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당근을 솎아내기와 인내심

찰라777 2014. 5. 29. 15:08

당근 솎아내기는 인내심을 기르기에 좋은 작업이다

 

 

당근 솎아내기 작업은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내는 작업처럼 강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지난 41일 날 파종을 했던 당근이 제법 키가 훌쩍 나라나고 있다. '신흑정5'이란 씨앗을 파종했는데, 지난주 비가 온 뒤에 일주일 사이에 부쩍 자라나 2차 솎아내기를 했다. 비가 온 뒤 한번 솎아내기를 해서인지 성장속도가 매우 빠른 것 같다.

 

당근은 씨를 파종한 후 이파리가 3~4장이 되면 잎이 서로 엉긴 것을 솎아줘야 한다. 이를 통상 1차 솎아주기라 한다. 솎은 다음에는 가늘고 약한 묘가 쓰러지지 않게 뿌리 부근을 흙으로 북돋아 주어야 한다.

 

잎이 6~8장이 되면 다시 2차 솎아주기를 해야 한다. 이때는 포기 간격이 10~12cm쯤 되도록 해주고, 역시 흙으로 뿌리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 뿌리가 드러나 있으면 녹색 부위가 커져 당근이 깊게 자라지를 못한다.

 

 

솎아내기 전 당근밭

 

당근은 모아서 자라는 속성이 있으므로 한꺼번에 너무 많이 솎아내면 맥없이 쓰러져 잘 자라지를 못한다. 싹이 틀 무렵에는 줄기가 매우 가늘고 연약하므로 묘와 묘 사이가 서로 뒤엉켜 자라는 것이 비바람에 잘 견딘다. 이렇게 밀생하게 해서 싹과 싹이, 뿌리와 뿌리가 서로 경쟁하게 해야 잘 자란다.

 

솎아줄 때 갑자기 포기와 포기 사이를 너무 많이 넓혀주면, 뿌리가 너무 빨리 굵어져서 당근 뿌리 옆이 쪼개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생장 속도를 보아가며 포기와 포기 사이가 한꺼번에 넓혀지지 않게 조심을 해야 한다.

 

그런데 실처럼 가늘고 촘촘하게 붙어있는 당근 묘를 솎아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가늘고 연약한 당근을 실오라기를 풀듯 하나하나 추려내며 천천히 솎아내야 한다 

 

솎아낸 후 당근 밭

 

어지간한 인내심이 없으면 당근 솎아내는 작업을 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감당하기가 어렵다. 솎아내기 작업을 하다가 내 인내심의 한계가 다다랐을 때, 티베트를 여행할 때 들었던 제 촌까빠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강한 인내의 갑옷으로 몸을 지키고, 그 인내의 힘이 차오르는 달처럼 자꾸 커지도록 수행을 해야 한다."

 

스님의 이 말씀은 깊고 얕은 모든 목표가 모두 강한 인내심에서 온다는 것이다. "이까짓 것 당근하나 제대로 솎아내지 못한다면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나는 골반과 허리에 통증을 참고 당근 솎아내기를 계속했다.

 

또 한 가지 어려운 점은 묘를 솎아낼 때에 어떤 당근 묘를 뽑아내고 어떤 당근 묘를 남겨두어야 하는 결정이다. 다 같이 힘들게 자란 모종인데 그 여린 생명을 무자비하게 뽑아내기란 마음이 쉽게 허락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당근 묘를 솎아낼 때마다 나는 항상 심한 갈등을 느끼곤 한다. 

 

아무리 튼튼한 모종이라도 적당한 간격에

하나만 남겨두고 솎아내기를 해야한다.

 

특히 튼튼한 모종이 함께 붙어 있을 때에는 어떤 모종을 뽑아내야 할지 더욱 난감해진다. 이럴 때는 간격을 우선으로 하고 건강한 모종이라도 매정하게 뽑아내야 한다. 당근이 보다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종을 당근이 잘 생장하도록 띄엄띄엄 간격을 넓혀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당근 밭에는 쇠비름을 비롯해서 바랭이 풀, 명아주 등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 잡초들도 당근 묘가 뽑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하나하나 뽑아내야 한다. 당근 묘를 솎아내는 일은 일종의 수행과 같다. 깨어있지 않으면 금방 엉뚱한 모종을 뽑아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루한 당근 솎아내기 작업을 하며 나는 다시 티베트의 위대한 스승 아티샤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돌이켜 보고, 깨어있는 마음으로 지켜보아, 항상 모든 감각의 문을 지키라."

 

아티샤는 우리의 ''''''의 대문에 '반성''깨어있는 마음''주의 깊음'이라는 보초를 세워놓고, 몸과 말과 뜻이 이 세 대문을 거쳐나가 온전치 못한 행위를 저지르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켜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늘 사물을 주의 깊게 돌이켜 보고, 기억하는 마음의 기능()을 아티샤는 쇠갈퀴와 같다고 했다. 마음이 온전치 못한 곳으로 방황할 때에는 이 쇠갈퀴가 그 떠도는 마음을 낚아채서 온전한 자리로 다시 끌어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근을 솎아낼 때에도, 솎아내고 나서도 주의 깊게 당근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 

 

솎아내기 전 촘촘하게 붙어있는 당근 밭

 

몇 평 되지 않는 당근 밭이지만 한나절이나 걸려서야 솎아내기 작업을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당근 솎아내기를 할 때마다 마치 나는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 들곤 한다.

 

허지만 당근 솎아내기는 강한 인내심을 기르는 좋은 작업이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빽빽하던 당근 숲이 성글성글해져 보기에도 한결 부담감이 없다. 성글어진 당근에 흙을 북돋아주고 물을 흠뻑 주니 이리저리 쓰러져 있던 당근이 다시 꼿꼿하게 일어섰다.

 

 

솎아낸 후 당근 밭. 당근뿌리에 흙을 북돋아주고 물을 흠뻑 주어야 한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인내심이 없으면 결코 이룰 수가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만 있으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성취를 할 수 있다. 비록 완전하게 성취를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일을 그르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요즈음 세상은 너무 인내심이 없다. 아파트 층간 소음이 그 하나의 예이다. 물론 위층에 사는 사람이 소음을 유발시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겠지만, 소음을 좀 일으켰다고 해서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 참지를 못하고, 이웃사촌끼리 서로 다투다가 살인까지 벌이는 촌극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