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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풍요롭고 행복했던 날...동국문학상 시상식에서

찰라777 2015. 5. 19. 15:31

 

 

 

5월 15일, 서정란 시인이 <동국문학상>을 수상한다는 초청장이 와서 연천을 출발했다. 오후 5시에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시상식을 한다고 했다. 이른 점심을 먹고 12시에 동이리를 촐발했다. 마침 처제가 전라도 광주에서 이곳까지 온다고 했다. 처제를 소요산역에서 만나기로 해서 아내가 운전을 하고 나를 데려다 줄 겸, 처제를 마중할 겸 해서 소요산 역에 도착을 했다.

 

소요산 역에 도착을 하니 오후 1시다. 종로 3가에서 지하철을 탔다는 처제는 지하철을 잘못 타는 바람에 두 번이이 갈아 탔다고 한다. 한 번은 도봉산 역에서 내려 소요산 간다고 하는 전철을 탔는데, 의정부에서 다 내리라고 방송을 하더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내려 다시 소요산 가는 전철을 기다리다 다시 타고 왔다고 한다. 1시간 반이면 도착 할 텐데 처제는 2시간이 지나서야 소요산 역에 도착했다. 하기야 평생 서울에 사는 나도 휏갈리는데 시골에서 지방에서 올라온 처제는 오죽할까?

 

서정란 시인과 나는 우연히 블로그에서 만난 사이인데, 2년 전 그녀는 내가 쓴 임진강 주상절리 코스모스 기사를 보고 안양에서 연천까지 왔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주상절리 코스모스 길에서 정말로 우연히 만났다. 그녀가 나를 먼저 알아보았는데, 그 땐 청정남 아우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과 함께온 그녀는 어쩐지 보는 순간 순수한 서정이 느껴졌다. 아무튼 그 뒤로 우린 서로 친구가 되었다.

 

 

 

 

전철에 오른 나는 서정란 시인이 선물을 한 <어린 굴참나무에게>란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참나무 중에서도 굴참나무를 참 좋아하는데, 우연히 그녀의 시집 이름도 <어린 굴참나무에게>였다. 이 시집에 게재된 시 중에서도 나는 <굴참나무에게 쓰는 유서>란 시가 참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모든 것을 다 내주는 굴참나무에게 유서를 쓰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이 나를 사로 잡았다. 나는 시집을 읽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잠을 자다가 오른쪽 고개가 아파 눈을 떠보니 겨유 회룡역이다. 아직도 절반이나 남았다. 나는 다시 시집을 읽다가 또 잠이 들었다. 사실 오늘 아침 5시부터 텃밭에 나가 풀을 베고, 물을 주고, 북을 해서 좀 노곤했다. 그래서인지 전철에 앉아 등을 대자 말자 눈이 스르르 감겼다. 이번에는 왼쪽 고개가 아파 눈을 떠보니 청량리 역이다. 이크, 이젠 정말 잠을 자지 말아야 할 텐데.... 이번에야 말로 다시 잠이 들면 종각역을 지나치고 말 것이다. 스마트 폰이 고장이 나서 종각역에 있는 삼성 서비스 센터에서 수리를 받아야 한다. 크크 전철은 내가 잠을 자는 침대다. 무료 숙박소다. 깜박 조는 잠맛이 꿀맛이다.

 

 

▲대학로 오래된 건물

 

 

그런데...나는 또 깜박 졸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서울역이다. 이거야 정말~ 나는 서울역에서 거꾸로 오는 지하철을 갈아탔다. 종각역까지 거의 2시간이 다 걸렸다. 처제가 전철을 잘못 타서 헤메는 거나 내가 졸아서 헤메는 거나 뭐 별반 다름이 없다. 시실 연천 우리 집에서 서울 시내까지는 거리상으로는 100여km 되는데, 시간상으로는 전라도 광주 가는 거리와 맞먹는다. 대중교콩을 이용하면 기다리는 시간가지 해서 거의 4시간이나 걸린다.

 

 

삼성서비스센터에 도착하여 스마트 폰을 점검해보니 충격을 받아서 고장이 난 것이라고 했다. 통하는 그런대로 할 수 있는데 사진를 찍으면 검은 반점이 크게 나온다. 이 현상은 렌즈를 갈아야 고칠 수 있다고 하는데, 렌즈 교환값이 1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앓는니 죽는다고 했던가? 고치는 것보다 아예 새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서비스 직원의 말이다.

 

마침 직매장이 있어 상담을 해보니 새로 출시된 갤럭시 C6 모델이 사진 화소도 1600만 화소에다 최신형으로 성능이 뛰어나다고 했다. 나는 월 35,000원 정액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C6으로 바꾸면 월 74,000원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몇 번 만지작 거리다가 그냥 나왔다. 전화가 없던 시절도 잘 살아 왔는데 그가짓 사진에 혹점이 생긴다고 대수인가?

