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전라도

뜨끈끈한 구들방에서 추위를 녹여 봐!

찰라777 2016. 1. 16. 16:20

 

 

새해를 맞이하여 이틀 동안 집에서 온 가족이 뒹굴다가 전주한옥마을을 가기로 했다. 13일 오전 8, 우리 가족은 내가 운전을 하는 승용차를 타고 전주로 출발했다. 짙은 안개가 끼어 고속도로를 달리는 데 다소 애를 먹었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는 지척을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다. 조심조심 운전을 하여 3시간만에 무사히 전주한옥마을에 도착했다.

 

둘째가 무료주차를 할 수 있는 주차장을 미리 알아 놓았다며 풍남초등학교로 가자고 했다. 풍남초등학교는 한옥마을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주차 안내 아저씨는 매우 친절했다. 한옥마을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을 위하여 풍남초등학교와 병무청을 무료주차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게 개방을 하고 있는데, 24시간 무료 주차를 할 수 있는 곳을 알려주어 우리는 공짜로 주차를 할 수 있었다. 비빔밥을 잘 하는 곳을 물었더니 거의 비슷한데 <한국집>이 다소 맛깔스럽다는 귀띔까지 해주었다. 출발이 좋았다.

 

 

 

 

한옥마을에 도착하니 안개도 걷히고, 햇빛까지 화사하게 내리 쪼여 마치 봄날을 연상케 했다. <전주한옥마을>이란 글씨가 새겨진 선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컷 했다. 이곳은 새해 들어 우리가족이 첫 사진을 찍는 명소로 기억이 될 것이다. <한지길>로 접어들자 그림 같은 한옥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소리문화관, 전주공예명인관, 전주전통술박물관, 여명카메라박물관 등을 숨바꼭질을 하듯 드나들며 걸어갔다.

 

연간 1천만 방문객을 코 앞에 둔 전주한옥마을

 

을사늑약(1905) 이후 대거 전주에 들어오게된 일본인들이 처음 거주하게 된 곳은 지금의 다가동 근처 전주천변이었다. 서문 밖은 주로 천민이나 상인들의 거주지역으로 당시 성안과 엄연한 신분 차이가 있었다. 양곡수송을 위해 전군가도(1907)가 개설되면서 성곽의 서반부가 강제 철거되었고, 1911년말 성곽 동반부가 남문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됨으로써 전주부성의 자취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는 일본인들에게 성안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실제로 서문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다가동과 중앙동으로 진출하게 되면서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엇다. 그 후 1930년을 전후로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의 세력확장에 대한 반발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다.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들어서기 시작한 한옥촌은 일본식과 차별이 되었다.

 

 

전주한옥촌에 현재 700여채의 한옥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의 한옥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새로 짓거나 보수하는 과정에서 한옥고유의 내부구조와 대문 등이 많이 변질되었다. 1977년 이 일대를 <한옥보존지구>로 지정, 한옥 외의 다른 건물을 건축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까다로운 건축규제로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잘 팔리지도 않는 애물단지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 2010년 국제슬시티연맹에서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로는 세계 최초로 국제슬로시티로 지정되면서부터 최근 몇년간 연간 약 7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명소로 거듭나자 한옥마을 땅값이 금값으로 변하고 있다.

 

 

 

전주한옥마을 규모를 서울의 북촌이나, 남산골한옥마을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규모도 훨씬 크지만 찾는 사람들도 엄청 많다. 2015년 한 해 전주를 방문한 사람들이 887만여 명(전주시청 통계자료)이나 된다니 참으로 놀랍다.

2013년 743만여 명보다 무려 140여만 명이나 늘어난 숫자다. 지난해에 메르스 영향을 받지 않았더란 1천만 명을 돌파했을지도 모른다. 2006년 253만여 명보다 무려 3배 이상 늘어난 셈이니 과연 한국에서 가장 가고 싶은 도시가 전주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죽을맛, 눈물맛, 폭탄맛... 먹거리 체험도 가지가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하여 시장 끼를 느낀 우리는 점심으로 전주비빔밥을 먹기로 했다. 주차 아저씨가 말해준 <한국집>은 다소 먼거리에 있어 오늘 밤 묵을 한옥집에 전화를 걸어서 우리가 <조선옥>앞에 있다고 했더니 그 집 비빔밥도 맛이 있다고 하여 우리는 조선옥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조선옥 비빔밥은 기대치 이하였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일까?

