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계신 장모님이 몸이 많이 불편하시다는 연락이 왔다. 올해로 87세이신 장모님은 언제부터인가 치매가 와서 점점 치매가 심해지고 있다. 마침 4월 13일이 우리 가문의 시제를 지내는 날이기도 해서 아내와 나는 남도로 떠날 채비를 했다. 아무래도 고향에 가면 최소한 일주일은 걸릴 것 같았다.
"여보, 상추씨를 파종한 저 육모판은 어떻게 하지요?"
"어이쿠, 이를 어쩌지? 삼일마다 물을 줘야하는데… 그냥 두고 갈수는 없으니 서울로 들고 갑시다."
"육모판을 들고 서울로 육모판을 들고 간다고요?"
"어쩔 수 없지 않소. 누가 돌보아 줄 사람도 없고."
지난 4월 2일 뒷산에서 친구와 함께 부엽토를 가져와 상추씨를 심은 육모판에서는 막 돋아 나온 상추 싹들이 고사리 솜털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그냥 두고 가면 저 여린 싹이 필시 아사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어린 생명들을 그냥 죽게 놓아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자동차에 상추 육모판을 조심스럽게 실었다. 연천 동이리를 출발하여 파주 자유로를 지나며 아내가 말했다.
"육모판을 자동차에 싣고 다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거예요."
"바쁜 농사철에 농사꾼이 여러 날 집을 비우는 우리가 잘 못 아니오?"
서울 아이들 집에 도착한 우리는 육모판을 신주 모시 듯 떠받들고 아파트 현관문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경비아저씨가 보더니 신기한 듯 물었다.
"그게 뭔가요?"
"상추를 파종한 육모판이랍니다."
"아파트에서 키우게요?"
"아니요. 시골집에 심을 것인데 집을 여러 날 비우게 되어 모셔왔어요."
"아, 네…."
그는 놀란 듯 눈을 둥그렇게 뜨고 육모판에 돋아난 상추 싹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서울 아파트는 마침 엘리베이터를 교체 중이어서 우리는 옆 동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15층 옥상으로 올라가 옥상 통로를 통해 우리 집 13층으로 내려왔다. 나는 육모판을 엎지르지 않으려고 균형을 잡느라 용을 써야 했다.
"영이야, 아빠가 없는 사이에 이 육모판에 3일에 한 번씩 물을 줘야 한다. 물을 콸콸 주면 안 되고 작은 물뿌리개로 이렇게 살살 뿌려 줘야해. 알겠지?"
영이에게 물을 주는 방법을 일러주고 육모판에 돋아난 어린 싹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내가 없는 동안 잘 자라야해.' 그리고 우리는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떠났다. 상추 싹을 두고 가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저 육모판을 들고 먼 길을 갈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고향에서 며칠 간 지내는 동안에도 영 마음이 걸렸다. 물을 잘 주었는지, 새싹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며칠 후에 집에 돌아와 제일 먼저 육모판을 돌아보았다. 영이가 물을 잘 주어서인지 상추 싹들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씩씩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아마 하루 종일 햇볕이 들어오는 아파트 베란다는 온실효과가 있어서인지 어린 싹들이 훌쩍 나라나 있었다.
숫자를 세어보니 128립이나 된다. 싱싱한 어린 생명들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그새 훌쩍 자라난 새싹들이 그렇게 대견하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야, 너희들 참 대단하고나! 고맙다!' 나는 일일이 새싹들에게 흙을 북돋아주며 물을 주었다. 4월 17일, 우리는 육모판을 자동차에 싣고 연천 동이리로 돌아왔다.
"하마터면 128개의 무고한 생명을 죽일 뻔 했네!"
"육모판을 서울로 들고 가기를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사람이나 식물이나 지극한 보살핌과 사랑이 필요하다. 고래도 칭찬을 하면 춤을 춘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 우리 집에는 사랑을 듬뿍 받은 상추 싹들이 서울 구경을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즐거운 합창을 하며 힘차게 자라나고 있다.
(2013.4.17)
'국내여행 > 임진강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잔디처럼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여인 (0) | 2013.04.20 |
---|---|
아름다운 찻잔 (0) | 2013.04.19 |
[찰라의농사일지]힘겹게 피어나는 블루베리꽃 (0) | 2013.04.10 |
지글지글 끓다가 팝콘처럼 "퍽!" 피어나요! (0) | 2013.04.10 |
식물이 기절을 해? (0) | 2013.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