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정말 흑룡처럼 긴 하루였어!

찰라777 2012. 1. 2. 21:45

임진강에서 맞이하는

임진년 새해 첫날 아침

 

 

눈을 뜨고 일어나 보니 새벽 5시다.

창밖은 아직 컴컴하다.

밖으로 나와 보니 DMZ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다.

고개를 들어 하늘은 보니 별이 보이지 않는다.

음, 새해 아침 일출은 보기 힘들겠군.

임진강은 칠흑같이 어두운 정적에 싸여있다.

강 건너 멀리 멀리 불빛이 마치 도깨비불처럼 어둠 속에서 깜빡인다. 북한 땅인가 남한 땅인가?

가족과 함께 임진강에서 첫날밤을 맞이한 나는 아직 방향감각이 없다.

 

 

임진강 금가락지에 뜨는 해. 해가 구름속에서 숨바꼭질을 했다.

 

 

거실에서 바라본 임진강 일출. 그것은 한편의 수묵화를 보는 듯했다. 거침없이 펼쳐진 들판, 구름낀 하늘, 그리고 가녀린 난초 잎 사이로 해가 떠올랐다.

 

 

임진강에 지는 해

 

 

오전엔 구름속에서 해가 숨바곡질을 하더니 석양노을은 태양이 이글이글 타며 지고 있다. 이 해를 보고 동이리 이장님 말씀 왈~

"오늘 해를 보니 금년 상반기에는 힘이 들겠고. 하반기에는 잘 풀리겠는데요."라는 명언을 남기셨다.

 

 

 

새해아침 하늘을 자유롭게 비상하고 있는 새들

 

 

 

 

편리함은 자연의 순리를 깨트린다

 

 

바람이 너무 차가와 다시 거실로 들어왔다. 가족들은 아직 잠을 자고 있다. 나는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임진강에 둥그렇게 둘러싸인 동이리 마을은 마치 외딴 섬 같은 느낌이 든다.

 

 

동이리 마을은 파주에서 37번 국도를 타고 전곡으로 가다가 '어유지리' 마을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와 임진강을 따라 가다가 삼화교를 임진강을 건너야 한다. 삼화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꺾어들어 다시 임진강을 따라 가면 도로가 끝나는 지점이 동이리 마을이다.

 

 

얼어붙은 임진강

 

 

동이리 마을은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50여 호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우리 집(단 하루 밤을 자더라고 내가 묵는 집을 나는 우리 집이라고 부른다)은 본 부락 초입에 있는 태풍부대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오다가 다시 롯데건설 현장에서 왼쪽으로 난 농로를 타고 들어와야 한다.

 

 

롯데건설은 임진강과 한탄강 합수지점에 거대한 사장교 탑을 건설하고 있다. 이 사장교는 자유로에서 이어지는 37번 국도의 연장선이라고 한다. 37번 국도는 4차선으로 뻗어 나오다가 적성 근처에서 2차선으로 좁아져 전곡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이 국도는 4차선으로 확장되어 신탄리를 거쳐 고성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롯데건설 현장에 37번 국도의 진입로가 새로 건설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도로가 완성되면 동이리마을도 더 이상 오늘 같은 정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문명의 편리함은 자연의 순리를 깨트린다. 롯데건설 현장에서 더 깊숙이 들어오는 우리 집은 야산을 배경으로 임진강이 바라보이는 곳이다. 풍수지리상으로 볼 때에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집터이다.

 

 

 

한창 건설중인 37번 국도 임진강 사장교

 

 

이름을 아직 모르지만 야트막한 야산을 배경으로 임진강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언덕에 위치한 우리 집은 전망이 탁 트여 거침이 없다. 정남쪽을 바라보고 있어 하루 종일 햇볕이 들어오는 금가락지는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기가 막힌 명당 터임 틀림없다.

 

 

내가 청정남님을 따라 금가락지에 처음 온 날 나는 임진강 건너에 보이는 산이 북한 땅인 줄로 착각을 했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보통상식으로는 임진강을 건너면 DMZ를 건너 북한 땅으로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집은 찻소리는 물론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말 그래도 절간이다. 섬진강변 수평리 마을만 해도 집집마다 개를 키워 마을을 산책하다보면 요란하게 짖어대는 개들의 합창에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는데…… 그러나 머지않아 저 사장교가 완성이 되면 이곳도 자동차소리에 지금 같은 정적은 없어지고 말 것이다.

