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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 오룡산

찰라777 2015. 5. 13. 12:33

다섯마리 용이 꿈틀거리는 오룡산

 

북으로 승달산, 국사봉, 대봉산을 지나

다섯 마리 용이 여의주를 얻으려고 다투는

오룡쟁주 전설이 전해내려오는 명당 

 앞으로는 영산강이 유유히 흐르고

전남도청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오룡산

승달산, 유달산, 선황산 ...

유(儒), 불(佛), 선(仙)이 한 곳에 만나는 혈처 

배산임수 남악의 명당에 오룡산이 있다네

 

▲남악 신흥저수지에서 바라본 오룡산

 

 

▲신흥저수지에서 바라본 전남도청

▲오룡산에서 바라본 전남도청

 

▲오룡산에서 바라본 남악 신도시와 저수지

 

 

58일 아침 950, 용산역에서 아내와 함께 목포로 가는 KTX를 탔다. 호남고속전철이 개통된 후 처음 타보는 기차다. 기차는 2시간 28분 만에 우리를 목포역에 내려 주었다. 전부다 무려 1시간 정도가 빨라진 것이다. 무명의 이기는 점점 더 속도를 내서 시간을 단축해 가고 있다. 그러나 싱싱 달리는 기차의 쾌속은 그만큼 위험도 가속이 된다. 빠른 만큼 위험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용산역

 

어버이날 고향을 찾은 것은, 이날이 어버이날이기도 하지만 장모님 생일과 겹쳐 있기 때문이다. 내 고향은 전라남도 무안군 용포리 오룡산이다. 나의 어머님이 살아계시면 108살이 된다. 그러나 어머님은 이미 30년 전에 돌아가시어 고향 오룡산 산소에 잠들고 계신다. 장모님은 올해로 89살이신데 아직 생존해 계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치매 증세가 심해 우리를 잘 알아보지 못하신다.

 

 

 

 

 

 

 

▲고향가는 길에 기차에서 바라본 풍경

 

 

목포역에서 내린 우리는 택시를 타고 막내 처남 집으로 향했다. 막내처남이 장모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집 근처에서 내린 아내와 나는 파리바케트에서 장모님이 좋아하시는 팥빵을 사고, 마트에 들려 과일과 꽃다발도 하나 샀다. 처남댁에 들어서서 장모님께 인사를 드렸지만 그냥 미소만 지으신다. 장모님은 언제부터인가 말을 잊어버리셨다. 아니 치매증세가 점점 더 심해지면서 90년 세월을 잊어버리신 것이다. 그러나 느낌으로 우리를 알아보셨는지 희미한 미소만 지으신다.

 

 

▲목포역에서 내려 장모님 품으로

 

어머니 품에 안긴 아내는 그만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부모님께 기대고 싶다. 그리고 부모님은 100살이 넘어도 80살 먹은 자식을 품에 안아주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사람 사는 사회이다. 아내는 꽃다발을 어머님 품에 안겨드리고 얼굴을 비벼보지만 장모님은 여전히 침묵 속에서 희미한 미소만 짓는다. 나는 그런 모녀를 방에 남겨두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오룡산 자락으로 걸어갔다. 오룡산은 목포시와 인접해 있다. 지금은 오룡산 밑에 전라남도 도청이 들어서고 아파트와 빌딩들이 밀집해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에는 이곳은 영산강이 흘러가는 바다였다. 그러던 것이 바다와 영산강 하구 원을 둑으로 막아 지금은 육지로 변해있다. 그리고 그 땅에 전남도청이 들어서고 많은 아파트와 빌딩들이 들어섰다.

 

 

▲신시가지로 변한 남악 신도시. 예전에는 갯벌이었다.

