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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靑出於藍)과 나의 2막 인생

찰라777 2015. 10. 28. 04:13

청출어(靑出於藍)

-한국전력 인재개발원 입석에 새겨진 청출어람의 의미

 

여행강의 청탁을 받고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한국전력공사 인재개발원에 도착하니 정원의 뜰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고 있다. 생각보다 넓다. 대한민국의 전력을 생산하는 2만 명이 넘는 조직원을 교육시키고 인재를 개발하는 요람답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3일에도 이곳에서 4시간 동안 여행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아직 단풍이 들기 전이었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는데 불과 일주일 사이에 단풍이 곱게 물든 원내가 너무 아름답다. 강의시간보다 20분 먼저 도착을 하여 시간적 여유도 있고 하여 천천히 경내를 둘러보다 보게 되었다.

 

본관 교육장을 찾아 낙엽 지는 가로수 길을 걸어가는데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입석이 눈에 띤다. 곱게 단풍이 물든 나무 사이로 2m 높이의 한얀 입석에 새긴 글이 가슴속으로 확 들어온다. 인재개발원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이 말은 순자의 권학(勸學)에서 나온 말인데 푸른색은 쪽에서 취한 것이지만, 쪽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이다. 즉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바둑으로 말하자면 조훈현 9단의 내제자인 이창호 9단이 스승의 경지를 뛰어넘어 바둑계를 재패한 것과 같은 말이다. 우리 속담에 나중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군자는 말한다. 학문이란 중지할 수 없는 것이다. 푸른색은 쪽에서 취한 것이지만 쪽보다 푸르고, 얼음은 물이 얼어서 된 것이지만 물보다 차다. 나무가 곧은 것은 먹줄에 부합하기 때문이지만, 구부려 바퀴로 만들면 구부러진 형태가 곡척에 부합한다. 비록 볕에 말리더라도 다시 펴지지 않는 까닭은 구부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먹줄을 받으면 곧게 되고, 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로워 진다.

 

군자는 널리 배우고 날마다 거듭 스스로를 반성하여야 슬기는 밝아지고 행실은 허물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산에 올라가지 않으면 하늘이 높은 줄을 알지 못하고, 깊은 골짜기에 가보지 않으면 땅이 두터운 줄을 알지 못하는 법이다.

 

 

일신월이(日新月異)는 한전이 빛고을 나주에 본사를 이전한 후 에너지밸리를 조성하겠다는 신년화두다.

 

순자의 청출어람을 되새기며 본관 건물에 도착하니 일신월이(日新月異)’란 말이 새겨진 플래카드가 보인다. 이는 지난해 한전이 서울 삼성동 시대를 마감하고 본사를 전남 나주로 이전하며 빛가람에 에너지밸리를 조성하여 지역균형발전을 도모 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말이라고 한다. 2015년 새 본사 터전에서 날이 갈수록 새로워진다는 한전의 신년 화두인 샘이다. 일신월이 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

 

대한민국 117년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한전의 빛가람 새 시대를 맞아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각오로, 가장 스마트하고 클린한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하면서 빛가람 혁신도시를 세계적인 에너지밸리로 만들겠습니다.”

 

 

나의 2막 인생’과 여행 강의 

 

현관을 지나 132호 강의실로 가니 전력산업에 대한 열정 기억하겠습니다란 현수막이 걸려있다. <열정>이란 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결과보다도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열정으로 일을 하면 실패해도 후회가 없다. 어떤 일에 쏟아 부은 열정,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오후 3, 나는 내년 3월에 은퇴를 할 은퇴예비자들을 대상으로 <나의 2막 인생>이란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다. 부제 타이틀은 <사랑할 때 떠나라>라는 내 책 제목을 그대로 인용을 했다. 나는 강의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내 체험을 바탕으로 난치병 아내와 함께 세계 일주를 했던 여행이야기를 온 열정을 쏟아 정성껏 강의를 했다. 다행히도 누구하나 졸리는 사람 없이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을 했다. , 여행 이야기이니까 가볍고 재미있기도 했으리라.

 

사실 내 인생의 사전에는 여행강의를 하겠다는 플랜은 없었다. 나는 30 넘게 은행, 증권회사. 저축은행 등의 금융기관에서 금융업무에 종사한 금융전문가다. 그러나 1998년 나를 평생 동안 보살펴주던 아내가 갑자기 난치병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게 되었다.

 

 

▲한국전력 예비은퇴자에 대한 강의실

 

 

당시 은행지점장으로 잘 나가던 나는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었다. 양방과 한방 그 어떤 의학으로도 완치가 어렵다는 난치병에 걸린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는 특단의 결심이 필요했다. 자가면역질환으로 췌장, 갑상선, , 심장 등 장기의 여러 곳이 망가진 아내는 급기야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어떤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는 치료 어렵다는 진단을 내렸다.

