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지리산보다 더 먼 동이리 마을

찰라777 2012. 6. 8. 06:35

 

지리산보다 더 먼 동이리 마을

버스타고, 전철타고 4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한 동이리마을

 

 

 

와플 한 장의 행복

 

 

아침 7시 29분, 봉천 고개에서 506번 버스를 탔다. 토요일인지라 버스는 한산했다. 버스는 상도터널을 지나 곧 제1한강교로 진입했다. 강바람이 시원스럽게 불어왔다. 여의도에는 하늘을 찌르는 고층빌딩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아름다운 서울의 아침 풍경이다.

 

▲506번 버스풍경

 

 

 

버스는 서울역을 지나 7시 55분에 종각에 도착했다. 종각에는 아직도 초파일 등이 그대로 달려 있었다. 연등은 아침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타골이 말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이런 풍경을 두고 한 말일까?

 

 

 

▲고요한 서울의 아침풍경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니 역시 토요일의 지하철역은 한가하다. 소요산행 전철이 8시 11분에 있던가? 인천에서 소요산까지 전동차는 1시간에 2번꼴로 있는데, 한 번 놓치면 30여분을 기다려야 한다.

 

오늘은 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동이리로 가기로 작정을 했다. 혼자서 자동차를 몰고 가는 것은 아무래도 여러 가지로 합당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아내는 다리를 다쳐 휠체어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하는데. 아직 움직이기가 곤란하다. 그러나 동이리로 가야 한다.

 

그곳에는 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녀석들이 있다. 텃밭에 심어놓은 상치, 고추, 가지, 토마토, 호박, 강낭콩, 고구마, 감자, 땅콩, 옥수수… 녀석들은 지금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일 것이다. 녀석들에게 생명의 물을 주어야 한다. 이 가뭄에 얼마나 애타게 기다릴까? 어서 가야지…

 

▲지하철 무인판매대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무인판매대를 보니 여러 가지 과자와 음료들이 도열하여 있는데, 그 중에서 와플이 눈에 띠었다. 나는 갑자기 아녜스님의 ‘마지막 와플’이란 글이 생각이 났다. 그녀의 딸 혜인이가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가 있는데, 네덜란드 튤립축제에 다녀오면서 와플을 사서 아녜스님에게 보내왔더란다.

 

아녜스님은 딸아이로부터 선물로 받은 와플이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맛이 있더란다. 처음에는 남편에게 하나를 주니 별로 내켜 하지 않더니 먹고 난 후 하나 더 먹자고 하더란다. 두 봉지를 보냈는데 한 봉지는 외할머니 댁에 보내드리고 마지막 남은 한 봉지를 매일아침 아껴 먹다보니 드디어 마지막 하나가 남았더란다.

 

▲아녜스님의 딸이 아네스님에게 네덜란드에서 보내온 마지막 와플

 

매일 아침 블루마운틴 커피콩을 갈고, 커피가 걸러지는 동안 와플을 한 장 꺼내 놓고 여유를 부리며 커피향과 시나몬향이 어우러진 달콤한 와플 한 조각을 먹는 맛이 그렇게도 행복8했는데, 드디어 마지막 한 장의 와플이 남았더란다. 커피 한 잔에 와플 한 조각을 곁들여 먹으며 귀부인이 된 듯 하루를 시작한다는 그녀의 행복한 마음은 진정 작은 것에 만족을 느끼며 행복해 할 줄 아는 마음이 아닐까?

 

아녜스님의 와플 이야기에 대한 글 연상하다 보니 갑자기 아삭아삭한 와플이 먹고 싶어졌다. 무인자판기에 천원지폐를 넣고 와플을 선택하니 기계가 와플을 꼭 집어서 토해낸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와플 한 봉지를 꺼내 입에 넣고 씹어보았다.

 

★와플 한장의 행복

 

와플은 입에 넣기도 전에 으스러졌다. 아녜스님의 딸이 보내준 와플만큼 맛이 못하겠지만 그런대로 입속에서 바스락 거리며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와플 맛이 괜찮았다. 나는 다시 ‘마지막 와플’이란 아녜스님의 글을 생각하며 고소한 미소를 지었다.

 

와플을 먹다보니 소요산행 열차가 왔다. 열차를 타려고 하는데 ‘나뭇잎 정거장’이란 시가 차창에 어려 눈에 들어왔다. “나뭇잎 한 장의 이름으로/그리운 승객의 얼굴이 되어/이제 막 빚어 뜬 조각달도/조수석에 달아매고/나뭇잎 십리길을/그대의 천리라 부를까/내 왼쪽 빗장뼈에 걸려/삼십년 쯤 연착된 후일.”(송계헌)

 

 

 

지하철의 벙어리 소년

 

8시 15분, 나는 내 왼쪽 빗장뼈에 걸린 나뭇잎 정거장의 시를 달고 소요산행 열차를 탔다. 열차가 청량리를 지나자 어두운 눈을 뜨고 밖으로 나왔다. 갈수록 점점 시골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자동차를 몰고 갈 때와는 영 딴판이다. 모든 사물이 천천히, 그리고 선명하게 들어온다. 나무, 들판, 산…

