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붉게 타오르는 영취산 진달래 황홀경에 취하다!

찰라777 2011. 4. 17. 07:23
 

 

 

 

 
마음까지 붉게 타오르는 영취산
 
진달래꽃 황홀경에 취하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네
마음속에 자꾸 커 가는
이 짓붉은 사랑
무더기로 피어나 나를 흔드네
내 살아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
이리도 가슴 뛰는 일이네......
 
(홍수희, 아 진달래 중에서) 

 

 

 

▲온 산을 붉게 물들인 영취산 진달래는 마치 봉화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다.

 

 

 

 

 

 

▲억새평원에서 바라본 450봉 진달래

 

억새평원에서 바라본 450봉 진달래

 

 


 

 

 

▲햇빛에 반사되어 더욱 붉게 보인다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봄꽃을 보는 것은 시기와 장소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봄이 오면 영취산 진달래를 보러 가기위해 여러 차례 시도를 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무슨 일이 생겨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에 뜻하지 않게 서울에서 온 아내의 친구들이 벚꽃구경을 왔다가 순천만 갈대가 보고 싶다고 했다. 친구들은 오전에 순천만 갈대를 돌아보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떠나갔다.

  

 "여보, 영취산이 가까운데 진달래나 좀 보고 갈까?"

"그거 좋네요. 일부러 오기도 하는데."

 

그래우리는 영취산으로 차를 몰았다. 순천에서 여수 영취산 흥국사까지는 그리 멀지가 않다. 흥국사에는 벌써 많은 관광버스들이 상춘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산을 타고 내려오는 등산객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인도 영취산을 닮았다고하여 붙여진 여수 영취산 진달래

 

 

"영취산은 석가모니가 최후로 설법을 했던 인도 영취산과 산의 모양이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옛 동국문헌기고에 따르면 영취산은 흥국사 동남쪽에 위치한 439m 봉우리이고, 동북쪽 봉우치를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510m 봉우리가 진례산이라 하는데, 이 두 봉우리를 아울러 영취산이고 하지요.

  

 

흥국사는 고려 명종 25년에 보조국사가 창건한 절로 "이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나라가 망하면 이 절도 망한다"고 해서 "흥국興國"이란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국가의 부흥과 백성의 안위를 기원하기 위해 경관이 좋은 영취산 기슭에 이 가람을 창설한 것입니다.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나라가 망하면 절도 망한다는 흥국사  대웅전

 

 

이 절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요. 여러분이 절에 들어 올 때에 지나온 무지개다리인 <홍교虹橋>는 속세를 떠나 성스러운 사원으로 들어오는 반야(지혜)의 다리로 공중에 걸린 반원의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루고 있지요. 또한 대웅전 중앙 불단의 뒷벽에 있는 <수월백의관음도> 후불탱화는 보물중의 보물로 매우 수려합니다.

   

 

또 한 가지 꼭 놓치지 말 것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한 번 잡기만 해도 삼악도(축생, 아귀, 지옥)에 덜어진다는 것을 면한다는 대웅전 문고리랍니다. 이 문고리는 1624년 대웅전을 지을 때에 편수로 참여한 마흔 한 분의 승려들이 천일기도를 하면서 누구든지 이 문고리를 잡는 중생들이 삼악도를 면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원력을 세웠다고 합니다. 저 문고리를 한 번만 잡아도 재앙을 물리치고 여러분의 소원을 들어 줄 것입니다. 그러니 잊지 말고 저 문고리를 잡고 여러분의 소원을 빌어 보세요."

 

 

호리호리한 키에 칠십을 넘었을 문화해설사 할아버지의 해설은 청산유수처럼 구수하고 막힘이 없었다. 해설을 들은 사람들은 다른 것은 딴전이고 모두 우르르 문고리를 잡으러 갔다. 그 어떤 보물이나 문화재보다 복을 받고 재앙을 물리친다는 소리에 혹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 모양이다.

 

 

 ▲한번만 잡아도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흥국사 대웅전 문고리

 

 

문고리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러 들였을까? 그 실은 영취산 진달래보다 더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이 흥국사 대웅전의 문고리다. 복은 스스로 지어야 할 터인데, 받으려고만 하는 것이 인간의 욕심인가 보다. 흥국사를 돌아보던 아내는 컨디션이 좋이 않다고 하며 흥국사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그럼 내가 카메라에 담아올 터이니 여기서 쉬고 있어요."

"너무 늦지 않게 오세요."

"오케이."