 

 

롯데건설 현장에서 좁은 농로를 따라오다가 왼쪽으로 접어들면 이장님 집이 나온다. 전에는 이장님 집이 마지막 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요 몇 년 사이에 이장님 집을 지나 주말에만 이용하는 별장들이 임진강변에 띄엄띄엄 몇 채 들어서 있다.

 

 

이장님을 처음 만난 날 우리가 이곳에서 상주를 할 것이라고 했더니 이장님도 이장님사모님도 무척 반가워했다. 모두가 주말에만 잠간 왔다가 가버려 적적하기가 이를 데 없는데 이웃이 생겼으니 너무 좋다는 것이다. 아주 부지런하게 생기신 이장님은 소를 백두정도 기른다고 했다. 하기야 소를 백두정도 기르려면 정말 부지런해야 한다.

 

 

 

시야를 가리고 있는 앞집

 

 

이장님 댁에서 비포장도로를 50여 미터 지나면 왼쪽에 금가락지가 나온다. 금가락지 앞에는 몽돌로 돌담은 쌓은 이층집이 시골 방앗간 모양으로 거대하게 들어서 있다. 대가족이 살려고 저렇게 집을 크게 지었을까? 이층만 올리지 않았더라면 우리 집에서 임진강이 완벽하게 보일 텐데……

 

 

금가락지 앞에는 이 근처 터를 개발했다는 집 주인이 주말용 별장을 지어놓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집 뒤에는 아주 비싼 분재를 정원에 가득 심어놓은 집이 역시 별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좀 더 들어가면 00연구소가 나오고 그 근처에 역시 주말용 별장이 몇 채 더 들어 서 있다.

 

 

DMZ가 지척인 임진강변에 이렇게 큼직큼직한 별장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고 아내도 나도 입을 떡 벌리고 놀랐다. DMZ 근처에는 집이 거의 없는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토박이 주민들 말고는 집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 이곳 DMZ근처에는 별장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하기야 남북 분단 때문에 멀게만 생각했던 임진강은 서울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다. 더구나 연천군은 지형적으로 한반도의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중심위치라고 한다. 미래에 남북이 통일이 되면 임진강변은 한반도의 센터로 자리매김을 할 것이라는 것. 그러니 이곳에 터를 잡는 사람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임진강에 뜨는 일출

 

 

가부좌를 틀고 한 동안 명상에 잠겼지만, 나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사념이 꼬리를 불고 일어났다. 임진년은 60년 만에 한 번 오는 흑룡(그것도 쌍 흑룡)의 해라고 언론에서는 떠들어댄다. 점술가들은 나름대로 임진년의 점괘를 조심스럽게 뽑아냈다. 어떤 점술가는 기운찬 흑룡처럼 운수가 대통하는 해라고 하고, 어떤 점술가는 매우 조심스런 해라고도 한다.

 

 

나는 우선 임진년하면 임진왜란이 떠오른다. 임진왜란으로 우리민족이 얼마나 시달렸던가? 성운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오래전에 왜군의 지배하에 신음했을 것이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금년은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누구나 되듯이 DMZ 지척으로 이사를 와 새해 아침을 맞이하다 보니 국위에 대한 생각이 저절로 떠오른다.

 

 

더구나 임진년 들어 세계정세는 급변하게 돌아가고 있다. 37년 철권정치를 한 김정일이 급사한 북한은 그의 아들인 20대 김정은이 3대 세습이란 사상 초유의 불안한 정권이 들어서고 있다.

 

 

우리나라는 4월 총선과 12월 대선, 양대 선거가 있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도 11월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고, 러시아도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중국은 10년을 통치한 후진타오가 물러나고 새로운 집권자가 들어선다.

 

 

대문 앞 눈을 쓸며...

 

 

 

 

이런 저런 잡생각으로 명상에 잠겨 있다가 눈을 떠보니 사방이 밝아 오고 있다. 해는 보이지 않지만 새해는 밝아오고 있는 것이다. 금년 새해는 눈으로 보는 해가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태양을 맞이해야 할 것 같다.

 

 

모자를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었다. 그리고 나는 빗자루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자동차에 하얀 서리가 끼어 있다. 어제 밤에는 대문에 이르는 둔덕을 넘어오다가 얼어붙은 눈 때문에 애를 먹었다. 2미터 정도의 양쪽 담벼락 사이로 난 골목길에 눈이 녹지 않고 얼어 있어 나는 몇 번이나 차를 후진한 끝에 겨우 올라올 수 있었다.

