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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첫 마음 그대로 인 지리산

찰라777 2013. 9. 4. 06:50

 

언제나 첫 마음 그대로 인 지리산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차 한 잔의 선율…

 

 

 

지리산! 듣기만 해도 그냥 마음이 힐링이 되는 것 같은 산입니다. 3개도(전남, 전북, 경남), 5개 군(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에 방대하고 장엄하게 뻗어있는 지리산은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민족적으로 숭앙을 받아온 영산입니다. 화엄사 입구에는 언제부터인지 <민족의 영산 지리산 문>이란 새로운 문이 들어 서 있습니다.

 

 

 

구례에 도착하는 순간 할머니 지리산의 품안에 안기는 듯 포근한 마음이 듭니다. 지리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예의 갖추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아늑하게 보듬어 주고 있습니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어머니의 젖줄 섬진강이 운치를 한껏 더해줍니다.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 골골이 깊은 사연을 간직하고 졸졸졸 흘러내리는 냇물은 세태에 찌든 사람들의 마음을 말끔히 씻어줍니다. 특히 화엄골은 골이 넓고 웅장하여 골짜기에 들어서는 순간 선인의 세계에 들어 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

 

 

 

 

 

 

 

미타암에는 초가지붕은 얹은 차방이 하나 있습니다. 나무로 지은 집에 억새로 지붕을 덮은 작은 차방이 지리산과 참으로 잘 어울리는 풍경입니다. 사방이 시원하게 터져 있어 초록의 숲이 그대로 들어옵니다.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차 한 잔을 마시다보면 참으로 <차 한 잔의 선율>이 흘러들어 모든 시름을 잊어버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사람들은 본심 즉, 양심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양심이 부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양심은 따로 어딘가에 묶어두고 양심과는 영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속고 속이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양심은 본래 하나인데 그때그때 수많은 거짓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겁니다. 그게 문제지요.”

 

 

차방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듣는 스님의 조용한 말씀은 그대로 청량제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내용이지만 지리산의 품안에 들어앉아 차 한 잔의 선율에 물소리 바람소리 따라 가만가만 울려오는 스님의 말씀은 저절로 심금을 울려줍니다.

 

 

차방에는 선풍기 하나, 스님을 닮은 돌부처 하나, 그리고 불심(佛(불)心(심))이라는 족자 하나가 살아서 꿈틀거리듯 놓여 있습니다. 담백하고 심플한 방안의 분위기가 저절로 마음을 내려놓게 줍니다. 이렇듯 산사에서 선심이 깊은 스님 앞에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은 여러 말이 필요 없는 것 같습니다. 차를 마시는 마음이 곧 수행자의 마음이 되어가니까요.

 

마침 스님의 상자 한분이 하안거를 끝내고 돌아와 있었습니다. 상자는 아침 일찍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마당을 빗자루로 쓸어냈습니다. 그 모습이 마음을 쓸어내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도끼로 장작을 팼습니다. 말없이 행동으로 움직이는 상자스님의 모습은 수행의 자세 그대로입니다. 마당에는 붉은 고추가 햇볕을 받아 잘 말라가고 있습니다.

 

차를 마신 다음 우리는 산책에 나섰습니다. 하늘을 가리는 수목이 우거진 길에는 물소리, 바람 소리 뿐입니다. 화엄사에서 연기암에 이르는 약 3km의 산책로는 참으로 걷기에 좋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치유가 되는 그런 길입니다. 문득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란 시가 떠오릅니다.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골짜기에 흐르는 골골골 흐르는 냇물 곁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해봅니다. 커다란 바위 위에 누군가 작은 돌을 세워 놓고 있습니다. 나도 작은 돌 하나를 주어 세워 봅니다. 시인의 노래처럼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으로 상처 난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산에 살게되면 산만 볼 뿐 반드시 도를 잃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나는 산에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출가 수행자가 아니라도 도를 얻기 위해서는 천리 만리라도 스승을 찾아가 도를 물어야 하며, 선지식을 가까이 하여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산만 지키는 것은 산귀신이 될뿐이겠지요. 그러므로 먼저 해야 할 일은 행각이요, 산에 거처하는 것은 나중 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지만 세속에 사는 중생은 수시로 산에 들어가 선지식을 친견하고, 때문지 않는 맑은 도를 물어야 그나마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놓지않는 일이 될 것입니다.

 

 

 

 

(2013. 8. 27 지리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