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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 동상이 피사의 탑처럼 기울어져 있는 이유

찰라777 2015. 5. 27. 05:40

죽은 사람의 영혼을 심판한다는 유달산 '일등바위'

사람이 죽으면 사후에 그 영혼은 어디로 갈까? 그 사람의 업보에 따라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할까?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새삼스럽게 인간의 사후 세계를 생각해 본다.   목포시에 위치한 유달산 정상에는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영혼을 심판한다는 '일등바위'가 있다. 일등바위는 노령산맥의 큰 줄기가 무안반도 끝에 이르러 마지막 용솟음을 하며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유달산 꼭대기에 있다. 유달산은 높이 228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목포시를 병풍처럼 끌어안고 다도해로 이어지는 서남단의 끝에 우뚝 서 있다.
▲목포시를 병풍처럼 끌어 안고 있는 유달산(참고자료 : 목포시)
▲오래전 육지와 연결되기전의 삼학도를 그린 산수화(참고자료:목포시)   유달산의 또 다른 이름은 '영달산'으로 영혼이 거쳐 가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랜 옛날부터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영혼이 이 영달산 일등바위에서 심판을 받은 뒤, 이등바위로 옮겨간다고 전해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일등바위에서 심판을 받은 영혼은 이등바위로 이동하여 잠시 대기를 하고 있다가, 극락세계로 가는 영혼은 세 마리의 학(삼학도)을 타고 가고, 용궁으로 가는 영혼은 고하도 용머리를 타고 가다가 거북섬(목포와 압해도 사이에 있는 섬)에 있는 거북이 등에 실려 용궁으로 간다고 한다.    ▲노적봉에서 바라본 유달산 일등바위(노적봉 뒤)와 이등바위(오른쪽)  유달산 초입에 있는 노적봉에서부터 유달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노적봉 오른 쪽으로 돌아가니 괴상하게 생긴 나무 한그루가 눈에 띠었다. 여인이 하반신 모습을 하고 있는 이 해괴한 팽나무를 사람들은 다산목(多産木)이라 부른다.

▲노적봉 밑 다산목    작지만 정복되지 결코 않은 노적봉    다산목을 끼고 돌아서면 우람하게 솟아오른 노적봉 전체를 바라볼 수 있다. 노적봉은 해발 60m의 바위산에 불과하지만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호국혼이 담겨있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은 불과 12척의 배로 불가능해 보였던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명량대첩에서 대승을 거두고 유달산 앞바다에서 전열을 재정비하던 이순신 장군은 적은 숫자의 수군과 군량미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노적봉  그런 상황에서 왜적의 배가 진을 치고 유달산 앞바다에서 우리 군의 정세를 살피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노적봉을 볏짚으로 덮어 마치 군량미가 산처럼 많이 보이게 하고, 바닷물에 백토를 풀어 밥을 짓는 쌀뜨물처럼 흘려보내 조선의 수군과 군량미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러자 왜군들은 군사가 많은 줄 알고 지래 겁을 먹고 스스로 물러났다. 이러한 일이 있는 후로 이 봉우리를 노적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노적봉은 작은 바위산이지만 이순신 장군의 전술로 임진왜란 때에도 결코 정복되지 않았던 봉우리다.      피사의 사탑처럼 살짝 기울어진 이순신 장군 동상    노적봉을 뒤로하고 계단에 올라서니 유달산 중턱에 우뚝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나타났다. 충무공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1974815일 세워진 동상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순신 장군 동상은 피사의 탑처럼 옆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    ▲피사의 탑처럼 살짝 기울어진 이순신 장군 동상  처음 동상을 보는 순간 뭔가 잘 못 세워진 동상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동상은 중심선을 기준으로 했을 때 투구까지 약 0.5도 기울어져 있다. 그 사연을 알아보니 장군의 동상이 일본이 있는 쪽을 정확한 각도로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기울어지게 세웠다고 한다    장군의 동상이 약간 기울어져 있는 것은 장군의 사후에도 일본의 동향을 계속 살피고 기운을 약하게 만들어 다시는 침략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침략하는 왜적을 단칼로 베어버리기 위해 곧 바로 칼을 뽑으려는 자세를 나타내고자 일부러 기울어지게 만들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큰 칼을 바로 빼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죽어서도 일본 쪽을 바라보며 왜적을 감시하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일본은 위안부 문제 등 전 세계의 비난을 받고 있지만, 사과는 커녕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 이를 보면 그들은 침략 근성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정치인들은 나라 걱정보다는 당리당략을 위해 이전투구를 벌리며 서로를 물어뜯고 있다. 큰 칼을 차고 두 눈을 부릅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서릿발 같은 호령이 부끄럽지도 않는가?    ▲유달산 일등바위  간담을 서늘케 하는 충무공 동상을 뒤로 하고 비지땀을 흘리며 일등바위에 올랐다. 점점이 크고 작은 섬으로 이어지는 다도해! 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다고 한다. 일등바위에서 바라보는 다도해는 아름답다.
▲유달산 일등바위

