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단비야 고맙다!

찰라777 2015. 4. 3. 09:03

파브르의 정원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단비가 내렸다. 얼마나 기다리던 봄비인가? 천둥이 치고, 강풍이 불고마치 콩 볶는 소리 같은 빗줄기가 세차게 지붕과 유리창을 두들겨댔다. 42일 오후 9시 현재 연천지역 강우량은 33.5mm라고 한다. 그 이후에도 비가 계속 내렸으니 아마 50mm는 오지 않았을까? 농부들에게는 참으로 반가운 단비다.

 

 

▲빗물을 머금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수선화

 

 

서울 도심에 살 때는 비가 오면 그저 오는가 보다,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면 출퇴근을 하는데 귀찮겠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다. 그러나 시골에서 채소를 가꾸고, 텃밭 농사를 짓다보니 자연히 날씨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오래 가물다가 빗방울이 떨어지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잠시 집을 떠나 여행을 하다가도 바람이 세차게 불면 '혹시 해바라기가 쓰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좀이 쑤신다.

 

정원을 가꾸거나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해, , 구름, , 채소, 식물, 곤충, 농작물 등은 모든 게 때어 놓을 수 없는 귀한 존재들이다. 그 하나하나가 맞춰져서 제 때 제 자리에 있을 때에 아름다운 정원, 수확을 기쁨을 맞볼 수 있는 논밭이 될 수가 있다.

 

 

▲비를 맞고 훌쩍 커버린 시금치

 

 

이곳 연천 임진강변으로 이사를 온 지도 어언 3년이 지났다. 그 동안에 버려진 모래땅과 자갈 밭을 일구어 200평의 텃밭을 만들었다. 이 텃밭에 각종 채소와 감자, , 옥수수, 오이, 토마토, 가지 등을 심고, 작은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매년 삽과 괭이로 조금씩 일구다보니 어느덧 200여 평이나 되는 텃밭이 생겨났다. 평생을 도심에서만 살아오던 나에게는 매우 넓은 텃밭이다.

 

첫해에는 상추, 오이, 고추, 가지, 호박 등 몇 가지만 심어서 먹었는데, 점차 배추, 마늘, 당근, 감자, 고구마, 콩 등 작물의 범위를 넓혀가게 되었다. 척박한 모래밭에 매년 잡초와 음식물 쓰레기로 퇴비를 만들어 뿌려주니 점점 땅이 비옥해져갔다. 그러다 보니 농사도 점점 더 잘 되어 갔다. 자갈땅은 한꺼번에 일구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매년 호박 구덩이를 파며 구덩이 숫자를 점점 늘려가다 보니 경작을 할 수 있는 땅이 늘어나고 마침내 문전옥답으로 변해갔다.

 

 

▲모래땅과 자갈 밭이 문전옥답으로 변한 텃밭

 

 

처음에는 농사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고 모래밭에 토마토, 마늘, 배추 등도 심어 보았는데 토질이 맞지 않아 흉작이 되고 말았다. 모래밭에는 감자와 고구마, 당근 등 땅 속에서 자라는 뿌리 작물이 잘 컸다. 그래서 모래밭에는 주로 뿌리 작물을 심고, 자갈밭에는 해마다 땅을 뒤집으며 돌을 골라내면서 배추, 상추, 토마토 등 채소류를 심었다. 이제 텃밭이 점점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나는 비 온 뒤의 텃밭과 정원을 바라보며 초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파브르의 곤충기>를 떠 올렸다. 앙리 파브르(1823~1915)는 프랑스 남부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신이 좋아하는 곤충을 관찰하고 연구를 했다. 어린 시절부터 파브르의 꿈은 곤충을 관찰 할 수 있는 뜰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책 한 권을 사면 끼니를 굶어야 할 정도로 너무나 가난했다. 파브르는 자기가 어린 시절 자란 뜰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했다.

 

 

▲산수유

 

 

"우리 집 뜰은 제일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나무 한 그루 없고 마을에서 제일 작은 뜰이었는데, 그곳에는 배추 밭, 무 밭, 그리고 상추 밭이 있었다. 그것이 전부다."

 

그러나 그는 가난한 생활을 극복하며 40년 동안 마침내 그가 바라던 뜰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파브르가 뜰을 갖게 되었을 때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썼다.

 

"내가 오래도록 가지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아담한 땅, 넓지는 않아도 된다. 울타리가 있고 시끄러운 길가에서 조금 떨어진 땅. 기름질 필요도 없다 늘 뙤약볕이 내리쬐고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민들레와 벌들이 좋아하는 곳. 조용히 나나니나 땅벌에게 '어떻게 살고 있니?'하고 물어볼 수 있고 실험을 통해서 서로 마음을 알 수 있으면 된다. 이것이 내 꿈이었다. 40년의 피나는 인내 뒤에 이제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자두나무 꽃망울

 

 

파브르는 그 척박한 땅에 서곤충이 모여드는 뜰을 바라보고 싶었던 것이다. 누구 한 사람 무씨를 뿌리려고 하지 않는 척박한 땅이지만, 그 곳은 벌들에게는 천국이다. 엉겅퀴와 갖가지 야생화들이 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벌이란 벌은 모두 찾아들었던 것이다. 비록 자갈투성이의 뜰에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났지만 파브르는 그곳에서 많은 곤충과 함께 살 수 있어서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은퇴를 하면 나만의 작은 텃밭과 정원을 가꾸며 살아가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나는 우연히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비록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내 소유의 집은 아니지만 나는 그 꿈을 이루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살고 있는 동안은 내가 주인이 아닌가?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나에게는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대추나무 묘목

 

어제 대추나무 묘목을 옮겨 심고, 오늘 오전에 감자를 심었는데 아주 적기에 비가 내려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이다. 단비가 내리고 나니 수선화, 꽃잔디가 활짝 피어나 미소를 짓고 있다.

 

산수유도 노랗게 채색을 하여 정원에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다. 나는 노란색을 유달리 좋아하는데 그것은 마치 생명을 잉태하는 색깔이기 때문이다. 매화, 살구, 자두나무도 일제히 꽃망울을 맺으며 곧 터져 나올 기세다.

 

내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이곳 연천군 동이리 임진강변은 주중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최전방 오지다. 동이리 마을과도 3km 정도 떨어져 있고, 마을사람들이 경작을 하고 있는 논밭과도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굼굴산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농약의 피해를 받지 않는 천혜의 자연과 접해 있다.

 

▲매화 꽃망울

 

 

농약을 치지 않고 텃밭 농사를 짓다보니 갖가지 야생화가 피어난다. 꽃이 피면 자연히 벌과 나비들의 천국이 된다. 꿩과 각종 새들이 날아들고, 고라니와 너구리, 들 고양이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때로는 멧돼지란 출현한다. 비록 내 소유의 땅은 아니지만 나는 파브르 못지않게 노년의 삶을 즐기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금굴산 밑을 산책하는데 너구리가 후다닥 놀라며 도망을 쳤다.

 

 

▲꽃잔디와 함께 피어나는 수선화

 

 

하늘이 이렇게 고마운 단비를 내려 주셨으니, 오늘은 상추모종을 사와 심고 쑥갓, 당근, 부추도 파종을 해야겠다. 강낭콩과 완두콩도 심고, 호박도 파종을 해야겠다. 하늘이 내려준 은혜를 놓칠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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