 

 

 

 

빗자루로 눈을 쓸었으나 바닥에 얼어붙은 눈은 잘 떨어지지를 않았다. 나는 삽과 곡괭이를 가져와 둔덕에 얼어붙은 눈을 살살 깨 부셨다. 불과 10미터의 거리인데도 한참 작업을 해야 했다. 깨진 눈덩이를 삽으로 깨 긁고 빗자루로 쓸어내다 보니 온몸에 땀이 났다. 새해 아침 운동은 제대로 한 샘이다.

 

 

서울보다 3~4도 낮은 이곳 임진강은 춥다. 한 번 얼어붙은 눈은 좀체 잘 녹지 않는다. 얼어붙은 눈을 치우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구름 사이에서 해님이 빵긋이 웃으며 고개를 내민다. 나는 재빨리 카메라를 들고 와 구름사이에서 웃고 있는 해를 향해 셔터를 눌러댔다. 눈을 치운 덕분에 그래도 임진년의 일출을 잡은 것이다.

 

 

 

 

나는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임진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임진강은 꽁꽁 얼어붙어 하얗게 눈이 쌓여 있다. 고요하다. 강가에 다다르니 몽돌들이 나를 반긴다. 언 강물에 조심스럽게 발을 내 디뎌본다. 단단하다. 썰매를 타도 될 것 같다.

 

 

한 떼의 기러기들이 바로 머리 위로 끼룩거리며 날아간다. 어떤 녀석들은 활 모습으로, 또 다른 녀석들은 V자를 그리며 떼 지어 날아간다. 고개를 쳐들고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하도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지라 잡기가 어렵다. 나는 고개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하마터면 몽돌에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 이거 새해부터 녀석들이 똥개 훈련을 시키남?

 

 

 

 

 

작은 주상절리로 캐년을 이룬 임진강은 남과 북을 가르는 성벽처럼 보인다. 그 성벽을 따라 <평화누리길>이 이어져 있다. 김포에서 신탄리까지 이어지는 평화누리길은 180km에 달한다. 나는 앞으로 이 남북 분단의 길을 샅샅이 더듬으며 걸어볼 작정이다. 분단의 벽이 무너지길 기원하면서……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떡국을 끓여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어디까지 갔다 오시는 거예요?

응, 눈 점 치우느라고.

식탁에는 떡국이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었다. 큰 애 영이와 어제 합류를 한 정애자 선생님이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리틀 그랜드캐년을 연상케하는 임진강

 

 

정 선생님은 10년 전에 네팔여행을 함께한 인연을 맺었던 분이다. 37년을 넘게 사서로 일을 하다가 퇴직을 한 후 오로지 여행을 낙으로 삼고 있는 분이다. 연금을 모았다가 한해 몇 번식 홀로 배낭여행을 떠나곤 한다. 처음엔 패키지로 다니다가 나에게 배낭여행 컨설팅을 몇 번 전수 받더니 이젠 나보다 더한 여행 고수가 되어 있다.

 

 

자, 이 떡국을 먹고 한 살씩 더 젊어지자고요.

호호, 그거 듣던 중 멋진 말씀이네요.

떡국은 먹되 나이는 덜 먹자 이거지요?

말하자면 소갈머리 없이 속을 텅 비우고 즐겁게 살자 이거죠. 하하하.

 

 

떡국을 먹고 나서 우리는 임진강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해가 구름 속에서 나왔다 들어갔다 했다.

 

 

저 해가 새해부터 숨바꼭질을 하자고 하네?

그래도 저만큼 보여주느라고.

글쎄 말예요. 그래도 우린 운이 좋은 편이네요. 동해안으로 해운대로 새해 일출을 보러 간다고 고속도로가 미어터지던데.……

그곳엔 해가 코빼기도 안보였다고 하네요.

 

 

쌀도 그냥 주는 인심…

 

 

10시가 되자 영이가 교회를 간다고 했다.

 

애야, 여기 다락방이 하늘하고 매우 가까운데 거기서 하느님한테 기도하면 안 되니?

에고 엄만?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영이를 태워다 주려고 밖으로 나오는데 아내가 부엌에서 뭘 바리바리 들고 따라 나섰다.

 

아니 당신 어딜 가려고?

