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부처님 오신 날이다. 아침 일찍 수유리 향운사에 들려 법회 참석을 하고 점심공양을 한 후 바로 동이리로 왔다. 친구 응규가 미리 집에 와 있었다. 응규네 누님과 동생들이 함께 방문을 했다. 응규 누님과 동생들은 실로 오랜만에 만나보는 고향 사람들이다. 반갑고도 감사했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닌가!
우리는 모두 함께 두포리 농장으로 갔다. 오갈피나무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미나리도 캐고 오갈피나무 잎도 따고 쑥도 캘 겸 모두 함께 가가로 했다. 동이리에서 두포리까지는 약 30km 거리로 꽤 멀다.
농장에 도착하니 역시 잡초들이 오갈피나무를 에워싸고 있다. 작년에 잡초를 뽑는 시기를 놓쳐 엄청 고생을 한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잡초가 크게 자라나기 전에 한 번 뽑아주어야 한다.
아내와 응규 누님, 동생들은 미나리를 캐거나 오가피 잎을 따고 나와 응규는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다행히 오갈피나무는 모두 싱싱하게 자라나고 나무 독특한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
별꽃, 봄맞이 꽃 등 풀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어떤 오갈피나무는 별꽃이 둘러싸여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연의 조화는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그 별꽃을 차마 베어낼 수가 없어 그대로 두었다.
작년 3월 16일 날 언 땅을 파서 심은 1000주나 되는 오갈피나무다. 돌이 너무 많아 쟁기까지 부러지는 수남을 겪었다. 우리는 자갈밭을 일구어 비닐을 씌우고 구덩이를 500개나 팠다. 그리고 오갈피나무 1000주를 심었다. 그리고 양동이로 물을 길러다 정성스럽게 부려 주었다. 이 작업을 하는데 무려 4일이나 걸렸다. 친구들이 합세를 하여 돌밭을 일구고 함께 나무를 심어 주었다. 얼마나 고마운 친구들인가!
<2012년 3월 16일 언 당에 오갈피를 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오갈피나무는 작년에 극심한 가뭄과 잡초 때문에 위기를 맞아야 했다. 104년 만에 찾아온 가뭄은 오갈피나무의 생명을 위협했다. 그리고 가뭄 때문에 땅이 워낙 굳어 잡초를 뽑는 시기를 놓치고, 8월에 잡초를 뽑아야 했는데, 그 때는 정글로 변해버려 정말로 난감했다. 정글 속에 묻힌 오갈피나무는 보이지를 않았고 생사조차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2012년 8월 21일 잡초속에 묻히 오갈피나무 밭>
▲잡초를 제거한 후
인부 2명을 사서 3일 동안 정글 속에서 오갈피나무를 찾아내며 우거진 잡초를 베어내야 했다. 잡초에 묻힌 오갈피나무는 생명력을 잃고 시들시들 했다. 금방 죽을 것만 같았다. 무더위 속에 무성한 잡초를 뽑고 베어내는 일은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
모든 일은 정성을 들인 만큼 결과를 얻게 된다. 오갈피나무는 시련ㅇ늘 딛고 90% 이상 살아났다. 극심한 가뭄을 기여내고, 잡초들의 시달림도 견뎌내며 꿋꿋하게 자라나 준 오갈피나무에게 경의 표하고 싶다.
역설적이지만 잡초 때문에 오갈피나무 나무가 살아난 것은 아닐까? 잡초는 가뭄을 타지 않고 무성하게 자라난다. 그 잡초에 이슬이 내리고, 그 잡초에 내린 이슬이 오갈피나무를 오랫동안 적셔 주며 습기를 보존했을 것이다. 잡초의 뿌리가 영양분을 당에서 흡수하여 오갈피나무에게 전달해주지 않았을까?
<잡초는 토양의 수호자이다>란 책을 쓴 미국의 식물학자 조지프 코캐너에 의하면 잡초는 작물이 영양분을 빨아들이도록 도우며 영양 흡수지역을 넓혀준다고 한다. 그는 토양을 공부하던 대학 시절 한 들판에서 우물을 파다가 마침내 잡초의 능력을 확인하였다.
