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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사진 한 장... 단발머리 소녀들과 까까머리 소년들...

찰라777 2015. 3. 15. 19:55

삼향동초등학교 워크 숍 참여기ⓛ

 

53년 만에 보는 빛바랜 졸업사진 한 장

 

지난주에 삼향동초등학교 동문이자 조카인 최대승(23)이로부터 삼향동초등학교재경동문회 모임에 참석을 좀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내용은 <여행>에 대하여 강의를 좀 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초등학교동문회에서 여행 강의라니. 저는 삼향동초등학교 제 15회 졸업생입니다. 삼향동초등학교는 전라남도하고도 땅 끝에 해당하는 목포 인근 무안군에 소재하는 작은 시골학교입니다.

 

 

▲삼향초등학교(전남 무안군 삼향면) 15회(1963년) 졸업기념 사진

 

기쁨 반 우려 반으로 저의 마음은 설렜습니다. TV와 방송, 기업체, 학교 등 수 차례 여행관련 프로와 강의를 하여보았지만 내 고향의 초등학교 동문회에서 강의를 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저의 강의는 2시간 정도인데 조카의 말로는 약 20~30분 정도의 좌담형식 강의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흔쾌히 허락을 하고 동문회 모임에 가기로 했습니다.

 

연사로 동문회 초청을 받고 실로 오랜만에 풀뿌리 고향의 초등학교 문을 두들겨 보았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태어난 고향이 있고, 그리고 타향에 있어도 언제나 갈 수 있는 고향이 존재하고, 그리고 또 고향의 그리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서 크나 큰 축복이지요. 그러나 삶의 쫓겨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을 등지고, 또 고향의 친구들을 잊어버리기고 살아가기 십상이지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초등학교를 졸업 한지 실로 53년 만에 찾아보는 동문회 모입니다. 동문회 카페가 있다고 하여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보니 참으로 반가운 고향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총동문회 소식은 물론 기수별 모임방이 있어서 마치 내가 다시 어린 시절 먼 과거로 회귀한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초등학교 졸업생들의 빛바랜 사진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마침 15회 졸업사진도 이곳에 실려 있었습니다. 나는 그 빛바랜 흑백 졸업사진 속에서 내 모습을 열심히 찾아보았습니다. 기억에 날 듯 말 듯 한 동창생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아련하게 지나갔습니다.

 

남학생 55, 여학생 51, 선생님 13분의 얼굴이 마치 활동사진처럼 역역이 눈에 들어와 꽂혔습니다. 우리 동기 동창생들은 1반과 2반으로 나누어졌는데, 나는 항상 1반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더러는 이름이 기억나는 사람도 있고 기억나지 않는 동창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그 얼굴은 또렷이 기억 속에 되살아나곤 했습니다. 여학생들은 단정한 단발머리에 하얀 칼라 받침을 한 검정색 투피스를 입었고, 남학생들은 까까머리에 위아래 검정 교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나는 맨 뒷줄에 서 있는 까까머리를 내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어머님께서 학교를 늦게 보내준 탓에 나는 동급생에 비해서 나이가 많기도 했고, 그들보다 키도 컸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맨 뒷줄에 서곤 했는데 졸업사진도 역시 맨 뒷줄에 서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빛바랜 사진 속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거의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너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나는 마치 먼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 듯 그 시절의 추억이 주절이 주절이 되살아났습니다. 그 땐 6.25 전쟁 직후라 모두가 거의 가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도시락도 제대로 싸오지 못한 학생들이 태반이었습니다. 우린 모두 주린 배를 움켜쥐고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전쟁의 참혹한 역사가 더욱 우리를 굶주리게 한 것입니다.

 

▲삼향동초등학교 제 1회 졸업식 사진, 40명(1949년)

 

▲삼향동초등학교 제 24회 졸업식 사진(1972년). 졸업생 수가 100 명 이상으로 70~80년대 사이가 학생 수가 가장 많았다. 그땐 책상과 의자를 켜켜이 쌓으며 마치 탑을 이루듯 5층 6층으로 서서 졸업사진을 찍었다.

 

▲천연색으로 변한 졸업사진 34회(1980년)

 

 

▲학생과 교사가 한 줄로 변한 졸업생. 인구의 탈 시골화와 도시 집중으로 학생 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64회 졸업사진, 총 14명이다

빛바랜 졸업사진에서 세월의 역사를 본다. 1회(1949년)부터 점점 졸업생수가 늘어나다가 1970~80년대까지 정점을 찍고, 1987년부터는 졸업생 수가 다시 1회 졸업생처럼 숫자가 줄어들어 인구가 탈시골을 벗어나 점점 도시로 집중화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구의 도시 집중화로 점점 줄어드는 시골초등학교 학생수

 

 

1회 졸업생사진(1949)을 보니 남학생 25명에 여학생 14명으로 한복에 조끼를 입은 남학생도 있었고, 통치마 저고리를 입은 여학생도 눈에 띠었습니다. 해방직후 얼마 되지 않는 때여서 마치 시간의 역사를 보는 느낌이 듭니다. 1회 졸업생을 배출 한 후 졸업생 수는 점점 늘어나다가 70년대에서 정점을 이루더니 점점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4회 졸업생(1982년)부터는 사진이 컬러로 변했습니다. 80년 대 중반 이후부터는 졸업생 수가 두 줄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졸업사진을 찍을 때는 책상과 의자로 높 낮이를 조절하여 층층히 서서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학생 수가 많을 때에는 5층 6층까지 탑을 이루듯 서서 사진을 찍었는데 80년대 이후에는 그 탑이 세 줄 두 줄로 줄어들더니 2000대 이후에는 마침내 한줄로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말 현재 전체 학생 수는 초등학교 56, 유치원 14명에 교직원 21명으로 그 중에 6학년 학생 수는 단 6명에 불과했습니다. 시골에는 인구의 공동화로 어린이들의 기근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젊은 층들이 고향을 등지고 시골을 떠나 도시로 진출했음을 반증해주고 있는 샘입니다. 빛바랜 몇 장의 사진에서 해방이후 한국의 경제와 역사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듯합니다.

 

지난 64년 동안 4,82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던 고향의 초등학교는 학생 수와 교직원 수가 점점 비등해지는 기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미 오지의 많은  초등학교가 폐교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더 일어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시골의 초등교육 미래가 앞으로 자못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교인 삼향동초등학교는 다행히 인근에 전남도청이 들어서면서 주변에 인구가 늘어나고 있어 폐교는 되지않을 것 같다.

 

*사진 저작권자 : 삼향동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