 

슬로시티 전주한옥마을 여행은 <태조로>를 걷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태조로는 풍남문에서 오목대에 이르는 약 550m 고풍스런 도로다. 비빔밥을 먹고 태조로를 걷기 시작했다. 태조로는 한옥마을에서 가장 큰 길이자 옛조선으로 되돌아가는 시간여행길이다. 넓은 도로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인파들이 몰려있었다. 전주 한옥나들이에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리다니 놀라울 뿐이다. 서울의 북촌이나, 남산골한옥마을 정도로 생각을 하고 갔었는데, 규모도 크지만 찾는 사람들도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더욱 놀랜 것은 젊은이들이 한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 하는 모습이다. 한복차림으로 고풍스런 기와지붕이 연달아 이어진 구불구불한 한옥마을을 걷는 모습을 보자 마치 먼 옛날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느낌이 든다. 기생모자를 쓴 어여쁜 아가씨들, 이몽룡 복장을 한 젊은 도련님들, 그리고 남자들이 여장한복을 입고 우스꽝스럽게 걷는 사람들을 바라보자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마치 거리 전체에서 한복 패션쇼를 방불케 한다. 왠지 마음이 포근하고 행복해진다. 한복이 주는 포근함이 몸과 마음에 스며든 탓이리라. 곳곳에 위치한 한복대여소에서 1시간에 5천원 정도로 대여를 해 입을 수 있어 큰 부담도 없을 것 같다. 아내에게 한복을 온 식고가 빌려 입자고 했더니 손사래를 친다. 허지만 꼭 한 번 입고 고풍스런 거리를 활보하고 싶다.

 

 

태조로 일대는 주말에 차 없는 거리 제를 실시하고 있다.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 더욱이 고풍스런 한옥 길 양 옆에는 길거리음식점이 줄줄이 서 있어 군것질을 하며 걷기에 딱이다! 우리는 오목대관광안내소에서 한옥마을 지도를 한 장 얻어 들고 온 가족이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났다길거리음식점에서 <문꼬치> 사서 하나씩 입에 물고 우물우물 씹으며 걸었다. 문꼬치는 삶은 문어를 꼬치에 끼워 센 불에 구워 달콤하고 매콤한 소스를 뿌려 가다랑이포와 마요네즈를 올려 주는 꼬치다.

 

 

히야! 문꼬치 맛도 죽을맛, 눈물맛, 폭탄맛, 매운맛, 순한맛이 있단다. 죽을맛과 폭탄맛은 어떤 맛이 나길래 저렇게 자극적인 말을 썼을까? 우리 식구는 모두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죽을맛에 한번 도전을 하고 싶었는데 아내가 말렸다. 아마 양념 소스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우리는 순한맛을 골랐다. 문꼬치는 삶은 문어를 꼬치에 끼워 센 불에 구워 달콤하고 매콤한 소스를 뿌려 가다랑이포와 마요네즈를 올려 주는 꼬치다. 

 

 

문꼬치를 입에 물고 한옥마을쉼터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꼬치구이 집 앞에는 젊은이들이 줄지어 서 있고, PNB풍년제과, 누이단팥빵, 달인꽈배기, 다우랑 만두집 앞에도 사람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건 한옥마을체험이라기보다는 먹거리체험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쨌든 사람들은 손에 손에 꼬치를 하나씩 들고 먹으면서 걷는다.

 

이윽고 우리는 <전동성당>까지 걸어왔다. 풍남문이 고풍스럽게 보이고 그 앞에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진 예스러운 전동성당이 우리를 반긴다전동성당 터는 1791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순교한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지다. 그 순교지에 프랑스인 신부가 중국인 벽돌공 100명을 데려와 1908년부터 6년간 지은 성당 건물은 웅장하고 아름답다.

 

한옥 속에서 유일하게 서양 근대건축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전동성당은 영화 <약속>을 찍은 곳으로 유명하다. 배우 박신양과 전도연이 손을 잡고 결혼식을 하러 들어가는 인상 깊은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성당 앞에는 예수님 상이 서 있고, 그 앞에 펼쳐진 성경책에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 11:28)."이 새겨져 있다.

 

 

 

 

 

 

 

 

성당을 한바퀴 돌아서 건너편에 있는 <경기전>으로 갔다. 경기전은 경사스런 터에 지은 궁궐이라는 뜻으로, 태조 이성계의 어진(초상화)을 모신 건물이다. 경기전에는 전주 이씨 시조인 이한과 그 부인의 위패를 모신 조경묘, 조선의 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가 있다. 전주사고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도 유일하게 지켜진 귀중한 자료다. 경기전은 드라마 <용의 눈물>을 촬영지로, 정종이 이방원(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다.

