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영산홍으로 불타는 담벼락

찰라777 2014. 4. 22. 14:19

흔히 꿀벌은 슬퍼할 겨을이 없다고 하지요.

지금 농촌은 농사철이 시작되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계절입니다.

저 역시 작은 농사를 짓고 있지만 해마다 이맘때가 가장 바쁜 철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병원엘 징검다리 식으로 다니다 보니

일주일 걸러 서울과 연천을 오가고 있는데,

어제 일주 일만에 연천에 다시 되돌아 왔습니다.

 

 

텃밭에 물을 주는 일만도 거의 몇 시간이 걸리는군요.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내고…….

텃밭 화단에 붉은 영산홍이 만개하고 있지만

꽃을 바라보아도 어쩐지 슬퍼지기만 합니다.

남쪽에서 들려오는 큰 슬픈 소식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슬픔 때문에 자꾸만 일손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는 담벼락에 영산홍을 덮고 있는 건초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해마다 담벼락의 잡초를 베어냈지만 여전히 담벼락은 잡초로 덮여 있어

그 속에 들어있는 영산홍이 잘 보이질 않습니다.

척박한 돌 틈에서 저 잡초들은 어이 그리 뿌리를 잘 내리고 생명을 유지하는지...

잡초들은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담벼락에 잡초를 제거하는 일은 다소 위험한 작업입니다.

아슬아슬한 담벼락에 서서 천천히 줄기식물과 뽕나무, 잡초들을 제거하고 나니

그 속에 갇혀있던 영산홍들이 고개를 내밀고 활짝 웃기 시작하는군요.

무려 3시간 넘게 이 작업을 하고 나니 온 몸에 땀이 흥건히 괴이는군요.

그러나 아름다운 생명들의 미소를 보게 되니 저 역시 마음이 기쁨으로 충만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귀하지 않는 생명이 없지요.

그 무엇으로도 위로의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삼가 못 다 핀 영혼들의 명복을 빌며

아직 생사를 알 수 없는 생명들이 부디 살아 돌아오기를

38선 이북, 멀리서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