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서울을 열일곱 번이나 왕복 할 수 있는데...

찰라777 2013. 11. 5. 06:56

“미리 전철 시간을 체크하고 왔어야 하는데…” 아내는 애석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열차시간표를 바라본다. 시간표를 보니 다음 열차는 9시 4분에 있다. 30분을 역에서 기다려야 한다.

 

 

 ▲등산객으로 붐비는 소요산역

 

 

 

 

소요산역에서 서울로 가는 전차는 1시간에 두 번 정도 있다. 그러니 전차를 한 번 놓치면 30분 이상을 역에서 기다려야한다. 자동차를 몰고 편하게 서울에 갈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사는 곳에서 서울 강남까지는 무려 140km가 넘는 거리다. 왕복거리가 300km나 된다. 승용차로 가면 편하기도 하고 시간도 단축된다.

 

그런데 승용차를 몰고 가면 기름 값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내차는 10년이 넘은 낡은 차라 1리터당 마일리지가 10km 정도 밖에 안된다. 경유는 1리터에 1700원 정도하니 이곳 연천에서 서울까지 왕복하려면 약 60리터의 기름이 소요되어 기름 값이 무려 10만원(60리터×@1700)이나 들어간다.

 

그러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서울 봉천동 아이들이 있는 우리 집까지 왕복 5400원밖에 들어가지 않는다. 교통비를 구체적으로 계산해 보면, 동이리-전곡 버스 1번, 전곡-소요산역 버스 1번, 소요산역-노량진역 전철 1번, 노량진역-봉천동 버스 1번 등 네 번을 갈아타게 된다. 이를 환승요금으로 계산하면 편도 2700원이 소요된다. 그러니 환승제도는 참 좋은 제도라는 생각이 든다.

 

이 계산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노량진에서 우리 집에 자주 다니는 내 친구 P가 정확히 계산해낸 가격이다. 그러나 갈아타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약 4시간 정도 걸린다. 이 시간이면 서울-목포도 갈 수 있는 시간이다.

 

어쨌든 승용차를 이용하면 10만원이 들어가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무려 17배나 적은 5700원으로 왕복을 할 수 있다. 10만원이면 서울을 열일곱 번이나 갔다 올 수 있는 거금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급한 용무가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소요산역

 

전차는 정확히 9시 4분에 소요산역을 출발했다. 소요산역은 종착역이라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갈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요즈음은 평일인데도 등산객들이 몰려들어 소요산역은 꽤 붐빈다.

 

산과 들이 차창에 어리며 지나갔다. 자리를 편하게 잡은 나는 폴 서루의 ‘아프리카 방랑(Dark star safari)’이란 책을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다. 미국 출신 여행 작가인 폴 서루는 나이 60이 넘어 이집트 카이로에서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까지 1년이 넘게 여행을 육로로 한 후 약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여행기를 집필했다.  

 

사실 나는 10여 년 전부터 아프리카 여행을 꿈꾸어 왔지만 아직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아내가 심장이식을 하기 전에 나는 아내의 건강상태가 호전되면, 케냐에서 희망봉까지 아프리카 여행을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첫째는 아내의 건강상태를 우려한 것이다. 물론 그동안 아내가 심장을 이식한 이후 컨디션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프리카 여행은 아무나 쉽게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아프리카를 여행할 만큼 경제사정이 여유롭지 못한 원인도 크다. 아내는 자나 깨나 아프리카 여행을 꿈꾸며 몸을 닦고 조이며 컨디션 조절을 하고 있다.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이나 경제 사정, 시간이 좋은 기회는 별로 없다.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또 설령 아무리 돈과 시간이 충분해도 건강이 허락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2001년도에 폴 서루는 이집트에서 수단으로 넘어가려고 비자를 신청했으나 몇 개월 동안 받지 못했다. 수단에 내전 위험으로 비자를 내 줄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이집트 테베를 여행하다가 후르가다에서 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받게 된다. 꿈을 버리지 않고 계속 꾸다 보니 그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나는 잠시 책을 덮고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중고등학교 학창시절 나는 6년 동안 기차를 타고 통학을 했다. 시골 우리 마을에서 기차를 타는 임성리 역까지는 4km나 된다. 새벽밥을 먹고 기차를 타기위해 임성리역으로 걸어가야 한다. 임성리역에서 목포역까지 기차를 타고 내려, 목포역에서 다시 3km를 걸어가야 학교에 도착한다. 그러니 편도 7km, 왕복 14km를 6년 동안이나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거기에다가 기차를 놓치면 먼 길을 걸어서 걸어서 학교까지 가야 했다.

 

6년 동안 걸어 다닌 거리를 환산하면 약 24,200km(14km×24일-한달평균 일수×12월×6년)나 된다. 지구 한 바퀴 거리가 40,120km이니 지구를 반 바퀴도 넘게 걸어 다닌 엄청난 거리다. 그 거리를 나는 하루에 3~4시간이 걸려 6년 동안이나 걸어 다닌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걷는데는 이력이 난 사람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전차와 버스를 타고 3~4시간 걸리는 거리는 즐겁게 다녀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하기가 그지없다. 소요산에서 종로 3가까지 오는데 보통은 1시간 10분 정도 걸리는데 오늘은 앞서가는 전동차가 느려 천천히 가는 바람에 20여분이나 더 걸렸다. 그 시간이 어찌나 지루하던지 엉덩이가 다 아플 지경이다.

