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찰라의 영농일기]인생은 단 하루다!

찰라777 2012. 3. 20. 07:45

 

3월 15일 목요일 안개와 서리꽃

 

서리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가 잔뜩 끼어 있다. 안개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짙게 드리워져 있다. 강도 산도 보이지 않는다. 그 안개 속을 기러기들이 끼룩거리며 날아갔다. 기러기는 눈도 밝다. 안개가 짙으면 비행기도 착륙을 하지 못하는데 비행기 눈은 기러기 눈보다 못한 모양이다. 안개 속을 자유자재로 날아가는 기러기는 참으로 밝은 눈을 가지고 있나보다.  

 

▲임진강에 드리워진 새벽안개

 

 

아침식사를 일직 먹고 친구 응규와 함께 작업장으로 가는 길을 나섰다. 집을 나서자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안개가 걷히자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풍경이 다가온다. 온 세상이 은빛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마른 가지에도, 풀섭에도, 지붕에도, 잔디위에도....  볼품없이 쪼그러진 마른 가지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꽃으로 변하다니 자연은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마술사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 볼 수 있는 나는 분명 복을 받은 사람이다!

 

 

 

 ▲풀섭에 핀 서리꽃(상고대)의 아름다움

 

 

"우와! 이런 풍경도 다 있네!"

"상고대야, 서리꽃!"

"마치 이팝나무 꽃들이 무수히 피어 있는 것 같아."

"벚꽃처럼 보이기도 하네!"

"우리가 일을 하러 나오지않았으면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도 볼 수 없었을 거야."

 

안개가 내리다가 기온이 떨어지자 나뭇가지와 마른 풀잎에 그대로 얼어붙어 온 천지가 흰 꽃으로 변해 있다. 자연의 조화란 참으로 위대하다. 싸리버섯 같기도 하고 바다 속의 흰 산호처럼 보이기도 하는 서리꽃이 임진강변을 놀라운 풍경으로 아름답게 장엄해 주고 있다.

 

▲물결치듯 일렁이는 서리꽃의 장관

 

 

"지금까지 육체노동으로 쌓인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아. 저 아름다운 서리꽃을 바라보기만 해도…"

"일터로 나가지 않았으면 저렇게 아름다운 서리꽃을 볼 수 있었을까?"

"일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서리꽃이 너무나 아름다워 우리는 가던 길을 중간 중간에 멈추며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며칠동안 심한 육체노동으로 응어리진 근육의 고통까지 풀어주는 것 같았다. 서리꽃은 파주 임진강 하구까지 이어졌다. 특히 안개가 짙은 강변에 서리꽃은 더 만발해 있었다.

 

 

 ▲임진강을 아름답게 수놓은 서리꽃

 

인생은 단 하루다!

 

해가 뜨자 서리꽃은 벌써 시들기 시작한다. 해가 뜨면 안개가 사라지듯 그렇게 아름답던 서리꽃도 햇볕에 녹아 사라지기 시작한다. 해가 뜨면 사라지고 말 것을 그리도 아름답게 피어났단 말인가! 서리꽃은 단 하루도 살지 못하고 단 몇 시간 아름다움을 보여주다가 이렇게 사라져 가고 만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도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만약에 당신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단 하루밖에 살 수 없는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당신은 어떤 인생을 살아가겠는가.

 

 

▲단 몇 시간 밖에 피어있지 못하는 서리꽃의 아름다움. 인생도 서리꽃같지않을까?

 

남은 시간이 너무 쩗다고 아쉬워하며 원망과 한탄 속에 보낼 것인가. 남은 재산을 진탕 탕진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을 쾌락속에서 보낼것인가.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어떻게 모아온 재산인데, 당신은 생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애써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생의 마지막 순간은 오고 만다.

