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수박 생일 케이크 사건

찰라777 2014. 7. 29. 12:00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기차타고 오니 정말 기분이 좋아요!

 

비가 올 듯 하면서도 비는 오지 않고 푹푹 찌는 더위만 계속된다. 아침 일찍 콩밭에서 콩 순을 잘라주고 있는데 스마트 폰이 울렸다.

 

“나 이근후입니다. 지금 버스를 타고 최 선생 집에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가면 되지요?”

“버스요? 선생님 댁에서 버스를 타고 오시려면 아마 4시간은 걸릴걸요.”

“허허, 그렇게 많이 걸려요? 그러면 기차로 가면 되겠네.”

“기차를 타고 오셔도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혹시 누구 자동차 몰고 오실 분은 없나요?”

“박영숙 선생님 차가 있긴 있는데 일행이 여섯 명이라 다 탈 수도 없고, 또 박 선생님이 도저히 거기까지 찾아갈 자신이 없다고 하네요. 그래서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가려고 해요.”

“그러시면 불광역에서 전철을 타고 문산역으로 오십시오. 그러면 제가 마중을 나가겠습니다.”

“문산이 연천보다 더 멀지 않소?”

“하하, 선생님 문산에서 저희 집까지 40km나 더 오셔야 합니다.”

“그래요? 난 연천이 더 가까운 줄 알았는데. 우리 지금 출발합니다. 문산역에서 만나요.”

“네, 선생님.”

 

 

▲2012년 겨울 영하 20도의 날씨에 금가락지를 방문한 이근후 선생님

 

언제나 동자처럼 순진무구한 팔십 노구의 선생님을 생각하기만 해도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물론 버스나 기차를 타고 이곳 연천에 올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연천군 미산면은 38선 이북에 위치한 최전방 오지로 버스나 기차가 자주 없고, 또 여러 번을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린다.

 

서울역에서 소요산행 전철을 타고 소요산역으로 온 다음(1시간에 2회, 1시간 30분 걸림). 소요산역에서 버스를 타고 전곡으로(20분 걸림), 전곡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미산면 동이리까지 와야 한다(하루에 4번 운행, 20분 걸림). 그리고 다시 약 3km를 걸어와야 한다(1시간 걸림). 버스와 전철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하면 족히 3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것도 갈아타는 시간을 잘 맞추어 제때에 전철과 버스를 타야만 한다. 버스나 전철을 한 번 놓치면 30분에서 길게는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러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서울에서 연천 오지에 있는 우리 집까지 오려면 여간한 인내심이 없으면 어렵다.

 

이런 오지를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오시겠다는 선생님을 전화를 받고나니 선생님의 천진한 생각에 나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동차는 물론 시계도 핸드폰도 없는 선생님이 아닌가?

 

“집을 나서면 버스나 택시가 널려있고, 사방에 시계가 걸려있어. 통신은 이메일이 최고야. 어딜 가나 열어볼 수 있으니 전혀 불편함이 없지.”

 

자동차가 없으니 딱지를 때일 염려도 없고, 막히면 걸어서 가고,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핸드폰도 없는 선생님이야말로 영원한 자유인이 아닐까? 선생님께 가장 빨리, 정확하게 연락을 하려면 이메일이나 선생님이 쥔장으로 운영하고 카페에 댓글을 다는 것이 최고다.

 

선생님은 지난 7월 3일 <네팔캠프>(http://cafe.daum.net/nepalcamp) 카페에 올린 내 글에 “찰라님 7월 15일 혹시 금가락지에 계시나요? 위문품 갖고 찾아뵈려고 하는데…”란 댓글을 달아 놓았다. 여기서 <금가락지>는 내가 살고 있는 연천집의 별칭이다.

