달리하며 척추 겨드랑이 어깨 팔 지라 종아리와 손발이며 손발가락은 저마다 제 자리에서 떨어지고 날짐승길짐승은 다투어 와서 뜯어 먹으며, 하늘과 용 귀신 제왕 인민 등,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 간에 이 환난만은 면할 이가 없나이다'라고 하므로 태자는 길이 탄식하면서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늙음 병 죽음을 자세히 살피면서

태자는 마음에서 깊이 탄식하노라

인생에는 무상함이 존재하므로

나의 몸도 당연히 그러하리라


이 몸이 죽고 나면

정신은 형상이 없을 것이나

가령 죽었다 다시 난다 하더라도

죄와 복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끝내 한 세상만이 아닌 것인데

어리석어서 영원함을 사랑하나니

이로부터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으며

몸은 죽어도 정신만은 없어지지 않으리라


공중도 아니요 바다 속도 아니며

산과 돌 사이도 아니니

죽음을 벗어나고 받지 않을

땅과 장소는 아무 데도 없으리라


이에 태자는 수레를 돌려 궁중으로 돌아와서 중생들에게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이 있음을 가엾이 여기어 근심하며 밥도 먹지 못하였다. 왕이 수종에게 물었다. `태자가 나가 노닐면서 과연 즐거움이 있었더냐.' 수종이 대답하기를 `죽은 사람을 만나고서 몹시 언짢아하고 있나이다'고 하였다.



북문 - 출가사문을 만나다

 

▲카필라성에 핀 백련

 

해가 바뀌자 조금 나아져서 다시 유람하고자 하여 수레를 이끌고 북쪽 성문으로 나갔다. 하늘은 다시 변화로 사문이 되어 법복을 입고 바루를 가지고 걸음걸이도 차분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이를 본 태자가 수종에게 물었다.


`이는 무엇하는 사람인가.'

`사문이옵니다.'

`어떤 이를 사문이라 하느냐.'

`대개 듣건대, 사문이란 도를 닦나이다. 집과 처자를 버리고 애욕을 버리며 육정(六情)을 끊고 계율을 지켜 벗어남이 없으며, 선정[一心]을 얻으면 곧 만 가지 삿됨이 사라지옵니다. 선정의 도는 아라한이라 하옵고, 아라한이란 진인(眞人)이옵니다. 소리와 빛깔이 더럽힐 수 없고 영화스런 지위가 굽힐 수 없으며, 움직이지 않음이 마치 땅과 같고 이미 근심과 고통을 면하였으며, 살고 죽음이 자재롭다 하옵니다.'


수종의 말을 듣고 난 태자가 말하였다. `장하도다. 이것만이 진정 상쾌한 것이로구나'.

이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북문쪽에 들어선 힌두사원


애달프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 있으니

정신은 다시 지은 업보를 받아

고통 속을 윤회하는구나.


이제 마땅히 여러 가지 고통 없애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없애며

다시는 인과에 빠지지 않고

영원한 열반을 얻게 하리라


이에 태자는 곧 수레를 돌려 돌아와서 근심하며 먹지도 못하는데, 왕은 수종에게 묻기를 `태자는 또 나가서 즐거워하더냐'라고 하자 수종은 대답하기를 `가다가 사문을 보고서 더욱더 근심하며, 음식조차 잡수려 하지 않나이다'라고 하였다.  

▲정반왕이 거쳐 했던 왕궁 터


 

왕은 듣고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전번에 태자가 가는 길을 정리하라고 일렀거늘 또 태자에게 상서롭지 못한 광경을 보게 하였구나' 하고는 곧 신하들을 불러 `어떠한 방법을 써야 장차 태자가 나가서 도를 닦지 않게 되겠소' 하니 한 신하가 있다가 말하였다.

 

`태자에게 농사짓는 것을 감독하게 하면서 그 일에 집착하도록 하여 도를 생각하지 않게 해야 하옵니다'라고 하므로 곧 농사짓는 기구인 쟁기와 소와 수종들을 딸리어 밭에 감독하는 일을 맡도록 하였다.


태자는 잠부나무[閻浮樹] 아래 앉아서 밭갈이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흙덩이가 부서지면서 벌레가 나오는데, 까마귀가 쪼아 먹고, 또 개구리가 쫓아가서 잡아먹곤 하였다. 그러면 다시 뱀이 구멍으로부터 나와 개구리를 잡아먹고 공작이 날아 내려와서 그 뱀을 쪼아 먹고 매가 있다가 내려와서 공작을 쳐서 잡고 독수리가 다시 와서 움켜쥐며 잡아먹곤 하였다. 태자는 이 중생들이 서로 잡아먹음을 보고서 가엾이 여기면서 곧 나무 아래서 제 일선(一禪)을 얻었는데, 햇빛이 빛나는지라 나무가 그를 위하여 가지를 굽혀 그늘이 들게 하였다.


