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며

찰라777 2017. 1. 8. 14:00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나는 가마솥에 불을 지필 준비를 했다. 민어뼈국을 우려내기 위해서다. 어제 장조카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한달만에 퇴원을 한 숙모 몸보신을 하라고 7kg이나 되는 민어회를 한 마리 사왔다. 회 따로, 뼈 따로 분리해서 싸 왔는데, 조카는 꼭 민어뼈국을 끓여 드시라고 하면서 그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작은아버님, 민어뼈에 무를 썰어 넣어 4시간 정도 푹 달이면 그 어떤 곰탕보다도 영양이 듬뿍 들어 있고, 맛도 진국입니다. 그런데 냄새가 작란이 아니라서 끓이는 일이 여간 쉽지가 않아요.”

 

아이고, 고맙구나. 비싼 민어를 너희들이나 먹지.”

 

큰 형님의 장남인 장조카는 늘 나를 극진히 대하고 챙겨준다. 나와 10년 터울인 장조카는 서울에 있는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교사생활을 하다가 은퇴를 했는데, 이제 거의 나와 함께 같이 늙어가는 것 같다. 조카는 공부도 제법 잘해서 목포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교육대학을 합격하여 우리 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당시 나는 10평짜리 아파트 방 두 칸에서 살았다. 조카가 서울로 유학을 오게 되자 나는 조카에게 기꺼이 방 한 칸을 내주고 나와 아내 그리고 두 딸, 우리 네 식구는 한 방에서 좁게 지냈다. 그 당시 사정으로 보아서는 넉넉지 못한 시골 농촌 살림에 그를 다른 곳에 가게 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그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비좁은 아파트에서 함께 생활을 했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조카의 밥을 챙겨주었던 아내가 그저 고맙기만 했다.

 

그래서 조카는 교대를 무난히 졸업하고 서울지역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25년간 하다가 은퇴를 했다. 그리고 같은 교대 동창생과 결혼을 하여 성실하게 살아오고 있다. 자식 교육도 잘 시켜 몇 해 전에는 조카의 장녀가 법대 재학 중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현재 로펌에 다니고 있다.

 

조카는 원천적으로 성품이 착하다. 물론 우리가 그를 거두어들인 영향도 다소는 있지만 나와 아내를 섬기는 자세가 마치 그의 부모를 섬기듯 깎듯이 한다. 그는 수시로 나와 아내를 챙긴다. 그런 조카가 대견하고 고맙기만 하다. 큰형님께서 지병으로 일찍 작고를 하시어 아버지 역할을 다 하지는 못하지만 나 또한 장조카를 우리 집안의 종손으로 깎듯이 대해주고 있다.

 

조카가 몸보신을 하라고 가져온 민어회는 냉장고에 넣어두고, 민어뼈를 마늘 다짐 한 접시와 큰 무 한 개를 설렁설렁 썰어서 가마솥에 부어 넣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땔감은 윗집 장 사장님 산에서 간벌을 한 소나무와 작년에 들깨를 털고 남은 들깨대가 잔뜩 쌓여 있어 몇 년을 땔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쌓아두고 있다. 물론 이 일은 내 친구인 응규가 도맡아 해주었다. 고마운 내 친구!

 

나는 먼저 소나무 낙엽과 잔솔가지를 불쏘시개로 지펴 넣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마른 소나무 낙엽과 솔가지가 타닥타닥 타들어갔다. 그 위에 마른 장작개비를 자로 엮어서 쌓아두고 밑에 불쏘시개를 수시로 지펴 주었더니 장작에 곧 불이 붙었다. 불이 타들어 갈 때마다 소나무 특유의 향이 온 몸에 베어들었다. 들깨 대를 태울 때는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 이 고소하고 특유한 솔냄새! 시골에 사는 사람만이 향유할 수 있는 즐거움이다.



▲탁탁 타들어 가는 소나무 낙엽과 잔솔가지



낙엽을 태우다 보니 나는 유난히도 낙엽 태우기를 좋아했던 헤르만 헤세가 떠올랐다. 그의 저서 정원 일의 즐거움이란 책을 읽다보면 그의 소박한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정원 가꾸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는 낙엽 태우기를 통해 명상을 하고 생각을 정리 했다. 헤세의 정원가꾸기는 9살부터 시작되었다어머니가 어린 그에게 작은 화단을 관리하라고 맡긴 것이 그 출발점이다. 그런 일이 없더라도 헤세는 천부적으로 정원가꾸기를 좋아하는 성품인 것 같다.  

 

20대에 헤세는 외딴 시골마을인 보덴 호숫가의 아이엔호펜이란 마을로 거주지를 옮기고, 9세 연상인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루누이와 결혼하여 작은 농가에 정착했다. 결혼을 하여 세 들어 살던 집은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허름한 집이었다. 그 집에서 첫 아들을 낳고 마을 외곽에 땅을 구입하여 자신이 꿈꾸어 오던 정원을 마련했다. 그는 그곳에서 5년 동안 살다가 1912년 스위스 베른에 작고한 화가가 살고 있었던 친구의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런데  그가 이사를 간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전쟁으로 정신이 피폐해진 헤세는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1919년 그의 가족은 해체되었다. 그 후 12년 동안 헤세는 스위스 루가노 호수 위쪽 높은 언덕이 있는 폐허에서 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헤세는 그를 작가에서 화가로 탄생케 했다. 그리고 그의 명저 데미안’ ‘싯달타’ ‘나르찌스와 골드문트를 그곳에서 집필했다.

