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50평 콩밭에서 사금을 캐듯 수확한 금싸라기 같은 콩 두말

찰라777 2012. 12. 24. 16:59

1년 내 지은 콩농사

돈으로 환산하니 17만원...

 

 농사는 시기를 놓치면 엉망이 되고 만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때 이른 폭설과 한파로 인해 콩 타작 시기를 놓치고만 나는 12월도 다간 한겨울에 콩 타작을 해야만 했다. 쇠스랑으로 손수 일군 150여 평의 텃밭 자투리 빈 땅 50평에 콩을 심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콩 농사를 지어보는 나는 콩을 심을 때부터 단추를 잘 못 낀 것 같았다. 


 

 

 ▲50평 콩밭에서 1년 농사 지어 수확한 금싸라기 같은 검은콩 한말, 대두콩 한말

 

 

처음부터 잘 못 선택한 종자
 
원래 콩을 심을 때 이곳 연천 토질에 맞는 연천콩을 심어야 하는데, 이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한 나는 구례에서 가져온 콩 씨를 지난 6월 12일 그대로 심었다. 콩을 심은 후 6월 27일 연천군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교육을 받으면서 종자를 잘 못 선택했음을 알게 되었다. 서리태와 대두콩 두 종류의 콩을 심었는데, 서리태를 먼저 심고, 대두콩은 그 일주일 후에 파종을 했다. 그러나 이미 파종을 하여 싹이 돋아나 버린 콩을 파낼 수도 없었다.  

 

▲6월 12일 파종한 서리태

 

▲6월 18일 파종한 대두콩

 
콩을 심은 지 일주일도 채 되기 전에 껍질을 벗어내고 새싹이 귀엽게 고개를 내밀었다. 그 여린 콩 싹이 극심한 가뭄으로 굳은 땅을 밀고 나오는 모습이 마치 지구를 밀고 나오는 것처럼 위대하게 보였다. 힘차게 밀고 나오는 콩들의 합창을 바라보며 나는 금년에 콩 농사가 아주 잘 될 것으로 생각을 하며 내심 쾌재를 불렀다. 

 

▲파종한지 일주일만에 돋아난 콩싹(6월 18일) 

 
극심한 가뭄, 우박, 태풍, 그리고 잡초와의 전쟁... 
 
그러나 그것은 섣부른 계산 착오였다. 104년 만에 찾아왔다는 극심한 가뭄은 콩들을 목이 타게 하더니만, 갑자기 구슬처럼 큰 우박이 쏟아져 내려 콩밭을 그만 쑥밭으로 만들고 말았다. 따발총 쏟아져 내린 우박의 피해는 의외로 컸다. 어떤 농가는 2000여 평에 심은 단호박이 다 망가져 이를 전부 뽑아내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6월 19일 내린 우박으로 작살이 난 콩 싹

 
그러나 콩들은 그 혹독한 시련을 딛고 의외로 씩씩하게 잘 자라 주었다. 나는 매일 아침 콩들에게 "애들아, 제발 무사히 잘 자라다오."라고 속삭이며 물을 주곤 했다. 콩들은 그 기도에 보답이라도 하듯 쑥쑥 자라주었다. 농사를 잘 아는 내 친구는 "그게 콩이기 때문에 가능한거여."라고 말했다. 정말 친구의 말처럼 콩은 다른 식물보다 비교적 가뭄에도 강하고 농약을 별로 사용하지 않아도 잘 자라나는 것 같았다.   

 

허지만 콩들의 시련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가뭄은 물을 주는 것으로 극복이 어느 정도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콩보다 더 많은 잡초들이 우후죽순처럼 콩밭을 점령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콩밭은 콩 반 잡초 반으로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잡초는 가뭄도 크게 타지않는 것 같았다. 자고일어나면 돋아나는 '잡초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제초제 등 농약을 일체 쓰지 않는 나는 50여 평 되는 콩밭에 잡초를 뽑느라 엉덩이 깔개를 받치고 매일 '콩밭 매는 아낙네'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잡초와의 전쟁 


거기에다가 고라니와 노루, 그리고 너구리들이 어찌나 극성을 부리던지 그대로 방치를 하면 콩잎이 제대로 남아 있지를 않을 것 같았다. 콩 씨를 뿌려 놓았을 때는 새들이 기가 막히게 땅속에 있는 콩을 알아내고 파먹더니, 콩잎이 돋아나니 이제 네발 달린 짐승들이 가만 두지를 않았다. 나는 콩밭에 망사를 치고, 장화를 거꾸로 걸어 놓기도 하고, 토끼 인형을 보초로 세워두기도 했다. 


