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남인도·스리랑카·몰디브

마말라푸람 해안사원-바다속으로 사라져버린 사원들

찰라777 2015. 12. 18. 07:50

위대한 전사들의 도시마말라푸람

 




인도양의 벵골만은 쓰나미 피해가 자주 일어나는 지역이다. 특히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아체주 앞바다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9.3의 강진에 이어 발생한 쓰나미는 21세기 최악의 쓰나미로 기록되고 있다. 인도양 인근 나라에서 23만명이 사망하고 15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인도네시아는 물론 인도양에 근접한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 큰 피해를 입혔다. 그 당시 이곳 인도의 벵골만에서만도 1만 6천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인명을 삼켜버린 바다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슬프도록 아름답기만 하다.  



▲마말라푸람 해안 사원. 멀리서 보면 두 개의 사원인데 가까이 가면 통로가 연견된 하나의 사원이다. 1400년 된 이 석조사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2004년 쓰나미가 덮칠 때에는 바다 속에서 세 개의 사원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잠겼다고 한다.  

 

 

오후 3시, 폰디체리를 뒤로하고 해변을 따라 마말라푸람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벵골만의 거친 바람이 불어오는 해변은 파도가 흰 거품을 물고 일어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해변에 앉아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인도의 소녀들이 보인다. 빨강, 파랑, 분홍, 원색의 옷을 입은 소녀들의 모습이 푸른 바다와 퍽 대조적으로 돋보인다. 긴 머리가 때로는 바람에 휘날린다. 저 소녀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벵골만의 소녀들

 

 파도가 넘실거리는 벵골만 해변을 두 시간 넘게 달려가 도착은 곳은 마말라푸람(Mamallapuram)이다. 마하발리푸람이라고도 부르는 이 해변 도시는 벵갈만과 마주한 작은 해변 휴양지다. 해안을 따라 어촌과 게스트하우스가 한적하게 늘어선 마말라푸람은 지친 심신을 쉬기에 좋은 휴양지라는 생각이 든다.


‘위대한 전사의 도시’란 의미를 가진 이 도시는 한때 남인도를 호령하던 강력한 왕국이었던 팔라바 왕조가 전성기를 누렸던 도시다. 1400년 전, 남인도 강국인 팔라바 왕조의 3대 왕인 마헨드라1세(600~630)는 학문과 예술에 깊은 소양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마두라스(현재 첸나이)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수도를 칸치푸람에 정해 세력을 떨쳤다. 

 

 

 

 

그 후 그의 후계자인 나라심하 바르만 2(630~668)가 이곳 마말라푸람을 항구로 개발하고, 동남아시아, 스리랑카 등과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원래 위대한 언덕으로 불리던 마말라이 지역을 위대한 전사의 도시란 뜻을 가진 마하발리푸람으로 바꾸었다.

 

마말라푸람에 도착해서 맨 먼저 찾아간 곳은 해변사원이다. 마치 바다에서 피라미드처럼 우뚝 솟아오른 석조 사원이 석양빛을 받으며 푸른 잔디평원에 말로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피라미드처럼 우뚝 서 있는 석조사원

 

해안석조사원은 7세기경 나라심하 바르만 2세가 건립한 남인도 최초의 석조사원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인도의 건축문화유산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 중의 하나로 주목 받고 있는 엘로라 석굴의 카일라사 사원은 8세기에 건축된 사원으로 그 건축적 기원을 이곳 팔라바 왕조 시대의 석조사원에 두고 있다. 원래 이 해안사원 일대에는 7기의 석조사원이 건립되었으나 현재는 2기만 남아 있다. 해안사원은 두 개의 크고 작은 사원을 구성하는데 두 사원의 기단과 외벽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사원으로 볼 수도 있다.





사원으로 다가가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인도의 소년 소년들이 재잘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아마 역사문화탐방을 나온 모양이다. 황토색 바지에 흰색 상의를 입은 인도의 아이들은 아무 것도 들지 않은 빈손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저마다 손에 스마트 폰을 들거나 귀에는 이어폰을 끼었을 텐데… 맨손으로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무척 자유 분망해 보인다. 문명의 도구는 편리하기는 하지만 때로는 자신을 묶는 개목걸이나 다름없다. 

