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내 손으로 녹차를 직접 만들어 볼까?

찰라777 2011. 5. 19. 15:44

 

 

찻잎 따기

"참새입처럼 뾰쪽한 찻잎만 따세요."

 

 

봄이 오면 이곳 지리산과 섬진강 자락은 야생차의 천국으로 변한다. 지리산 야생차의 1번지는 뭐니 뭐니 해도 하동 쌍계사 부근 화개골 주변이다. 5월 초가 되면 들판은 물론, 화개동천변, 산비탈에 이르기까지 야생차가 군락을 이루는 하동은 가히 야생차 천국이 된다.

 

따라서 하동은 5월이 오면 야생차문화축제와 더불어 야생차 명인들의 각축장이 된다. 다원마다 자신이 만든 차가 제일이라고 하는데, 차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는 과연 어떤 차가 가장 좋은 차인지 그 맛을 알 수가 업다. 그런데 이웃집 혜경이 엄마가 직접 차를 만들어보지않겠느냐고 제의를 했다 

 

 

▲야생 그대로의 천연 차밭(간전면 흥대마을)

 

 

구례군 간전면 수평리 우리 마을 인근에는 산비탈에 거름이나 농약을 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녹차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물론 주인이 다 있는 곳이지만 일손이 모자라서 그대로 방치를 하는 곳이 많다.

 

지난 5월 5일 마침 혜경이 엄마 고모댁 차 밭이 일손이 모자라 찻잎을 따고 있지 못하고 있는데 함께 가서 찻잎을 따다가 차를 직접 만들어 보자고 한다. 얼씨구나, 좋은 기회라고 하며 아내는 당장 가자고 한다. 그래서 나는 찻잎을 직접 따서 차를 만들어 보는 좋은 기회일 것 같아 혜경이 엄마를 따라 아내와 함께 야생차 밭으로 갔다.

 

 

▲창 모양의 찻입

 

 

난생 처음으로 찻잎을 따보는 체험이었다. 혜경이 엄마로부터 어떤 찻잎을 따야 하는지, 어떻게 따야 하는지를 먼저 교육을 받았다. 찻잎을 따서 좋은 찻잎만 골라 덖어내는 일은 정성과 몰입의 경지가 필요하다. 찻잎을 따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심신을 깨끗하게 하여 찻잎을 따서 덖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입하(5월 6일) 전후가 찻잎을 따는 가장 좋은 절기라고 하는데 마침 내일이 입하이군요. 찻잎은 따는 날은 밤새 구름 한 점 없이 별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하늘에서 맑은 이슬이 내리는 날을 택해야 하는데, 오늘은 날씨도 맑고 햇빛도 좋아 찻잎을 따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군요."

 

"그럼 우린 운이 무척 좋군요. 처음으로 찻잎 따기를 하는 날인데. 그런데 어떤 찻잎을 따야 하지요?"

 

"일단 참새 입처럼 뾰쪽하고 연한 찻잎만 따세요. 찻잎이 가장 좋은 시기는 일창 일기나 이기 때가 가장 좋다고 해요. 삼기, 사기까지도 괜찮은 편인데, 그 이상이 지나면 쓸모가 없어요."

 

"일창이란 무엇을 뜻하지요?"

 

"일창이란 찻잎의 생김새가 뾰쪽한 창과 같다고 하여 일창(一槍)이라고 한답니다. 일기, 이기는 옆으로 돋아난 이파리가 창 끝 아래 깃발과 같다고 하여 일기, 이기(한 이파리, 두 이파리)라고 한답니다.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요 참새 입처럼 뾰쪽한 찻잎만 따세요."

 

"참 오묘한 뜻이 있군요.

 

 

▲혜경이 엄마가 찻잎따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처음으로 찻잎을 따보는 아내

 

 

하여간 아내와 나는 참새 입처럼 생긴 찻잎만 따서 담았다. 왼손에 대바구니를 들고 오른손으로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서 따는데, 연한 줄기 부분을 가볍게 잡고 뭉개지지 않도록 꺾어서 딴다. 하늘을 향해 생명의 향기를 내뿜고 있는 연한 녹차를 똑똑 따는 일은 독특한 작업이다. 연녹색 생명의 신비를 느끼며 찻잎을 따는 체험은 신선했다.

 

 

▲참새입모양처럼 생긴 잎만 따야 하는데 넓적한 잎은 잘못 딴 것

 

찻잎을 따는데 청개구리들이 능청스럽게 찻잎에 앉아 있다. 날씨가 더워지자 녀석들이 나온 것이다. 차밭에는 청개구리들이 많았는데 그만큼 청정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한 녀석이 울면 청개구리들이 돌림 노래를 하듯 일제히 따라 울어댔다. 청개구리들이 울어대는 것으로 보아 내일이나 모래쯤에 비가 올 모양이다.

 

▲녹차 잎에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는 참개구리

 

 

그런데 우리 두 사람이 따는 양보다 혜경이 엄마가 따는 양이 훨씬 많았다. 그녀는 어느 스님의 주문으로 고모님과 함께 찻잎을 따고 있는데 참새 입처럼 생긴 찻잎을 골라 양손으로 재빠르게 땄다. 1시간만 서서 따도 힘이 드는데 하루 종일 서서 찻잎을 따는 일은 보통 노동이 아닌 것 같다.

 

 

찻잎 덖으기

"아이고, 아홉번이나 덖어요?"