 

나는 최근 몇년간 시한부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 곁에서 시간을 보내본 적이 있다. 아니 지금도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내는 시한부 인생을 살다가 심장이식을 받고 극적으로 다시 태어났다. 심장이식을 선고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간다. 길게는 2년,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인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해가 뜨자 벌써 녹기 시작하는 서리꽃

 

4년전 아내는 2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았다. 그런데 심장이식을 하면 5년 이상 살아갈 확률이 90% 이상이라고 했다. 확률적으로 보면 굉장이 높게 생각이 된다. 그러나 10%의 범위에 들어간다면, 이는 사망에 이르는 돌이킬 수 없는 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고 만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내는 태연했고, 삶과 죽음을 동시에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식에 성공하여 지금까지 아내는 내 곁에서 숨을 쉬며 살고 있다. 그런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생의 순간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경이롭다. 어찌보면 인생은 아침에 풀잎에 맺혔다가 떨어지는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내 덕분에 심장이식을 한 사람들과 꽤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덤으로 다시 태어난 인생을 인생을 비교적 초연하게 살아간다. 그들의 모임 이름도 <다시 뛰는 심장으로>(http://cafe.daum.net/ASANheart)라고 이름짓고 있다. 아신병원에서 심장이식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남이 준 장기로 제3의 생명을 살아가는 느낌은 경험을 해본자만이 알 것이다. 장기를 기증한 사람은 생을 마감하면서 가장 큰 축복을 준 사람들이다.

 

심장이식을 받고 살아가는 아내의 삶은 마치 서리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내는 섬진강에서도 세평 정원을 일구며 사계절 정원 속에서 살았다. 이제 이곳 임진강에서도 그리할 것이다. 내 땅이건 남의 집이건 그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사는 동안 인생의 정원을 가꾸고 싶을 뿐이다. 추운 겨울을 나며 겨울을 잉태하는 삶은 힘들지만 아름답다.

 

 

▲서리꽃 속에서 봄은 잉태한다

 

우리가 한 겨울 섬진강에서 이곳 임진강으로 이사를 올 때에도 가장 먼저 들고 온 것이 화초를 담은 화분이었고, 블루베리나무였다. 아직도 섬진강에 두고온 나무와 화초가 화엄사 뒤 미타암에 그대로 있다. 우리는 봄에 섬진강에 가서 그 나무들을 옮겨올 계획이다. 우리는 겨우내 추운 동토의 최전방에서 정성스럽게 물을 주며 화초를 일구었다.

 

덕분에 그 추운 겨울에 제라늄은 늘 꽃을 피워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으며, 치자나무와 선인장에서도 꽃을 피워 주었다. 블루베리도 죽지않고 싹을 틔우며 고개를 내밀고 있다. 꽃과 나무들은 참으로 위대하고 신비하다. 말은 하지않지만 소리와 냄새를 맡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 같다. 그들은 가꾼대로 성장한다. 피었다가 곧 시들어가는 꽃이지만 꽃들은 후회를 하지않는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꽃은 아름답게 핀다. 오늘 아침 피어난 서리꽃처럼....

 

 

두포리 밭에 도착을 하니 곽씨와 박씨가 벌써 도착하여 밭을 일구고 있었다.

 

"오늘은 좀 늦었네요?"

"아름다운 서리꽃에 반해서 사진을 좀 찍느라 늦었어요."

"그런데 땅이 얼어서 밭을 일구기가 어려워요."

"땅이 녹을 때까지 어제 씌운 비닐 밑을 곡괭이로 구멍을 파서 나무를 먼저 심어야 겠군. 그리고 땅이 녹으면 오후에 밭이랑을 만드는 작업을 하지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갈피나무를 심다

 

▲심기전 오갈피나무 묘목

 

 

▲오전에는 곡괭이로 언땅에 구멍을 파서 오갈피묘목을 심었다.

 

 

▲오갈피묘목을 정성스럽게 심는 내 친구 응규

 

 

▲밤새 땅이 이렇게 얼어있다.