 

선생님께서 금가락지를 첫 방문한 날은 지난 2012년 2월 8일, 영하 20도의 강추위가 계속되는 날씨였다. 55년 만에 찾아온 강추위로 한파주의보까지 내린 상태였다. 두터운 점퍼차림에 러시아털모자까지 쓴 선생님은 마치 북극을 찾아온 여행자 같았다. 훤칠한 키에 러시아 털모자를 쓴 모습은 마치 영화 <닥터지바고>의 오만 샤리프를 연상케 했다.

 

금가락지 정원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선생님은 자동차에서 10kg들이 쌀 한 포대와 라면 한 상자를 꺼내어 내밀며 말씀하셨다.

 

“자, 여기 군량미와 위문품을 가져왔소.”

“아이고, 선생님, 이 추운 날씨에 위문품까지… 그냥 오시기도 힘드실 텐데.”

 

선생님의 입가에 하얀 김이 서렸다. 그때도 선생님은 금가락지에 오시기 전에 <네팔캠프> 카페에 올린 내 글에 댓글을 달았다.

 

“ㅋㅋㅋㅋ 해물짬뽕 먹고 백다방에서 차 한잔하면 임진년 행운이 절로 올 것 같은 느낌. 보살님들도 오신다니 더욱 반갑습니다. 출동 준비 중! 내비게이션 믿고 갑니다. 주소 올려 주세요."

 

 

 

▲모닝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웠던 왕징면 화이트 다방

 

선생님의 댓글은 언제나 10대를 능가하는 유머와 익살이 넘쳐흐른다. 그런데 하필이면 너무 추운 날씨에 오신다니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추위에 대비하여 완전무장을 하고 오시기 바람”이란 댓글을 남겼더니 “완전무장하고 갑니다. 군량미가 필요하나요?”란 댓글을 달았다.

 

마침 그 때 서울에서 월명수, 선법성 두 보살님들이 와 있었다. 선생님의 댓글에 나는 “ㅎㅎㅎ 태풍전망대 PX 보급품이 떨어져 군량미 조달이 어려움. 여군 3명, 남군 1명 아사직전에 있음. 오바~~ 특히 여군들의 보급품이 기대됨 -_-"이란 답글을 남겼다.

 

선생님과의 대화는 주로 이런 식이다. 댓글 내용에는 “ㅋㅋㅋㅋ” “ㅎㅎㅎㅎ”등 활력과 익살이 넘치는 부호와 기호들이 십대들 못지않게 많다. 그러니 선생님이 노인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렇게 댓글이 오고가며 금가락지를 처음 방문하신 선생님은 임진강 변에 있는 중국집에서 뜨거운 홍합짬뽕을 한 그릇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먹고, 아주 아주 오래된 <화이트 다방>에서 모닝커피를 한 잔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해가 떨어질 무렵 서울로 돌아갔다.

 

선생님은 그때의 추억이 기억에 인상 깊게 남으셨던지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란 책에도 잠간 언급을 하였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수록 약속을 지켜야 하고, 노인일수록 앉아서 누가 찾아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몸을 움직여서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를 하였다. 선생님은 내가 지리산 섬진강변에 살 때에 한 번 찾아오시기로 약속을 하였었는데, 사정상 지키지 못했던 것을 지금까지도 퍽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술회하였다.

 

인생이 살아가면서 나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각이 문제다. 생각이 젊으면 나이도 젊다. 늘 십대 젊은이처럼 댓글을 달고 천진난만하게 살아가시는 선생님이야말로 그 좋은 본보기이다.

 

나는 콩 순 자르는 것을 중단하고 문산역으로 마중을 나갈 준비를 했다. 내가 살고 있는 38선 이북 연천군 미산면으로 우리 집에서 문산역까지는 족히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나까지 일곱 명이 타려면 트렁크를 정리하여 좌석 두 자리를 더 만들어야 한다.

 

내 차는 2003년 산 고물 산타페 7인승이다. 오래된 산타페이지만 자주 손질을 해주니 그래도 잘 굴러다닌다. 트렁크에 잡다한 짐을 정리하고, 먼지를 털고 청소를 한 다음 나는 문산역으로 출발했다. 불광역에서 문산역까지 오는 시간도 약 1시간이 걸린다. 문산역에 도착을 하니 선생님을 포함하여 여섯 분이 가다리고 계셨다.