 

 

다음에는 찻잎을 덖을 차례이다. 딴 찻잎은 상하거나 시들지 않고 싱싱하게 보관해야 하며 발효가 되지 않도록 연한 찻잎이 이겨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 직사광선을 피하고 시원한 그늘에 잘 펴서 널어놓고 오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싱싱한 찻잎

 

 

그래도 한나절 동안 우리부부가 함께 딴 찻잎이 작은 광주리로 하나는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혜경이 엄마로부터 차를 덖는 방법을 배웠다. 잔손질을 해서 다른 이물질을 골라내고, 아파리가 큰 것은 줄기와 잎을 떼어내어 작은 찻잎만 볶아야 무더기가 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찻잎을 씻지 않고 바로 덖어야 한다는 것.

 

"약 두 시간 동안 아홉번을 계속해서 덖어야 해요."

"아이고, 아홉번이나 덖어요?"

"전해 내려오는 법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마시기에 좋게 적당히 볶아지면 될 것 같아요."

 

혜경이 엄마는 차를 덖는 솥을 자기 집에서 아예 가지고 와서 차를 덖는 시범을 보여 주었다. 녹차는 아홉 번을 덖어내야 한다는데, 저 연한 찻잎이 아홉 번을 덖는 동안 견뎌 날까?

 

 

녹차를 덖는 솥

 

 

솥을 깨끗이 씻고 불을 약하게 켜서 물기가 마르고 물방울을 솥에 던져보아 또르르 굴러가는 온도가 되면 차를 덖기 시작한다. 면장갑을 두 겹으로 끼고 찻잎을 솥에 부어 양 손으로 부지런히 섞어준다. 찻잎이 솥 바닥에서 잠시라도 오래 머물거나 불이 너무 세면 말라버리거나 탄다.

 

연록색의 찻잎이 톡톡 튀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찻잎이 1/3쯤 줄어들자 차를 덖는 것을 중지를 하고 꺼내어 부드러운 천에 올려놓고 빨래 문지르듯 살살 문질렀다.

 

 

찻잎 덖으기

 

 

고소한 녹차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해졌다. 질 펴지도록 비벼진 녹차를 잠시 식도록 널어 놓았다가 다시 그 양이 1/3쯤 줄어 들 때까지 저으면서 덖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지 않도록 부지런히 저어야 한다.

 

2차 덖는 녹차는 1차 덖을 때보다 뭐랄까? 더 고소한 냄새가 났다. 다시 1/3로 줄어들 때까지 부지런히 저으며 정성을 들여 덖는다.

 

3회부터는 솥의 뜨거운 정도를 좀 더 줄여서 물방울을 굴려 피지직 보타질 정도의 온도로 아홉 번을 식히고 덖고, 식히고 덖는 일을 계속했다. 혜경이 엄마는 약 2시간 동안 차를 덖으며 시범을 보여 주었다. 또한 덖을 때 마다 찻잎이 헝클어지지 않도록 잘 비벼서 말려주어야 한다. 차를 덖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독특한 향이 집안에 가득했다.

 

 

 

▲덖은 찻잎을 비비는 광경

 

 

그렇게 시범을 보여준 후 혜경이 엄마는 다른 일 때문에 가고 이제 우리 부부 둘이서 덖는 체험을 해보았다. 그러나 보기보다는 실제로 덖어보니 쉽지가 않았다. 뜨거운 솥 앞에서 아홉 번을 반복하여 차를 덖어낸다는 것은 지루한 작업이다. 그러나 처음 해보는 일이나 신기하고 재미가 있다.

 

 

 

▲살살 비벼서 털어 그늘에 말리고 식으면 다시 덖는다

 

 

허지만 우리가 볶아낸 차는 아무래도 찻잎이 엉키고 탄 찻잎이 많다 차를 덖는 동안에는 그야말로 몰입이 필요한 것 같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눌어버리거나 타버렸다. 덖는 횟수가 반복될수록 찻잎의 부피는 줄고 냄새도 점점 고소하게 변해갔다.

 

참으로 독특한 냄새다. 뭐랄까? 횟수가 거듭될수록 풋내는 점점 줄고 고소하고(그러나 참께 볶는 냄새하고도 다르다), 녹차 특유의 그윽한 향기가 가슴을 적신다.

 

마지막으로 찻잎을 잘 털어서 바람에 쏘이며 말리면서 숙성을 하는 작업을 한다. 솥을 깨끗이 씻어 손으로 만져서 뜨거운 정도로 가열을 하여 아홉 번을 덖은 차를 부어 숙성을 시킨다.

 

 

잠시 말렸다가 다시덖느라 정신이 없다

 

 

숙성의 의미는 단순한 건조도 아니고, 발효도 아닌 것이다. 발효시키면 황차가 되어버리고 말리면 건조한 풀잎이 되어 버린다. 한 시간 정도를 숙성을 통해 말리지도, 발효도 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데 나는 아직도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숙성시킨 차를 부러뜨리면 톡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하여간 덖은 차를 열기를 식혀서 비닐로 포장을 하여 밀폐된 유리 용기에 저장을 했다. 그 많던 찻잎이 작은 유리병 두 개로 변했다.

 

 

▲아홉번을 반복해서 말리고 덖고 말리고 덖고..

 

▲마지막으로 미지근한 열에 말린다

 

 

이곳 섬진강으로 귀농을 하여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다. 우리는 혜경이 엄마에게 깊은 감사를 드렸다. 그녀가 아니라면 어찌 이런 체험을 해보겠는가? 내 손으로 직접 만든 녹차를 마셔보니 일은 참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마시는 것 같다.

 

 

▲ 잘 덖은 찻잎

 

▲잘 못 덖아 타져서 뭉친 찻잎

 

 

▲밀폐된 용기에 보관

 

 

이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찻잎을 따기 전부터 마음자세와 생명의 찻잎을 따는 과정, 아홉 번을 덖는 정성을 마시는 것 같다. 한잔의 차가 만들어 지기까지 그 과정에 투여된 정성과 생명의 신비를 마시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다도가 생겨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