 

 

 

 

예부터 이 지역은 큰 도읍이 들어설 풍수지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지역 지명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오룡산은 5마리의 용이 으르렁댄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노령산맥 줄기는 승달산으로 타고 내려와 국사봉을 거쳐 오룡산에서 끝난다. 그 끝나는 지점에 오룡산이 바다와 접해 있다. 오룡산(226m)은 부주산을 지나 삼향천에서 영산강으로 가라앉는 나지막한 산이지만 다섯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얻으려고 다툰다는 오룡쟁주(五㡣箏珠)형의 명당으로 유명한 곳이다. 앞으로는 영산강이 유유히 흐르고, 멀리 월출산과 땅 끝 지맥으로 이어지는 혈이 뭉친 자리다.

 

 

묘하지만 마을이름도 이 전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용이 다시 돌아온다는 '회룡마을', 다섯 마리의 용이 산다는 '오룡촌', 모든 것이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온다는 '남악마을(나무아미타불이 나무-남악으로 변했다고 함)', 그리고 다시 크게 일어난다는 '신흥마을', 용포마을', '상용마을' 등 오룡산 자락에는 '()자가 들어간 마을 이름이 유독 많다. 전남도청은 바로 남악마을 과 신흥마을 터에 들어서 있다. 내가 태어난 마을은 용포마을인데, 옛날에는 마을 어귀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작은 포구를 이루고 있었는데, 둑을 막아 간척지가 개발되면서부터 논으로 변해있다.

 

 

 

 

▲전남도지사 관사

 

마을 어르신들은 예부터 남악을 신성한 기운이 모여드는 곳이라고 여겨왔다. 그리고 오룡산은 유(), (), ()이 만나는 혈처로 알려져 왔다. 즉 무안 승달산의 불교, 유달산의 유교, 영암구 미암면 선왕산 도교의 정기가 한데 합쳐지는 삼각형의 대지 명당이라고 한다. 거기에 남악은 뒤로는 오룡산이 병풍처럼 둘러앉고, 앞으로는 영산강이 유유히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이다.

 

 

 

 

일제강점기에 놓은 철길이 오룡산의 혈을 갈라놓고 있다. 그들은 우리 민족의 정기를 억누르기 위해 승달산과 오룡산이 이어지는 무너미 고개를 가르고 철로를 놓았다. 무너미고개보다 더 낮은 구릉인 몽탄지역에는 터널을 개설했지만 오룡산 허리는 일부러 잘라버렸다는 옛 어르신들의 증언이다. 지금은 철로를 철거하고 대신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 오룡산을 오르며 꿈을 키워왔다. 아마 내가 처음 오룡산을 오른 것이 내가 4살 정도로 기억된다. 어리다고 나를 항상 제쳐주고 형들만 산을 오르곤 했는데, 그날은 기어코 형들을 따라 산에 오르고야 말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쫑쫑 걸음으로 따라가는 나는 형들은 귀찮아했다. 아무래도 걸음이 더디고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기어코 형들을 따라 마침내 오룡산에 처음으로 올랐다.

 

 

 

 

 

오룡산 정상에 올라 바라본 세계는 별천지였다. 툭 트인 바다가 보였고, 멀리 섬들이 점점이 이어져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바다였다. 어린 내게는 그 풍경이 신비하게만 보였다. 그 때의 감동과 아름다운 풍경은 지금도 내 가슴에 생생히 남아 있다. 아마 이 풍경이 내가 해외로 나가고자 하는 시발점이 되었던 것 같다. 그 때 나는 언젠가는 온 세상을 돌아다녀 보리라는 결심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리고 마침내 어른이 되어서 나는 전 세계를 누비게 되었다. 어릴 때의 잠재의식은 이처럼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그 잠재의식이 분출되어 언젠가는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오룡산은 내게는 희망의 산이자, 내 인생을 키운 산이다.