말도 말아요. 다용도실 문이 열리지 않아 점심때 굶게 생겼어요. 아래 이장님 댁에 인사도 하고 쌀도 좀 사야겠어요.

 

 

밤새 내린 서리꽃

 

 

이장님 댁에 가서 문을 두드리니 사모님이 반가운 얼굴을 내밀었다. 방안에는 손자로 보이는 아이와 며느리, 그리고 또 한분이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다. 이장님은 해돋이를 하러 나가셨다고 한다.

 

 

우리 어제 밤에 도착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제 명실 공히 마을 주민이 되었으니 잘 부탁해요.

반가워요. 이사를 오시니 참 좋군요. 뭘 그렇게 가져왔어요.

이거 참조기 몇 마리하고요. 주스 좀 가져왔어요.

에고 뭘 그냥 오시지 않고.

이 근방에 어디 가까운데 교회가 있어요?

아 교회요 바로 동이리 부락에 가면 작은 교회가 있어요.

그거 가까워서 좋군요. 큰 애가 교횔 가야 해서요. 오, 네가 주원이니? 에구 귀엽구나.

네, 손자에요. 여긴 며느리이고요. 그리고 여긴 이웃집 아주머니에요.

아, 그렇군요. 잘 부탁해요. 야, 주원아 우리 이제부터 친구하다. 너 뭘 좋아하니? 아이스크림?

 

 

나는 주원이와 악수를 하고 이장님 집을 나섰다. 교회를 가다가 우리는 잰 걸음으로 걸어가시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여보, 어디까지 가시는지 물어보고 태워드려요.

할머니 어디까지 가세요?

아이고, 저기 마을 교회가지 가요. 그럼 타세요.

마침 우리도 교회를 가고 있거든요.

아이고, 이런 고마울 데가……

 

 

동이리마을 교회

 

 

교회는 마을 아래쪽 냇가에 있었다. 오두막집을 개조를 하여 만든 아주 작은 교회다. 하얗게 쌓인 눈길을 지나 영이와 할머니를 마을교회에 내려주고 우리는 태평부대 앞에 있는 가게를 찾아갔다.

 

 

이런 곳에 가게가 있다니 반갑다. 아마 면회를 온 사람들을 위한 가게일 게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온갖 골동품이 다 걸려있다. 큰 거미며, 목각, 모자, 난로……

 

 

아하, 아주 재미있는 골동품이 다 걸려 있군요.

네, 그냥 저 양반 취미라 서요.

쌀을 좀 사러 왔는데 조금만 살수 없을까요?

쌀이요? 우리가 농사지은 쌀은 있는데, 20kg 들이는 이었어요.

그렇게 많이 말고요. 다용도실이 열리지 않아서 그런데 내일 열면 되는데, 조금만 있으면 되거든요.

그러면 그냥 조금 드릴 게요.

아니 그냥 주신다고요? 아이고 돈을 드려야죠?

어떻게 돈을 받아요. 그냥 가지고 가세요.

아주머니는 쌀 한바지를 떠서 웃으며 우리에게 건에 주었다.

 

 

부대앞 마포상회에 걸린 골동품들

 

 

허허, 우린 새해 운이 좋군. 새집에 쌀을 다 공짜로 얻고.

그러게 말예요. 아주머니가 너무 싹싹하고 좋군요.

새해 첫날 베풀어야 하는데 얻어먹으면 1년 내내 얻어먹는 거 아닌가?

아까 교회 가시는 할머니 태워다 드렸지 않아요. 여기 하느님은 응답이 매우 빠르신 것 같아요.

하하,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

 

 

우리는 주원이 에게 줄 아이스크림 몇 개를 사들고 쌀을 한 그릇을 공짜로 들고 나왔다. 우리는 오다가 이장님 댁에 들여 주원이 에게 아이스크림을 주고 왔다. 차에서 내다보니 주원이가 문을 열고 웃고 있다 역시 아이들은 추우나 더우나 아이스크림을 좋아해.

 

 

사서의 손길로 서재를 정리하다

 

 

집에 오니 정 선생이 2층 다락방에서 서재를 정리하고 있었다.

저런! 특급 사서님께서 찰라의 서재를 정리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찰라님 서재정리는 내가 해드려야죠.

