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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시간에 나타나 애교 부리는 멧돼지

찰라777 2012. 4. 13. 07:28

밥 시간 맞춰 딱딱... 멧돼지가 왜 이래?

지리산 미타암에 나타나는 아기 멧돼지들... 사람 들이받지 않는 이유

 

 

 

지난 7일과 8일 이틀간 지리산 화엄사 뒤 미타암에 머무르는 동안 멧돼지들을 심심치 않게 만났다.  그런데 이 멧돼지들, 생각보다 매우 '순둥이'다. 7일 아침 일찍부터 나타난 멧돼지들은 애교 섞인 소리를 지르며 밥을 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나는 아래쪽 요사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위쪽 요사에 머문 아내와 다른 보살님 한 분은 멧돼지들이 어찌나 극성으로 울어대는지 무서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한다.

 

 

▲ 지리산 미타암에 나타나 밥을 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멧돼지들

 

 

▲ 처음에는 7마리 새끼가 나타나다가 요즈음은 3마리만 나타난다고.

어미 멧돼지는 가까이 오지 않고 멀리서 망을 보고 있다고 한다.

 

 

멧돼지들은 슬금슬금 공양간 부근으로 나타나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들은 아침 6시 공양시간에 딱 맞추어 나타난다고 한다. 손바닥을 내밀며 오라는 시늉을 하자 멧돼지는 앞발을 토방으로 들어 올리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녀석이 귀엽기까지 하다.

 

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처음에 어미 멧돼지만 나타났다고 한다. 추운 겨울날 공양주 보살이 어미 멧돼지에게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주자 공양 시간이면 때를 맞추어 나타나곤 했다는 것. 그러다 새끼를 7마리나 낳은 어미 멧돼지가 새끼들을 데리고 왔단다.

 

추운 겨울에 나타난 아기 멧돼지들이 안쓰럽기도 해 보살님은 음식물을 나누어 먹였는데, 결국에는 마치 어미를 따르듯 보살님을 따르게 됐다고 한다. 아기 멧돼지들이 공양주 보살님에게 저절로 길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멧돼지와 사람과의 공생공존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더욱 가까이 다가온 멧돼지들. 우리 친구할까요? 헤헤~

 

 

실제로 아기 멧돼지들은 경계심 없이 보살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먹이를 주기를 기다렸다. 상당히 자란 아기 멧돼지들은 우리들이 부르거나 스님이 부르면 약간 시큰둥한 표정을 짓다가도 보살님이 나오면 꼬리를 흔들며 보살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하지만 어미 멧돼지는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먼발치에서 아기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미타암의 하루는 새벽 3시부터 시작된다. 정각 3시가 되면 주지 스님이신 각초 스님께서 직접 목탁을 치며 도량석을 돌기 시작한다. 작은 암자, 대웅전에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스님의 목탁 소리를 들으며 잠시 선정에 들어간다. 경내를 돌며 천수경을 마친 스님께서는 조용히 들어와 예불을 시작한다.

 

 

▲공양시간이면 슬슬 나타나는 멧돼지들

 

 

 

정성스런 예불이 끝나면 돌아앉아 남쪽을 바라보며 좌선을 한다. 스님의 죽비소리에 침묵의 좌선을 30분가량 하고 나면 마음과 육체가 맑아짐을 느낀다. 생각이 나면 생각이 나는 대로, 생각이 멈추면 생각이 멈춘 대로 마음은 침묵의 시간을 맞이한다.

 

이 시간엔 멧돼지들도 좌선을 할까? 하지만 오전 6시까지는 고요하다. 그러다가 공양 시간이 다가오면 산사에 멧돼지들이 출현하고 산새들이 노래를 하며 소란해진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먹고 살아가는 데는 시끄러운 모양이다.

 

 

사람 들이받는 멧돼지? 지리산은 다르네요

 

▲ 산책 중에 다시 만난 멧돼지들. 녀석들은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반겼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스님을 따라 포행(산책)을 나섰다. 그런데 숲속 길에서 다시 그 멧돼지들은 만났다. 보통 뉴스에 나온 멧돼지들은 포악하고 사람을 해친다는데, 녀석들은 다르다. 녀석들은 여전히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알아본 듯 가만히 쳐다보기도 하고 뒤뚱거리며 주위를 빙빙 돌기도 했다.

 

"멧돼지들이 참으로 순하네요."

"네, 저 멧돼지들은 사람의 마음을 알아요. 만약 우리가 저 녀석들을 잡아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아마 사납게 달려들거나 멀리 달아났을 겁니다. 그런데 전혀 그런 마음이 없으니 함께 친구가 되는 거죠."

"스님께서 그렇게 길을 들여놓은 게 아닙니까?"

"하하하. 그러나요? 제가 지리산에 멧돼지 몇 마리를 방목을 하고 있나 봅니다. 하하하."

 

 

 

▲산책길에 만난 멧돼지

 

 

그렇다. 그들을 해칠 마음이 전혀 없는데 어찌 그들이라고 사람을 해치겠는가? 지금까지는 늘 '사람 들이받은 멧돼지' 운운하는 뉴스만 들어왔는데, 미타암에 나타난 멧돼지들은 매우 순하고 어질게까지 보이니 어찌된 일일까? 그러니 멧돼지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멧돼지들은 우리 주위를 빙빙 돌다가 유유히 계곡 쪽으로 사라져 갔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자신을 방어하려는 마음은 별반 다를 게 없다. 오늘, 사람인 내가 미타암에 나타난 멧돼지들에게 한 수 배운 거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