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상사화

찰라777 2015. 7. 25. 07:29

솔잎 속을 뚫고 피어난 상사화 

 

 

 

참으로 미안합니다.

당신이 그곳에 계신 줄 깜박 잊고

솔가지를 쌓아 올렸군요.

 

 

 

잎이 돋아나 있을 때는

당신의 존재를

여실히 알고 있었는데

잎이 지고 나니

당신의 존재를

그만 잊어버렸답니다.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어

잎은 꽃을 그리워하고

꽃은 잎을 그리워하는

서로 어긋나는 그 아픔을

나는 아직 모르는 어리석은 중생인가 봅니다.

 

 

 

 

여린 꽃대 쑥 내밀고

잎을 찾는 사랑의 아픔을 

나는 아직 모르는 모양입니다. 

바늘처럼 따가운 솔가지 잎을 뚫고

올라오시느라 얼마나 아팠을까?

 

가시 밭이나 다름없는 솔잎 바늘 속에서

피어난 당신의 그 여린 모습을 보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랑은 아픔 속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당신...

 

 

 

 

이제 너무 외로워하지 마소서.

붉은 꽃봉오리 고개 내밀어

활짝 피어난 당신의 사랑을

온 우주가 받아주고 있으니까요.

 

텃밭의 고구마, , 당근, 상추, 토마토, 오이...

그리고 대추나무, 살구나무, 산수유나무님들이

당신을 반기고 있으니까요.

 

 

 

 

컴컴한 그늘 밑에서도

사랑의 싹을 틔우는

당신의 존재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장마비 내리는 오늘 아침

사랑은 원자폭탄보다 강함을

새삼 당신을 보고 다시 깨달았습니다.

 

 

 

 

아파하고 인내하며 피어난

당신의 위대한 사랑에

머리 숙여 갈채를 보냅니다,

 

그리고...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눈을 뜨게 해준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15년 7월 25일 장마비 내리는 아침에)

 

 

*노트

2년 전에 숭의전 건너 사시는 할머님 한테서 상사화 한 포기를 얻어와 잔디 정원 가에 심었습니다. 상사화는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어 서로 그리워하는 꽃입니다. 봄에 잎이 돋아날 때는 상사화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잎이 지고 나자 깜 그 존재를 잊고 그 위에 이웃집에서 잘라낸 솔가지를 땔감을 하려고 가져와 쌓아 올려놓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장마비를 맞고 금새 꽃대가 쑥 올라와 아름답게 피어났군요. 나는 바늘같은 솔잎 속에서 여린 꽃대를 내밀고 아름답게 피어난 상사화를 보고, 자책감과 함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너무 가물어 솔가지 그늘 밑에서 신음하고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바늘 솔잎에 짓눌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허지만 그 아픔을 딛고 상사화는 장마비라는 생명의 물을 마시고 하룻만에 쑥 피어났습니다.

 

나는 참으로 미안하면서도 상사화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상사화를 바라보고 있습니다.아픈 상처를 딛고 아름답게 피어난 상사화님께 갈채를 보내며 이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