 

 

봉우재에 오를 때가지는 진달래는 한 송이도 보이지 않고 울긋불긋 등산복을 입은 사람꽃만 만발해 있다. 원래 영취산 등산 코스는 GS칼텍스가 있는 진달래축제행사장에서부터 시작해서 정상을 타고 흥국사로 내려오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나는 역으로 올라가고 있으니 사람을 피해서 올라가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봉우재군락지

 

 ▲봉우재군락지

 

 ▲봉우재군락지

 

 

▲봉우재군락지

 

 

가까스로 봉우재에 오르니 온 몸에 땀이 홍건이 젖어있다. 눈을 들어 우측을 바라보니 진달래꽃이 마치 봉화불이 타오르듯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러나 도솔암이 있는 쪽으로는 진달래는 보이지 않고 등산로를 따라 벚꽃이 흰 띠를 이루듯 피어있다. 나는 우선 진달래가 보이는 시루봉쪽 봉우재군락지 능선으로 올라갔다.

 

 

 

▲S자를 그리는 억새평원 진달래길

 

 

어쩌면 저리도 붉을까? 내 마음속까지 붉게 타오르게 한다. 최초에 누가 이곳에 붉은 진달래를 심었을까? 무심코 툭 떨어뜨린 불씨 하나가 온 산을 태우듯  진달래꽃으로 활활 타오르는 영취산은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존재로 만들고 만다. 시인은 그 마음을 잘도 노래했다.


그 땐 참,
내 마음이 저리
붉었습니다

 

당신이 지나치며
투욱,
떨어뜨린 불씨 하나가

 

내 영혼 가파른
벼랑 위로
잘도 활활 타들어
올랐습니다

 

(홍수희, 진달래)

 

진달래로 터널을 이루고 있는 등산로는 온통 연분홍 진달래 천지다. 섬진강가에서 눈이 시리도록 하얀 벚꽃만 보다가 붉은 진달래를 보노라니 이제 눈이 붉게 충혈 되는 것만 같다. 우뚝 솟은 바위 밑에서는 스님 한분이 목탁을 두드리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붉은 진달래와 바위, 그리고 스님의 목탁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활활 타오르는 진달래꽃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눈이 아득해진다. 아내와 함께 와야 하는데… 그 때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봉우재군락지

 

 

"산이 험하다는 데 괜찮은가요? 지금 어디쯤이지요?"

"봉우재 근처야. 진달래꽃이 정말 장관이네! 함께 왔어야 하는데."

"정상을 넘어가면 진달래축제장소로 내려가는 것이 좋데요. 제가 차를 그쪽으로 대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러면 좋지."

"그럼 너무 늦지 않게 내려오세요."

"여부가 있소."

 

 아내가 고맙다. 영취산 진달래의 진수는 도솔암을 넘어가야 한다고 되었다. 나는 다시 봉우재로 내려와 도솔암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도솔암 능선은 전부 나무 계단으로 별 재미가 없는 코스다. 진달래 대신 벚나무를 시머 놓아 그나마 지루함을 달래주고 있다.

 

 

▲벚꽃사이로 불타는 진달래(봉우재군락지)

 

 

가다가 힘이 들면 뒤돌아보는 풍경이 쏠쏠하다. 진달래는 봉우재 건너편 능선으로 활활 타며 진분홍색깔로 물들어 있다. 하얀 벚꽃 사이로 보이는 붉은 빛깔이 곱디곱다.

 

 

▲510봉에서 바라본 시루봉

 

 

드디어… 510m 영취산 정상이다. 수많은 붉은 입술이 입을 벌리며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산 아래 펼쳐지는 풍경은 여수산단의 굴뚝과 뿌연 산업시설이다. 공단 너머로 멀리 여수 앞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여수산단 공해 때문에 다른 나무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오염에 강한 진달래만 무성해졌다고 한다.

 

 

 ▲진달래 너머로 보이는 여수산단도 오늘따라 아름답다

 

 

 ▲510봉에서 바라본 여수산단

 

 

진달래는 아름답지만 생태학적인 관점에서는 척박한 토양에서 자라며 산성 토양을 좋아한다. 여수산단 공해 때문에 산성비를 맞으며 화려하게 피어나는 영취산 진달래는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영취산 진달래는 크게 시루봉족 봉우재군락지, 영취산 510m 정상군락지, 개구리모양을 한 개구리바위군락지, 돌고개군락지, 골망재군락지로 나누어진다. 어느 곳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진달래능선이지만 그 중에서도 정상에서 개구리바위군락지를 지나 돌고개군락지로 내려오는 것이 진달래를 가장 만끽 할 수 있는 코스다.