거참 이리도 고마울 데가……

 

 

 

구례란 글자만 보아도 가슴이 뭉클하다

 

 

구례에서 이사를 올 때에 <구례 대봉>이라고 쓰인 책 박스를 그대로 쌓아두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사서로 일했던 정 선생님이 서재를 정리해 주신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나는 <구례>라는 문구만 보아도 가슴이 뭉클하고 반갑다. 지난 1년 반 동안의 섬진강 생활이 섬광처럼 책 박스 위로 지나간다.

 

 

정 선생님은 특급 사서답게 뒤죽박죽이 된 책을 종류별로 금방 분류하여 .찾아보기 쉽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사실 이사를 하면서 책의 절반을 버리고 왔는데 그래도 꽤 많은 책들이 벽에 꽂혔다. 아내가 더 버려야 한다고 우겼지만 끝까지 끌고 온 책은 여행관련 서적과 야생화, 그리고 법정 스님 수상록이 대부분이다.

 

 

 

정선생님의 손길로 말끔이 정리된 서재

 

 

정 선생님 안 오셨으면 큰일 날 뻔했네? 역시 특급 사서님의 손길이 지나가니 책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 데요?

호호, 뭘요. 책꽂이가 멋있군요. 와인상자 몇 개만 더 있으면 완벽하게 정리를 할 텐데. 남은 책은 바닥에 그냥 둘 수밖에 없네요.

흠, 그렇군요. 와인박스를 몇 개 더 얻거나 아니면 벽돌로 책꽂이를 만들어 겠어요.

 

 

나는 정 선생님이 책을 정리하는 동안 컴퓨터를 조립하여 클래식 음악과 명상 음악을 틀어 주었다. 비발디의 사계, 베토벤의 전원, 그리고 나왕 케촉의 불어주는 티벳 명상음악이 작은 다락방을 가득 채웠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정리해놓고 보니 내 생애 가장 멋진 서재가 탄생했다. 임진강이 바라보이는 다락방은 서재로서는 최고의 방이었다. 나는 이 집을 빌려준 청정남 님께 다시 감사를 드려야 했다.

 

 

참기름도 얻고, 배추도 얻고…

 

 

여보, 12시가 다 되 가요. 빨리 영이를 데리러 가야지요.

음, 그렇군. 저, 참기름이 좀 필요한데요.

가게에 있으면 좀 사오고요 없으면 이 컵으로 한 방울만 좀 얻어오세요.

뭐? 아까 살도 그냥 얻어왔는데?

하여간 좀 구해와요.

 

 

나는 아내의 주문을 받고 소주 컵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교회로 차를 몰았다. 동이리 교회에 도착하니 영이가 교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흰 눈이 쌓인 시골 교회 앞에 홀로 서 있는 영이가 너무도 순박하게 보였다. 교회에 안 가면 큰 일 날 줄로 아는 아이다. 낡은 간판이 꽤 오래 되어 보였다.

 

 

오래된 동이리교회 간판

 

 

할머니는?

점심 드시고 오신데요.

그래? 오늘 목사님 설교는 어땠어?

뱀처럼 지혜롭게,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살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거참 좋은 설교를 들었군. 신도들은 몇 분이나 모였어?

한 열분 정도요. 목사님께 어제 이사를 했다고 했더니 추운데 고생했데요. 다음에 이곳에 들리면 오면 꼭 다시 오래요.

암 그래야지.

 

 

태풍부대 앞 가게에 도착하여 아주머니에게 참기름을 물어보니 팔 참기름이 없다고 했다.

 

 

우리 먹던 것 좀 드릴게요.

허허, 이거 미안해서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작은 병이 어디 있더라?……

이 컵에 한 방울만 주세요.

아, 컵을 가져왔어요?

 

 

아주머니는 소주 컵에 참기름을 가득 딸아 주었다. 이거 족제비도 낯짝이 있지. 하지만 할 수 없다 신세 한번 톡톡히 지자.

 

 

아주머니 이거 정말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들릴게요.

뭘요, 자주오세요.

 

 

나는 참기름을 조심스럽게 받아들고 자동차에 오르며 영이에게 엎질러지지 않게 잘 들으라고 했다.

 

 

아빠 웬 참기름을 이렇게 들고 와?

응, 좀 얻었다. 참기름을 얻어요? 그래, 아깐 쌀을 얻고 지금은 참기름을 얻었어.

에게게 아빠 새해부터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돈 주고 사야지요?

팔 게 없데. 그런데 아주머니가 인심이 너무 좋아 그냥 주시는구나. 귀한 참기름이니 잘 들어라. 엎질러지지 않게.

