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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전 소나무 기둥에 기대 앉아

찰라777 2015. 1. 19. 09:02

 

각황전 소나무기둥에 기대 앉아

 

내가 화엄사 각황전을 처음 방문한 것은 30년도 넘는다. 그때 각초(현 화엄사 현등선원장)스님이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는 시기였는데, 당시 스님은 각황전에서 천일기도를 올린다고 했다.

 

처음 각황전 앞에 선 나는 각황전의 장엄한 목조 건물에 놀랐고, 그 장엄한 건물에서 천일동안 기도를 올린다는 각초스님을 보고 두 번 놀랐다.

 

사람은 인연 따라 산다. 각황전에서 천일기도를 올리는 각초스님을 만난 그 뒤부터 나는 화엄사를 즐겨 찾게 되었다. 이번 겨울에도 나는 화엄사 각황전을 찾았다.

 

화엄사는 스님들의 예불소리가 끊이지 않는 절이다. 지난 15(보름날) 각황전 오전예불에 참석을 했다. 여러 스님들께서 108참회문을 낭독하며 108배를 하고 있었다. 나도 스님들을 따라서 108배를 했다. 절을 할 때는 오체투지를 해야 한다.

 

오체투지를 하다 보니 저절로 이마와 코가 각황전 바닥에 닿는다. 그럴 때마다 오래된 나무냄새가 온 몸으로 들어왔다.

 

스님이 치는 목탁소리에 맞추어 일어서서 부처님 전에 합장을 할 때에는 고개를 쳐들고 끝 간 데 없이 뻗어 있는 소나무 기둥과 천장을 바라보았다. 한마디로 경이로웠다! 어디서 이런 거대한 소나무를 구해 왔을까?

 

108참회문을 독송하며 108배를 하고 나니 몸이 뜨겁게 달구어 진다. 108배는 종교를 떠나서 이렇게 좋은 것이다. 마음도 비우고 운동도 하고, 추위도 쫒아내고

 

예불이 끝나자 스님들과 신도들은 모두 나가고 그 넓은 각황전 홀에 나 홀로 남았다. 나는 각황전 기둥에 기대 앉아 육중한 천장을 받치고 있는 소나무 기둥을 올려다보았다. 어떤 기둥은 곧게 뻗어있고, 어떤 기둥은 굴곡진 채 천장을 받치고 있다. 언제 보아도 경이롭다!

 

각황전 건물은 신라시대에 쌓은 돌기단 위에 높이 18m2층으로 지어졌다. 각황전은 본래 이름은 장육전(丈六殿)이다. 부처님의 몸을 일컬어 장육금신(丈六金身)이라고 한다. 장육금신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16척의 키에 황금색 피부를 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부처님 생존 시와 똑 같은 모습의 크기로 만든 불상을 장육존상이라고 한다.

 

화엄사 장육전은 16척이나 되는 장신의 부처를 모시기 위해 지은 전각이다, 각황전은 밖에서 보면 2층인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단층이다. 단층에는 16척이나 되는 부처님을 모실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건물의 높이를 2층으로 올려 2층의 창으로 빛이 들어와서 부처님의 얼굴을 밝게 비출 수 있게 지은 것이다 

 

각황전에는 3여래불상과 4보살상이 봉안돼 있다. 다보불과 석가모니불, 아미타불을 비롯해 문수·보현·지적·관세음보살입상 등이 모셔져 있다.

 

분명히 밖에서 보면 2층 형태지만 내부는 맨 위 천장까지 터 있는 통 층으로 돼 있다. 천장은 우물 정()자 모양인데, 벽 쪽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굽어 경사지게 처리해 놓았다. 상층부에는 커다란 창을 내 조명 역할을 하도록 했다

겉만 보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각황전은 쉽게 보여 주지 않는다. 화엄사 가장 안쪽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는 오래 될수록 값어치가 있다. 그래서 로마는 허물어진 담벼락과 돌기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로마의 담벼락이 허물어진 것은 전쟁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오래 되서 허물어진 것이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이 허물어진 담벼락으로 1년에 무려 430억 달러의 관광수입을 벌어드리고 있다. 그들은 부서진 석장 한 장 돌기둥 한 조각도 황금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옛것을 보전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무릇 천년도 넘은 문화재를 지금에 와서 볼 수 있다는 것은 현세뿐만 아니라 후세의 자손들에게도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문화재들을 소홀이 관리하여 시련을 겪고 있다.

 

화엄사 각황전도 창건 이래 수많은 시련을 겪어 왔다. 임진왜란 때는 화엄사 스님들이 승병을 일으켜 대항을 했다는 이유로 왜장  가등청정은 그 앙갚음으로 각황전을 전소를 시켜 버렸다.

 

6.25 때는 한국정부에서 화엄사를 소각하라는 웃지 못할 명령까지 받아야 했다. 이 명령을 어기고 목숨을 걸고 화엄사를 지킨 차일혁 총경의 결단이야 말로 두고두고 후세에 전해야 할 전설적인 문화재 사랑 스토리다. 오래된 문화재는 목숨걸고 지켜내야 한다.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문화재의 내력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 화엄사를 아끼고 각황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화엄사와 각황전의 내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이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다 상세히 알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천년고찰 화엄사가 오늘이 있기까지 내력을 상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