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텃밭일기

[풀잎여행]해땅물 자연농장 첫날 실습

찰라777 2013. 5. 2. 06:45

<풀잎으로 떠나는 여행>

 

5월 1일부터 5개월간 <해땅물 자연농장>에서 자연농사에 대한 실습을 시작했습니다. 10여년간 해와 땅과 물로만 고집스럽게 농사를 지어온 홍려석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밭을 갈지않고, 비료와 퇴비를 주지않으며, 노양을 사용하지않고, 풀을 뽑지않는 자연농사를 전수 받기로 했습니다. 오늘 그 첫날입니다. 그 첫소감은 잡초와 함께 더불어 농사를 짓는 것인데, 수많은 풀잎으로 떠나는 여행길입니다. 찰라는 <풀잎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앞으로 틈틈히 자연재배농법 실습내용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5월 1일 수요일 맑음

 

찬란한 5월의 아침이다. 잔인한 4월은 가고 드디어 계절의 여왕 5월이 돌아왔다. 5월은 가정의 달이자 축제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부처님 오신 날이 몰려있고, 각종 축제가 우후죽순처럼 열린다.

 

4월은 잔인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날씨, 북한의 전쟁위협, 개성공단 철수 등. 그러나 잔인한 4월은 지나갔다. 5월은 뭔가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 5월은 나에게도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달이다. 오늘부터 <해땅물 자연농장>에서 자연농사를 배우는 날이다.

 

 

 

 

 

자연농사

 

8시 반에 집에서 출발하여 <해딸물>농장으로 갔다. 5월의 햇살이 눈부신 햇살을 받은 임진강에 물비늘을 반짝거린다. <해땅물>농장은 숭의전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구릉 같은 산이 둘러싸인 골자기에 자리 잡고 있다. <해땅물> 농장은 홍려석 선생님이 연천군 미산면 백석리 약 4000여 평의 농장을 삽자루 하나로 일구어 순전히 해와 당과 물로만 9년 째 농사를 짓고 있다. 홍려석 선생님은 벌써 농장에 나와 일을 하고 있었다.

 

"홍 선생님 부족한 저를 제자로 받아주시어 감사합니다. 앞으로 5개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왕초보 농사꾼이거든요."

"나도 농사에 대하여 아는 게 별로 없어요. 앞으로 함께 연구하며 농사를 지어봅시다."

 

홍 선생님은 먼저 자연농사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는 일본 가와구치 씨의 <신비한 밭에 서서>란 책을 교본으로 9년째 시행착오를 거치며 농사를 짓고 있다. 기존의 관행농, 유기농법과는 달리,

 

-밭을 갈지 않고 (무경운 無耕耘),

-화학비료는 물론 퇴비도 사용하지 않으며 (무비료 無肥料),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무농약 無農藥),

-풀을 뽑지 않는 (무제초 無除草) 방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즉, 농작물과 잡초, 벌레가 서로 공생하며 자연의 조화를 이루어 가는 생명 순환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첫째, 땅을 가는 것은 밭의 자연스러운 생명 순환을 인위적으로 파괴하는 것입니다. 기계로 땅을 갈지 않더라도 식물의 뿌리, 미생물 그리고 땅속의 작은 동물들의 활동으로 물리적, 화학적 땅 갈이가 저절로 행해지게 되어 밭이 필요로 하는 배수성과 보수성은 날로 좋아지게 됩니다.

 

둘째, 화학비료는 물론 퇴비를 쓰지 않는 것도 역시 밭의 자연스러운 순환을 위한 것입니다. 밭에서 나지 않는 것은 그 어떠한 것도, 밭에 넣을 경우 밭의 자연스러운 생명 순환은 깨지게 됩니다. 작물이 필요로 하는 최적의 영양분은 밭이 스스로 만들어 갑니다.

 

셋째, 농약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은, 자연은 항상 완전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병충해가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비료나 퇴비, 미생물 등을 인위적으로 투여할 때 밭 본연의 순환이 깨져 작물은 병약해지고 병충해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풀을 뽑지 않는 것은 그들의 중대한 사명과 역할 때문입니다. 풀로 인하여 밭의 영원한 생명은 유지됩니다. 아니 지구전체의 생명도 그럴 것입니다. 작물에 있어 풀은 적절한 습도와 빛 가림, 때로는 온도까지도 유지해 작물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또한 풀은 많은 미생물과 벌레에게 먹이를 제공하여 작물에 끼칠 피해도 줄입니다. 풀을 뽑아내지 않습니다. 다만 작물이 풀에 의해 당하지 않도록 때때로 잘라줌으로써 작물과의 공생을 유지합니다.

 

자연은 인간 이전에 이미 완전합니다. 풀밭 가운데에 작물이 성장할 자리를 마련하여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옮겨다 심고, 풀에 의해 당하지 않도록 때때로 풀을 제어하면서 밭의 자연스러운 생명의 순환에 의해 작물이 자라도록 도와주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도록 환경을 조성하여 재배하는 것입니다.