 

 

▲맨손으로 사원답사를 가는 인도 아이들이 홀가분해 보인다.

 

 

사원입구에 도착하니 원형의 우물이 있고 그 주변의 낮은 담장 위에는 온통 난디(시바신이 타고 다니는 황소)들의 조각이 담벼락에 조각되어 있다. 어느 것 하나 그냥 조각을 한 것이 아니고 정성을 들여 깎아낸 석공들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사원입구에 있는 우물과 조각들

 

사원은 멀리서 보면 분명 두 개의 사원인데 가까이 가보니 두 개의 사원은 통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해안 쪽의 큰 사원에는 시바신이 모셔져 있다. 시바사원에는 어김없이 시바의 링가가 모셔져 있다. 그리고 그 내벽에는 시바신의 가족을 보호하는 비슈누 신과 브라흐마 신이 조각되어 있다. 이는 시바를 중심으로 해석한 힌두교의 삼신 사상을 상징한다.

 

 

▲시바신과 링가 

 

 

또 시바의 링가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링가(남성성기)의 하단에는 마치 포석정 접시 같은 요니(여성성기)가 감싸고 있다. 링가는 언제나 남녀가 합일하는, 거의 섹스의 상태에 가깝다. 사원에서 가장 중요한 곳을 성소라고 부른다. 고대 힌두교의 성소는 이처럼 생명 잉태의 기적을 예찬하며 가장 신비한 신의 영역으로 간주하고 있다.


시바신을 모신 성소를 나오니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듯 사원 통로 사이를 끼어 다니고 있다. 단단한 화강암이 노을빛을 받아 마치 불에 달구어 진 듯 색조가 더욱 고색찬연하게 빛나고 있다. 그러나 그 단단한 화강암도 바람의 칼날과 소금, 습기, 햇빛, 그리고 장구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닳고 닳아서 조각의 형체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바람의 칼날과 소금, 습기, 햇빛, 그리고 장구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닳고 닳아서 조각의 형체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린 석조사원

 

2004년 쓰나미가 덮칠 때에는 해안선이 다소 후퇴하여 화강암으로 조각한 사자 등 더 많은 유적이 뭍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쓰나미 당사 바닷물이 얼마나 멀리 밀려났던지, 바다 아래 잠겨 있던 또 다른 사원이 드러났을 정도라고 현지인 귀띔을 해준다. 그 당시 해변에 있던 사람들은 물이 밀려오기 직전에 바다에서 드러난 시원을 찰나나마 감상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쓰나미 이후 해저 탐사를 통해 그 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누어있는 비슈누 신

 

 

 

 

 

역사적인 기록에  의하면 2500년 전 남인도에 첫 쓰나미가 일어났다고 한다. 당시 인도의 지형은 원래 직사각형이었으나 잦은 쓰나미 때문에 현재의 역삼각형 모양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쓰나미 때문에 점점 육지가 바다로 변하고 인도대륙에 붙어 있던 스리랑카도 섬으로 떨어져 나가 인도으 눈물처럼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바다 속에 잠겨 있을 석조사원을 상상해 본다. 그렇다면 1400년 전에는 그 사원이 건축된 곳까지 육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긴 세월은 이렇게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지구의 역사는 변하고 있는 것이다.


 

▲2004년 쓰나미 당시 바다속에서 드러난 사원의 형체. 탐사 결과 바다 속에 잠겨 있는 사원을 발견했다.(자료:위키피데아) 

 

 

나는 인도의 이런 낮은 석조 사원들이 너무나 좋다. 돌 기둥을 높이 세워 세워 위압적으로 건축된 유럽의 건축물보다 훨씬 더 정감이 간다.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노을빛을 받으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석조사원은 나에게 1400년 전의 사연을 들려주고 있다. 과연 석공들은 자신들이 돌에 새긴 신들이 있다고 굳게 믿었을까? 그러나 돌부처처럼 서 있는 신들과 난디는 말없이 침묵만 지키고 있다.


아, 아름답다! 

나는 석조사원에 기대어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저 아름다운 석조 사원도 언젠가는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해안사원의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