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지글지글 끓다가 팝콘처럼 "퍽!" 피어나요!

찰라777 2013. 4. 10. 09:12

지글지글 끓다가 팝콘처럼

"퍽!" 피어나는 노란 산수유의 유혹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 중국 산둥성에서 사는 처녀가  구례 산동면으로 시집을 올 때 가져왔다는 산수유는 이제 전국에 퍼져있습니다. 실제로 구례군 산동면 계척마을에는 천년 묵은 우리나라 최초의 산수유 시목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 산수유 시목이 있는 산동마을에서 시작한 산수유의 노란 물결이 점점 북상을 하고 있습니다.

 

▲ 산수유 시목 구례 산동면에 있는 산수유 시목

 


산수유는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나무로 개나리나 벚나무보다 훨씬 일찍 꽃을 피웁니다. 이곳 휴전선 인근 우리 집 텃밭에도 산수유 세 그루가 있습니다. 두 그루는 현관 좌측과 우측에 서 있고, 나머지 한 그루는 텃밭 좌측 끝에 있습니다. 지난 3월 31일 이 세 그루의 산수유는 우리 집에 봄을 가장 먼저 알리며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산수유가 피어나자 삭막하기만 했던 우리 집에도 갑자기 성큼 봄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세 그루의 산수유가 노란 색동옷을 입자, 집 주변이 갑자기 환해지며 화사한 봄기운에 젖어 듭니다. 

 

노랗게 피어난 산수유 세그루가 집안 분위기를 확 바꾸어 놓고 있다.

 


꽃들은 어쩌면 원자폭탄보다도 더 큰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핵무기가 아무리 가공할만한 위력이 있다 한들 저렇게 예쁜 산수유를 피어나게 할 수 는 없을 것입니다. 죽음과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핵무기는 도저히 사람을 기쁘게 하거나 웃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니까요.

 

산수유는 자주색의 꽃받침 속에 좁쌀처럼 노란 꽃 밥을 잔뜩 물고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노란 조밥을 작은 덩어리로 여러 개 뭉쳐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노란 산수유 꽃 밥을 바라보면 어릴 적 시골에서 먹던 조밥 생각이 납니다. 따끈따끈한 조밥 덩어리처럼 생긴 산수유를 그냥 한입 깨물어 먹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

 

▲ 산수유 꽃 밥 솥단지 같은 꽃받침 속에 지글지글 끓고 있다가 막 피어나려고 하는 산수유 꽃 밥이 좁쌀처럼 꽉 차 있다. 산수유는 이때가 가장 아름답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산수유 꽃봉오리(아래쪽)가 녹두알만한 크기로 오므리고 있다.

 


지난 4월 2일 봄비 내리는 아침, 좁쌀처럼 생긴 꽃망울이 마치 팝콘처럼 "퍽!"하고 피어났습니다. 가마솥처럼 꽃 밥을 지글지글 끓게 하던 자주색 꽃받침이 "쩍!" 벌어지며, 작은 좁쌀들이 갑자기 콩알처럼 커졌습니다.

 

▲ 산수유 꽃망울 마치 팝콘처럼 "퍽!"하고 피어나는 산수유는 좁쌀처럼 작은 꽃망울이 30여 개나 들어 차 있다.

 


네 개의 꽃받침 속에 갇혀 있던 산수유는 해방이 된 듯 일시에 함성을 지르며 만세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이 힘찬 기운을 그 누가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마치 우산살이 쭉 펴지듯 일시에 솟구쳐 일어나는 꽃대 끝에는 노란 꽃망울이 촘촘히 달려 있습니다.

 

네 개의 꽃받침이 "쩍!" 벌어지며 우산살을 펴듯 일시에 피어나는 산수유들의 합창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이겨낸 녹두알처럼 작은 꽃망울 속에 이처럼 콩알처럼 큰 꽃송이가 무려 30여 개나 들어있다니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꽃들의 세계는 참으로 신비하기만 합니다. 촘촘히 피어난 작은 꽃송이가 탁구공처럼 하나의 둥그런 꽃봉오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산수유 꽃봉오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탁구공을 이루고 있는 작은 꽃망울이 하나하나 벌어지며  또 다른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4개의 꽃잎 속에는 각각 5개의 꽃술이 달려 있습니다. 그 중 가운데 있는 꽃술은 암술이고, 그 암술을 4개의 수술이 감싸고 있습니다. 작은 꽃이지만 산수유는 모든 기관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 산수유 꽃술 4개의 수술이 1개의 암술을 에워싸고 있는 산수유는 모든 기관이 밝은 황금색이다.

 

 

모든 기관이 샛노란 황금색 일색인 산수유는 꽃술을 내밀고 나서부터는 색깔이 점점 엷어지기 시작합니다. 색깔이 엷어지기 시작하면 꽃이 스러질 때가 가까이 온 것입니다. 그렇게 힘차던 노란 우산살이 아래로 점점 축 쳐지며 꽃들이 시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도 노랗던 색깔이 마치 지우개로 지우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꽃이 지고 나면 타원형의 잎들이 하나 둘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꽃이 진 자리에는  붉은 열매가 길쭉하게 열리기 시작합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매 옆이나 가지 끝에는 작은 눈들이 자리를 잡으며 내년 봄에 다시 잉태할 꽃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산수유는 생애를 마감하는 것 같지만 윤회를 하듯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만개를 한 후 점점 엷어지기 시작하는 산수유. 지우개로 지우듯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리에 길쭉하고 붉은 열매가 맺힌다.

 

평화롭게 노래하는 박새 부부와 산수유


오늘 아침에도 박새부부 한 쌍이 산수유나무에 앉아 "쯔빗 쯔빗 쯔빗..."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박새도 노란 산수유를 좋아하는 무척 모양입니다. 박새는 산수유 꽃에 키스라도 하듯 부리를 가까이 대고 있습니다.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대자연의 조화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절묘한 풍경입니다. 남북한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시점에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박새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산수유는 평화롭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 박새와 산수유 산수유의 유혹 앞에 평화롭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박새

 

▲ 박새와 산수유 매일 아침 박새 한 쌍이 산수유나무에 앉아 평화롭게 노래를 불러준다

 

 

"흠흠~ 산수유 아가씨, 샛노란 입술이 너무나 예뻐요!"

"호호호, 우리들도 박새 부부님이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어 즐겁답니다."

 

박새부부와 산수유 아가씨가 조단조단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박새와 산수유는 이렇게 서로 보고, 듣고, 느끼며 사랑의 교감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박새는 이곳 텃새 중에서도 우리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새입니다. 지난 겨울 폭설이 내렸을 때, 나는  눈을 쓸고 박새에게 먹이를 주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박새와 나는 자연히 친해지게 되어서, 내가 사진을 찍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도 크게 놀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산수유가 노랗게 피어나면서부터 나는 매일 아침 박새들이 찾아와 노래를 불러 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어떤 명곡보다도 박새가 들려주는 노래 소리가 청아하고 아름답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자연의 순리대로 한다면 그 어떤 전쟁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햇빛이 눈이 부시게 비추이는 이 아침, 박새와 산수유처럼 이 땅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