 

▲거미줄처럼 복잡해진 서울의 지하철 

 

서울의 지하철은 대단히 복잡해졌다. 9호선까지 건설되면서 서울지하에는 지하철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그러므로 환승을 할 때에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잘못타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 십상이다. 종로 3가에서 교대역으로 가는 3호선 열차를 갈아타는 것도 매우 복잡하다. 지하 통로를 꼬이지 않도록 한없이 걸어야 한다.

 

교대역에서 내려 드디어.... 치과에 도착하니 11시 30분이다. 약속시간보다 반시간이나 늦게 도착을 한 것이다.

 

“연천에서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하셨네요.”

“아이고 말도 말아요. 목포에서 서울 오는 시간보다 더 걸려서 왔어요.”

“그렇게나 많이 걸려요.”

“4시간이나 걸려요. 그러니 안 아프게나 잘 해줘요. 두 번 안 오게 해 주시고.”

“호호호, 여부가 있나요. 잘 해드려야지요.”

 

온니치과 간호사님들은 한번 입사를 하면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30년 전의 간호사님이 지금까지 계시고, 그 이후에 들어온 간호사님들도 10~20년이 넘게 그대로 있다. 그러다 보니 치과에 들어가면 마치 이웃 동네 사람들처럼 편하게 농담도 주고받으며 지내는 사이가 되어었다.

 

사실 누구나 치과에 가기가 겁이 날 것이다. 집게를 이빨에 들이대는데 무섭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허지만 항상 친구처럼 대해주는 안 박사, 그리고 변함없는 그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반겨주는 간호사님들을 보면 안심이 되고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지난번에 본을 뜬 브리지를 끼어 맞추는데 1시간여가 걸렸다.

 

“브리지를 한 왼쪽은 살살 씹으셔야 합니다. 아마 적응을 하기까지는 좀 불편할겁니다.”

“네, 그래야지요. 그럼 언제 또 와야지요?”

“3주일 후에 완전히 붙여야 합니다. 오늘 다시 연천으로 가야하나요?”

“네, 서울에 한 번 일을 보러 오면 만 하루가 꼬박 걸려요.”

“그러시겠네요. 고마워요. 이렇게 멀리서 오시다니....”

 

나는 3주 후에 다시 치과에 오기로 안 박사와 약속을 했다. 아내도 어금니 틀리 두 개를 끼어 맞추고 우리는 치과를 나왔다. 우리는 치과 앞에 있는 분식집에서 칼국수 한 그릇씩을 먹고 다시 지하철을 타러 갔다. 마침 친구 P가 함께 가기로 하여 우리는 교대역에서 2시경에 지하철 2호선을 탔다.

 

지하철을 타고 오다가 아내가 강변역에 있는 테크노마트에서 지난번에 산 모자를 바꾸어야 한다고 해서 잠시 테크노마트에 들른 다음 다시 2호선을 탔다. 친구 P의 제안으로 우리는 건국대역에서 7호선으로 바꾸어 탔다. 7호선을 타고 도봉산역에서 내려 다시 소요산역으로 가는 1호선으로 갈아타자는 것이다.

 

도봉산역에 도착하자 아내는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다고 했다. 마침 지하상가 마트에서 원두커피를 팔고 있었다. 커피 1잔을 시켜 마시면서 1호선 전차를 갈아타러 가는데 P가 전철 시간표를 보며 말했다.

 

“금방 소요산행 전차가 지나가 버렸어.”

“그럼 30분을 더 기다려야 하네.”

“그러게, 그 커피만 마시지 않았더라도... 하여간 플랫폼으로 올라가서 기다려야지.”

"아이고, 내가 못살아. 커피를 마시지 말걸..."

 

허나 때는 이미 늦었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올라가는데 먼저 계단을 올라간 P가 손짓을 하며 “빨리 와, 지금 소요산행 기차야!” “그래?” 숨을 헐떡거리고 계단을 올라가나 맨 앞 칸 전동차 문이 막 닫혀지려는 찰나였다. P가 전동차에 발을 내 딛자 전동차 문이 다시 열렸다. 아내와 나는 숨을 헐떡이며 재빨리 전동차에 올랐다.

 

  

“휴~ 사람 죽겠네.”

“정말 극적으로 탔군!”

“아마 이 전차가 5분 정도 지연이 된 모양이야.”

“전동차 기관사님이 무지 고맙네. 문을 다시 열어주다니.”

“그러게 말이야.”

 

소요산역에 도착하여 주차장에 세워 둔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말없이 기다려준 고물자동차가 너무나 고맙다. 나는 낡은 산타페를 11년째 몰고 다니고 있다.

 

"자동차야 고맘다!"

 

이 고물차가 없다면 버스를 타고 전곡역으로 가서 다시 동이리로 오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갈아타는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얼마나 기다릴지 모를 일인데… 오늘은 11월 1일, 할로윈 데이란다. 전동차에는 할로윈데이 뭔가를 팔아먹기위한 관고가 여기 저이 걸려있다. 할로윈 데이... 소요산역에서는 전차를 놓치고, 도봉산 역에서는 운 좋게  전차를 탔다. 

정말 긴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