 

 

 

 

 

종각에서 소요산까지는 1시간 30여분이 걸린다. 나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배낭에서 책을 꺼내 들었다. ‘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라’는 책인데 미국의 심장의학 권위자인 윌리엄 허블리첼 박사가 쓴 책이다. 요즈음 병원에서 아내를 간호하며 읽었던 책인데 환자와 의사 사이에 맺어진 휴머니즘을 잘 그려낸 책이다. 의사는 치료가 아닌 치유의 개념으로 환자를 대해야 한다는 그의 구구절절한 글은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벙어리 소년이 두고 간 사탕 하나

 

 

책을 한 참 읽고 있는데 갑자기 벙어리 소년이 다가와 무턱대고 사탕 하나를 책 위에 놓고 손을 벌렸다. 깜짝 놀란 내가 그를 쳐다보자 그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으응 으응” 소리를 질렀다. 적선을 해달라는 표정이다.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어 그에게 건네주고 사탕도 함께 건네주자 소년은 사탕을 책 위에 놓고는 휭 가버렸다.

 

흔히 적선을 하는 사름들은 먼저 사연을 적은 메모쪽지를 건네고 껌이나 과자를 건네며 적선을 요구하는데 소년은 그런 절차도 없이 쏜살같이 내게로 다가와서 사탕 하나를 놓고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받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음 칸으로 가버렸다. 나는 사라져가는 소년과 사탕을 번갈아 보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 소년은 처음부터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지 않았을까?

 

 

★소요산행 전철 풍경

 

열차에서는 수차례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일장 연설을 했다. 비옷, 토시, 수도꼭지, 허리띠, 허리안대… 저마다 열변을 토하며 제품의 우수성을 선전하는 모습이 대단했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이다. 그들이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일 오늘 먹을 양식이 없다면 저렇게 용감하게 생의 현장으로 뛰어 들 수 있을까?

 

 

 

 

와플을 한 장 한 장 씹어 먹으며(아껴서)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소요산역에 도착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소요산으로 등산을 가는 등산객들이 많이 내렸다. 역 구내에서는 떡과 음료를 팔았다. 떡이 맛있어 보였다. 나는 2천원을 주고 인절미 한 상자를 샀다. 아침대용으로 먹기 위해서다.

 

 

동이리로 가는 길

 

소요산역서 다시 전곡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전곡을 가는 버스는 자주 있다. 길 건너에서 버스를 탔다. 소요산에서 전곡까지는 20여분 정도 걸렸다. 버스는 한탄강을 지나 구도로를 통해 전곡으로 갔다.

 

전곡역에 도착하니 9시 50분이다. 버스 시간표를 보니 동이리로 가는 버스는 10시 30분에 있었다. 음, 이 시간동안 시장을 보고 가면 되겠네. 나는 전곡 시장을 돌아보고는 승객 대기실에서 마지막 남은 와플 한 봉지를 아삭아삭 씹으며 다시 책을 읽었다. 지팡이를 든 노인들과 아주머니들이 한 두 사람씩 들어왔다.

 

 

 

10시 20분이 되니 58번 버스가 들어왔다. 버스에 오르니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탔다. 10시 30분, 머리가 하얗게 쉰 운전사가 여유 있는 모습으로 천천히 버스를 운전을 했다. 버스는 전곡 읍내를 벗어나 한탄강을 지나고 임진교를 건너 왕징면으로 향했다. 왕징면을 돌아 나온 버스는 우정리를 지나갔다. 모네기를 한 논들이 들판을 싱그럽게 장식을 하고 있다.

 

마전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동이리로 향하니 요철로 된 방어진지가 요새의 문처럼 견고하게 난다. 우측에는 고구려 유적지인 당포성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너무나 한적한 길이다. 방어진지를 지나면 좌측에 폐교가 나오고 곧이어 유엔군 화장장이 나온다. 동이리는 먼 삼국시대로부터 치열한 각축을 벌였던 전쟁터이다. 당포성과 유엔군 화장터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버스는 태풍부대를 지나 금굴산 자락으로 들어간다. 금굴산! 한국전쟁당시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렀던 산이다. 동이리 마을은 금굴산 자락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언제 전쟁이 있었냐는 듯 마을은 평화롭고 고요하다.

 

11시, 동이리 마을에서 내리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마을회관에서 동이리 마을교회를 좌측으로 두고 끼고 돌아 임진강 주상절리 쪽으로 걸어갔다. 우리 집은 마을회관에서도 20~30분을 걸어가야 한다. 인적이 거의 없는 이 길은 한적하고 고요하다.

 

 

 

논두렁 사이 길을 걸어가다 보니 갑자기 학창시절이 추억이 떠올랐다. 나는 하루에 14km 걸어서 중고등학교를 기차 통학을 했다. 시골 우리 집에서 기차역까지 4km, 목포에서 학교까지 다시 3km를 걸어야 학교에 닿을 수 있다. 왕복 14km의 거리다. 나는 무려 6년 동안청운의 꿈을 품고 그 길을 새벽과 저녁에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그 길에 비하면 지금 내가 걷는 길은 가벼운 편이다.