 

▲고라니로부터 콩밭을 지키는 토끼인형

  
지난 8월 말에는 태풍 볼라벤과 산바가 몰아쳐와 콩밭을 휩쓸며 쑥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콩들은 죽은 듯이 납작하게 땅에 엎드려 일어날 줄을 몰랐다. 콩들의 시련은 그칠 줄을 몰랐다. 태풍이 오기 전에 콩잎을 미리 적심(콩순을 잘라주는 것)을 해 두었지만 워낙 강력한 태풍인지라 콩밭이 온전할 수가 없었다. '농사는 하늘이 지어준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을 하는 농부들의 타는 심정을 이해를 할 수가 있었다. 
 
때 이른 폭설과 한파로 자꾸만 늦어지는 콩 타작
 
그렇게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콩들은 그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나 자라주었다. 콩들의 생명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련 속에 서도 잘 자라주는 콩들이 어찌나 고마운지... 허지만 콩이 자라는 속도가 너무 더뎠다. 날씨탓도 있지만 이장님은 토질에 맞지않는 종자 탓도 크다고 했다.  
 

10월이 다 지나가고 있는데도 콩잎은 파랗고 콩깍지는 여물 줄을 몰랐다. 이장님 콩밭과 현희네 콩밭은 벌써 콩이 익을 대로 익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집 콩밭은 아직 비린내가 나는 풋콩 그대로였다. 

 

▲대두콩과 서리태(10월30일)


드디어... 10월 30일,  나는 약간 덜 익은 듯하지만 대두콩을 먼저 베어냈다. 서리태보다 일주일이나 늦게 심은 대두콩은 여물고 익었는데 서리태는 아직 퍼런 채로 있었다. 서리태는 서리가 내린 후에 수확을 한다고는 하지만, 첫눈이 내렸던 11월 19일이 지나서 11월 말일 경에야 베어냈다. 그 때도 콩대와 콩잎이 아직 완전히 마르지않고 퍼런색깔이 남아 있었고, 덜여문 콩깍지가 남아 있었다.  

 

아랫집 현희네는 이미 콩을 다 베어내서 비닐을 씌워 밭에 밭에 말려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년보다 일직 내린 눈으로 콩 타작을 미처 하지 못하고, 현희네도 12월 초에야 콩을 비닐하우스로 옮겨 탈곡기로 타작을 했다. 폭설과 한파로 일손이 부족한 농가는 아직도 콩을 베어내지 못한 경우도 있다.

 

▲대두콩을 베어내어 테라스에 말렸다.(10월30일) 

 
비닐하우스가 없는 나는 베어낸 콩을 말리기 위해 테라스로 모두 옮겨놓았다. 콩 깍지가 잘 말라야 콩을 두들기면 툭툭 튀여 나온다. 그런데 수확이 늦은데다가 폭설과 한파가 겹쳐 콩을 말릴 새가 없었다. 12월 초에 내린 폭설은 계속되는 한파로 잘 녹지를 않았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에서 콩을 그대로 방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나는 테라스에 쌓아 놓은 콩만 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여보, 콩을 언제 타작을 하지요?"
"글쎄, 저 눈이 다 녹아야 하지 않겠소?"
"그래도 금년이 다 지나가기 전엔 콩 타작을 해야지요."
"여부가 있소. 눈이 거의 다 녹으면 바로 타작을 해야지…."
 
