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수묵화의 환상-연천 주상절리 눈꽃

찰라777 2013. 2. 7. 07:38

맨몸으로 겨울을 나는

'박새'에게 갈채를 보내며...


입춘을 사이에 두고 동장군이 작란을 치고 있다. 입춘을 전날 밤 눈 폭탄이 내렸다. 하루를 쉬는 듯 하더니 다시 폭설이 내린다. 동장군이 주술을 부렸는지 바람마저 고이 잠들어 세상은 침묵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새들의 숨소리도 멎어 버린 듯 적막한 밤, 함박눈만 밤새 펑펑 쏟아져 내린다. 날이 밝아 아침이 돌아 왔는데도 바람과 새들은 늦잠을 자고 있는 모양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움직임을 멈추어 버린 채 오직 눈만 소리 없이 쌓여간다.

 

 

 

 

온 세상이 눈꽃천지다. 매화나무에도, 참나무에도, 소나무에도, 전선줄에도…… 앙상하기만 했던 금굴산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믿을 수 없다. 가지가지마다 피어난 설화는 커다란 만다라를 이루고 있다.

 

 

눈을 들어 주상절리를 바라보니 벽 전체에 눈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설화가 피어나다니 믿을 수가 없다. 문어발, 사슴뿔, 산호, 매화, 벚꽃… 오늘 따라 눈으로 옷을 입은 전선줄도 하나의 예술품이다.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런 날은 집에만 있을 수 없다. 장화를 신고 임진강으로 내려간다. 연이어 내린 눈으로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딱새 두 마리가 눈 내린 가지에 외롭게 앉아 있다. 무얼 생각하는 것일까? 추운 밤에 잠은 제대로 잤을까? 뽕나무 가지 위에도 참새들이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주상절리로 가는 오솔길은 그야말로 눈꽃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벚꽃터널은 저리 가라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꽃터널이 아닐까? 오른 쪽은 벚나무, 왼쪽은 잣나무가 도열하고 있는 오솔길은 눈꽃이 만발한 터널을 이루고 있다.

 

 

 

 

눈꽃에 취해 걷다보니 어느새 임진강 주상절리다. 저런! 하루 밤사이에 풍경이 이렇게 변하다니… 주상절리 적벽에는 설화가 겹겹이 피어 있다. 얼어붙은 강물은 하얀 도화지로 변해있다. 그 누가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단 말인가? 필설로는 표현을 할 수 없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이다.

 

 

강변에 조약돌도 눈 속에 묻혀 겨울잠을 자고 있다. 얼어붙은 강물 속에서는 이따금 쩡~ 쩌엉쩡~ 하며 얼음 밑으로 흘러가는 강물의 공명 소리가 들려온다. 태고의 모습이 이런 모습일까?

 

 

 

 

 

 

 

눈꽃 만발한 성벽을 따라 걸어간다. 아무도 없는 태고의 길이다.  하얀 산호처럼 피어 있는 설화는 바다 속 깊은 심연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동굴입구에 핀 설화는 더욱 아름답다. 하얀 싸리버섯 같기도 하고…

 

 

 

 

 

 

 

태양이 잠시 설화 사이로 솟아오르다가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만다. 이도 동장군의 작란일까? 그러나 나는 해가 뜨는 것을 말리고 싶다. 해가 뜨면 이 아름다운 눈꽃이 이내 지고 말 것이 아닌가.

 

 

하늘로 치솟은 교각도 눈꽃 위에 둥둥 떠 있다. 옥에 티라고 할까? 허지만 오늘따라 교각조차도 아름답게 보인다. 설화가 만발한 눈꽃 터널을 하염없이 걸어간다. 천국이 이렇게 생겼을까?

 

 

 

 

 

 

 

 

 

 

극락세계가 따로 없다. 이곳이 바로 극락이다. 도대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아무도 없는 길, 오늘 따라 짐승의 발자국도 보이지 않는다. 오던 길을 뒤돌아보니 내 발자국만 남아있다. 이 아름다움을 간직하기 위해 햇님도 잠시 뜨는 것을 미루고 있는데 발자국으로 흠집을 내다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발길을 멈출 수가 없다. 점점 더 아름다운 길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휘휘 늘어진 뽕나무 가지가 하얀 도화지로 변한 임진강에 풍경화를 그려준다. 바라보기가 곤혹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그 누가 저렇게 아름다운 산수화를 그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뛰어난 화가라도 평생을 두고 연습을 해도 그리지 못할 명화중의 명화다.

 

 

눈꽃이 만발한 적벽 밑으로 흘러가는 여울이 구슬이 굴러가는 소리를 낸다. 여울은 생명의 젓줄이다. 저 여울 속에 두루미도 쉬어가고 기러기도 목을 축이며 쉬어간다. 그러니 강을 개발한다고 보를 막아서는 안 된다. 여울을 살려야 한다. 오늘 따라 설화 사이를 흘러가는 여울이 더욱 찬란한 생명의 소리를 낸다.   

 

 

 

 

 

 

 

 

 

 

 

얼음덩어리가 여울에 걸려 있다. 얼음 덩어리를 보니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 기후변화로 점점 녹아내리는 빙하는 지구의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바닷물은 불어나고 춥고 더운 것을 예측하기가 어렵게 되어 가고 있다. 가뭄과 홍수가 뒤죽박죽으로 예고 없이 찾아든다. 하나뿐인 지구를 보존해야 하는 노력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하다.

 

 

이윽고 파란 하늘이 설화 사이로 휘장을 두른다. 눈꽃 위에 휘장을 두른 하늘이 더욱 푸르게 보인다. 태양은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을 모양이다. 태양이 떠오르자 눈꽃은 금방 스러지기 시작한다.

 

 

 

 

 

 

 

 

어진 가지가 아치를 이루고 있다. 나뭇가지가 무거운 눈을 이기지 못하고 우지직 무너져 내린다. 태양이 뜨자 눈이 녹으며 여기저기서 스르륵 스르륵 눈이 부러져 내린다. 박새(쇠박새)가 눈이 녹아내리는 가지사이로 날아다니며 무언가 쪼아 먹는다.

 

아아, 눈 속에서 무얼 먹고 있을까? 집도 없고, 은행에 저금해 놓은 돈도 없을 테고, 신발도 신지 않았는데... 저렇게 눈 덮인 가지 사이에서 생존을 하고 있는 박새는 인간보다 얼마나 지혜가 있고 생명력이 있는가! 아마 욕심이 없어서일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꽃을  즐기고만 있는데, 박새는 생존을 위해 서바이벌 게임을 하고 있다. 해가 뜨기 전부터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가지 헤맨 눈꽃 터널에서 나는 무엇을 했는가. 갑자기 딱새가 눈꽃보다 아름답고 거룩하게 보인다.

 

눈 속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는 박새를 보라보며 삶의 지혜를 배운다. 좌절하지 말자. 어떠한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자. 맨몸으로 살아가는 저 검은 박새처럼... 자연에 순응해서 생존하는 박새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