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즐거운 지옥, 서울로...

찰라777 2011. 11. 23. 05:50
자연의 요새 섬진강  
인공의 요새 한강

 

 

 ▲아파트로 장벽을 이루고 있는 한강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로 유장하게 흘러가는 섬진강

두 강이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날마다 그대 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하라.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영원히 새롭게 하라”

 

 

나는 섬진강을 간전교를 지나면서 갑자기 중국 은나라 탕왕湯王의 말이 떠올랐다. 은나라의 창시자인 욕조에 이글을 새겨 놓고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재무장을 하였다고 한다. 젊은 날 한 때 수첩에 적어서 지니고 다녔던 말이기도 하다. 서울로 가는 나는 다시 서울 사람으로 변해야 한다.

 

간전면사무소를 지나면 간전교가 나온다. 1년 반 동안 뻔질나게 건너다니던 다리다. 섬진강은 여전히 유장하게 흘러가고 있다. 억새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섬진강은 임진왜란의 역사, 빨치산의 역사를 머금고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다.

 

간전교를 지나면 파도리란 마을이 나오고 곧이어 토지면사무소가 나온다. <토지>란 이름이 예뻐 집을 얻고자 수차례 방문을 하였으나 얻지 못했다. 토지면을 지나면 조선 시대 3대 명당의 하나인 운조루를 중심으로 오미리 마을의 기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상사마을, 하사마을을 지나 화엄 종찰인 화엄사 입구를 지난다.

 

화엄사 입구를 지나면 곧이어 전주 통하는 19번 국토를 탄다. 이 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구레는 오지중의 오지였다. 기차를 타고 구례구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야만 오는 곳. 그러나 지금은 19번 도로 말고도 전주 광양간 고속도로가 뻥 뚫려 17번 도로는 매우 한가해 졌다. 내가 이곳에 이사를 올 때만 해도 고속도로는 개통되지 않아 이 도로를 타고 왔다.

 

나는 일부러 19번 국도를 타고 남원으로 향했다. 구례에서 밤재를 지나면 이내 전라북도 남원이다. 이도령과 성춘향의 고향 남원! 나는 남원에서 장수로 가는 지방도로를 탔다. 남원에서 전주로는 17번 도로가 이어지고 19번 도로는 장수로 이어진다.

 

장수로 가는 19번 도로는 유려하게 이어지는 지리산 북쪽을 바라보며 산길을 달려간다. 시골길은 너무나 한가하다. 장수사과로 유명한 장수는 속칭 무진장으로 불러졌던 오지마을이다. 그러나 지금은 장수도 고속도로가 여기저기로 이어져 더 이상 오지가 아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큼 도로망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곳은 드물다. 너무 도로가 차지하는 땅이 많아 동물들의 이동통로가 차단되는 곳이 많다.

 

장수 IC를 지나면 익산-장수 고속도로가 어지다가 곧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계 된다. 이 길은 내가 지리산으로 이사를 올 때에 아이들과 함께 왔던 길이다. 나는 그때 왔던 한가한 시골길을 다시 타고 싶었다. 일종이 회귀본능이라고 할까? 짐을 워낙에 많이 실은지라 차가 좀 헉헉대는 것 같다. 우리는 덕산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서울로 차를 몰았다.

 

덕유산을 바라보니 정상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 언제 저토록 눈이 내렸을까? 대전이 가까워지자 차들이 점점 늘어나고, 아파트와 빌딩들이 시야를 가린다. 대전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차들이 없이 운전을 하기에 매우 편하다. 그러나 대전에서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게 되는데 차량이 곧 홍수를 이룬다. 그러나 월요인지라 차가 막히지는 않는다. 8차선 경부고속도로는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한다.

 

“이제부터 한가하게 차를 모는 시간은 다 지났군요.”

“그렇군. 자동차와의 전쟁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네.”

 

그런데 아내는 점점 허리가 아프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렇지 않아도 허리가 좋지 않은데다가 며칠간 이삿짐을 싼다고 법석을 댔으니 피로 누적과 무거운 것들을 들어서 다시 허리에 통증이 심해지는 모양이다. 사람이 아프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아예 태어나지 않으면 생로병사의 고통을 면할 수 있겠지만 어디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우리는 12시경 남이IC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탔다. 그리고 음성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몸이 나른해진다. 서울이 점점 가까워진다. 서울은 내 인생을 대부분을 살아온 제2의 고향이다. 나는 지리산에 제3의 고향 터를 잡으려다가 예기치 못한 일로 중도에 하차를 하고 서울로 다시 올라오고 있다. 지리산에 미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어찌될지 아직은 예측을 하지 못하겠다.

 

하남IC를 빠져 나오면 곧 서울시로 접어든다. 아파트와 차량으로 홍수를 이루고 있는 서울은 과연 즐거운 지옥이다. 제2의 고향 서울! 한강을 지나며 나는 서울의 복잡함과 편리함을 동시에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시장의 홍수 속에 무관심이 때로는 편리할 때가 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편안함도 있다. 그러나 시골은 제멋대로 살다가는 금방 쫓겨나고 만다. 당장 소문이 쫙 돌아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강을 지나 하늘이 보이지 않는 빌딩 숲을 바라보면서 나는 다시 탕왕의 욕조에 새겨진 말을 떠올려본다. 인생은 찰나의 순간을 살아간다. 변화해야 산다. 시골의 안주함은 도시에는 없다. 앞차를 봐야 하고 뒤차를 생각해야 한다. 네모지게 그어진 파킹 로트에 전후좌우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파킹을 잘해야 한다. 아차하면 남의 차에 흠을 내기 쉽다.

 

“날마다 그대 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하라.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영원히 새롭게 하라”

 

다시 서울로 입성이다!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로 흘러가는 섬진강이 자연의 요새라면, 서울은 아파트와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인공의 요새이다. 그 속에서 즐거운 지옥이 시작되고 있다. 지지고, 볶으고, 비비며 희로애락의 삶이 얽혀 살아가는 서울… 탕왕의 말처럼 순간 순간 변화하는 찰나의 순간을 점점이 딛고 가야 한다.

 

(2011.11.21 서울에 입성하며)

 

 

☞ 그동안 찰라의 <섬진강 일기>를 애독하여 주신 블로그 회원님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섬진강일기는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립니다. 카메라 하나를 들고 거의 매일 지리산과 섬진강 주변을 배회하며 여과없이 올렸던 섬진강 일기.... 그저 감성 하나로 마구 휘갈겨 쓴 글과 사진이라서 너무나 부족한 점이 많았을 것입니다. 

 

1년 반동안 대자연-거대한 지리산과 유장한 섬진강-과 함께 호흡을 하며 보내온 세월은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을 주고 있습니다. 그 대자연의 품안에서 사계를 보내며 거의 매일 포스팅을 하는 것은 내 자신의 즐거움이자, 여러분의 바쁜 생활에 쉼표 하나를 찍고 잠시 쉬어가기를 바램도 있었습니다. 

 

이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생역정에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서울생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점점이 이어지는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소중하게 살아가기를 기원드리며, 그동안 애독하여 주신 여러분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2011. 11월 23일 서울의 하늘 밑에서. 찰라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