금년이 지나기 전엔 콩 타작을 해야지요
 
19일 선거를 치르고 나니 비로써 눈이 거의 다 녹았다. 12월 21일 나는 콩 타작을 시작했다. 원래는 도리깨로 콩을 타작을 하려고 했는데, 얼마 되지 않은 콩이니 도리깨까지 살 필요가 뭐 있겠느냐고 아내가 말렸다. 도리깨질을 하다간 오히려 콩이 사방으로 튀어나가 남은 콩보다 유실되는 콩이 더 많아져버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
 
결국 나는 텃밭에 콩을 옮겨놓고 작대기로 두들기며 콩 타작을 시작했다. 밑에 넓은 거적을 깔고 그 위에 콩을 얹어 놓고 콩을 두들기기 시작하니 콩이 툭툭 튀여 나왔다. 먼저 서리태를 타작을 하고 다음에 대두콩을 두들겨 팼다. 그런데 콩이 막 섞여 서리태 반, 대두콩 반으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작대기로 두들겨서 50평 콩을 타작했다(12월 21일)

 

 
작대기로 콩을 두들기는 작업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50여 평에서 거두어들인 양이 꽤 많았다. 한 두 시간도 아니고 하루 종일 콩을 두들기고 나니 팔다리, 어깨, 허리가 쑤시고 절리며 아팠다. 난 아무래도 미련한 농부인가 보다. 아내가 말렸어도 도리깨를 사와서 콩을 타작을 해야 건데…
 
콩 타작은 한번 두들겨 패는 것으로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콩대를 뒤집어 가며 최소한 세 번은 두들겨서 콩대를 흔들어주어야 콩 알갱이가 잘 빠져나왔다. 콩대를 거두어 내고나면 콩깍지가 쭉정이처럼 남았다. 그 쭉정이를 다시 한데 모아서 또 한 번 두들겨 주어야 했다. 
  

▲쭉정이가 섞인 콩을 체에 걸러냈다.

 
쭉정이를 거두어 내도 검불과 먼지가 잔뜩 섞여 콩은 잘 보이지 않았다. 옛날에는 타작을 한 콩을 키로 부채질을 하거나 풍로에 넣어서 골라냈다. 그러나 우리 집에는 키도 풍로도 없다.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먼지와 검불을 털어낼 수밖에 없다. 
 
사금을 캐듯 체로 걸러낸 금싸라기 같은 콩
 
바람이 불면 체로 걸러내며 검불과 먼지를 걸러낼 텐데… 첫 날은 바람도  통 불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우선 체로 콩을 걸러내는 작업을 했다. 다 걸러내고 나니 서리 태 한말, 대두콩 한말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걸러낸 콩을 거실로 옮기고 나니 날이 어두워졌다. 아내는 돌등 이물질을 걸러내고, 섞여진 서리태와 대두콩을 선별하여 골라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여보, 그냥 두어요. 내일 바람이 불면 바람에 검불을 걸러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니."
"그래도 할 때까진 좀 해 보아야지요."
  

저녁을 먹자 나는 녹초가 되어 잠속으로 골아떨어지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마침 바람이 꽤 세차게 불어 주었다. 나는 콩을 들고 나와 바람을 이용하여 먼지와 검불을 걸러냈다. 바람은 자연이 주는 풍차이다. 태풍처럼 센 바람은 콩을 힘들게 했지만 산들바람은 콩을 예쁘게 골라내 주었다. 자연풍에 콩을 걸러내고 나니 이제야 비로써 콩다운 콩이 되는 것 같았다. 

 


 
바람으로 콩을 걸러낸 다음 아내와 나는 하루 종일  서리태와 대두콩을 선별하여 골라내는 작업을 하였다. 콩을 선별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마치 흙속에서 사금을 캐내는 것 같았다. 서리태, 대두콩, 그리고 돌과 쭉정이를 별도로 선별하여 하나하나 골라내는 작업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며 콩을 골라냈다. 지난 여름 땅콩 농사를 지어 20집도 넘게 나누어 먹었었는데, 아내는 이 콩도 수확을 한 다음 누구누구랑 나누어 먹어야겠다고 말했다. 작지만 손수 지은 농사를 나누어 먹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콩 선별작업
 

골라낸 콩을 말리기 위해 테라스에 널어놓았다. 지난 6월 12일 콩을 심은 지 꼭 6개월 만에 수확해낸 콩을 바라보자니 감개가 무량했다. 종자를 잘 못 선택하여 콩이라 자라는 것도 더뎠지만, 갖은 시련을 극복하고 이만큼이나마 수확을 거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비록 작은 양이지만 내가 손수 농사를 지은 귀한 콩이 아닌가! 
 