 

내 친구 응규도 기차 통학을 함께 했던 고향 친구다. 내가 부탄 여행을 가고 없는 사이 그도 이 길을 걸어서 동이리 집까지 왔다. 그는 자동차는 있는데 운전을 하지 않는 친구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걸어서 동이리까지 온 그는 텃밭에 물을 주고 농작물을 보살폈다. 얼마나 고마운 친구인가?

 

느림의 미학이 주는 행복

 

 

 

길가에는 하얀 찔레꽃이 피고 노란 애기똥풀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으아리 꽃이 함초롬히 피어 있고, 개망초도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모내기를 한 논에는 백로가 무언가 먹이를 찾아 쪼아 먹고 있었다. 의심이 많은 녀석은 두리 번 거리더니 이내 하얀 날갯짓을 하며 산 쪽으로 비행을 했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어가정 앞 삼거리에서 주상절리 쪽으로 걸어갔다. 곧 임진강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날씨는 가물지만 임진강은 물은 푸르게 초록을 가로지르며 시원스럽게 흘러간다. 낚시꾼이 발을 담그고 닐을 던지고 있다. 햇빛에 반사되는 물비늘이 눈이 부시다.

 

 

 

 

 

 

 

 

강변에 피어 있는 금송화가 화려하게 수를 놓고 있다. 나비들이 꽃 속에 묻혀 꿀을 빨아 먹고 있다. 주상절리 적벽에는 푸른 담쟁이 넝쿨이 덮고 있다. 뽕나무에는 오디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11시 30분, 강변을 지나 집 앞에 도착하니 밀밭에 밀이 익어가며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고, 장미가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역시 6월의 장미는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답다. 사립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가니 푸른 잔디가 가뭄을 이기며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다.

 

 

 

 

 

 

 

집에서 7시가 조금 넘어 출발하여 무려 4시간도 넘게 걸려 동이리에 도착을 했다. 이 시간이면 지리산보다 더 먼 시간의 거리다. 이곳에 이시를 오기 전에 지리산 구례 섬진강변에 살 때에는 서울에서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면 3시간 30분 이내에 구례에 닿는다. 그러나 어쨌든 동이리 집에 온 보람은 크다. 오면서 볼 것을 다 보고, 이생각 저생각을 하느라고 지루한 줄도 별로 몰랐다.

 

바쁜 사람들은 돈으로 시간을 사지만,

나는 시간으로 돈을 산다.

그러나 느림의 미학이 주는 행복은  여유롭고 크다.

 

나는 제일먼저 텃밭으로 달려갔다. 아, 얼마나 갈증을 느꼈을까? 주인을 잃은 녀석들이 시름시름 시들어 가고 있다. 블루베리에 먼저 물을 주고 차례차례로 물어 뿌려 주었다. 호박잎도 축 쳐져 있고, 오이, 상치, 가지, 강낭콩, 감자, 고추, 토마토, 땅콩…… 녀석들이 어서 물을 달라고 주인을 쳐다보고 있다. 차례로 물을 뿌려주고 뒤뜰에 있는 버섯나무에도 물을 주었다.

 

 

★물을 주기전 시들시들한 호박잎

 

★물을 준 후 싱싱해진 호박잎

 

 

물을 머금은 녀석들은 모두가 싱싱하게 고개를 쳐들고 미소를 보내왔다. 식물들도 생각이 있을까? 어떤 학자가 식물들도 걸어 다닐 수는 없지만 신경세포와 생각이 있다고 했다. 가지와 감자는 꽃을 피웠으며, 오이와 토마토는 벌써 열매를 달고 있었다.

 

 

곧 시들어 죽을 것만 같았던 고구마 순도 싱싱하게 펴졌다. 강낭콩 푸른 열매가 영글어 가고 있었으며, 땅콩도 잎이 파랗게 퍼져 나오고 있었다. 연희 할머니 집에서 모종을 해왔던 청상치와 부추도 싱싱하게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섬진강에서 가져왔던 나팔꽃과 분꽃도 물을 먹고 춤을 추며 일어났다.

 

 

 

 

 

 

 

아아, 생명의 노래들이여!

뻐꾸기가 울고, 까치가 노래를 불렀다. 나는 채소와 새들이 들려주는 교향곡을 넋을 잃고 있었다.

흐음~ 느림의 미학이 주는 행복은 여유롭다.

볼 것 다 보고, 들을 것 다 들으며, 느낄 것을  다 느끼게 되니 말이다....

 

 

 

감자

 

 

토마토

 

 

고구마

 

 

 

강남콩

 

 

땅콩

 

 

오이

 

 

칙러리

 

 

들께

 

 

청상치

 

 

 

 

치마상치

 

 

 

 

 

 

 

 

'국내여행 > 임진강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홀로 밥상  (0) 2012.06.09
찰라의 엉성한 스프링 쿨러 발명품  (0) 2012.06.09
주상절리 여름풍경  (0) 2012.06.07
까치 나는 밀밭  (0) 2012.06.05
손 대면 톡하고 후드득 떨어지는 오디  (0) 2012.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