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코카서스3국순례

[아제르바이잔⑨]바쿠에서 쉐키로 가는 길-디리바바 영묘를 지나서

찰라777 2018. 3. 8. 10:30

중세 카라반의 고도 쉐키로 가는 길

 

바쿠 중심가를 벗어나 외곽으로 갈수록 황량한 언덕에 빈민들이 사는 달동네가 끝없이 늘어서 있다. 마치 사막 위에 모래성을 쌓은 언덕처럼 생긴 언덕은 건조하기 그지없다. 권력자들과 부자들이 사는 바쿠중심가의 호화로운 모습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풍경이다.

 

 

 

 

그러나 쉐키로 가는 길은 기름지게 뻥 뚫려있다. 오일달러로 벌어들인 돈으로 바쿠에서 바쿠 외곽까지는 고속도로를 건설해 놓은 것이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시간이 흘러가는 과정 속에 기회는 오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1993년도만 해도 바쿠에서 콜라를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바쿠의 최고급 호텔뿐이었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도 없었고, 외국식당, 광천수, 전화 서비스 같은 간단한 편의 시설조차도 없었다고 한다.

 

 

 

 

허지만 바쿠가 카스피 해의 유전으로 세계 에너지 산업의 교차로 변신한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3세계를 변화시키는 동력 중 전쟁 다음으로 빠른 것이 석유 산업이다. 지구의 어느 곳이던 석유 유전이 발견되기만 하면, 굴지의 정유사들이 발 빠르게 달려든다. 바쿠도 카스피해의 석유 매장량이 발견되면서 고급 상점과 레스토랑이 들어서고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벼락부자들이 탄생된다.

 

 

 

 

수십 개의 엔지니어링화사, 회계, 법률, 홍보 회사들이 생겨나고 원유를 실어 나르기 위한 파이프라인 건설회사들이 달려들었다. 그 덕분에 바쿠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다. 허지만 오일달러로 벌어들인 돈은 권력자와 권력자들에게 부역을 하는 몇 사람의 주머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민초들은 여전히 힘들게 살고 있다.

 

살아있는 수피파의 성자 디리바바영묘

 

바쿠에서 2시간 정도를 달렸을까? 우리는 마자라 마을에 위치한 이슬람 수피파의 성자 디리바바영묘에 도착했다. 코카서스의 어느 곳을 가나 화장실이 가장 문제다. 디리바바 영묘에도 입구 작은 화장실이 하나 있는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고, 화장실은 더럽고 냄새도 지독하다.

 

디리바바 투르베시(Diri-Baba Turbesi)살아있는 할아버지란 뜻이다. 14세기 이슬람 신비주의 교파인 수피파의 성자를 기리기 위하여 만든 절벽에 세운 묘지다.

 

 

 

 

나는 신을 찾기 위해 여로 곳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어디서도 찾지 못했는데,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니 그분이 거기에 계셨다.” -메블리나 루미-수피즘 창시자-

 

수피즘은 이슬람의 신비주의 적 성향의 종파로 금욕과 고행을 중시하고 청빈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수피(Sufi)'라는 말의 어원은 아랍어의 양모를 뜻하는 어근인 수프(صوف ṣūf)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일에 매달리면 신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다고 보고, 문전걸식을 하며 오직 신만 생각하고 다른 것은 모두 도외시 했다.

 

 

 

 

터키의 콘야 여행하며 신과 하나가 되기 위해 빙글빙글 돌며 꽃 같은 동작의 수피 춤을 추는 수피교 신도들의 모습을 본적이 있다. 창시자인 메블리나의 말을 들여다보면 모든 만물에는 불성(佛性)이 있다는 붓다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수피즘의 한 성자인 디리바바의 영묘는 절벽에 바싹 붙어 있다. 디리바바는 축지법 등 여러 가지 기행과 언행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고 한다. 지금도 살아있는 성자로 추앙을 받고 있어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찾아들고 있다.

 

 

 

 

모스크 굴속으로 들어가니 좁은 공간에 작은 책상과 코란이 놓여 있고, 영묘와 모스크를 지키는 수행자가 앉아 있다. 바위에 구멍을 뚫어 디리바바의 시신을 안치했다는 벽면에 순례자들이 이마를 대고 참배를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법. 나도 디리바바의 영묘에 이마를 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아무런 영감도 떠오르지 않는다.

 

 

 

 

 

 

 

뒤를 돌아서니 영묘지기가 빙그레 웃는다. 그와 기념사진 한 장을 찍고 어두운 영묘를 나왔다. 이 묘지기는 평생을 이곳에서 숙식을 하며 디리바바의 영묘를 지킨다고 한다. 글쎄, 청빈하게 살아가는 표본이라고 할까?

 

 

 

 

 

 

모스크에서 나와 가파른 계단을 따라 언덕 위로 올라가니 시야가 탁 트인 마자라 마을전개 된다. 건조한 땅이지만 파릇하게 보이는 목초지에서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버스는 디리바바 영묘를 출발하여 사마키로 달려갔다. 길 주변에는 푸른색의 숲이 점점 많아지고 숨을 쉬기가 훨씬 편해진다. 코카서스 산맥이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짙푸른 숲도 점점 많아진다. 버스가 울창한 숲에서 잠사 멈추어 우리는 숲길을 산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덥고 건조한 바쿠보다는 이곳이야 말로 사람이 살 수 있는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숲길에는 가스관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 가스관은 바쿠에서서 흑해의 숩사까지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이라고 한다.

 

 

 

 

숲길을 잠시 산책을 하다가 다시 출발을 한 버스는 점심식사를 위해 언덕 마루턱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정차를 했다. 지르버 레스토랑이라고 쓰인 간판(아제르바이잔 글씨라 발음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이 보였다.

 

 

 

 

 

 

 

레스토랑의 식탁에 앉으니 장쾌한 코카서스 초원이 펼쳐져 있다. 우리는 그림 같은 초원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었다. 레스토랑의 벽에는 헤이다르 알리예프와 그의 아들인 일함 알리예프가 뭔가 대화를 주고받는 사진이 결려 있다. 아들에게 대통령직을 세습시켜주는 장면이랄까? 수십 년을 강권을 휘두르는 두 독재자모습이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언덕위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 노점에 잠깐 들려 체리와 무화과 등 아제르바이잔에서 생산되는 과일을 샀다. 버스는 다시 우측에 코카서스 산맥을 두고 달려갔다. 오후 4시경 우리는 중세카라반의 도시 쉐키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