정말 잘 들어야 겠어요.

 

 

영이는 참기름 컵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쳐 들었다. 나는 최대한 차를 살살 몰아야 했다. 아차하면 참기름이 엎어져 버릴 것이므로. 둔덕을 넘을 때에는 거의 정지 상태로 슬슬 기어가야 했다. 다행히 참기름을 엎질러지지 않고 집에 도착했다.

 

 

눈이 펑펑 내렸다

 

 

아빠, 눈이 내려요!

음 그렇구나! 참기름도 얻고 눈도 내리고 오늘 운이 참 좋구나.

그렇군요. 근데 엄만 참기름을 어디가 쓰려고 새해 첫날부터 참기름을 얻어오게 해요?

그건 네 엄마한테 물어 보렴.

 

 

집에 도착하니 눈발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은 임진강을 덮고, 흰옷으로 온 동네를 한 꺼풀 더 입혔다. 새해 첫날 눈이 내리다니 참 기분은 좋다.

오, 이 눈이 전부 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눈이 하얗게 덮인 임진강

 

 

아내는 참기름만 기다리고 있었다. 시금치나물을 무치는데 참기름이 필요하단다. 가게 아주머니 덕분에 우리는 얻어온 쌀과 참기름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점심을 먹고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앞집에 정원에서 한 여인이 뭔가 일을 하고 있었다.

 

 

음, 인사를 좀 하러 가야겠군. 나는 커피를 마저 마시고 마당을 지나 앞집으로 걸어갔다. 하얀 방한복을 둘러 입은 중년 부인이 정원에 있는 마른가지를 치우고 있었다.

 

 

저, 안녕하세요? 이 앞집에 이사 온 찰라 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아, 그래요? 언제 이사를 오셨지요?

어제 밤에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네 반가워요.

 

 

인사를 하고 있는데 중년남자와 청년이 산에서 나뭇가지를 끌고 내려왔다. 아마 장작을 피울 나무를 끌고 온 것 같았다.

 

 

 

 

여보, 앞집에 이사를 온 분이시래요.

처음 뵙겠습니다. 찰라 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에, 집을 사들어 오셨나요?

아니요. 세 들어 왔습니다. 그래요.

그럼 전 집 주인하고는?

네, 형

됩니다.

친형이세요?

아니요 집안 형제랍니다……

 

 

아저씨하고는 이야기가 좀 어색하게 흘러갔다.

 

점심은 드셨나요?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말머리를 돌렸다.

 

 

아니요. 아직요. 그럼 우리 집에서 점심을 같이 할걸 그랬지요?

저희 집에 가서 커피라도 한잔 하시지요?

아닙니다. 곧 갈 겁니다. 여보, 저 배추 몇 포기 드릴가요? ……

 

 

부인은 남편의 대답도 듣지 않고 자동차 트렁크를 열더니 배추 4포기를 들어내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아니, 무슨 배추가 이 겨울에?

네, 저희가 농사지은 거랍니다.

허허, 이런 싱싱한 배추를…… 잘 먹겠습니다.

 

 

곧 떠나야 한다는 말에 나는 배추를 네 포기를 들고 인사를 한 후 집으로 건너왔다.

 

 

서리꽃

 

 

뭔 배추랑가?

응, 건너 집 아주머니가 주는 군.

오메! 이 겨울에 이렇게나 싱싱한 배추를?

그러게 말이요. 오늘 참 운이 좋은 날인가 보오.

부침개 해 먹어야 갰네요.

그거 반가운 소린데.

 

 

동이리 이장님의 명언

상반기에는 힘들었다가 하반기에는 잘 풀리겠는데요.

 

 

그렇게 배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게시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아랫집 이장님이시다.

 

 

아이고, 이장님 웬일이십니까?

아니 다용도실 문이 안 열린다면서요?

네, 고장이 난 모양입니다.

 

 

이장님은 드라이버로 일단 문을 따냈다. 내가 그렇게 열려고 해도 못 열었는데 이장님은 간다하게 문을 열었다.

 

 

이거, 역시 다르시군요. 감사합니다.

뭘요. 그런데 근본적으로 수리를 해야 겠네요.

아, 내일 전곡 열쇠수리점에 맡기지요.

 

 

이장님과 차 한 잔을 나누며 시국 돌아가는 이야길 한 참 하였다. 소를 백두나 키우시는 이장님은 굉장히 박식하셨다.