1년 동안 지은 콩 농사 두말이 겨우 17만 원이라니...
 
아내는 아무래도 콩이 조금 부족하다며 현희 할머니에게 콩을 좀 사려고 가격을 물어 보았더니  대두콩은 한 말에 5만원, 서리태는 한 말에 12만원이라고 했다. 현희 네는 남의 밭에도 콩을 심어 상당히 많은 콩을 수확했다.
 
"세상에! 그럼 우리가 1년 동안 지은 콩 농사가 겨우 17만원 밖에 안 되네요!"
"허허, 그런 셈인가? 그러니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마음이야 오직하겠소?"
"이 금싸라기 같은 콩을 아까워서 어떻게 먹지요?"
"그래도 먹기 위해서 지은 농사이니 이도 고맙다고 생각하고 잘 먹어야 하지않겠소?"
 

 

▲흑진주 같은 서리태

 
검은 색갈의 서리태는 마치 흑진주처럼 보였고, 노란 색깔의 대두콩은 황금처럼 보였다. 그런데 50평 콩밭에 1년 동안 온갖 시련을 겪으며 지은 금싸라기 같은 콩이 돈으로 환산하면 겨우 17만원이라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농사를 지어서 돈을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콩 농사를 지어보니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는 농부들의 마음이 구구절절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금싸라기 같은 대두콩
 


이런 자세한 과정을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만큼이나 알까? 무엇이든지 본인이 직접 보지 않고, 몸소 체험을 해보지 않고는 그것에 대하여 말할 자격이 없다. 탁상에 앉아서 만들어 낸 공약이나 정책은 말 그대로 탁상공론에 그치고 만다. 그러므로 몸소 체험을 해 보지 않은 공약과 정책을 함부로 남발을 해서는 안 된다. 특히 농사에 대한 정책이나 공약은 농부들의 소리에 귀를 크게 열고 충분히 경청을 한 다음에 결정해야 한다.  
 

"대두콩 한 말에 5만원, 서리태 한 말에 12만원이라니 너무 비싸요." 농부들이 콩을 자식처럼 키워온 과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콩 가격만 놓고 보면 그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어찌 농부들이 겪어온 시련을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콩의 시련이 곧 농부들의 시련이오, 그 시련을 딛고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콩으로 탄생한 콩 자체가 농부들의 피와 땀방울이 맺힌 결정체이다. 

 

▲눈맞은 콩을 방에 널어 놓아 말렸다.


 
50평 콩밭에서 1년 동안 농사를 지어 수확한 두말의 콩은 나에게는 정말로 금싸라기처럼 소중한 존재다. 콩 두말을 가지고 뭐 그리도 애지중지 하느냐고 반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금년 한 해 동안 콩 농사를 지으면서 얼마나 각고의 시련을 겪어야 했던가? 104년만의 찾아온 극심한 가뭄과  갑작스런 우박, 태풍, 그리고 잡초와의 전쟁에서 수확한 얼마나 귀한 콩인가? 이는 말과 글로는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직접 콩 농사를 지어 보아야만 그 심정을 십분 이해를 할 수 있다.

 

▲테라스에 말리고 있는 서리태
 

나는 삽과 괭이, 호미를 사용하여 순전히 원시 자연농법으로 콩 농사를 지었다. 기름이 소요되는 농기계를 일체 쓰지 않고 밭을 개간하였으며, 제초제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호미로 잡초를 뽑고, 작대기로 두들겨서 콩 타작을 했다. 말하자면 콩 종자말고는 원료값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바람을 이용하여 검불과 먼지를 걸러냈으며, 손으로 수작업을 하여 일일이 돌등 이물질과 콩을 구별하여 선별작업을 하여  최종적으로 콩을 수확을 했다. 오로지 내 손과 노동력, 자연의 힘으로 수확한 무공해 콩이니 어찌 금보다 더 소중한 콩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