 

“아이고, 선생님 전철타고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지요?”

“하하, 전철을 타고 오니 너무 시원하고 엄청 빠르네. 아주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하하, 다행이군요. 그런데 재차가 미니 7인승이라 두 분이 뒤 트렁크에 타야 하는데…”

“크크크, 모험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트렁크에 타세요.”

“염려 마세요. 우리가 탈게요.”

 

 

 

▲트렁크 뒷좌석에 앉아 소녀처럼 즐거워하는 선생님들

 

 

 

나이가 좀 덜 드신 여자 선생님이 두 분이 트렁크에 어렵게 올라탔다.

 

“선생님, 트렁크에 처음 타 보시지요?”

“호호, 너무 좋은 데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요.”

 

내가 트렁크 문을 닫자 마치 두 분의 여자 선생님들이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보여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 네팔이나 인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 겁니다.”

“그거 아무나 탈 수 있는 좌석이 아니오. 두 분은 오늘 특석에 앉은 거라고.”

“정말 그런데요.”

“최 선생, 저기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좀 콱콱 밟으시오.

“에고, 선생님 그러면 우리 머리에 뿔나요! 호호호.”

 

이근후 선생님의 익살은 여전했다. 늘 개구쟁이처럼 행동하시는 선생님은 마치 어린애 같은 느낌이 든다. 임진강변 좁은 신작로를 따라 한적한 시골 길을 달려갔다. 강변의 시골스런 풍경에 모두가 감탄사를 연발했다.

 

“정말 멀 군요. 어떻게 이런 곳까지 찾아오시게 되었는지 무척 궁금하네요.”

“그게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오. 여기 최 선생이나 올 수 있는 곳이지. 그리고 최 선생에 있기에 우리가 또 올 수 있는 행운을 맞이하고. 그러니 오늘 선생님들은 출세를 한 거요.”

“호호, 정말 그러내요.”

 

 

나는 차를 숭의전 입구에 세웠다.

 

“자, 여기서 잠깐 내려 고려 태조 왕건이 마셨다는 어수정(御水井) 약수를 한 잔씩 마시고 가시지요. 물맛이 아주 그만입니다.”

“왕건이 마신 약수라고요?”

“네, 왕건이 견훤을 만나러 갈 때에 이곳에 들러 이 약수를 마시고 숭의전에서 하룻밤을 쉬어가곤 했다고 합니다.”

 

 

 

 

▲숭의전의 한 때

 

우리는 어수정 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를 한 잔 마시고 숭의전을 돌아보았다. 숭의전은 고려태조 왕건을 비롯하여 네 분의 고려왕과 16명의 고려 충신 위패를 모신 고려 사당이다. 마침 문화 해설사가 있어서 우린 문화해설사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숭의전을 둘러보았다.

 

KBS드라마 <정도전>에도 잠깐 언급이 된 숭의전은 고려의 역사를 다시 새겨 볼 수 있는 좋은 곳이다. 600년 된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과 고려 태조 왕건과 조선태조 이성계 사이에 얽힌 야사를 들으며 숭의전을 돌아보고 나니 오후 1시가 넘었다.

 

“선생님, 시장하시죠?”

“그렇군. 지난 겨울에 먹었던 그 홍합짬뽕 집으로 갑시다.”

“그런데 그 집이 불이 나서 그만 문을 닫고 말았어요. 우정리에 40년 된 황해냉면 집이 있는데요, 그 집 꿩 만두도 먹을 만합니다.”

“저런, 불이 난 집은 더 잘된다고 하던데 문을 닫다니… 그럼 꿩 만두라도 먹어야지.”

 

 

우리는 황해냉면 집으로 갔다. 꿩만두와 냉면이 생각보다 맛있다며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다음에 꿩만두 먹으러 다시 한 번 와야겠네요?”