 

어제 절반 정도 씌어 놓은 비닐을 곽씨와 박씨가 곡괭이 파내고 응규와 나는 오갈피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흙 겉은 얼어서 호미로 파내기가 어려웠다. 오전에 작업을 하는 동안 날씨가 풀려서 흙이 점점 녹기 시작했다.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오늘도 점심을 여울에서 매기 매운탕을 먹었다. 여울은 매운탕만 하는 집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도 가까운 곳에 식당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장님은 직접 임진강에 그물을 놓아 고기를 잡는다고 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곽씨와 박씨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곽씨는 50대 중반으로 젊은 시절 강원도 고환에서 광부로 8년 정도 일을 했다고 했다. 어쩐지 곡괭이 솜씨가 다르다고 생각 했는데…

 

광산이 폐광이 되자 봉제업에 손을 댔다가 IMF때 손을 들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데다가 아내마저 머리에 악성 종기가 나서 몸져 누워있다고 했다. 지금은 동네에서 옷 수선을 하며, 일이 없을 때는 날품 일로 생활비를 벌어들인다고 했다. 그는 매우 성실하게 일을 해냈다. 일을 하는 것을 보면 대강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가 있다.

 

"나도 16년째 아내의 병수발을 하고 있다오. 그래도 아내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않소?"

"물론이지요. 아내는 거동도 불편하고 정신도 희미해요. 그래도 저역시 아내가 곁에 이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어요. 다행이 아이들도 착하고요."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말아야 해요. 빨리 쾌차하기를 기도하겠소."

"그래야지요. 고맙습니다."

 

박씨는 50대 초반으로 매우 건강했다. 항상 싱글벙글 항상 웃는 모습이다. 그는 두루미 입처럼 생긴 긴 호미를 세 자루나 가지고 왔다. 그는 봄철부터 산에 가서 더덕이나 산삼을 캔다고 했다.

 

 

 

▲박씨가 가져온 더덕을 캐는 긴 호미는 두루미 입을 닮았다.

 

 

"그럼 심봤다! 그거 하는 거요."

"아직 그 수준까지는 가지 못하고요. 산에 가기를 너무 좋아해서 더덕을 주로 캡니다."

"한 번 나가면 얼마나 캐지요?"

"그거야 대중없어요. 어떨 때는 300뿌리를 캘 때도 있어요. 야생 더덕이 산삼보다 더 좋다는 말도 있어요. 더덕을 캐면 주변에 향기가 진동해서 좋아요."

"산삼을 캔 적은 없나요?"

"딱 한번 오대산에서 두 뿌릴 캤어요. 운이 좋았지요."

"야 대단하네요. 그래 그 산삼을 어떻게 했나요? 팔았나요?"

"감정을 해보니 70만 원 정도 하는데, 형님이 몸이 허약해서 형님을 드렸어요."

"아하 형제간 우애가 대단하군요. 언제 한번 더덕을 캐러 갈 때 따라 가야겠는데."

"언제든지 연락만 하십시오. 4월부터 슬슬 시작을 하려고 하거든요. 함께 가는 친구가 있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호기심이 동했다. 정말 한번 그를 따라 더덕을 캐러 가고 싶어졌다. 날씨가 확 풀려 오후에는 더울 정도였다. 안개와 서리가 많이 내리면 그 날 날씨는 틀림없이 따뜻하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늘의 별과 동물의 움직임을 보고 천기를 예측하는 옛 어르신들은 참으로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가오더라도 물을 줘야 한다는 오갈피나무

 

 

▲오갈피나무는 물을 좋아한다. 다행히 밭 옆에 물이 흐르고 있어서 양동이로 물을 퍼날랐다.

 

▲양동이로 물을 퍼다가 큰 프라스틱 통에 옮겨 담아놓고 물을 떠다 나무에 주었다

 

▲나무 하나하나에 정성스럽게 물을 주었다. 오늘 비가 오더라도 식재를 한 후엔 반드시 물을 주라고..