 

가와구치씨와 다른 점은 경우에 다라 예초기를 쓰고, 육모를 하여 파종을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가와구치씨는 약 300여 평 정도의 농사를 짓는데 비해 저는 4000여평을 짓기 때문에 사과 밭이나 과실농장은 경우에 따라 예초기를 쓰지 않를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곳 연천은 일본의 가와구치 씨 농장과는 기후가 훨씬 추운 지역이어서 파종을 하는 것만으로는 농작물을 기르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놓고 추위에 약한 작물은 불가피하게 육모를 하여 정식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벼나, 콩 등 파종이 가능한 작물은 씨를 직접 파종하여 재배를 하고 있습니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농사철학도 확고했다. 이곳 연천에 오기 전에는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40 중반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재일먼저 시작한 것이 텃밭 농사였다고 한다. 텃밭 농사를 지으며 가와구치의 <산비한 밭에 서서>란 책을 읽게 되었고, 자연농사를 지을 생각이 들어 농지를 구하던 중 친구가 현재의 땅을 빌려주어 9년 째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처음 3년까지는 전혀 수확을 얻지 못했으나 4년째부터 조금씩 수확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과연 올해 농사를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항상 불안하지만 땅에 믿음을 가지고 농사를 짓고 있으나, 땅이 차차 응답을 하며 조금씩 수확을 돌려주는 고마움을 날마다 느끼고 있어 마음은 회사생활을 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풀 베어내기

상추 잎을 자르다니!

 

 

오전에는 홍 선생님이 자연농사를 시작한 동기와 자연농사에 대한 개요를 설명 듣고 풀을 베는 실습을 했다. 홍 선생님은 부추를 베는 칼로 오크 상추 작물 사이에 있는 풀을 조심스럽게 베어내고, 호미로 흙을 북돋아주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풀을 전부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상추와 상추 사이에 있는 풀만 베어내고 이랑의 풀은 남겨둔다고 했다. 풀을 베어서 땅을 가려 보습을 하고, 그 풀 자체가 거름이 된다는 것. 그리고 이랑 사이에 남겨둔 풀은 그늘과 보습작용을 해준다는 것이다.

 

엉덩이 깔 게에 앉아 칼을 들고 첫 풀베기를 하는데 너무나 조심스러웠다. 상추 하나 사이에 잡초가 30여 가지는 넘을 것 같았다. 그 잡초 사이에서 상추가 자라고 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쑥, 쇠뜨기, 크로버, 냉이, 개망초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잡초가 상추와 함께 자라고 있다. 그 풀을 하나하나 잡아서 중간을 베어내는 작업인데 행여 상추가 베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개망초가 무성하게 자라 상추를 덮고 있어서 그 개망초 잎을 베어내다가 나는 그만 상추 잎을 두 개나 베어내고 말았다. 여린 상추 잎 두 장이 풀잎 위에 뒹굴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상추야 미안하다."

 

도대체 이렇게 어려운 농법을 홍 선생은 10년이나 짓고 있다니… 참으로 대다한 인내와 끈기다. 자연농사를 배운다고 행여 그의 농사에 내가 방해는 되지 않을까? 반시간을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도 오금이 재리고 허리가 아팠다. 그런데 홍 선생님은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있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고 한다. 처음 몇 년은 힘들었으나 습관이 되고, 집중이 되고, 재미를 붙이다 보니 피곤한 줄 모르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가 괴물처럼 생각이 되었다. 어찌 하루 종일 저 큰 덩치를 쪼그리고 앉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어떤 알 수 없는 힘이다. 아마 자연의 풀들이 그에게 알 수 없는 힘과 기를 불어 넣어 주지 않을까? 나는 과연 이 풀베기를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까? 상추를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잡초를 베어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엄청난 수행이다. 상추를 다치지 않고 잡초를 하나씩 잡아 베어내야 한다. 상추를 한포기를 둘러싸고 있는 잡초를 베어 내는 데 아마 10분은 넘어 걸리는 것 같다.

 

'귀농은 잡초왕의 전쟁이다!'란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자연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이 아니라 잡초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잡초가 상추에게 거름이 되어주고, 네트워크를 형성해 준다고 한다. 땅을 숨 쉬게 해주고 뿌리를 통해 다른 곳에서 양분을 전이해 준다는 것이다. 물론 상추를 먹을 양분을 빨아 먹기도 하지만 상추와 더불어 공존을 함으로서 서로 건강하게 생존을 한다는 것이다.

 

 

 

 

"힘드시지요?"

"네, 힘이 들기도 하지만 너무 어렵군요. 잡초를 벤다는 것이 상추 잎 두 장을 잘라내고 말았어요."

"그건 저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아마 차차 익숙해 질 겁니다. 그럴 땐 상추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십시오. 잡초에게도 고맙다고 하시고요. 모두가 고마워요."

"그렇지 않아도 상추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했습니다. 하하."

오후 6시가 되어 해땅물 농장을 나왔다. 새들이 노래를 부르고 고란이가 산책을 하는 해땅물 농장은 평화롭기만 하다. 하루 작업을 했는데 팔다리가 저리고 아팠다. 과연 나는 이 자연농법을 5개월 동안이나 견뎌낼 수 있을까? 그러나 시작이 반이다. 수행의 장으로 생각하고 천천히 적응을 해보자.

 

풀잎으로 떠나는 여행!

이는 나에게 또 하나의 여행이다. 풀잎으로 떠나는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