“네 언제라도 오세요.”

 

 

꿩 만두와 냉면을 맛나게 먹고 금가락지로 왔다. 아내를 바라보며 “각하 오랜만입니다. 오늘은 군량미를 가져오지 않았어요. 각하가 가져 오지 말라고 해서. 대신 여기 수박 한 통 가져왔소. 하하.”

 

“호호, 선생님 그냥 오셔도 되는데.”

 

 

아내는 이름이 박정희라서 아내는 오래전부터 각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박사님도 그 별명을 그대로 부르며 재미있어라 한다.

 

 

선생님과 함께 오신 분들을 일일이 소개를 해 주셨다. 지금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스마트 에이징(SMART AGING) 수강생인데 모두가 박사 학위를 가진 분들이라고 한다. 그러니 금가락지에 박사님이 여섯 분이나 오신 것이다.

 

이근후 선생님이 퇴직 후 사회 봉사차원에서 운영하는 ‘가족아카데미아(http://www.familyacademia.org)에서 열고 있는 강좌 중 스마트 인생

‘스마트 인생학교’에 스마트 에이징 프로그램이 있는데, 100세 시대에 진입한 지금 어떻게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느냐는 화두를 지닌 프로그램이다. 미래지향적이며, 현명하고 아름다운 나이 들기를 위해 자기에 대한 성찰과 변화를 시도하자는 ‘SMART AGING'에 대하여 선생님은 간단히 설명해 주셨다.

 

 

S(Simple) : 단순해서 평안한 Aging

M(Movement) : 움직여서 즐거운 Aging

A(Artistic) : 풍성하고 창조적인 Aging

R(Relax) : 여유롭고 평화로운 Aging

T(Together) : 함께해서 행복한 Aging

 

 

 

수박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참 멋진 프로그램이군요.”

“그렇지요. 그런데 오늘 이 분들이 최 선생 부부를 롤 모델로 체험을 하러 왔어요. 그러니 최 선생이 잠시 이 분들에게 몇 분 동안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해요.”

“아이고, 참 제가 들려줄 이야기가 무에 있겠어요. 그냥 보시면 되지요.”

“그래도 해야 합니다.”

“하하, 선생님 오늘이 제 생일 인데 전 꼭 박님들께서 제 생일을 축하에 주려고 오신 것만 같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생일파티를 먼저 해야겠네.”

“생일케이크도 안 사왔는데.”

“저 수박을 잘라서 촛불을 켜면 되겠네요.”

“와아, 멋진 아이디어!”

 

 

▲수박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그렇게 해서 수박을 잘라 놓고 즉흥적인 생일축하 공연이 이루어 졌다. 박사님들이 모두 일어나서 박수를 치며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다. 박사님들이 노래도 잘 부르신다. 얼떨결에 생일축하파티를 받은 나는 수박에 켜 놓은 촛불을 훅 불어서 껐다.

 

 

촛불을 끄고 수박을 쪼개 먹으려 고하는데 이근후 선생님이 한 말씀 하셨다.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런데 나도 오늘이 내 일이이라오.”

“어머, 그러세요!”

“아니, 제 생일과 똑 같은 날 생일이라니 어찌 이런 일이….”

“ 그것도 다 인연 아니겠소?”

“박사님 생일 파티를 다시 해야겠군요.”

“당연하지요. 그냥 지나 갈 수가 없지요.”

“그럼 이번에 어디에다 촛불을 켜지요?”

“제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저 수박 위쪽을 잘라내고 수박 생일케이크를 다시 만들면 됩니다.”

 

 

 

 

▲수박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천연스럽게 생일축하 공연을 즐기시는 이근후 선생님

 

 

아내가 수박을 위를 스트라이프 모양으로 잘라들고 탁자에 놓았고, 네 분의 박사님들이 일어서서 박수를 치며 생일축하 공연을 다시 벌렸다. 노래가 끝나자 이근후 선생님은 수박에 켜 놓은 촛불을 훌 불어서 껐다. 우리는 수박을 케이트 대신 쪼개어 먹었다.