 

 

 

 

경기전을 돌아 나와 대나무 숲길이 시원하게 드리워진 길로 접어 들었다. 고풍스런 건물에 대나무 숲이 너무나 아름답게 어울린다. 대나무 숲길은 소나무 숲길로 이어진다한복을 입은 청춘 남녀들이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처럼 손을 잡고 숲길을 다정하게 걸어간다. 소나무 숲 앞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어진박물관>이 있다. 어진박물관을 돌아보고 서문 쪽으로 나오는 데, 경기전 담장과 전동성당이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조선 600년의 시간을 한 폭에 담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태조로에서 우리는 경기전의 긴 담장으로 이어지는 경기전길을 지나 동문예술거리를 걸었다. 동문예술거리는 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토종서점 홍지서림을 비롯해 헌책방, 소극장 같은 문화공간부터 전주시민놀이터, 창작지원센터 등 문화와 젊음이 넘치는 거리가 이어진다. 이 거리는 또 전주콩나물국밥으로 유명한 거리다. 구수한 콩나물국밥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내일 아침에 콩나물국밥을 먹기로 하고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우리가 묵을 한옥체험 숙소는 향교길에 있다. 동문예술거리에서 전동성당길을 걸어나오는데, 다우랑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수제 만두를 먹거나 사려는 사람들이란다. 아내도 줄을 서서 한참 만에 수제 새우만두 4인분을 샀다. 만두는 저녁 간식거리다너무 많이 걸어서인지 배가 고팠다. 우리는 <오징어꽃다발> 본점이라는 간판이 걸린 길거리 음식점에서 오징어꽃다발 하나를 샀다. 오징어꽃다발은 오징어를 통째로 튀겨 치즈와 어니언 가루를 샤샤샤샥 뿌려 포장지로 몸통을 감싸 오징어 다리만 나와 있는데, 마치 그 모습이 꽃다발 모양처럼 보인다. ㅋㅋㅋ… 별 희한한 음식도 다 있다. 그런데 빠삭하고 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오동통한 오징어가 한 잎 가득 씹히는 맛이 쫄깃하다!

 

 

 

 

우리는 오징어꽃다발을 우물우물 씹으며 <은행로>를 지나 <향교길>을 걸어 오늘 하루 밤을 묵을 <햇살가득한옥>에 도착했다. 전주향교 근처에 있는 햇살가득 한옥은 황토벽에 창에 한지를 발라 전통의 멋을 한껏 느끼게 한다. 방마다 색깔도 다르다. 주황가득, 노랑가득, 파랑가득, 남색가득, 빨강가득, 초록가득, 보라가득이란 방 이름이 특이하다우리는 <주황가득>방에 짐을 풀었다.

 

 

 

뜨끈뜨끈한 구들방에 엉덩이를 대고 앉으니 저절로 졸음이 온다. 거실에는 티서비스가 무료로 준비되어 있다. 예쁜 찻잔에 전통차, 커피 등을 진열해 마음대로 골라 마시게 해놓고 있다. 보드게임도 즐길 수 있게 준비가 되어 있다. 데커레이션 하나하나가 심플하고 정성이 듬뿍 담겨 있다. 방구석 한 켠에는 얇은 이불과 작은 베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전주한옥마을에서는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간직한 한옥체험을 할 수 있다. <오교장댁>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옥인데, 조선말기 궁녀가 고향 전주로 내려와 지었다고 하고 <궁녀의 집>으로 불리기도 한다. <문 많은 집>은 미닫이, 여닫이 문이 49개나 된다고 하는데, 천석꾼 한씨가 지은 집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동락원>은 주인이 아들의 중학교 입학기념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솟을대문, 행랑채, 사랑채, 안채의 구조를 지니고 있어 한옥의 운치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교동 선비의 집>은 주인이 바둑의 고수였던 까닭에 조남철, 이강일, 정동식 등 이 지역 출신 바둑 명인들이 즐겨 찾았다고 한다. 전통과 사연이 담긴 스토리텔링을 문화해설사로부터 들으며 고택투어를 하는 것도 재미 있다.

 

주황가득 구들방은 뜨끈뜨끈하다. 방에 앉아 차를 한자 마시고 나니 졸음이 스르르 밀려온다. 오늘 참 많이도 걸었다. 걷는 것은 행복이다. 걷는 것은 심신을 건강하게 해준다. 피곤함이 기분좋게 몰려 오는데 문득 찰스 디킨슨의 <걷기예찬>이 떠오른다.

 

걸어서 행복해져라.

걸어서 건강해져라.

우리의 나날들을 연장시키는,

즉 오래 사는 최선의 방법은 끊임없이,

그리고 목적을 가지고 걷는 것이다. -찰스 디킨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