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발만 동동 구르는 펭귄아빠의 고독을 아시나요?

찰라777 2012. 2. 8. 07:09

 

1년에 한 두번 가족을 만나는 <기러기아빠>,

능력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펭귄아빠>,

경제적 여유가 많은 <독수리아빠>

 

 

요즈음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2층 다락방에서 기러기들의 군무를 엿본다. 기러기들은 아침 7시30분 전후에서 동쪽으로 날아갔다가 저녁 6시경 서쪽으로 날아간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기러기들의 유희가 시작되고 있다. 하얀 눈이 쌓인 연천평야를 기러기들은 V자 편대를 이루며 낮게 날아간다.

 

 

 

 

눈이 없을 때는 볼 수가 없었던 또 다른 풍경이다. 이렇게 추운 날 저 기러기들은 어디서 밤을 새우고 날아올까? 오늘따라 기러기들은 평소보다 낮게 비행을 한다. 흰 눈이 쌓인 평야를 저공비행하는 기러기들이 선명하게 잡혀온다.

 

 

 

 

 

 

붉은 아침노을 위를 나는 기러기들의 군무가 때로는 삼각형으로 때로는 포물선을 그으며 하늘을 수놓고 있다. 기러기들이 높은 곳, 중간, 낮은 곳으로 세 개의 선을 그으며 날아가는 모습이 과히 장관이다.

 

 

녀석들은 이 추운 날씨에 어디에서 먹이를 구할까? 괜히 걱정이 된다. 그런데 기러기 편대와 떨어져 홀로 외롭게 날아가는 기러기 한 마리가 눈에 띤다. 녀석은 왜 홀로 날아갈까? 그 그러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기러기 아빠'란 말이 떠오른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미국 뉴욕타임스가 아내와 아이들을 유학을 보내고 한국에 홀로 남아 뒷바라지를 하는 한국의 아빠들을 꼬집어서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워싱톤 포스트 지는 'Gireugi'라는 용어를 쓰며, 아빠들의 재력과 형편에 따라 세 부류로 분류해서 보도했다.

 

 

-기러기아빠(Wild geese fathers)-1년에 한 두 차례 아내와 자녀를 보기 위해 외국에 나가는 아빠

-독수리 아빠(Eagle fathers)-경제적 여유가 많아 마음만 내키면 수시로 외국에 나가는 아빠

-펭귄아빠(penguin fathers)-돈이 없어 아예 외국방문을 포기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아빠.

 

 

참으로 아이러니한 풍자다. 오죽했으면 이런 풍자를 했을까? 기러기들의 자식 사랑, 아내 사랑는 각별하다. 기러기들은 야산에 불이 났을 때에도 품에 안은 새끼와 함께 타 죽을 지언즉 새끼 홀로 내버려 두고 도망을 가지 않는다. 과연 한국의 아빠들은 기러기처럼 자식을 사랑하는 아빠들일까? 최근에는 직장일 때문에 아내와 자녀를 서울에 남겨 놓고 홀로 부산이나 다른 도시에서 생활을 하는 '갈매기 아빠'란 말도 생겨났다.

 

 

또 최근에는 '신기러기족"이란 신조어도 등장을 하고 있다. 이는 정리해고와 조기은퇴, 노후에 불안을 느낀 직장인들이 안정된 전문직을 얻으려고 뒤늦게 의대와 약대 한의대 등으로 진학하는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입학경쟁이 상대적으로 치열한 서울 소재 대학보다는 지방대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부부 중 한명은 수도권에서 일하며 집안 생계를 책임지고 다른 한명은 가족과 떨어져 지방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신기러기족으로 불린다.

 

이 용어들은 위키백과에도 올라와 있다. 기러기는 한국의 전통 결혼식에서 평생 반려의 상징이며 먼 거리를 여행하며 새끼들의 먹이를 구해 오는데, 한국에서 자녀의 교육을 위해 부인과 아이들을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한국에 홀로 남아 뒷바라지를 하는 아버지들을 말하는 신조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필자 역시 20여 년 전에 직장에서 발령이 서울에서 광주로 나는 바람에 서울에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홀로 1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광주에서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일주일 동안 근무를 하다가 토요일 날이면 서울로 와서 가족과 함께 지내다가 일요일이면 다시 광주로 내려가는 주말부부신세를 1년 동안 하게 되었다.

 

문제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살아가는 기러기 아빠들의 후유증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퇴근시간이 돌아오면 괜히 우울해진다. 함께 있으면 "에이, 아내와 좀 떨어져 있어 보았으면…"하는 생각도 종종 하게 되는데, 막상 가족과 떨어져 있어보면 사뭇 달라진다.

 

남자는 회귀본능이 강하다. 하루 종일 일을 하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가족의 품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누군가 기다려 주는 사란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한 일이다.

 

 

 

 

집에 들어가 홀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정말 죽기보다 싫고 고독한 일이다. 그러니 자연히 발길이 술집으로 향한다. 가족의 빈자리를 술로 채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 건강 나빠지고, 고독하고. 사람은 외로움에는 무기력해 지는 것이다.

 

 

의욕이 없어지고 생기가 없다. 자기도 모르게 우울증이 생기는 것이 기러기 아빠들이의 실태다. 만약에 필자도 1년 더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되었더라면 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전에 직장의 상사 한분이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서 아예 눌러 앉아 버렸다. 외동아들을 미국으로 보낸 것도 마음이 아픈데 이제 영 따로 떨어져 살아야 하니 그는 아들만 보고 싶으면 술을 마셨다.

 

그리고 술이 취하면 "00야" 하면서 울었다. 아들이 보고 싶어 술 취한 그 상사를 나는 택시에 태워 집에 데려다 주어야 했다. 결국 그는 알코올중독으로 어느 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또 내주변에 지기는 아내와 자녀를 캐나다로 보내고 홀로 사업을 했다. 그것도 세 명이나  되는 자녀를 말이다. 글니 한달에 최소한 1천만원 이상을 생활비와 집세로 보내야 했다. 초기에는 그런대로 사업이 잘 되어 독수리아빠처럼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으면 훌쩍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갔다.  

 

 

그러나 점점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자 그는 기러기 아빠로 전락을 했다가 나중에는 펭귄아빠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는 사업이 망하여 부도가 나자 돈을 보내지 못해 가족들도 귀국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아내의 태도가 문제다. 남편의 사업이 기울면 알아서 돌아면 되는데 부도가 나서 송금이 오지않을 때가지 버티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땅에 아내와 자식들을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기러기 아빠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식들의 교육이 무엇인지, 영어 조기교육이란 것을 꼭 해야 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조기교육에 눈이 어두운 이 땅의 아내들이 눈을 떠야 한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경쟁과 성공, 가정의 행복, 부부의 행복, 그리고 우리네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옛날에 우리 조상들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오 가족이 함께 모여 살았다. 그래서 가난해도 펭귄아빠와 같은 고독한 신세는 없었다.

 

명절이 되어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기러기 아빠들의 신세는 처량하다.

 

다른 집에는 온가족이 모여 떡국을 먹으며 오손 도손 설날을 맞이하는데, 홀로 삭막한 방에서 떡국을 끓여 먹으며 눈물을 삼키는 기러기아빠, 펭귄아빠의 고독한 마음을 그 누가 다독여 줄 것인가? 아내와 자식을 보고 싶어도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펭긴아빠의 심정을 누가 알아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