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무궁화 3000그루를 심겠다는 '무궁화 할아버지'의 꿈

찰라777 2014. 9. 4. 15:33

무궁화 할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

 

 

우리 집 큰 대문인 군 방어진지를 지나 오른 쪽으로 끼고 당포성을 한 발 다가서면 마전리 초등학교 폐교가 나오고 이어서 유엔군화장터가 나타난다. 유엔군 화장터 건너편에는 태풍부대가 빌라처럼 서 있다.

 

 

▲3천그루의 무궁화를 심겠다는 무궁화 할아버지집 앞에 핀 무궁화

 

 

중공군과 벨기에 연합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치루며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금굴산 화장터는 지금도 총성과 화약 냄새가 풍겨 오는 것 같다. 얼마나 무고한 젊은이들이 총성으로 사라져 갔을까? 한국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는 이렇게 아직도 과거의 아픔을 안고 곳곳에 흐르고 있다.

 

 

 

▲한국전쟁당시 유엔군화장터로 쓰였던 유엔군화장 시설

 

37번국도 건설로 가파르게 변해 버린 농로

 

 

태풍부대를 지나면 동이리 본 부락이 나오고, 그 앞에 작은 배울교를 건너면 거대한 동이1교 사장교와 만나게 된다. 공사가 한 창 진행 중인 도로 양편엔 붉은 공사 안전표지판이 늘어서 있어 고요하기만 했던 전원의 느낌이 싹없어지고 만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차량들이 이곳을 지나칠까?

 

원래 이 농로는 평지로 되어있었는데, 37번 인터체인지를 만들면서 도로를 높이는 바람에 임진강 주상절리로 들어오는 진입로 입구가 약 23도 각도로 경사가 지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경사를 5도 정도로 낮추어 달라고 서울국토관리청에 진정을 내고 있다.

 

 

 

▲원래 평지로 된 농로였으나 37번 인터체인지를 만들면서 23도 각도로 가팔라진 진입로

 

 

농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는 대부분 오래된 낡은 자동차에다가 트랙터 역시 낡아서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기가 쉽지가 않다. 얼마 전에도 트랙터가 올라가다가 시동이 꺼져 사고가 날 뻔했다.

 

 

당국은 어떻게 하든지 주민이 불편이 없도록 경사를 완만하게 해주어야 한다. 더구나 겨울철에는 응달진 곳이어서 눈이 내려 얼게 되면 차량통행이 어렵게 된다. 그런데다가 주상절리 절경이 알려지면서 휴일이면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어 사고의 위험성은 더 커지고 있다.

  

 

문제의 공사 현장에서 좌회전을 하여 논둑 신작로를 따라 가면 바로 임진강변을 다라 주상절리가 나타난다. 길이 1.5km, 높이 40여m나 되는 주상절리는 마치 동이리 마을을 보호하는 성곽처럼 보인다.

 

 

30만 년 전의 주상절리 적벽과 마주하다가 적벽 위로 100m 높이의 아득한 교각을 바라보노라면 잠시 혼동에 빠지고 만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여러 겹으로 겹쳐지는 장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임진강을 가로 지르는 '동이1교' 사장교.

 

 

서울에서 며칠을 보내고 올 때마다 늘 느끼는 감정이지만, 그 며칠 새에 자연의 변화는 쉴 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어가정 삼거리에 도착하면 주상절리로 가는 길과 이장님 댁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평소 같으면 거리가 더 가까운 어가정 방향을 택했겠지만 오늘은 왠지 주상절리 방향으로 가고 싶다. 임진강변 늘어선 몽돌과 적벽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넝쿨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무궁화 3000그루를 심겠다는 '무궁화 할아버지 김 씨 어르신 집. 그는 철 따라 꽃을 볼 수 있도록 화초를 계절별로 잘 배열해서 심고 있다. 무궁화를 특별히 사랑하는 그는 현재 300여그루의 무궁화를 심어 놓았는데 앞으로 3000그루의 무궁화를 심어 키우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어가정 건너편에는 ‘덕의터’라는 명패를 붙인 집이 한 채 있는데 팔십 가까운 김 씨 노인부부가 살고 있다. 덕의터 입구에는 무궁화가 만발해 있다. 무궁화를 아주 좋아하는 김씨는 무궁화 3000그루를 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무궁화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지금은 약 300여 그루가 심어져 있는데, 매일 피고지고피고지고하며 끊임없이 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가 이렇게 번성하게 피어나는 것을 가까이서 관찰하기는 처음이다. 무궁화 할아버지 집에는 철따라 쉬지 않고 꽃이 피어난다.

 

 

▲무궁화 할아버지가 심은 무궁화가 곱게 피어나 오가는 길손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꽃을 좋아하는 그는 집 뒤 언덕과 집 앞, 대문 등에 철따라 꽃이 피어나도록 화초를 적당하게 배열해 놓고 있다. 짜임새는 없지만 소박한 풍경이 늘 나를 사로잡곤 한다. 지금은 무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늘그막에 꽃을 가꾸며 살아가는 김 씨 어르신의 마음이 고결하게만 느껴진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고결하게 보인다. 나는 무궁화 할아버지 덕분에 철 따라 피어나는 꽃을 오며 가며 감사아을 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오지에 사는 나의 즐거움을 충족시켜주는 무궁화 할아버지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