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눈 속에서 캐낸 양배추와 당근

찰라777 2015. 11. 30. 18:17

눈 속에서 캐낸 양배추와 당근...

싱싱한 상추, 배추, 브로콜리 ....

 

 

 

 

 

 

 

 

 

 

 

 

 

 

 

 

 

 

 

 

 

 

 

 

 

 

 

 

홍수가 된 보일러실을 정리하고 나는 다시 텃밭으로 나갔다. 어두워지기 전에 텃밭에서 일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텃밭을 바라보니 강물이 된 보일러실과 다용도실을 정리한 고통스런 마음이 다소 누그러졌다. 귀촌은 여러 가지로 불편하지만 역시 넘치는 매력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것은 자연이다. 콘크리트로 숲을 이루는 도시에 비하면 얼마나 멋진 풍경인가? 현관문을 나서면 바로 텃밭이 나오고, 임진강 주상절리와 남계리 벌판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막힘이 없는 풍경, 산새 우는 소리, 고라니 우는 소리, 고요함... 뭐 이런 것들이 불편한 생활을 상쇄시키고도 한참 남는다.  

 

 

허공에서 춤을 추며 펄펄 낙하하는 눈송이는 자연이 너울너울 겨울 춤을 추는 모습이다. 함박꽃 같은 눈송이가 만다라처럼 쏟아져 내린다. 눈이 내리면 나는 괜히 행복해진다. 수도가 언제 터졌냐는 듯 나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다. 나는 어릴 적부터 눈이 오는 것을 좋아했다. 눈이 내리면 강아지를 데리고 산과 들로 뛰어다니곤 했다. 아무도 밟지 않는 하얀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즐겁기만 했다. 마치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랄까? 그런데 지금도 눈이 오면 좋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더니 지금도 눈이 오면 껑충껑충 뚜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나는 양배추에 쌓인 흰 눈을 털어내고 낫으로 양배추 뿌리를 하나하나 베어냈다. 추위에 시달리던 양배추는 내가 뿌리 밑동을 자를 때마다 !”하고 왜마디 비명소리를 냈다. 그 뿐이다. 양배추는 나동그라지며 곧 조용해졌다. 나는 금년에 30여 포기의 양배추를 심었다. 다행히 양배추가 잘 커주어 절반은 캐서 지인들과 나누어 먹고 절반 정도가 남아있다. 농약을 일체 치지 않고 애지중지 키워온 무공해 양배추라서 더욱 애정이 간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어떤 포기는 고라니가 갉아 먹었는지 겉껍질이 벗겨지고 노란 배추 속이 보였다. 수확을 한 양배추를 거실로 옮겨 신문지로 일일이 싸서 김치냉장고에 차곡차곡 보관을 했다. 노란 배추 속잎을 한 잎 뜯어서 입에 넣고 우직우직 씹어보니 달고 신선하다. 고라니가 먹는 것은 역시 맛이 있다. 그러므로 녀석 들이 먹는 풀을 먹으면 아무런 탈이 나지 않는다. 농작물을 해쳐서 밉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라니 한 테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한다.

 

양배추를 캔 다음에는 눈 속에 묻힌 당근과 김장을 하고 남은 배추를 캤다. 언 흙 속에서 당근을 캐낼 때마다 당근 특유의 향이 코를 찌른다. 미니 비닐로 덮어 두었던 상치도 마지막으로 수확을 했다. 로메인 상추와 청겨자 상추가 작은 터널 속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다. 한 겨울에 이렇게 푸르고 싱싱한 채소를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은 더 없이 즐겁고 기쁜 일이다 

아내와 나는 양배추와 배추, 상추, 당근을 일부는 땅속에 묻은 김칫독과 김치냉장고에 보관을 하고 일부는 박스에 넣어 자동차에 실었다. 당분간은 아내가 병원에 다녀야 하므로 남양주 아이들 집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보일러실 수도가 터져 혼비백산 했지만 이렇게 싱싱한 야채를 수확을 하고나니 마음이 행복해지는군요.”

이런 맛 때문에 불편하지만 전원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겠소? 허지만 이번에는 수도계량기에 있는 밸브를 아주 잠가야 안심이 될 것 같아요.”

정말 진즉 그래야 했어요. 다음 달에 수도 요금이 얼마나 나올지 걱정이 되는군요.”

어쩔 수 없지 않소? 농부가 태만하게 집을 비웠으니 그 직무유기를 한 대가를 치룰 수밖에

   

나는 다음에 돌아 올 때까지는 제발 아무 일이 없기 바라며 집을 향하여 합장을 하고 대문을 잠갔다. 그리고 대문 밖에 있는 수도계량기의 밸브도 잠갔다 연분홍으로 피어난 국화꽃이 잘 다녀오라고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이 갈색으로 변하고 스산해진 금가락지에 오직 국화만이 피어나 뜨락을 지키고 있다. 나도 국화에게 미소를 흘려보내며 "잘 있어, 곧 돌아올께."하고 읊조렸다. 눈속에서 피어난 국화다! 과연 내가 돌아올 때까지 피어 있을까?

 

여보, 뭐 빠진 것 없이요?”

, 다 확인 했는데 없어요.”

그러지 말고 잘 생각해 봐요. 또 서울 다가서 어머나! 하지 말고요.”

이이가 정말, 나를 어떻게 보나요. 이번에는 몇 번이나 확인에 확인을 했다니까요. 절대로 그런 일은 없어요.”

하하, 그러면 다행이고요.”

 

다행히 눈이 멎어 길이 그렇게 미끄럽지는 않았다. 우리는 어두워져서 남양주 집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아내가 부엌에서 짐을 정리하다가 어머나!”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니, 또 무슨 일이요?”

내 틀니가 없어요.”

틀니?”

, 아마 그 옥이네 순두부집 탁자에 그냥 두고 온 것 같아요.”

그것뿐이오? , 약을 두고 온 것은 없는 지 다시 한 번 챙겨 봐요.”

어머나? 내 핸드폰도 없네! 마루에서 작업을 하다가 그대로 두고 온 것 같아요.”

 

이거야 정말! 인터넷을 뒤져 옥이네 순두부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몇 번 탁자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혹시 거기에 틀니가 없는지 좀 살펴봐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없다고 하더니 쓰레기통을 뒤져서 겨우 찾아냈다고 한다. 바쁜 시간에 쓰레기통을 뒤지느라 고생을 했을 식당 종업원에게 너무 미안하고 감사했다.

 

아이고, 정말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다음에 점심을 먹으러 갈 테니 잘 좀 보관해 두세요.”

, 걱정 마세요.”

 

어찌할꼬?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 점점 건망증은 심해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지하철에 우산을 두고 내리거나 핸드폰이나 지갑을 챙기지 않고 집을 나서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러므로 다음에 챙겨야지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때그때 생각이 났을 때마다 하나씩 챙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