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한밤중에 만난 무시무시한 지네부부... 알고보면 이로운 동물?

찰라777 2013. 11. 2. 05:36

한밤중에 만난 지네부부 어찌할까?

 

 

파충류 중에서 내가 제일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것이 지네다. 그런데... 자연과 함께 살다보면 피할 수 없는 파충류가 또한 지네다.  남이 보기에 시골에서 낭만이지만 낭만은 그 댓가를 톡톡히 치루어야 한다.

 

한 밤중에 일어난 지네 소동도 그 중에 하나이다. 이층 다락방에서 청탁받은 원고를 쓰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기 위해 거실로 내려왔다. 마지막 층계를 내려서는데 발밑에 무언가 차갑고 섬뜩한 게 밟혔다. 밟힌 채로 꿈틀~ 하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혹시 지네가 아닐까?"

   

순간 발을 재빨리 띠었으나 오른쪽 가운데 발가락에 따끔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아차, 물렸구나!"

   

급히 전등을 켜고 바닥을 보니 엄청나게 큰 지네가 기어가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 온 지네 중에서 가장 큰 지네다. "저걸 그냥 살려두면 큰일인데. 만약에 면역이 약한 아내를 문다면 심각한 문제가 생기겠어." 아내는 장기이식으로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기 있기 때문에 지네에 물리면 치명상을 입게 된다.

   

지네가 기어가는 속도는 의외로 빠르다. 나는 재빨리 파리채를 들고 잽사게 기어가는 지네를 내리쳤다. 그러나 내리칠려는 순간 지네는 거실 장롱 밑으로 기어들어가고 말았다. "어떻게 하지?" 순간 나는 에프킬러 모기약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분사용 모기약을 찾아 들고 장롱 밑 틈새 여기저기에 살포 했다.

   

그래도 지네는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낑낑대며 장롱을 천천히 밀었더니 녀석이 그 밑에 타원형으로 똬리를 틀고 있지 않은가? 나는 다시 파리채로 지네를 내리쳤다. 파리채의 공격을 받은 지네는 다시 빠르게 기어갔다. 그러나 아까보다는 속도가 느리다. 아마 모기약에 마취가 된 모양이다. 마침내 세 번째 파리채의 공격을 받은 지네는 그 자리에 늘어지고 말았다.

   

집게를 찾아 지내를 집어내어 신문지에 돌돌 말아 넣고 있는데 아내가 방에서 나오며 웬 소동이냐고 했다. 마침 해외에서 방문한 친구 S도 이층에서 잠을 자다고 쿵쿵 거리는 소동 소리를 듣고 눈을 비비며 내려왔다.

  

 

▲ 한밤중에 소동을 벌렸던 지네 부부 . 15~20cm는 될듯 큰 지네다. 저 큰 지네에게 발가락을 물리고 말았다.

 

 

"한 밤 중에 뭔 일인가?"

 

"휴~ 진땀이 나는군. 이거 보게, 지네야."

 

"우와~ 엄청 크네!"

 

"그러게 말이야."

 

"에그그! 여보 한 마리가 더 있을 거예요. 지네는 꼭 부부끼리 다닌대요. 잘 찾아봐요."

 

"글쎄……"

  

우리는 다른 지네가 없는지 거실 이곳저곳을 빗자루와 파리채로 두들겨 보았다.

 

"악! 여기 지네… 여보 빨리 와 봐요!"

   

작은 방으로 들어갔던 아내가 기겁을 하며 문을 열고 튀어나왔다. 뛰어 가보니 정말 커다란 지네가 빠른 속도로 기어가고 있었다. 파리채를 내려쳤지만 지네는 이미 장롱 속으로 재빨리 기어들어가 버렸다. 작은 방의 장롱은 너무 무거워서 옮길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장롱 틈새로 모기약을 마구 살포를 했다.

   

그리고 장롱 틈새에 파리채를 넣어 이리저리 움직이며 소리를 냈다. 그렇게 한 5분 동안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지네가 장롱 속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오질 않겠는가! 내가 다시 파리채로 지네에게 일격을 가하자 지네가 정통으로 맞았는지 꿈틀 하며 오그라들고 말았다.

   

 "여보 물리지는 않았어요?"

 "여기 오른 발가락을 물렸어."

 "그럼 어떡해요. 저렇게 지네가 크니 독도 많을 텐데."

 "계란을 하나 먹어야겠어."

  

나는 아내가 냉장고에서 꺼내준 날계란을 깨서 먹었다. 그리고 계란과 소금을 섞어서 물린 발가락에 발랐다. 지네와 닭은 서로 천적지간이다. 지리산에 살 때에도 지네에게 몇 번 물린 적이 있어 이 방법을 썼더니 크게 부어오르지는 않고 하루가 지나자 부기가 빠졌다.

 

"저 지네들은 정말 부부지간일까?"

"글쎄 말이야. 이걸 어떻게 하지?"

"뭘 해요 빨리 버리지 않고."

"그거… 소주에 담가 놓으면 허리 아픈데 약이 된다던데."

"그래? 그럼 친구 P가 허리가 아프다던데. 소주에 담가둘까?"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

  

빨리 버리라고 재촉을 하는 아내의 닦달을 무시를 하고 소주병을 찾아 지네 부부를 넣어두었다. 한밤중에 소동은 끝나고 다시 각자 침실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런데 어쩐지 잠이 잘 오질 않았다.

