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거지보다 더 가난한 임금님

찰라777 2014. 5. 15. 09:15

5월 15일 비 내리는 아침에...

-카모마일, 강남콩 파종

 

 

 

빗소리에 잠을 깼다. 도심의 아파트에서 잠을 자면 도저히 들을 수 없는 자연의 소리다. 텃밭의 작물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나는 우산을 받쳐 들고 밖으로 나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가 대지로부터 들려왔다. 어제 뿌린 카모마일과 강낭콩이 얼마나 좋아할까? 어제 뙤약볕에서 민들레 홀씨보다 더 작은 카모마일 씨를 화분에 파종을 했다. 작은 아이 경이가 독일에 여행을 갔다가 사온 씨인데 너무 작아서 씨를 뿌리는 데 애를 먹어야 했다. 그 작은 씨앗이 움을 터서 꽃을 피우고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낸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강낭콩은 쪽파를 심은 밭에 파종을 했다. 혼작을 시험하는 것이다. 쪽파는 얼마 안 있으면 모두 뽑아내야 한다. 200여 평의 텃밭이 빼꼭히 들어 차 있어 더 이상 심을 땅도 없다. 그래서 작년에 해땅물자연농장에서 배운 혼작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감자밭도 풀밭 그대로다. 풀을 뽑지 않고 배어내기만 한고 있다. 풀과 함께 자라는 감자밭이 싱그럽게 보인다. 사실 비닐도 치지 말아야 하지만 날씨가 추운 곳이라 일부는 비닐을 치고 일부는 로지에 그대로 심었다.

 

 

 

그런데 역시 비닐을 친 곳과 치지 않는 곳에 심은 감자의 성장이 세배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수확을 해보아야 확실히 알겠지만 비닐을 치지 않는 감자는 아무래도 성장이 더딘 것 같다. 감자밭은 수확을 하고 나면 콩을 심을 예정이다.

 

 

 

당근도 이제 힘을 받아 잎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있다. 금주 중에 솎아내기를 해주어야 할 것 같다. 싹을 틔우는 것이 그렇게도 더디더니 한번 싹을 틔우고 나서는 자라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

 

어제 토마토와 가지, 그리고 고추밭에 지주 대를 세워 주었다. 비를 맞고 쑥쑥 자라나는 작물의 속도는 눈에 보일 정도다. 미리미리 지주 대를 세워서 보호를 해주어야 한다.

 

 

 

 

돼지감자는 작년에 수확을 하고 심지 않았는데도 잔여 뿌리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 풀과 함께 경쟁을 하며 자라나는 돼지감자는 자생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 돼지감자 옆에는 명아주 등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아마 돼지감자는 저 잡초들을 제치고 자라날 것이다.

 

 

 

정자에서 뜰을 바라보는데 고양이가 소나무에서 내려오더니 정원을 가로질러 혼비백산 달아났다. 녀석, 참 의심도 많구나. 늘 내가 밤을 주건만 아직도 나를 겁내고 있다니… 고라니 한 마리가 정원으로 들어오려고 하다가 녀석도 나를 보고 혼비백산하며 산 쪽으로 달아났다.

 

 

고개를 들어 임진강 주상절리를 바라보니 실핏줄 같은 폭포가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다. 폭포는 자연의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다. 비만 오면 수십 개의 폭포가 내려 일대 장관을 이루는 주상절리 적벽은 참으로 나에게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해준다. 참으로 고마운 자연이다.

 

스스로 씨를 뿌려서 수확을 하여 먹는 일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날마다 먹는 음식을 고마운 줄을 모르고 먹게 된다. 그 음식이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던가?

 

 

 

최 몇 년 동안 스스로 텃밭을 가꾸면서 나는 자연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스스로 땀을 흘려 밭을 일구고, 파종을 해서, 정성스럽게 가꾸어 수확을 하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위험이 따른다. 아무리 정성과 노력을 해도, 하늘과 바람과 비가 도와주지 않으면 결실을 거두어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항상 작은 수확에도 만족을 하고 감사를 드려야 한다. 우리가 작은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항상 불만에 싸여 살아 갈 것이다. 티베트의 수행자 밀라레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쐐기풀로 간을 하고

또 양념으로도 쐐기풀을 쓰네. “

 

그는 쐐기풀을 뜯어먹으면서 티베트의 동굴에서 수행을 한 위대한 스승이다. 이처럼 위대한 스승처럼 수행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만족을 할 줄 모른다면 그는 가난한 사람이다.

 

 

 

부처님 당시에 한 상인이 있었는데, 그는 외국에 장사를 하러 갔다가 돌아오면서 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주려고 굉장히 쉬하고 값비싼 물건을 가지고 왔다. 그는 귀국을 하자 그것을 임금님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그 상인이 설명하기를, 임금님은 물질적으로 최고의 부자이지만 만족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고 했다. 아무리 부장일지라도 만족을 할 줄을 모른다면 1루피를 구걸하여 한 끼를 배불리 먹고 만족할 줄 아는 거지보다 그 사름은 더 가난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엄청난 부자가 될지라도 만족할 주 모른다면 그것은 전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옷을 두 겹 세 겹으로 껴입을 수도 없고, 하루에 열 끼를 먹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임금이든지 거지든지 배고픔과 목마름을 만족시킬 만큼 밖에는 먹지 못하며, 몸을 보호하기에 충분한 만큼의 옷이 필요할 뿐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재벌들은 우리 같은 서민들이 생각할 때에는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부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속문제로 서로 물어 뜯으며 소송가지 불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재벌들은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더라도 거지보다 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다.

 

 

티베트의위대한 스승 아티샤는, 항상 남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친절을 기억해야 하고, 또 그들이 필요로 할 때에는 우리는 친절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일러준다. 남의 친절과 호의를 받고도 나중에 그가 필요로 할 때는 그를 무시하는 것은 목석같은 사람이다. 개들도 제게 먹이를 준 사람을 고맙게 알아보며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