 

 

초이선사

 

초이선사

 

고산 윤선도

 

왕인박사

 

가수 이난영

 

의제 허백련

 

 

 

 

 

도청 앞에 이르니 넓은 광장이 딴섬과 이어져 있다. 이 딴섬은 전에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지금은 육지로 변해 주변에는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다. 도청앞 광장에는 공원이 들어서고 분수대와 정원이 들어서 있다. 고원에는 이 지역 출신 인물인 초의선사, 이난영, 왕인박사의 총상이 세워져 있고, 추사 김정희와 허백련 화백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오룡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도청우측으로 연결되어 있다. 신흥저수지를 끼고 걸어가면 한옥으로 지은 도지사 관사가 고풍스런 모습으로 나타난다. 도지사 관사를 바라보며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니 편백나무 숲으로 연결된다. 전에는 없는 수종인데 아마 도청이 들어서면서 심은 것 같다. 등산로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1.3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산은 가파르지 않고 완만하다. 유채꽃과 산딸기 꽃, 현호색 등 초여름 꽃들이 길섶에 피어 있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 참나무 숲으로 들어서자 다소 가파른 산길로 접어든다.

 

 

 

 

 

 

 

아무리 낮은 산도 깔딱 고개라는 곳이 있다. 오랜만에 산을 오르니 숨이 찬다. 숨을 고르며 서서히 20여분 정도 오르니 능선에 올라섰다. 능선에 올라서니 영산강과 이어진 남악 신도시가 한눈에 펼쳐진다. 전에는 순전히 갯벌이었던 곳이 아파트촌으로 변해 있다.

 

 

 

 

 

 

 

 

 

 

 

 

 

 

능선에는 송전철탑이 늘어 서 있다. 예전에는 큰 외솔이 서 있단 자리에도 송전탑이 괴물처럼 서 있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 4H클럽 이름은 그 외솔을 상징으로 <외솔4H 클럽>이라 이름을 짓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외솔나무도 외솔 4H클럽도 개발이라는 명제 하에 사라지고 없다. 개발은 편리함을 가져오지만 자연환경을 훼손시킨다.

 

영산강과 남악 신도시가 바라보인다. 크크 그냥 이 송전탑을 오룡산의 에펠탑으로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 철탑 사이로 바라보이는 풍경도 제법 멋이 있다.

 

 

 

오룡산에는 갖가지 야생화가 피어 있다. 산 전체가 흙산으로 기름진 땅이다. 그래서 예전에 오룡산은 약초가 많이 나기로 유명했다.

 

드디어 오룡산(226) 정상에 섰다. 그러나 나무들이 가려 전망이 좋지 않다. 정상표시석이 십자로 박혀 있다. 남쪽으로는 전남도청을 병풍처럼 감싸 안으며 목포시가지와 유달산이 바라보인다.

 

 

 

 

 

 

 

 

 

 

 

 

 

 

 

동쪽으로는 인의산과 멀리 월출산이 아스라이 바라보인다. 자방포 넓은 들이 펼쳐져 있고, 이동, 월계, 극배, 그리고 그 너머로 일로읍이 바라보인다.

 

북쪽으로는 덕임산과 덕치, 죽림, 그리고 국사봉 뒤로 승달산이 이어져 있다. 욮포들 앞에는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광양으로 이어지는 10번 고속도로가 새로 나 있고, 호남선 철로와 대불공단으로 가는 기찻길이 나 있다. 고요하기만 하던 옹포들이 이제 거미줄처럼 도로망과 철길이 나 있다.

 

 

 

 

 

 

 

 

 

산 정상 바로 밑에는 멋진 의자 구대가 놓여 있다. 그 밑으로 대안동마을이 보인다. 옥남초등학교로 이어지는 산기슭에는 신우대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옥남초등학교로 걸어내려 오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팥죽이 먹고 싶다는 것.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시골여행>이라는 음식점에서 팥죽을 맛있게 한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롯데마트 건너편에 있는 시골여행으로 가서 팥죽 4그릇을 28,000원에 샀다. 10년 된 집이라는데 주인이 친절하다.

 

 

오룡산 정기와 팥죽을 안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아내와 장모님, 처남과 함께 팥죽을 맛있게 먹었다. 팥죽 맛이 그만이다. 팥죽을 드시는 장모님의 얼굴이 편해 보인다. 90년 세월을 잃어버린 장모님은 마치 모든 것을 비워버린 도인의 모습이다.

 

샤워를 하고 장모님 곁에서 포근하게 잠이 들었다. 꿀잠이다.

장모님, 나의 장모님 부디 오래오래 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