 

193154세의 헤세는 근처 친구의 땅을 빌려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며 살았다. 이 곳에서 헤세는 자연의 일부처럼 정원을 가꾸며 한가롭게 살았다. 특히 그는 낙엽을 태우기를 좋아하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유리알 유희를 집필하였다. 그의 저서 정원 일의 즐거움한조각의 땅에 책임을 느끼며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정원을 가꾸며 낙엽을 태우는 헤르만 헤세


 

나는 울타리 곁에 서서 1미터 남짓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낸다. 메꽃, 여뀌, 속새, 질경이 같은 풀을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다음 땅 위에 모닥불을 피워 장작을 넣어가면서 지핀다. 그 위에다 녹색 풀을 조금 얹으면 불은 천천히 오랫동안 타들어간다. 파란 연기가 부드럽고 끊임없이 샘물처럼 흘러 황금색의 뽕나무 가지 끝을 휘감고 호수와 산과 공기의 푸름 속으로 떠돌며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다.(출처: 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한조각의 땅에 책임을 느끼며 중에서. 2001. 10. 30 이레)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은 그가 말년에 일기처럼 써내려간 쓴 산문과 시다. 나는 이 책을 오래전에 구입하여 지금도 가끔 꺼내 읽고 있다. 그는 집을 옮길 때마다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 언 땅이 녹으면 싹과 꽃을 피웠다가 화려한 여름을 누린 후 묵묵히 썩어 땅으로 사라지는 식물을 바라보며 그는 살아 온 인생을 반성하며 살았다. 앞서 죽어간 식물의 잔해를 거름으로 삼아 생을 잠시 소유했다 말없이 스러지는 식물과 달리, 늘 인간은 만족하지 못하고, 한 번뿐인 인생이 마치 자기만의 것인 양, 별나고 특별한 것을 소유하려는 기이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그는 작은 정원에서 삶을 곱씹으며 소설을 구상했다.

 

어찌 보면 나는 헤세의 삶을 닮고 싶은지도 모른다. 나는 5년 전에는 지리산 섬진강변에 빈농가에 세 들어 살면서도 세평 크기의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곳 연천 금가락지에 역시 세 들어 살며 작은 정원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 나는 거주지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된 이후로 늘 특별하고 아름답게 살아왔다.” 하고 헤세가 말했듯이 나 역시 쉽고 편하게 살 수는 없는 환경이지만 늘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

 

아궁이 장작에 불이 벌겋게 달아오르자 가마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조카의 말처럼 민어 특유의 비린내가 냄새가 온천지를 진동시켰다. 밖이지만 아궁이 앞에 앉아 있으니 춥지가 않았다. 아궁이 앞에서 오히려 잠이 슬슬 오려고 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거기엔 그저 타들어 가는 불꽃과 민어냄새만 풍겨 나왔다. 나는 조카의 말대로 그렇게 4시간 넘게 불을 지폈다. 이글이글 타들어가는 불길 속에 내 삶도 타들어 가고 재만 남았다. 어차피 인생도 언젠가는 저 나무들처럼 한 줌의 재로 남고 말 것이 아닌가?

 

솥뚜껑을 열어보니 민어뼈에 붙어 있던 살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무만 동동 떠 다녔다. 이만하면 푹 고아진 것이다. 나는 불을 지피기를 중단하고 뼈를 골라내고 냄비에 민어진국을 떠 담았다. 장조카의 고마운 얼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에 서렸다. 고맙다 조카야! 잘 먹으마

 

아내는 민어 국물에 대파를 썰어 넣고 점심을 차렸다. 찐득한 민어 국물 맛이 그만이다. 밥을 말아 먹는데 퇴비 더미에 길 고양이가 민어뼈를 발라 먹고 있었다.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나와 피장파장이다.


녀석들이 냄새 하나는 잘 맡은 다니까요.”

허허, 그래야 녀석들도 먹고 살지.”



▲낸새를 맡고 고양이들이 몰려 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덩치가 큰 회색 고양이가 독차지 하고 한참을 먹어 치웠다. 배를 채운 녀석이 슬슬 금굴산으로 올라가자 이번에는 하얀 점박이 고양이가 그 뒤를 이어 한 참을 발라 먹었다. 녀석도 배를 채웠는지, 슬슬 아래 밭으로 기어 내려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검은 고양이가 살금살금 기어왔다. 녀석은 앞집에서 키우는 집고양이인데 아직은 새끼 때를 벗어나지 못한 애송이다. 검은 고양이도 한참을 뒤져 먹더니 슬슬 앞집으로 기어나갔다. 고양이들에게도 힘에 따라 서열이 있다.


고양이들의 특징은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먹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과 다른 점이다. 인간은 배가 불러도 남의 것까지도 챙겨넣으려고 한다. 창고에 곡식이 썩어 나가도 더 챙기려고만 하는 것이 인간들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어찌보면 인간이 저 고양이만도 못할 때가 많다.



▲민어뼈를 맛있게 발라 먹는 검은 고양이


 

어쨌든 조카 덕분에 오랜만에 저 고양이들도 포식을 하고, 나와 아내도 따끈한 진국으로 점심을 맛나게 먹었다. 장조카에게 참으로 감사를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