 

 

“히야, 선생님 저와 생일이 똑 같은 날이라니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러게 말이요. 허허.”

“선생님 출생 시는 언제인가요?”

“어머님이 말씀을 해주셨는데 기억이 잘 안 나네,”

 

 

그런데 그 다음 이근후 선생님의 말씀에 모두가 배를 움켜쥐고 말았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오늘이 내 생일이 아니라오.”

“네? 그게….”

“허지만 올해 내 나이가 팔십인데 올해부터는 1년 365일을 내 생일로 생각하고 살기로 했어요. 그러니 오늘도 내 생일인 샘이지. ㅋㅋㅋ.”

“호호호, 아니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아이고, 그렇게 시침을 때고 속이시다니.”

“그게 인생 팔십이 넘으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니겠소? 그러니 하루하루 살아있는 것이 새롭기만 하고 기적 같은 일이라오. 허허.”

 

 

하루하루가 즐거운 스마트 에이징 

 

 

▲정자에서 담소를 나무며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다.

 

 

허긴 그렇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팔순이 넘으면 노인도 상노인이 층에 속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늘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시는 선생님을 보면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우선 항상 재미있다.

 

 

과연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새삼 다시 느껴진다. 선생님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사람의 욕망은 늙을수록 외롭고 고독하기 때문에 즐겁게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을 찾아갈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즐겁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 인간은 <행복>을 찾아가는 순간 <불행>해 질 수밖에 없다. 행복을 찾으려는 욕망이 오히려 사람의 마음에 부담을 주고 어렵게 만들 수 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을석 선생님이 준비한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란 노래를 들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반 선생님은 스마트 폰에 스피커를 장착을 하여 이 노래를 들려주며 해설까지 곁들여 주었다.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노래 해설과 곡을 들려주시는 반을석 선생님(우)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계속 이야기 하고, 도 한 사람은 대답만 한다. 그걸 어떻게 언제, 어디서 할 거냐는 나의 물음에 넌 늘 글쎄, 글쎄, 글쎄….”

 

이브라임 페레Ibrahim Ferrer 와 오마라 뽀르뚜온도Omara Portuondo 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가 압권이다. 반주는 피아노 단 한 대. 그 피아노 소리가 릴렉스하고 좋다.

 

우리는 금가락지 정자로 옮겨 커피를 한 잔 마시며 그 노래를 들으면서 다시 담소를 나누었다. 늦은 오후에 여섯 분의 박사님들을 다시 내 산타페에 태우고 문산역으로 갔다.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가는 여섯 분의 박사님들의 얼굴이 훤하게 비추어 온다. 마음이 저절로 힐링이 되는 그런 하루였다.

 

 

▲스마트 에이징을 즐기시는 박사님들

 

요즈음 나는 잠을 자다가도 그 일을 생각하면 비시시 웃음이 나온다. 텃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자꾸만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만 웃는 것이 아니다. 내 곁에 있는 아내는 물론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작물들도, 지붕을 타고 올라가는 수세미와 여주 덩굴도, 대추나무 열매도, 활짝 피어난 메리골드도, 울밑에 피어난 채송화도 모두가 비시시 웃는다.

 

어디 그뿐인가? 쓰레기를 뒤지는 길고양이들도, 나뭇가지에 날아와 지저귀는 새들도, 거실에서 왱왱 저공비행을 하는 모기들도, 문밖에서 웅웅웅 고공비행을 하는 말벌들도 비시시 웃는 것 같다. 온 집안이 웃음으로 가득 차 있다. 웃음으로 가득 찬 금가락지는 건강하고 활기가 넘친다.

 

수박 생일케이크, 즉석 생일 파티 고연, 매일 생일을 맞이하신다는 이근후 선생님, 그리고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SMART Aging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스토리는 지난 7월 15일 이근후 박사님(가족아카데미아 공동대표>이 금가락지를 방문하 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