내 영혼은 사후에 이 일등바위에서 어떤 심판을 받게 될까? 여객선이 뱃고동을 길게 울리며 목포대교를 지나 항구로 들어 온다. 나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젖어 있다가 이등바위로 가기 위해 일등바위를 내려왔다    ▲일등바위에서 내려다 본 다도해와 목포대교  이등바위는 유달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목포 시내 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마부가 말을 끄는 형상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실어나르는 마부일까? 왼편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이등바위에 오르니 정상은 단단한 화강암 덩어리다. 

▲마당 바위에서 바라본 일등바위와 이등바위(우)   ▲이등바위 정상은 너르고 평평하다. 죽은 영혼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라고 하는데...  이등바위에 오르니 정상부위가 제법 널따랗고 평평하다. 사람들은 이등바위를 신선들과 죽은 사람의 영혼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라고 말한다. 죽은 사람의 영혼도 저승길을 가기 전에 잠시 쉬어가라고 평평한 자리를 만들었을까?
오른쪽으로는 목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쪽으로는 압해도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다도해의 섬들이 보인다.     ▲수도승처럼 보이는 독승바위
정상 한쪽에는 동그란 바위가 얹혀 있는데, 그 모습이 꼭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행정진을 하는 수도자의 모습을 닮아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 바위를 '수도바위' 혹은 '독승바위'라고도 부른다. 잠시 수도바위 곁에 가부좌를 틀고 잠시 명상에 잠겨 본다  이등바위에서 내려와 조각공원, 난전시장을 지나 다시 노적봉으로 내려왔다. 이순신 장군은 이곳 유달산에서 107일 동안 머물며 위장전술로 노적봉을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쳤다그 노적봉에는 마치 장군이 호령을 하고 있는 듯한 큰 바위 얼굴이 있다. 이 큰바위 얼굴과 맞은편 이순신장군의 동상은 서로 마주보며 나라를 걱정하고 있다.





*******유달산 갤러리*******

남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유달산은 아름다운 바다와 함께 거대한 수석처럼 보인다. 산 중턱 곳곳에는 누각이 설치되어 있어 풍류를 한층 느끼게 한다. 대학루, 달성각, 유선각, 소요정 등의 많은 정자가 쉼터역할을 하고 있다. 가수 이난영 '목포의 눈물' 기념비, 우리나라 최초의 야외 조각공원 등의 볼거리가 많으며, 2.7km의 유달산 일주도로는 목포시가지와 다도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유달산(儒達山)은 온 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바위산이다. 날카로운 암봉들이 많은 유달산은 악하고 모난 기운을 없애려고 많은 나무를 식재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바위와 수목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으며 산마루마다 칼날 같은 암봉들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어 목포 사람들의 단단한 기개를 보여주는 듯하다. 자연의 기묘한 조화로 만들어진 유달산의 수많은 기암괴석들은 오랜 세월동안 전설과 사연을 간직하면서 오늘도 목포 땅을 굽어보고 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제 유달산의 등산로를 따라 그 바위들의 이야기와 형상을 찾아가 보자. 갤러리 밑에 설명은 목포시 문화광광과 홈페이지 설명을 참조하였다.

다산목(多産木)의 전설

도대체 이게 무슨 나무인고? 새천년 시민의 종각을 빠져나와 노적봉을 향해 가다 보면 노적봉 뒤편에 자리한 숲 속에 지나는 행인을 유혹하듯 가랑이 쩍 벌리고 앉아 있는 팽나무가 눈에 띈다. 목포의 새로운 명물이다. 이 나무는 이곳에 무성히 자라 있는 풀을 깎던 중에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여자의 하체를 영락없이 닮았으니 자연의 섭리치고는 신기하기만 할 뿐이다. 이 나무를 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들을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분명치는 않지만 1900년대 유달산 아래 목포시 죽교동의 한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이 나무의 사연이 구전되어 오고 있는데 원래 이 나무는 맨 처음 발견된 어미목을 일컫는 말로 여한목(여한목:한스러운 여인나무)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1910년 여한목에서 뻗어 나온 새끼목을 다산목(多産木)이라고 하였다. 2000년부터 목포시청이 이 기괴환 모습을 한 새끼목을 여인나무라 부르다가 전해오는 설화에 따라 다시 2007년 공식적인 나무 이름으로 다산목(多産木)이라고 정하여 현재 목포의 관광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새우젓의 60%를 전국에 공급해 오던 전남 신안군 임자도 전장포의 한 어부 가족이 있었다. 어부의 아내는 18세에 시집온 후 무려 16명의 자식을 두었다. 식솔이 너무 많아 먹고 살기 힘들자 남편과 사위 한명이 돈을 잘 벌 수 있는 홍어 잡이를 위해 흑산도로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홍어를 만선하여 돌아오는 도중 거센 풍랑에 배가 침몰하여 둘다 죽고 말았다. 비보를 접한 어부의 아내와 죽은 사위의 배필인 딸은 각각 남편들이 반드시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버릴 수가 없었다. 처음엔 딸의 한쪽 다리가 성치 못해 어머니 혼자 인적이 드물고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유달산 노적봉 옆 언덕에서 어선들이 돌아오는 고하도 쪽 길목을 지켜보았다. 남편이 올까 사위가 올까 몇날 몇일을 기다리다 지친 그녀는 결국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고 얼마 후 기괴한 여인의 모습을 한 여인나무(어미목)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남편을 기다리던 딸은 어머니마저 돌아오지 않자 아픈 다리를 붙들고 길을 나섰다. 결국 어미목이 있는 곳에 이르러 어머니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딸은 그 자리에서 한스러운 세상과 여인의 모든 수치심을 버린채 생을 포기하고 현재의 기괴한 모습으로 죽고 말았다.