두께가 60cm가량 되는 표층에서 살이 오른 지렁이와 곤충을 포함한 토양의 생물이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토양에서 그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바로 하부 토양층 깊은 곳까지 내리 뻗은 잡초의 뿌리였다. 깊이 90cm 정도 되는 치밀하고 딱딱한 하층토까지 잡초의 뿌리가 뚫고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원래 수수 작물이 무성한 비옥한 목초지였던 그 들판은 제초작업 탓에 잡초라고는 비름과 까마중, 도꼬마리 세 종류만이 드문드문 나 있었다. 이 세 잡초의 곁뿌리가 그 들판 밑 하층토까지 뻗어 있었고, 그 뿌리를 따라 수수 작물도 함께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흥미로운 건 잡초 뿌리가 없는 곳에는 수수의 뿌리도 없다는 점이다. 잡초들은 표층토양에 많은 영양분이 있었는데도 하층까지 뿌리를 깊이 뻗어내어, 작물이 표층토양에서 영양분을 충분히 빨아들이도록 도우며 작물의 영양 흡수지역을 넓혀주고 있었던 것이다.
잡초! 잡초는 토양의 수호자다! 금년에는 5월 17일부터 이틀간 응규와 함께 그 잡초를 뽑아냈다. 오갈피나무 바로 곁에 난 잡초만 뽑아주고 나머지는 예초기로 나중에 베어내기로 했다. 뽑은 잡초는 오갈피나무에 바짝 붙여 놓아주어 거름이 되도록 했다.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는 오갈피나무를 보니 힘이 났다.
미나리의 정령이 돌미나리를 선물했을까?
오갈피나무 밭에는 약 150여 평의 여유가 있다. 작년에는 그 밭에 들깨 심었는데 가뭄 때문에 모두 타 죽고 말았다. 그 밭은 습기가 많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워낙 가뭄이 극심하지 사막처럼 마르고 말았던 것.
나는 기 밭에 돌미나리를 심고 싶었다. 그래서 작년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더니 대전에서 오곰님이 돌미나리 한 상자를 보내주었고, 구례 혜경이 엄마가 한 상자를 보내 주었다. 그 귀한 돌미나리를 작년 4월 9일 날 가장 습기가 많은 고랑에 심어 놓았다.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잡초를 뽑아내며 돌아보니 고랑에는 돌미나리가 여기저기 돋아나 있지 않은가!
<2012년 4월 9일 돌미나리를 심으며>
"정말 알 수가 없네. 이렇게 돌미나리가 많이 돋아나 있다니!"
"아마도 미나리의 정령이 우리들의 정성을 알아주어 선물을 보내 준 것일 거야."
"그래도 나는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어. 이렇게 많이 번져 있다니."
"착한 자네의 심성을 알고, 약한 간을 보호하라고 미나리 신이 보내 준거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믿을 수가 없군."
"하여간 많이 캐기가 하시게."
응규와 나는 기쁜 마음으로 돌미나리를 캐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응규와 나는 천성적으로 간장이 약하다. 정말 그런 우리에게 미나리의 정령이 우리들에게 간에 좋은 돌미나리를 보내 준 것일까?
뒤늦게 응규 딸 가족이 귀여운 손자 함께 두포리 농장을 찾아왔다. 응규 손자는 엄마한테 무얼 봅느냐고 물었다.
"나쁜 잡초를 뽑는 거란다."
"그럼 나도 나쁜 놈들을 뽑아낼거야."
손자는 호미를 들고 잡초를 "나쁜 놈 썩 물러가라!" 하면서 서투른 호미질을 하는 바람에 모두가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미나리를 캐고, 잡초를 뽑으며, 오갈피나무 잎을 따는 풍경이 평화롭게만 보였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바로 이런 평화로운 풍경이 행복이아니겠는가?
잡초를 뽑는 일을 마친 우리는 모두 두포리 이장댁인 <여울>이라는 매운탕 집에 가서 매운탕으로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행복은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시련과 고통 속에 행복은 찾아온다. 시련과 고통을 겪으며 이겨낸 자 만이 참 행복을 맛볼 수 있다. 가뭄과 잡초로부터 위기의 순간을 이겨내고 싱싱하게 자라나는 오갈피나무처럼...
정말 길고 행복한 하루였다. 아직가지 오갈피나무 향기가 여기저기 묻어있다. 나는 오갈피나무 향기 속에서 곤한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2013.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