 

나는 아내를 살려내기 위해 <자연치유>에 대한 서적을 탐독을 하고, 아내와 함께 숲으로 들어가 살 계획을 세웠다. 숲에서 살면 아내의 몸에 다시 새로운 세포가 돋아나 기사회생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실날같은 기대감을 걸고마침내 나는 가족회의를 열어 조기은퇴를 결정했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아내와 함께 숲으로 떠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전 인력개발원 본관 후원에 지는 낙엽

 

 

1년 동안 전국의 숲을 찾아다니며 정착할 곳을 물색했다. 나는 국민대학 산림대학원에서 개설한 <숲해설가>과정까지 이수를 하고 숲으로 떠날 준비를 진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을 했다. “숲으로 떠나기 전에, 아니 죽기 전에 평생소원인 세계일주나 하고 싶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 데이윽고 나는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아내와 나는 몇 백 개가 넘는 인슐린 주시가, 약 등을 챙긴 배낭을 걸머지고 세계일주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IMF시대에 멀쩡한 직장을 팽개치고 다 죽어가는 아내와 함께 여행을다니다 보니 나는 미친놈이란 말까지 듣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여행>이 주는 <묘약>으로 아내에게 건강을 되찾는 기적이 찾아왔다. 나는 여행이 주는 명약을 위해 퇴직금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사는 집의 평수를 줄여나갔다. 그러고도 여행비용이 부족하자 강남에서 강북으로, 강북에서 지리산으로, 지리산에서 38선 이북으로 집을 옮기며 살고 있다.

 

 

▲곱게 물든 단풍

 

그렇게 해서 지난 17년 동안 아내와 함께 배낭을 걸머지고 세계80여 개국을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집은 줄어들고 시골로 이사를 했지만 아내는 건강을 되찾고 우리들의 마음은 점점 풍요로워졌다.

 

내가 찍은 비디오 필름으로 KBS 1TV <세상은 넓다> 프로에 무려 20여회를 직접 출연하게 되었다. KBS <아침마당>, MBC <임성훈과 함께> 출연을 비롯하여 기독교방송, 불교방송 등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을 했다. KBS 3 라디오에서는 내가 쓴 책 <사랑할 때 떠나라>를 한 달간 연속낭독을 하기도 했다.

 

각 신문 잡지에 우리부부의 세계일주에 대한 기사가 실리고 되었고, 기업체, 학교, 단체에서도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모두가 직장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리고 직장을 구하려고 난리를 치는 IMF시대에 아내를 살리기 위해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시한부 아내와 함께 세계일주를 한 내용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이다여행으로 기적 같이 살아난 우리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은 듣고 싶어 했다. 그 이후 나에게는 <여행전문가>라는 새로운 타이틀이 붙여졌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아내 덕분에 새로운 <2막 인생>을 열게 되었다. 아내 덕분에 세계일주를 하고, 여행강의와 더불어 각종 기고를 하며 나는 2막 인생을 바쁘게 살고 있다. 이렇게 여행강의까지 하면서 말이다. 이 모든 것이 아내 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금은 조기은퇴를 할 때에 결심했던 귀촌을 하여 숲에서 <나의 3막 인생>을 살고 있다.

 

 

나의 3막 인생의 시작 

나는 2010년도에 지리산 자락에 귀촌을 했다. 빈농가를 한 달에 10만원씩 세를 주고 살게 되었는데 1년 동안 집을 수리하고 나니 집주인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이사를 오겠다는 바람에 꿈에 그리던 지리산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지리산을 떠나기 싫어 작은 오두막을 하나 지어 살려고 집터 계약까지 했지만 잘못되어 계약금만 뜯기게 되었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2년여 동안 나는 매일 <섬진강일기>를 블로그에 올렸다. 섬진강일기는 의외로 독자층이 많았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주는 이미지도 신선했지만 그만큼 지리산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인연은 참으로 알 수 없다. 나는 그 섬진강일기 덕분에 지금 경기도 연천 임진강변에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지리산에서 쫓겨나던 날 마지막 일기를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 블로그를 읽은 독자가 지금의 <금가락지>를 선뜻 제공해 준 것이다. 그분은 마지막 섬진강일기 말미에 댓글을 달았다. 블로그에 단 댓글에는 한 번 가보시고 살 마음이 있으시다면 <섬진강일기>자를 자로 고쳐서 <임진강일기>를 써 보는 것이 어떠하겠느냐는 제안이었다.

 

▲한전인재개발원의 승화상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다니...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알 수 없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독자가 자신의 별장 같은 집을 선뜻 남에게 내 주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빈 집으로 두면 집이 곧 슬럼화 되기 쉽다. 그렇더라도 이런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고맙게도 나는 이곳 연천에서 벌써 4년째 살고 있다. 유기농 텃밭농사와 전원생활은 우리부부가 평생 꿈에 그려왔던 희망이다 우리는 평생 꿈꾸어 왔던 잔디정원이 있는 2층 집에서 유기농 텃밭을 가꾸며 살고 있다.  비록 내 소유의 집은 아니지만 사는 동안은 우리가 주인이 아니겠는가?

 

 

▲청출어람 입석과 승화상

 

2시간 강의를 끝내고 나는 강의실을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다시 승화상과 마주 서 있는 청출어람이란 입석이 가슴에 다가왔다. 인생은 끝없는 도전의 연속이다. 그 입석위로 낙엽이 휘날리며 떨어져 내렸다. 저 낙엽이 지면 해가 바뀌고 나무는 또 하나의 나이테가 형성이 되리라. 우리 인간도 저 나무와 같이 나이테를 우리 몸에 하나 더 추가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