 

딸은 어미목(여인나무)에서 뻗어 올라 자라온 새끼목이 되었는데, 이 나무를 오늘날 다산목(多産木)이라 부른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사위를 죽어서까지 지금도 두 모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신비로운 모습의 다산목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두 여인의 진정한 사랑의 마음, 가정의 편안을 기원하는 애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쥐바위
유달산 정문 앞에 이르면 왼편으로 유달산이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계단을 올라서면 아담한 공원이 나오는데 마치 쥐 한 마리가 바위를 타고 있는 듯한 모습이 아주 사실적으로 펼쳐진다. 이 바위를 목포 사람들은 쥐바위 라고 부르는데 노적거리 앞에는 쥐가 살아야 한다고 하는 풍수설의 설명과 맞아떨어지는 바위이름인 것이다.
반면 옆에서 볼 때는 노적봉을 향해 두 손을 내려놓고 기도하는 복을 비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어 ‘복바위’라 부르기도 하고, 옛날 어른들의 탕건과 같다하여 ‘탕건바위’로도 불린다.
공원 중앙에는 긴 칼 옆에 차고 큰 눈 부릅뜬 채 목포를 수호하듯 서 있는 충무공 동상이 맨 먼저 방문객을 맞이한다. 그 옆으로 만들어진 꽃동산과 벤치에는 평온하게 한때를 즐기는 가족들과 연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유달산에 오르는 초입인 이 곳에서 유달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눈에 만끽할 수 있다.



오포대


이난영 노래비




투구바위유선각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다보면 왼편 여기저기에 바위들이 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날렵한 바위가 투구바위이다. 투구모양 같기도 하며 코뿔소의 뿔 모양 같기도 하다. 위로 솟아 있는 장식이 없어 밋밋한 투구처럼 보이지만, 비스듬히 서 바라볼 때 투구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투구바위는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설화를 지니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고하도에서 108일 간 머무르면서 목포 앞바다를 무대로 고금도 쪽으로 싸움터를 옮기기 위해 군량미를 확보해야 했다. 오가는 배를 통한 통행세를 곡물로 받아 군량미를 확보하고 목포 사람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전략상 목포를 떠나야했던 마지막 날 이순신 장군은 유달산에 올라 내려오면서 일본이 목포를 넘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투구를 벗어 놓았는데, 그것이 지금의 투구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고래바위유선각을 지나 계단을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달성사가는 길이있고, 일등봉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길이나타난다. 계단으로 오르기 전 위를 쳐다보면 거대한 고래가 입을 벌리고있다. 고래처럼 생겼다하여 고래바위라 하며 일명 '두꺼비 바위'라고도 부른다.
고래의 입 모양처럼 생긴 부분이 등산로 계단 부위에 돌출되어있어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은 의례 고래 입주둥이 부분을 한번씩 만져보면서 오른다.
종바위고래바위의 입을 쓰다듬으며 돌아가면 관운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있다. 하늘로 치솟아있는 입석바위 바로 위편에 종 모양의 바위가있다. 절에서 흔히 볼수있는 범종과 다른 서양식 종으로 아래쪽에서 볼때 확연히 종 모양임을 알수있다. 종바위를 지나면 관운각과 일등봉이 두둥실 나타난다.