왕은 곧 그의 수종에게 묻기를 `태자는 어떻더냐'라고 하였다. 수종이 대답하기를 `지금 잠부나무 아래 있으면서 한 마음으로 선정에 드셨나이다'라고 하였다. 왕은 말하기를 `내가 그로 하여금 농사짓는 일을 감독하도록 한 것은 출가하려는 그의 뜻을 막으려 한 것인데, 그렇게 선정을 한다면야 집에 있음과 무엇이 다르겠느냐'라고 하면서 태자를 마중하러 가다가 멀리서 보니 나뭇가지가 굽어서 그늘지게 하고 신령스럽게 빛남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왕은 자신도 모르게 말에서 내리며 그에게 예배하였다.


부왕이 태자와 함께 돌아오는데 성문에 이르기도 전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꽃과 향을 받들고 마중하면서 말하였다. `천수를 누리소서.' 이를 본 왕이 의아히 여기며 묻기를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자 범지가 대답하기를 `내일 아침에 해가 돋으면 칠보가 이르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태자가 반드시 전륜성왕이 되겠구나'라고 하며 크게 기뻐하였다.

 


출가 - 칸타카를 타고 출가하다


이에 이 때 태자는 궁중으로 돌아와서 생각하기를 `도를 생각하며 깨끗해지려면 집에 있어서는 안되겠다. 언제나 산과 숲에 살면서 힘써 연구하며 선정을 행하리라' 하였다. 나이 스물아홉 살의 이월 칠일이 되자, 여러 하늘들이 허공을 메우며 태자가 떠날 것을 권하였다.

 


그때 야쇼다라는 다섯 가지 꿈을 꾸고서 갑자기 놀라 깨어났다.

`무엇 때문에 놀라 깨시오'

태자가 묻자 야쇼다라는

`방금 꿈속에서 수미산이 무너지고, 달의 광명이 땅에 떨어지고 구슬의 빛이 갑자기 없어지고 머리의 상투가 땅에 떨어지면서 사람들이 나의 양산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 때문에 놀라 깨어났습니다'라고 하므로 태자는 `다섯 가지 꿈이야말로 나의 몸에 해당된 것이로다'라고 생각하고는 출가할 것을 더욱 다짐하면서 야쇼다라에게 말하기를 `수미산은 무너지지 않았고, 달의 광명도 계속 비치며, 구슬의 빛이 없어지지 않았고, 머리의 상투도 떨어지지 않았으며 일산도 여기 있습니다. 그러니 편안히 주무시고 일산 잃을 것을 근심하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이때 여러 하늘들은 말하기를 `태자여, 떠나가셔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혹시 태자가 성에 머물러 있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오소만(烏蘇慢)을 불러서 궁중으로 들어오게 하여 나라 안이 온통 잠에 빠지게 하였다.

연후에 난제화라는 여러 궁전을 변화하여 모두 무덤을 만들고 야쇼다라와 궁녀들은 모두 죽은 사람이 되게 하여 뼈마디가 흩어지고 해골이 제 자리에서 떨어지며 살이 문드러져 냄새가 나고 피고름이 줄줄 뒤섞여서 흐르게 하였다.


태자가 궁전을 살펴보자 모두가 무덤이요, 많은 새와 짐승이 그 사이를 날고 달아나는지라, 태자는 온갖 모양이 마치 허깨비 같고 꿈과 같은 줄 자세히 살피고서, `모두가 공(空)으로 돌아가거늘, 어리석은 이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구나' 하고, 즉시 찬타카를 불러 말을 준비하게 하였다. 찬타카가 말하였다.


`날이 아직 새지도 않았사온데 어디로 나가시겠나이까?'. 태자는 찬타카를 위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제 나는 세상이 즐겁지 아니하니

찬타카야 머뭇거리지 말아라

나의 본래 서원을 이루게 되면

너의 삼세(三世) 고통을 없애 주리라


이에 찬타카는 곧 말을 준비하러 갔는데 말이 갑자기 날뛰어 가까이 할 수가 없었으므로 태자가 몸소 말의 등을 어루만지며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고 죽음에 윤회하던 것

이제야 끊으련다

칸타카야, 나를 도와다오

도를 얻으면 너를 잊지 않으리라

 


이에 칸타카는 `내가 발소리를 내면 안팎의 사람들이 알아채리라'고 걱정하였다. 그러나 사천왕이 발을 들어 다리가 땅에 닿지 않게 하였다. 또 울음소리를 내어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을 두려워하자. 천신들이 말의 소리를 흩어서 모두 허공으로 날아가게 하였다."


태자는 곧 말에 올라 성문을 나아가는데 제석범왕사천왕 등 모든 하늘 신들이 즐거워하며 인도하고 따르면서 허공을 덮었다.