 

 

 ▲개구리군락지

 

진달래는 진달래과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이다. 봄이면 잎보다 진분홍빛 꽃이 먼저 피어난다. 꽃잎을 들여다보면 다섯 장의 꽃잎이 한껏 벌어져 있지만 꽃잎 아래는 한데 붙어 통꽃을 이루고 있다. 통꽃 가지 끝에서 3~6개의 꽃송이가 모여 달린다.

 

진달래는 남부지방에서는 참꽃이라고 부르며, 진달래를 넣은 화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 진달래꽃이 만발한 3월 삼짇날에는 부녀자들이 화사한 봄볕 아래로 모여들어 진달래로 전을 부쳐 먹고 춤을 추며 노래도 부르면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진달래에 취한 사진작가

 

 

 ▲개구리모형의 군락지

 

  

 

 

우리민속에 화전놀이라는 것이 있다. 남정네들은 솥뚜껑 등 무거운 것을 들어 날라 냇가 돌을 모아 화덕을 만들어 놓고 불을 지피고 슬그머니 사라진다. 그러면 아낙네들은 솥뚜껑을 뒤집어 참기름을 바르고, 찹쌀가루 반죽에 진달래 꽃잎을 올린 화전을 만든다. 아이들은 진달래꽃에서 꽃잎만 떼어 내고 남은 암술대를 휘어 걸고 당기는 꽃싸움을 한다.

 

 

 

 

또 진달래 꽃잎을 따서 두견주를 빚어내기도 한다. 찹쌀밥과 진달래꽃을 겹겹이 넣어 100일을 지나면 두견주가 된다. 이 두견주를 조금씩 마시면 진정과 안정에 도움이 되고 혈압도 낮아진다고 한다.

 

 

 

 

두견주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진달래를 두견화라고 한다. 중국 촉나라의 망제 두우가 전쟁에 패망하여 나라를 잃고 죽어서 두견새가 되어 매년 봄이 오면 피눈물을 흘리며 온 산천을 날아다니다가 눈물이 떨어져 핀 꽃이 바로 연분홍의 진달래꽃이라고 한다.

 

 

 

 

영취산 정상에서 개구리바위군락지로 내려오는데 햇빛에 반사되며 더욱 붉은 빛을 발하는 진달래가 점입가경이다. 기암괴석에 세워진 철 계단마저 흉하게 보이지 않고 아름답게 보일지경이다. 정말 피워도 너무 피었다. 이리도 붉은 길을 걸어보기는 평생에 처음이다.

 

 

 ▲진달래 터널

 

 

영변의 약산 진달래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지만 영취산 진달래만 할까? 진달래꽃 하면 소월의 '진달래꽃'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아까부터 정훈의 '꽃길'을 부르며 진달래에 넋을 잃고 있는 아줌마 일행들이 있었다.

 

 

'진달래 피고 새가 울면은/ 두고두고 그리운 사람/잊지 못해서/찾아오는 길/그리워서 찾아오는 길/꽃잎에 입 맞추며/ 사랑을 주고받았지/지금은 어디 갔나/그 시절 그리워지네/꽃이 피면은 돌아와줘요/새가 우는 오솔길로/꽃잎에 입 맞추며 사랑을 속삭여줘요………'

 

 

▲다시 찾아오고 싶은 진달래 꽃길

 

 

영취산 진달래 길은 소월의 시보다 정훈희의 꽃길이 어울리는 것 같다. 초연한 선홍빛 색깔 너머에는 그리움이 있다. 그곳은 언제나 그리운 님이 기다리는 천상의 화원이다. 450봉 억새평원을 타오르는 진달래는 황홀경 그대로다. 그것은 여수산단에 펼쳐지는 고단한 삶의 무게만큼 짓눌린 우리들의 영혼 속에 피어난 생명이라고나 할까? 공해 속에 피어나는 붉은 영혼들은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510봉으로 이어지는 개구리군락지

 

 

진례산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데 붉은 심장의 박동 소리가 점점 커진다. 붉은 선혈 속에서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감출 수 없네/마음속에 자꾸자꾸 커 가는/ 이 짓붉은 사랑…/무더기로 피어나 나를 흔드네(홍수희, 진달래)' 시인은 그렇게 노래했다. 시인의 노래처럼 진달래는 내 마음을 시종 흔들어 놓고 있다.

 

 

"여보, 어디쯤이야."

"응? 거짐 다 내려왔어요."

"빨랑 내려와요."

"조금만 기다려 줘요. 곧 내려갈 게."

 

 

진달래의 황홀경에 빠져 아내가 산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를 지경이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감동의 길이다. 아아, 영취산에 진달래꽃이 피면 다시 돌아오리라. 그리하여 꽃잎에 입마 추며 사랑을 속삭이리라.

 

 

▲영취산 진달래군락지 지도

 

(2011.4, 14 여수 영취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