달성사



애기바위(두 엄씨 바위)관운각 맞은편에 있는 바위로 ‘애기바위’, ‘큰 엄씨 · 작은 엄씨 바위“라고도 한다. 높이 솟아 있는 두 개의 바위 주변에는 여러 개의 바위들이 널려 있으며 조금 아래의 남쪽에는 몇 개의 벤치가 있다. 큰 엄씨가 애기를 업고 작은 엄씨에게 등을 돌리고, 작은 엄씨도 애기를 업었는데 큰 엄씨를 보려고 하는 형상이다. 이곳은 마당바위로 오르는 능선이 남동쪽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어 두 엄씨는 거센 바다 바람을 등지고 애처롭게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내려다보면 제 모습을 볼 수 있다.


조대바위조대바위는 애처롭게 서 있는 애기바위 뒤편 아래쪽에 있다. 고하도 앞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팔짱을 끼고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는 낚시꾼을 보는 듯하다. 등뒤의 큰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책상다리로 앉아 있는 모양인데 네 개의 바위가 합쳐져 이러한 모양을 만들어 냈다. 이곳에서는 다도해의 잔잔한 바다와 길게 늘어진 고하도, 옹기종기 모여있는 온금동 마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으며 안개자욱한 날에 바라보면 더 이채롭다.



나막신바위관운각 아래에는 마당바위로 가는 길과 곧장 일등봉으로 가는 갈림길이있다. 나막신바위는 아래 길 쪽으로 기울어져있으며, 갈림길에서 보이는 부분이 나막신의 앞부분이다. 둔탁한 직사각형의 바위인데도 앞끝이 살짝 위로 올라가 나막신을
입석바위관운각에서 바당바위로 오르는 길에 있는 바위로 크고 작은 장방형의 네모 반듯한 두 개의 바위다. 일등봉의 능선에 걸쳐있는 이 바위는 바위능선의 지질변화 과정 중 수직으로 절리되어 기둥처럼 우뚝 서 있게 된것이다. 정면에서는 사각기둥 모양의 평범한 입석으로 보이지만 옆면이 길에 뻗어있어 상당한 규모임을 자랑하고있으며, 이곳이 유달산 상봉으로 가는 길목임을 상징하는듯하다.

마당바위어른 10명이 앉아서 쉴 정도의 마당같이 넓은 바위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당바위로 오르는 길은 계단을 만들기 힘들어 바위의 능선을 계단모양으로 깎아 내고 시멘트를 발라 만들었다. 마당바위 맞은편에는 일등봉 전면이 보이고 중앙에 손가락바위가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바로 일등봉을 오를 수 없어 다시 관운각까지 돌아가야한다. 이 바위 근처에서 봉화불을 피웠을 가능성이 많다고 전한다.








흔들바위일등바위를 지나 이등바위를 향해 가다보면 흔들바위가 보인다. 급하게 경사진 암반 끝에 있어 실바람만 닿아도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흔들바위는 장정 대여섯명이 올라갈 수 있는 평평한 면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에 올라 주변 경치를 바라보는 재미도 뛰어나다. 또한 이곳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커다란 바위면을 직접 깎아 만들었는데 주변 바위들과 어울림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얼굴바위일등바위에서 흔들바위를 지나면 소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는 큰 바위더미를 돌아가야 한다. 바위의 아래로 돌아서 지나야 하는데 돌아가기 전이나 돌아간 후에 바위를 올려다보면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바위의 끄트머리가 갑자기 튀어나와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데 포효하는 남자의 얼굴로 보인다.

이등봉
  수도바위(똥바위)
이등바위의 정상부는 제법 널따랗고 평평하다. 사람들은 신선들이 쉬어가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곳에는 동그란 바위가 얹혀 있는데 수도정진 하는 수도자의 머리 모습을 닮았다 하여 ‘수도바위’라고 부르며, 애칭으로 ‘똥바위’라고도 한다. 둘다 걸맞는 이름이다. 수행정진하고 있는 수도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마당바위에서 봐야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고,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꼭 똥 덩어리처럼 보인다.
이곳에서 신들이 연회를 벌이면, 금반 위에 온갖 산해진미와 주지육림을 쌓아놓고 옥로주와 먹구슬나무주를 금복개로 떠 마시면서 즐기고 자시고 하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어느 신이 갑자기 대변이 마렵자 다급히 앉아서 힘주어 노란 황금빛 똥 한 덩어리를 싸 놓은게 아닐까. 온갖 진미란 진미는 다 맛보고 사는 신이 싸놓은 똥이기에 누런 황금 빛깔의 찰진 똥 덩어리가 아니었겠는가.


특정자생식물원
유달산 달성공원 내에 위치한 식물원으로 희귀식물과 멸종 위기의 자생식물을 보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식물원이다. 이 식물원의 특징은 체계적인 환경관리로 자생식물의 서식환경을 조성해 양서류, 파충류 등이 공존하는 안정적인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공적이기는 하지만 식물원 내에 먹이사슬까지 구축되어 있어 식물원의 또 다른 모델이 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조각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