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애써 키운 상추, 고라니에게 몽땅 진상했어요!

찰라777 2013. 5. 21. 06:44

고라니들의 천국 DMZ, 그러나 고라니 피해는 생각보다 크다

 

 

 

아침에 일어나 상추 밭에 가보니, 저런! 상추밭이 쑥밭으로 변해있군요. 애써 키운 상추를 텃밭주인이 시식을 하기도 전에 고라니에게 전부 진상을 하여버렸네요. 어제 몇 그루를 뜯어먹은 흔적을 발견하여 토기인형을 보초로 세워 놓았었는데 아무 소용이 없군요. 아마 토끼 인형이 보초는 안서고 잠만 쿨쿨 잤나 봅니다.

 

 

▲ 애써 키운 상추를 고라니가 몽땅 식사를 해버렸다.

 

 

▲ 보초로 세워둔 토끼인형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작년에는 땅콩 밭에 토끼인형을 세워 두었더니 너구리로부터 땅콩을 보호하는 효과를 톡톡히 보았었는데, 그 토끼인형을 비웃기라도 하듯 고라니는 밤새 상추 잎을 칼로 도려내듯 맛있게 식사를 하여버렸군요.

 

청상추, 적치마상추, 비타민상추, 브로콜리까지 몽땅 싹쓸이를 해 버렸네요. 그나마 다행히 향이 진한 신선초, 겨자상추, 부케상추 등은 그대로 남아있어 위안을 삼을 수밖에.... 어떻게 그 맛을 알고 기가 막히게 골라서 먹었을까? 아마 고라니는 후각과 미각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 마치 칼로 도려 낸 듯 뿌리 근처까지 뜯어 먹어버린 상추

 

 

작년까지만 해도 이 상추밭에는 고라니가 전혀 손을 타지 않았었습니다. 이웃집은 안마당까지 고라니가 출입을 하며 상추 등 채소를 싹쓸이 하여버렸다며 울상을 짓곤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누군가가 우리 집은 특별히 보호해 주는가 보다 하고 안도의 숨을 쉬곤 했습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우리 집도 성역이 아니군요. 이처럼 무참하게 고라니에 밟히다니…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이곳에 이사를 오기 오래전부터 이 땅은 고라니들의 영역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애써 키운 상추를 고라니들이 좀 먹었다고 억울해 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 귀엽게만 보이는 고라니. 그러나 고라니 피해는 의외로 크다

 

이곳 휴전선 인근에 있는 연천은 고라니들의 천국이나 다름없습니다. 임진강변은 물론 밭두렁이나 논두렁, 도로, 산에서도 고라니를 흔히 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고라니는 전 세계에서 중국 일부지역과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는 종으로 생물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야생동물입니다.

 

중국에서는 고라니의 개체수가 급감하여 멸종위기동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고,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도 고라니가 멸종될 확률이 높은 종으로 간주하여 취약 종으로 고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고라니는 지구상에서 매우 귀한 존재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고라니를 수렵 동물로 지정하여 사냥이 허용되고 있습니다.

 

 

▲ 상추밭에 망사를 둘러쳤다.

 

허지만 계속해서 고라니에게 상추를 진상을 할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고라니들이 어느 쪽으로 들어올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 집은 동쪽, 서쪽은 울타리가 둘러져있고, 북쪽은 높은 언덕이라 고라니가 내려올 수가 없습니다. 의심이 되는 곳은 남쪽의 낮은 언덕과 우측 뒤뜰에서 산으로 통하는 곳에 일부 울타리가 없습니다.

 

우선 상추밭 4면에 망사를 빙 둘러치고, 뒤뜰에서 산으로 통하는 통로에 망사를 쳐서 고라니가 다님직한 길을 차단을 하기로 했습니다. 남쪽 언덕은 너무 길어서 망사를 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므로 일단 보류를 하기로 했습니다.

 

▲ 뒷산으로 통하는 통로를 망사를 쳐서 차단을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대로 하루 종일 망사를 치는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과연 오늘 저녁에 고라니가 와서 이 망사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아마 크게 실망을 하거나, 아니면 자기 영역을 침범한 나를 속으로 욕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도 먹고 살아야 하니 어쩔 수가 없네요.

 

"에엥~ 내 땅에 함부로 망사를 치다니, 무슨 권리로 그럴 수가 있지요?"

"고라니야, 미안하지만 양해를 해다오. 우리도 좀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니?"

 

봄에는 텃밭의 상추 말고 산과 들에도 먹을 만한 식물들이 많을 텐데, 상추를 뜯어 먹은 걸 보면 아마 고라니도 상추가 맛이 있는 모양입니다. 과연 내일 아침은 상추들이 무사 할지 몹시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