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겨울 꽃의 향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찰라777 2014. 1. 5. 04:37

꽃을 키우며 쉼표를 찍어 봐?

 

▲ 거실에 화초를 키우면 공기정화, 습도조절 역할을 해주고 무엇보다도 꽃을 피워주어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준다.

 

연말연시를 서울에서 보내느라 무려 보름 만에 연천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연말연시는 아이들이 서울에서 보내자고 한데다 이런 저런 모임이 겹치다 보니 너무 오랫동안 집을 비운 것 같습니다. 화초와 길고양이와 새들이 엄청 기다렸을 텐데, 그만 본의 아니게 직무유기를 한 꼴이 되어 버렸네요.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실내 화분에 물을 주는 일입니다. 그 동안 얼마나 목이 말랐을까? 나는 라디오의 보륨을 켜서 음악을 잔잔하게 틀어 놓고 물을 정성스럽게 주기 시작합니다. 식물들도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유쾌해 질 테니까요. 그 사이에 아내는 서울에서 장을 보아온 짐을 풀어 냉장고에 챙겨 넣기 시작합니다.

 

 

 

거실에서 키우는 화초들이기 때문이 물을 아주 천천히 조금씩 오래도록 주어야 합니다. 너무 성급하게 주면 꽃들이 채하기도 하겠지만, 물이 넘쳐서 바닥으로 흘러내려가기 때문입니다.

 

"아휴~ 쥔장님, 왜 이렇게 늦었어요. 목말라 죽는 줄 알았다고요."

"허허, 미안하구나. 다음엔 늦지 않을 게."

 

화분 속으로 물이 솔솔 들어갑니다. 그 동안 얼마나 목말라 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추운 겨울에 시골 집안에서 생명이 있는 것은 사실 이 화초들뿐입니다. 물론 길고양이나, 족제비, 들쥐, 고라니, 새들도 나를 기다리고 있기는 하지만 거실 안에서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이 화초들뿐입니다.

 

 

 

 

이런 오지에서 누군가가 기다려 주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외로운 것이 가장 병이기도 하니까요. 외출을 했다가 집에 돌아오면 화초에 물을 주고 길고양이를 위해서 우리가 먹다 남은 생선이라도 한 토막을 물려주기고 하고, 새들에게 먹이를 주기도 합니다. 주변에 늘 이들이 있기에 산골 생활이 외롭지가 않습니다.

 

▲ 길고양이를 위한 생선 한 토막

 

허지만 나는 집안에서 어떤 애완동물도 기르지 않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외로운 오지에서 강아지라도 한 마리 기르고 싶지만, 이렇게 집을 오래 비워두면 그들이 살아 나가기가 힘들기 때문이지요. 몇 해 전 지리산 자락에 살 때에는 뒷집 주인이 강아지를 묶어서 키우다가 새 마리나 별나라로 보내는 것을 목격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강아지를 개집에 묶어두고 시도 때도 없이 집을 비우기 때문에 굶어서 죽기도 하고, 쉰 음식을 먹다가 식중독이 되어 죽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죽어나가는 개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 부부는 책임을 지지도 못한 생명을 집안에서 절대로 키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개는 물론 닭이나 돼지도 기르지 않습니다.

 

 

 

꽃을 좋아하는 아내는 꽃나무와 화초를 기르기를 좋아합니다. 어디를 가나 작은 화단을 만들어 화초와 꽃나무를 심어 키우고, 거실에는 화초들을 심은 화분이 넘쳐흐릅니다. 거실에서 화초를 키우려면 많은 정성이 필요합니다. 물을 제때에 주어야 하고, 환기도 수시로 시켜주어야 합니다.

 

집안에 화초를 키우면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습니다. 우선 습도를 조절해주어 건조하지가 않습니다. 또한 산소를 공급해 주고, 탄산가스 등 오염된 공기를 정화시켜주어 건강에도 매우 좋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꽃을 피우며 우리에게 엄청난 기쁨을 줍니다. 한 송이 꽃이 피로에 지친 우리를 기쁘게 해주는 즐거움이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우와! 개발 선인장이 우리가 없는 사이에 붉게 피어나고 있군요. 이 추운 겨울에 저렇게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을 보면 정말 신비하고 경이롭기만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산업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정신없이 내 달리다 보니 아름다운 꽃을 보고 기뻐할 줄도 모르고 바쁘게만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그 결과 다른 나라들이 300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발전을 우리나라는 불과 30~40년 만에 이룩했습니다.

 

 

 

덕분에 국민 소득이 2만 달러 시대에 진입하는 등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지만, 불행하게도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 이혼율 1위, 출산율 최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너무나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자신을 돌볼 틈이 없어진 거지요. 그러니 아름다운 꽃을 보고도 아름다운 줄을 모르고 지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요.

 

명문대 입학, 고속 승진, 더 많은 소득, 더 큰 집, 더 좋은 차 등 무한 경쟁과 욕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니 내 심신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바쁘게만 보내 온 거죠. 경쟁, 경쟁, 경쟁… 최고, 최고, 최고… 정부와 기업, 학교와 학부모님들도 모두 최고를 지향하다보니 매일매일 경쟁 속에서 정신없이 지내게 됩니다.

 

 

 

 

성경에는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마음이 가난할 틈도 없이 매일 매일 가위눌리는 스트레스로 꽉 차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면 빈 공간이 생겨서 오히려 마음이 충만해질 텐데, 한 치의 빈 공간도 없이 각종 스트레스로 꽉 차 있다 보니 자연히 꽃을 보고도 아름다워 할 줄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 소득은 늘었지만 삶의 질은 떨어지고, 국민행복지수는 세계 최하위수준을 맴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야 합니다. 한 송이 꽃을 바라보며 좀 더 여유롭고 온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찾아야 합니다.

 

 

나는 물을 가득 채운 양동이에 화분을 하나하나 폭 담갔다가 천천히 꺼냈습니다. 목마른 난들이 물을 빨아먹는 소리가 들립니다. 법정스님께서는 애지중지 아끼던 난을 남에게 주어버리니 마침내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하셨지만, 사바세계에서 살고 있는 나는 그렇지를 못합니다.

 

비록 못 생기고 하잘 것 없는 난들이지만 거의 20년 넘게 키우고 있습니다. 저 난들은 겨우 생명을 연장을 하는 수준이지만 가끔 꽃을 피워주기도 합니다. 힘들게 꽃을 피워주는 난초꽃을 볼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 꽃망울을 맺기 시작하는 천리향

 

아, 드디어 천리향도 꽃을 맺기 시작하고 있군요. 푸른 꽃받침에서 하얀 꽃이 하나씩 벌어지고 있네요!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천리향이 은은한 향기 속에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추운 영하의 날씨에도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니 마음은 쉼표를 찍고, 잔잔한 행복감이 밀려듭니다.

 

꽃은 온힘을 다하여 피어납니다. 그러다가 질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시들어 갑니다. 필 때가 되면 피었다가 질 때가 되면 말없이 사라져 가는 꽃을 보면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마 꽃은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꽃은 피었다가 시들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악한 마음이 없습니다.

 

 

 

 

아직 집안에 화초가 없다면 새해에는 아파트 베란다에 화초 하나라도 키워보는 것이 어떨까요? 정성스럽게 물을 주고 느리게 피어나는 꽃을 감상하다 보면 메말랐던 정서도 함양이 되고, 아픈 마음도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화초를 키우기가 정 어려우시면 썰렁한 식탁에 한 송이 꽃이라도 꽃아 놓아 보세요. 그 꽃 한 송이가 집안 분위기를 완전히 확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