  

쌍계사 불일암 노장스님께서는 지네를 살려주라 하는데...

 

발가락에 콕콕 쑤시는 통증이 아프기도 하지만, 본의 아니게 무고한 지네 부부를 살생을 하고 만 것이 아닌가. 내가 밟지만 않았더라도, 아니 지네가 그 순간에 밟히지만 않았더라도 서로가 무탈하게 지났을 텐데. 저 지네와 나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 쌍계사 불일암 노장스님께서 빨래를 말리고 있었다.

 

 

이런 저런 잡념에 젖어 있다가 나는 문득 지리산 쌍계사 불일암에서 만났던 노장스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2년 전 여름 지리산자락에 살 때에 불일폭포 촬영을 간적이 있었다. 마침 장마철이라 불일폭포는 엄청나게 물이 쏟아져 내렸다. 폭포를 촬영하고 불일암으로 올라오다가 홀로 빨래를 널고 있는 노장스님을 만났다. 스님에게 합장을 했더니 스님은 차나 한잔 마시고 가라고 했다.

  

쌍계사에서 환학대를 지나 1시간 정도 가면 불일평전이 나오고 그곳에서 10여분을 올라가면 불일폭포가 있는 불일암에 다다른다. 신라말 진감국사가 창건했고, 고려 후기 불일(佛日) 보조국사가 수도를 한 영지(靈地)중의 영지이다.

 

 

▲ 노장스님을 만났던 지리산 쌍계사 불일암에서 내려다 본 풍경. 청학봉(좌)과 백학봉(우)이 에워싸고 멀리 백운산이 보인다

 

차방에 들어가 앉으니 좌측으로는 청학봉이 우측으로는 백학봉이 한눈에 들어오고, 섬진강 건너 백운산이 정면으로 보였다. 기가 막힌 경치였다. 스님이 앉아계신 벽에는 용호(龍虎)라는 글씨가 살아 움직이는 듯 꿈틀대고 있었다.

 

 

▲불일폭포 호룡대를 쓴 <용호>

 

 

 

▲ 지리산 불일폭포 높이 60m로 그 안에 호룡대가 있다.

 

 

"저기 불일폭포 밑에는 호룡대라는 터가 절벽 속에 있어. 옛날 도인들은 그 호룡대에서 도를 닦았지."

 

"아, 그렇군요. 그런데 스님, 공양주 보살도 없이 혼자 계세요?"

 

"이런 외진 곳에 누가 와서 밥 지어주고 빨래를 해주겠나. 그냥 짐승들과 벌레들이랑 함께 살고 있지."

 

"스님, 지네는 없나요?"

 

"왜 없겠어. 툭하면 지네에게 물리는 걸."

 

"저도 몇 번 물린 적이 있는데요. 처음에는 물리고 나서 죽였는데. 지금은 죽일까 말까 망설여져요."

 

"죽이지 말게나. 지네에게 물린다고 해서 사람이 죽지는 않아. 오히려 약이 되는 수도 있거든. 그러니 지네를 보가들랑 집어서 밖으로 던져주게. 지네에게도 다 생각이 있어. 자네가 살려준 지네가 언젠가는 곤궁에 빠진 자네를 도와줄지도 모르는 일이거든."

  

그러면서 스님께서는 개미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 가난한 농부가 폭우에 개미집과 함께 떠내려가는 개미들을 구해주었어. 그 일이 있은 후 그 농부의 곳간에는 자고 일어나면 쌀이 엄청나게 쌓여있었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관가의 곳간에는 쌀이 점점 줄어드는 거여.

 

 고을 원님이 이 소문을 듣고 그 농부를 불러 문초를 해보니 농부로부터 개미들을 살려 주었는데 그 개미들이 쌀을 물고 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 그래서 그날 밤 원님은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농부의 곳간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곳간에서 쌀을 물고 온 개미들이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었지. 개미들이 생명의 은인에게 은혜를 갚고 있었던 게야. 그러니 미물이라고 함부로 죽이지 말게."

 

▲ 불일암 차방

 

 

그러면서 스님은 미물이라도 사람이 건드리지 않으면 결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스님의 말씀이 맞다. 지네도 건드리지 않으면 이유없이 물지않는다. 사실 저 지네도 내가 밟지 않았더라면 내 발가락을 물지 않았을 것이다.

 

스님의 말씀을 들은 이후로 지네가 없는지 옷이나 이불도 툭툭 털어서 개거나 입고, 실내화를 신고 다닌다. 신발이나 장화를 신을 때에도 거꾸로 숙여서 턴 다음 신는다. 지네를 보면 집게로 집어서 산이나 들에 던져 주기도 했다.

 

사실 지네는 거미나 굼벵이 등 곤충이나 해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동물이다. 그런데 나는 지네 부부까지 찾아서 죽이고, 거기다가 허리 아픈데 약을 한다고 소주에 담가 놓기까지 했으니 지네의 영혼이 나를 보고 무어라고 할까? 이번 가을이 다 가기전에 지리산 불일암을에 들려 노장스님게 고행성사라도 해햐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