 

 

대학로에 도착하니 감회가 새롭다 . 오랫만에 걸어보는 대학로다. 아이비가 브라운 벽돌 담을 타고 오르고, 소극장 간판이 많이 보인다. 젊은이들이 많은 대학로는 활기가 차 보인다. <동국문학상> 시상식은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다고 했다.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니 바로 예술가의 집이 나왔다. 은행나무와 마로니에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마로니에 공원은 웬지 가슴이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한국방송통신 대학 건물이 보였다. 고등학교를 나와 곧 바로 은행에 취직을 하여 생활 전선에 뛰어 들었던 나는 1972년 이 방송통신대학에서 배움의 꿈을 키웠다. 그 배움은 나에게 미국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해주었다. 나는 부지런히 주경야독을 한 탓에 직장에서 미국 뉴욕으로 연수를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해외연수 파견 토플시험에 합격을 한 것이다.

 

그러니 마로니에 공원은 나에게 세계로 나갈 기회를 포착 할 수 있게 해준 동기부여를 해 주었던 고마운 터다. 그 배움은 대학원까지 연장되었고, 나는 경영학 석사 학위까지 받게 되었다. 기회는 찾는 사람에게, 그리고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 온다는 것을 그 때도, 그리고 지금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나는 옛 추억을 떠올리며 마로니에 꽃이 하늘 높이 피어있는 마로니에 공원을 가로 질러 <예술가의 집>에 도착했다.

 

 

 

 

 

예술가의 집 앞에서 나는 청정남 아우와 정예자 선생님을 만났다. 청정남 아우와는 블로그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그는 지금 그의 집인 연천에서 살게해준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정예자 선생님과는 14년 전 네팔 여행길에서 만났는데, 여행이 준 인연으로 친 누님처럼 지내고 있다. 아우는 서정란 시인에게 선물을 할 꽃다발을 들고 왔다. 꽃을 든 그의 모습이 싱그럽다.  우리 네 사람 다 우연히 만나 참으로 순수한 우정을 나누며 막연하게 지내고 있다. 그저 만나면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이다.

 

 

 

 

 

 

 

 

 

오늘의 수상을 어머님에게 바친다는 서정란 시인은 평생을 시를 쓰며 외길을 보내왔다고 한다. 힘들때나 즐거울 때나 기블때나 여행을 할 때는 그녀는 시를 썼다고 했다. 평범한 주부가 가정을 꾸리며 시를 쓴다는 것이 무척 장하게 보였다. 어렵게 사업을 하는 남편을 받들고, 자식을 낳아 가르치며 틈틈히 시를 쓰고 시집을 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린 그녀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를 하며 함께 기념 촬영를 하기도 했다.

 

 

 

 

 

시상식을 끝내고 <빈대떡신사>란 음식점에서 뒤풀이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서 빈대떡 신사 집으로 걸어갔다. 마로니에 공원은 점점 젊은이들로 가득찼다. 역시 젊음이 좋다. 수피가 버혀진 버즘나무,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마로니에 나무, 젊은 영혼, 음악, 그림, 예술... 삶이 거기 마로니에 공원에 녹아 있었다.

 

 

 

 

 

 

 

 

 

빈대떡 신사 집에서 우리는 막걸리에 빈대떡을 먹었다. 좀체로 마시지 않는 술인데도 오늘은 술술 잘 넘어 갔다. 청정남 아우도, 정애자 선생님도, 서정란 시인도, 시인의 친구들도 막거리를 술술 잘 마셨다. 아니 시를 마시고, 예술을 마시고, 삶의 이야기를 마셨다. 시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하는 마력이 있다. 동심은 순수하다. 나는 오랜 만에 취기가 돌 정도로 막걸리를 마셨다. 즐거웠다. 시인들이 있는 곳은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마음들이 풍요로웠다.

 

"밖에는 그렇게도 건조하고 삭막한데, 여기 시인들이 모인 자리는 이렇게도 풍요롭고 행복하군요!"

 

어느 원로 시인이 시상식에서 축사를 하며 한 말이다. 정말 그랬다. 시인들이 모인 자리는 풍요롭고 행복했다.  비록 고급 포도주가 아니고 국산 막걸리를 마시더라도 대화는 화기 애애 했으며, 즐거움이 넘쳐 흘렀다. 나는 막걸리에 취하고 시인들에게 취해 밤 8시가 넘어서야 자리를 떴다. 막차를 놓치기 전에 소요산으로 가는 전철을 타야 하기 때문이다. 소요산역으로 가는 전철을 타고 나는 이번에는 정말 마음 놓고 한잠 푹 잤다. 소요산은 마지막 역이기 때문에 지나칠 염려도 없다. 전차 바퀴를 자장가 삼아 한 숨 푹 자고 나서 일어나니 소요산 역이다. 이번에는 양쪽 고개가 다 아팠다. 얼마나 퍼질러 잤을까? ㅋㅋ 무료 숙박이라고 마음놓고 잔 모양이다.

 

텅빈 전동차, 밤 10시 10분, 마중을 나와준 아내가 이리도 고마을 수가!

 

"아내여, 고밤소! 오늘밤 나는 시에 취하고 막걸리에 취했소이다."

 

왕복 6시간의 긴 여행(?) 이었지만 행복했다.

행복이란 분명히 내 마음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