 

 

응규와 나는 나무를 심고 물을 주는 일을 하고 두 사람은 밭이랑을 만드는 작업을 계속했다. 산비탈로 갈수록 이상하게 물이 더 많아 흙을 일구기가 더 힘들었다. 아마 내일 하루 정도 더 해야 마무리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두 일꾼의 힘으로 밭이랑을 만드는 작업은 다 끝냈고, 나무는 절반 정도 심었다.

 

오후 6시경 우리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석양 노을이 지는 임진강변에는 그렇게 아름답던 아침의 서리꽃은 간곳이 없고 앙상한 가지만 바람에 하늘 거렸다.

 

"남가일몽(南柯一夢)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더니 오늘 날씨가 그렀군."

"정말 언제 그랬느냐 듯 거짓말 같은 풍경이네."

 

한시(詩)에 밝은 응규가 오늘 날씨를 빗대어 말했다. 이 고사성어는 중국 당나라 때 전기 소설인 이공좌의 <남가태수전>에 나온 말이다. 주인공 순우분은 남쪽으로 뻗은 느티나무 가지 아래서 잠이 들었다가 괴안국에 초청을 받아 20년 동안 부귀영화를 누리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꿈을 꾸다가 일어나보니 한바탕 꿈에 지나지 않았다.

 

나른한 봄날 한잔술을 마시고 잠시 나무 아래 누었다가 깜박 잠이 들면 꿈을 꾸기 마련이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이는 화비화(花非花)라는 시에서 일장춘몽을 이렇게 노래했다.

 

꽃이되 꽃이 아니고, 안개는 안개가 아니어라(花非花. 霧非霧 화비화. 무비무)

깊은 밤에 찾아와선, 날이 밝아 떠나가더라(夜半來. 天明去 야반래. 천명거)

찾아올 때도 봄날 꿈처럼 잠간 이였건만(來如春夢幾多時 래여춘몽기다시)

떠나갈 땐 아침구름처럼 흔적조차 없어라(去似朝雲無覓處(거사조운무멱처)

 

오늘 날씨가 백거이의 시와 딱 닮았다. 몇 해전 봄 나는 하남성 백거이의 무덤 앞에서 시인 백거이의 일생을 생각해 본적이 있었다.  그는 과거시험에 합격했으나 힌직만 맡아서 하다가 일직 은퇴를 한 후 평생을 문학창작을 하며 살았다. 그가 지은 작품수는 대략 3,840편이라고 한다. 꽃이되 꽃이 아닌 것이 서리꽃이 아닐까?

 

밤에 찾아 온 안개는 수천 만 개의 서리꽃을 피우더니 날이 밝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임진강 따라 찾아올 때도 봄날의 꿈처럼 잠시 운무를 이루다가 꽃을 피우더니, 떠나갈 때도 아침 구름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으니…

 

 

 

 

단 몇 시간을 살다간 아름다운 서리꽃! 그러나 서리꽃이 졌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태양이 지평선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서리꽃은 내년에도 다시 피어나고 태양은 아침이면 다시 솟아오른다. 꽃과 잎이 졌다고해서 나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꽃은 이듬해에 다시 피어나고 나뭇잎은 다시 돋아난다.

 

서리꽃이 피어나는 추운 봄에 심은 오갈피나무들이 과연 잘 자라날까? 심다가 상처를 받은 나무들도 있을것이다. 하루를 살다가 죽어가는 나무들도 있을 것이다. 삶은 상처를 먼저 가르친다. 용서보다는 분노를, 희망보다는 좌절을,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미워하는 마음을먼저 가르친다.

 

▲오갈피나무야 잘 자라다오.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여기, 서리꽃은 일분일초를 다투며 피어났다가 사라진다. 해가 뜨면 사라지더라도 필때까지 피고 사리지는 것이 서리꽃이다. 마치 죽음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내일은 비가 온다는 데 작업을 완전히 마무리하고 난 후에 비가 왔으면 좋겠다. 비가오면 상처가 난 오갈피나무도 상처를 아무고 살아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