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어 버린 친구

찰라777 2013. 1. 24. 12:08

갑자기 세상이 짧아 보인다는 친구의 아내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눈이 내렸나보다. 지금도 싸락눈이 풀풀 내리고 있다. 자연은 이렇게 소리 없이 변화하며 창문을 두들긴다. 다락방의 작은 침대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싸락눈이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겼다.

 

매일 아침 명상을 하는 것은 잡념(=번뇌)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맑은 정신, 바른 마음으로 세상을 보기 위함이다. 그런데 잡념이라는 놈은 없애려고 하면 더 생긴다.

 

 

"그냥 지나가게 놓아두십시오. 잡념을 없애려고 하면 더 생깁니다. 그대로 두고 코끝에서 들어가고 나오는 호흡에 집중을 하십시오. 그러다 보면 잡념이 어느새 다 지나가고 공空한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그 공한 상태를 조금씩 길게 가지고 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지난번 지리산 미타암에 갔을 때 화엄사 선등성원장이신 각초스님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눈을 감고 수식관을 세어가며 호흡을 하고 있는 병원에 입원을 한 친구의 얼굴이 맨 먼저 떠올랐다. 아참, 어제 수술에 들어갔다고 했는데 어찌되었지?

 

 

나는 가부좌를 풀고 친구 부인에게 전화를 먼저 하기로 했다. 그렇게도 건강했던 친구가 갑자기 수술을 한다고 했다. 아마도 친구들 중에 가장 건강한 친구다. 그는 2주전에 악현 성당에서 큰 아들 장가를 보내기도 했다. 성당에서 하객을 접견하던 친구가 바로 어제의 일인데, 그는 장가를 보낸 그 다음날 강남 성모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한다.

 

갑자기 아랫배가 아파서 진단을 해보니 장에 구멍이 뚫리고, 방광에 암이 퍼졌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매우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일주일 동안 검진을 한 결과 장을 잘라내고 방광을 완전히 드러내야 하는 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이렇게 되다니 나도 믿을 수가 없네. 수술을 하고 나면 나도 장애인이 된다고 하는군."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통화를 하면서 그는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에게 무슨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정작 수술을 앞두고 있는 당사자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 이것 하나만 이야기를 해주고 싶네. 우리 집 사람은 심장을 바꾸고도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절대로 용기를 잃지 말게. 그리고 현재의 상태를 겸허히 받아드리게. 불행은 누구한테나 노크를 한다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드리느냐에 따라서 자네의 새로운 삶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니, 부디 용기를 잃지 말게나."

 

"고맙네! 친구…"

 

그리고 어제 아침 7시 첫 수술을 들어갔다는 연락을 그의 아내로부터 받았다. 그의 아내도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항상 자신의 건강이 약해 늘 병원신세를 지곤 해서 남편한테 미안했는데, 건강하나만큼은 자신을 했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지게 되니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어제 오후 2시경에 전화를 해보니 아직 수술이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밤이 지나고 날이 다시 샌 것이다. 나는 명상을 중단하고 친구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술은 잘 되었겠지요. 의식이 돌아오기는 했는가요?"

"네, 11시간이나 걸렸어요. 의식이 돌아오긴 했는데 말을 하지 못하는군요."

"그럼 친구는 중환자실에 있겠군요."

"네... 산소관이며, 링거며 주시관이 너무 많이 꽂혀 있어 볼 수가 없네요...."

"짐작이 갑니다. 우주복을 입은 것 같은 친구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아내도 그랬으니까요. 그래도 일단 의식이 돌아왔다니 다행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시간과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것 같네요. 제가 옆에서 해줄 것이 하나도 없어 지금 집에 돌아와 있어요."

"중환자 실은 그렇지요. 의사와 간호사가 더 잘 챙겨 줄 것이니 한시름 놓으시고,  더 잘 드시고 평상시대로 그를 대해야 그에게 도움이 됩니다."

 

보지 않아도 친구의 상태가 연상이 되었다. 아내의 병원 생활을 하도 많이 지켜 본 나는 병원의 중환자실, 환자와 그의 가족들 상태를 쭉 꿰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다.

 

그러나 한평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고난의 절벽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것이 단 한차례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불행의 씨는 여러 가지 형태로 삶의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다가 게릴라처럼 불시에 쳐들어온다. 그리고 살아온 만큼 시간을 투자해도 소용없을 정도의 엄청난 무게로 우리를 가로막는다. 우리는 그 앞에서 무너지고 통곡하며 절망으로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그럴수록 희망과 의지라는 양팔로 당당히 맞서 싸워나가야 한다.

 

".... 아직도 그이가 저렇게 병원에 누워있다는 것이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아요."

"아마 그럴 겁니다. 친구는 너무 건강했으니까. 그러나 누구에게나 병은 예고 없이 찾아듭니다. 아마 견디기가 어렵겠지만 그럴수록 더 침착하게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디 영이 엄마에게 비하겠어요. 그렇지만 갑자기 세상이 너무 짧아 보이기도 하고, 앞이 캄캄해지네요."

"누구나 그럴 겁니다. 그런데 저의 체험으로는 그런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알 수없는 간절한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뭐랄까요. 그때까지 별로 대수롭지않게 여겼던 아내의 존재가 너무나 소중하게 여겨지고, 그 소중한 사람과 가장 가까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간절함이 오히려 오던 행복감을 느끼게 하더군요."

 

"정람 그렇군요. 저도 그이가 다시 깨어났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이번 일을 게기로 가족들이 더욱 끈끈하게 결속되는 게기도 되고요."

"그럴수록 잘 드시고, 잘 주무시고 친구에게 평상시처럼 대해주세요."

"네, 고맙습니다."

 

전화를 끓고 나서 나는 한참 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아우슈비츠 감옥을 여행할 때 읽었던 소설 '운명'(임네 케르테스 작) 속에 나온 말이 떠올랐다.

 

“아우슈비츠의 굴뚝에서조차도 고통들 사이로 잠시 쉬어가는 행복이 있다. 사람들은 모두 내게 가장 끔찍한 일에 대해서만 묻는다. 그래, 난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면 다음엔 강제수용소의 행복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그는 내일 죽을 줄도 모르는 수용소 안에서도 행복을 느끼고 경험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는 임네 케르테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무균병실에서 오직 아내가 다시 살아나기만을 바라며 간호를 했던 시간들이 행복했다면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 때에는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단 한 가지, 사라져가는 생명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도하며 지냈다.

 

명상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어쭙지않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살에 잠기는 척 하는 것은 오히려 사치스런 일일지도 모른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찰나의 순간에 열중을 하는 것이 잡념과 번뇌를 퇴치하는 바른 명상이 아닐까?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는 부처님의 말씀은 참으로 멋진 말씀이다.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러므로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는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크게 경종을 울려주는 말씀이다.

 

나는 친구가 자신의 병고를 잘 견디어 낼 것이라고 믿는다. 방광을 통째로 드러낸 그는 호스를 끼고 소변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어버린 그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현실을 직시하고 그 상황에서 살아나갈 길을 찾을 수밖에…

 

장독대에 눈이 하얗게 쌓여있다. 그러나 눈이 내리는 자연현상을 그 누구도 막을 수는 없다. 그대로 눈을 받아들여야 한다. 병도 내리는 눈처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눈을 감으니 병상에 누워 있는 친구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내일은 서울로 가서 친구와 그의 가족들을 만나야 할 것 같다. 

 

(2012.01.24 친구의 쾌유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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