때에 성문의 신이 사람으로 나타나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카필라국은 천하의 중심지로서 모든 것이 풍성하고 즐거우며 백성들이 편안하거늘, 무엇 때문에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떠나십니까?'라고 하므로 태자는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나고 죽음을 오랫동안 하면서

정신은 오도(五道)에서 지냈었나니

나는 본래 서원을 이루어

장차 열반의 문을 열어야겠소


성문이 저절로 열렸다. 태자는 문을 나서서 날이 새기까지 사백팔십 리를 나아가서 아노마국(阿奴摩國)에 이르렀다.


태자는 말에서 내려 보배 옷과 영락보배관을 벗어서 모두 찬타카에게 주며 말하였다. `너는 말을 끌고 돌아가서 대왕과 신하들에게 나의 출가한 사실을 알리도록 하라'고 하자, 찬타카가 말하였다.


`저는 떠나지 않고 곁에서 도와드릴 것입니다. 혼자는 돌아가지 않겠나이다. 말이나 놓아서 떠나가게 하옵소서. 산중에는 독충과 호랑이와 사자들이 많이 있는데 누가 음식과 물이며 침구 등을 공양하며, 누구로부터 얻을 것이옵니까? 반드시 제가 따르면서 몸과 목숨을 같이 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이때 칸타카는 길게 꿇어 앉아 눈물을 흘리면서 발을 핥고는 물을 보면서도 마시지 않고 풀이 있어도 먹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떠나가지 않으므로 태자는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몸이 강하여도 병이 들면 꺾이고

기운이 왕성해도 늙음이 오면 쇠하며

죽어지면 살아서 이별하거늘

어찌하여 세간을 즐기겠느냐


이에 찬타카는 슬피 울며 태자의 발에 예배하고 말을 끌며 하직하고 돌아갔다. 그들이 성에 닿기 사십 리 전에 말의 울음소리가 슬프게 울리는데 그 소리는 나라 안에 사무쳤다. 울음소리를 들은 나라 안 사람들은 `태자가 돌아오는구나' 하고 모두 마중을 나왔다. 그러나 마부 찬타카 혼자 말을 끌고 돌아옴을 보자 크게 낙심하였다.


야쇼다라가 이를 보고서 몸을 던지며 나아가 말의 목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지라 왕은 야쇼다라의 우는 모습을 보고 오장이 끊어진 듯 하였지만 애써 억제하며 말하기를 `나의 아들은 자연(自然)을 배우느니라'고 하였다. 나라 안의 신하와 백성들은 왕과 야쇼다라가 흐느끼며 슬피 우는 것을 보고서 마음 아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카필라성에 핀 백련


태자가 동서남북으로 사문유관을 유람하고 드디어 출가를 하는 모습이 환영으로 나타난다. 서의 중심에는 왕궁 터로 짐작되는 성터가 남아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족으로 수풀을 해치고 걸어가면 바로 동문 터가 나온다. 태자는 이 동문으로 출가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문 밖 200m 전방에는 태자가 유성출가 시 마부 찬타카와 말 칸타카를 타고 나갔다가 말과 마부만 돌려보냈는데, 칸타카가 태자를 그리워하며 성에 들어가지 않고 죽은 장소가 있다. 그 장소에는 칸타카를 기리는 작은 수투파가 세워져 있다.

 

 

▲백련


동문 터에서 잠시 쉬며 들판을 바라보다가 북문으로 돌아가는데 하얀 연꽃이 만발한 연못이 나온다. 이곳에서 연꽃을 보다니! 일행들은 모두 멈춰 서서 환성을 지른다. 유구한 시간이 흘러 몇 천 년이 지났지만 연꽃은 이렇게 아름답게 피워 성터를 밝히고 있다. 나는 한동안 넋을 잃고 연꽃에 취해 있었다. 마치 부처의 환생을 보는 느낌이알까? 빨리 오라는 아식의 소리를 듣고 문득 정신이 들어 성터 밖으로 나아갔다.


연꽃이 핀 방죽 사이 길로 걸어 나오는데 절은 없고 힌두사원만 있다. 힌두사원에서는 치성을 드리는 북소리가 요란하다. 태자가 이곳을 떠난 지 2500년이 지난 지금 카필라성은 태자를 기리는 연단, 불상 하나도 없다.


어쩌면 그것이 더 진한 감동을 주는지도 모른다. 육신의 몸매는 보이지 않지만 고집멸도 사성제의 진리를 깨달은 붓다의 가르침은 영원하지 않는가? 카필라 성은 형상이나 소리로 여래를 찾는 자는 진실로 여래를 못한다는 가르침을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는 북소리 요란한 가피라 성을 떠나 정반왕의 무덤인 수투파가 있다는 곳으로 걸어갔다.

 

(가필라 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