 

 

윗집 분재나무

 

 

우리 이웃집에 한 번 들려 볼까요?

좋지요. 그렇잖아도 불이 켜졌기에 인사를 하 번 가려고 하는 참이었어요.

 

 

이웃집으로 올라가니 분재나무에 월동준비가 잘 되어 있다. 값나가는 나무들이 즐비하다.

 

 

계십니까?

아이고, 이거 누구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추운데 어서 들어오시오.

 

 

이웃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니 50대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고개를 내밀며 반갑게 맞아 준다. 주말에만 들려서 쉬고 간다는 유 사장은 매우 쾌활한 분이였다. 이장님과 유 사장은 새해를 맞이하여 덕담을 하다가 시국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 참;하셨다. 나는 그저 듣는 거로 만족했다.

 

 

산유국은 민주화로 몸살을 앓고 있고, 세계경제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어려워지고 있다.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 경제는 백퍼센트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데 수출여건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나라 안에는 돈이 돌지 않아 서민들의 삶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모두가 IMF보다 훨씬 심각한 체감경기를 느끼고 있다.

 

 

 

 

돈이 돌지 않아요. 가진 자는 돈을 움켜지고 있고, 부동산은 거래가 없어 요지부동이고. 돈이 돌아야 나라 경제가 살아 날 텐데. 돈은 우리 몸속이 혈맥과 같은데, 피가 돌지 않으면 몸이 썩듯이 돈이 돌지 않으면 나라경제가 썩지요.

 

 

누가 정권을 잡든 돈이 돌아가는 정치를 해야 해요. 집권 당시에 나타나는 전시효과적인 정책만 펼 것이 아니라 돈이 핑핑 돌아가는 정치를 해야 서민이 살지 않겠어요. 요지부동인 부동산 거래도 활성화 되도록 하고, 부동자산 보다는 유동자산에 돈을 쓰도록 해야 민초들이 먹고 살 수 있지요…….

 

 

이장님이 경제를 보는 눈은 상당히 높았다. 이장님은 동네사람들과 해돋이 겸 평화 누리길을 4시간이나 걷고 왔다고 한다. 그렇다! 이장님 말씀대로 새해에는 나라 어르신들이 돈이 돌아가는 정책을 펴야 한다. 표를 의식하여 눈치만 살피는 정치는 나라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한참 시국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 듯 4시가 넘었다. 짧은 해가 벌써 서사네 기우러지고 있다.

 

 

 

 

이장님, 석양 노을이 아주 좋군요. 태양이 이글거리며 지고 있어요.

아, 그래요. 오늘 해의 일진을 보니 내년 상반기에는 힘들었다가 하반기에는 풀리겠는데요.

하하, 저 밝은 태양을 보니 그렇게 되겠는데요.

이제 소 밥 주러 가야겠군요. 차 잘 마셨습니다.

앞으로 자주 뵙지요.

네 그러지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장선거에 당선되었다는 수평리 혜경이 엄마!

 

 

유 사장 집을 내려와 지는 해를 카메라에 담았다. 앙상한 가지사이로 지는 해가 묘하게 보였다. 저녁에는 섬진강에서 가져온 호박으로 죽을 끓여 먹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정리된 서재에 앉아 차를 한잔 마시며 혜경이 엄마 소식이 궁금하여 전화를 했더니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어제 이장 선거를 했는데요. 16표로 당선되었어요!

저런! 16표면 압도적인 득표네. 이장님이 되신 것을 축하드려요!

고마워요. 다 돌보아 주신 덕분이에요.

아니지, 혜경이 엄마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 공덕을 쌓아온 덕이지.

 

 

 

 

25호 정도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16표면 압도적인 표다. 남자가 3명이나 나왔는데 뭇 남성들을 제치고 그렇게 많은 표를 얻은 것은 그동안 혜경이 엄마가 마을사람들을 위하여 그만큼 봉사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평리 마을을 떠나기 전에 혜경이 엄마가 이장출마를 언 듯 비치기에 우리는 강력히 추천을 했었다. 이제 여자도 이장을 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라며 우리는 출마를 적극 권했었다. 연초부터 좋은 소식을 들으니 반가웠다.

 

 

우리는 서재에서 차를 마시며 새해 덕담을 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임진강에서 맞이한 임진년 새해 첫날!

정말 흑룡처럼 긴 하루였다!

 

(2012.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