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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땅' 라다크를 가다(1)

찰라777 2006. 9. 20. 23:21

지구촌 이색축제기행


‘축제의 땅’ 라다크를 가다(1)



▲목숨이 두개인 사람만 넘어간다는 스리나가르에서 나다크로 가는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길

 


□ 목숨이 두 개인 사람들만 간다는 험한 길

▲라다크로 넘어가는 길에서 관광객을 기다리는 말과 마부들


아름다운 것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오십을 훌쩍 넘은 나이에 배낭하나 걸머지고 아픈 아내와 함께 히말라야로 떠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우리 부부를 비웃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삶의 가치와 무게는 어느 누구도 경험을 직접 해보지 않고는 감히 말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 거얼무에서 육로를 통해 ‘하늘아래 첫 동네’ 티베트의 라사를 지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올라서서 나는 가픈 숨을 몰아쉬고 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은 해냈어! 당신은 이제 환자가 아니야!”라고….

설원의 땅 히말라야는 무균지대다. 하늘아래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히말라야는 아내와 나에게 묵은 것을 씻어 내려주고 희망의 새살을 돋아나게 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에베레스트에서 히말라야가 주는 벅찬 감격을 안고, 세계 평화의 상징인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고자, 육로로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타며 네팔을 거쳐 10일만에 다시 머나먼 인도의 북쪽 다람살라로 갔다. 달라이 라마가 풍기는 어떤 알 수 없는 기가 우리들을 불러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지만 우리가 도착한 날 공교롭게도 달라이 라마는 해외로 출타 중이었다. 그래서 우리 는 지구상의 마지막 남은 오지 중의 하나인 라다크로 떠나기로 했다. 달라이 라마가 해외에서 돌아오는 날까지 지구상의 또 다른 ‘작은 티베트’ 라다크의 땅을 밟아보기로 했던 것.

그러나 우리가 라다크와 만나기 위해서는 ‘기다림’이란 인내와 시간이 요구되었다. 라다크는 일년 중 한 여름인 6월 하순에서 9월 중순까지 단 석 달 간만 길이 열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기간동안은 엄청난 눈과 빙하로 길이 막혀 버리고 만다.

“라다크는 내가 지금까지 가본 지구상의 어느 곳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다람살라에서 18년간이나 살고 있다는 한국인 청전스님의 이 말은 더욱 라다크로 가고 싶은 마음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마침내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 에서 라다크로 가는 길이 뚫렸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오랜 기다림은 우리들에게 라다크로 가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일단 티베트 임시정부에 달라이라마 접견 신청을 하고, 그 다음 날 아침 일직 스리나가르로 떠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그런데 우리가 묵 고 있는 포즈 듀엘링 게스트 하우스 주인 토미가 신문지 한 장을 들고 허겁지겁 뛰어왔다. 신문에는 “스리나가르, 폭탄 테러로 20명이 죽고, 200여 명 이 부상”이라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던 것.

“오, 제발 가지 마시요. 지금 그곳은 너무 위험해요.”

▲ 라다크로 넘어가는 눈 길에서 만난 인도인 사두

그러나 우리는 토미의 충고를 뒤로 한 채 잠무 행 버스에 올랐다. 스리나가르는 잠무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여행 가 이드북인 ‘론니 플래닛’은 스리나가르와 라다크로의 여행을 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파키스탄과의 접전으로 툭하면 미사일이 날라오고, 폭발 테러나 총격전이 발생하며, 자동차가 한 바퀴만 잘 못 굴러도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불귀의 귀신이 되고 말기 때문이란다.

‘고갯길이 있는 땅’이라는 티베트어의 뜻을 가진 라다크로 가는 길은 이처럼 목숨이 두 개인 사람만이 가는 위험천만의 길이라는 것. 과연 우리들의 목숨이 두 개라도 된단 말인가?

그러나 다람살라를 출발한지 이틀 만에 도착한 스리나가르는 폭탄테러가 발생했다는 말이 마치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잠무․카슈미르의 여름 수도답게 조용 하고 아름다웠다. 다만, 무장을 한 군인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다소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지만 거리는 평온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달 레이크(Dal Lake)는 폭탄테러 소식으로 잔뜩 긴장된 여행자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기에 충분했다. 세상은 위험한 만큼 아름다운 모양이다. 호수 가운데에 있는 하우스 보트(House Boat)에서의 하루 밤은 꿈결처럼 달콤하게 지나갔다 .

“스리나가르보다는 한국이 훨씬 위험하지 않은가요?”

다음 날 폭탄 테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라다크로 가는 길이 위험하지 않느냐고 묻는 나에게 보트 주인은 마침 한국에서 일어난 군 막사 총기 사건 으로 많은 군인들이 죽었다는 텔레비전을 보았다며, 오히려 위험한 곳은 군대내에서 총기사건이 일어나는 한국이 아니냐고 꼬집는다. 그 말을 듣 고 보니 할말이 없다. 상대방이 서로 물샐틈없이 대치를 하고 있는 전쟁보다 무방비상태에 있는 아군의 진지에서 일어난 총기사고가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나는 뒤늦게 깨달아야 했다. 그렇다! 위험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다!

▲ 원형대로 그대로 남아 있는 라다크의 수투파(탑)

□ 시간이 정지된 도시,

라다크 레(Leh)


스리나가르에서 레를 향해 기어간 비탈길은 내 생애에 가본 길 중 가장 위험한 길인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곳이기도 했다. 초롱초롱한 별빛이 쏟아지는 밤의 장막, 오금이 저려오는 아슬아슬한 비탈길…

눈 덮인 산꼭대기들이 조용하게 푸른 하늘을 향해 솟아있고, 아래로는 갈색의 가파른 비탈들이 황량하게 반달모양의 골짜기로 이어지는가 하면, 거대한 황무지의 계곡에는 눈부신 에메랄드빛을 띈 초원에서 야크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집채보다 더 높이 쌓인 눈을 잘라내 만들어진 눈 터널에는 여름 태양 볕에 녹아내리는 맑은 물이 자연의 교향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꼬박 이틀 만에 도착한 옛 라다크 왕국의 수도 레(Leh)에 도착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 안도감에 휴우~ 하고 한숨을 토해냈다.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비탈길의 곡예가 끝나고 마침내 탁 트인 들판에 들어서게 되었던 것.

해발 3505m에 위치한 레는 마치 거대한 비행접시를 타고 불시착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눈 덮인 산이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둘러싸여 있고, 산의 중턱 부터는 갈색으로 덧칠을 한 듯한 황량한 사막이 이어지다가, 인더스 강 가까이에 도달하면 푸른 초원이 띠를 형성하며 작은 도시를 휘어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나는 어느 외계의 한 횡성에 온 듯 이상한 감정에 사로 잡혔다.

▲ 마치 비행접시처럼 생긴 해발 3505m의 라다크의 수도 Leh

시간이 정지된 듯한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슬로우 비디오 모션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그러다가 눈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줄레!" 하며 어찌 그리도 보름달 같은 환한 미소를 지어 주는지….

하늘은 또 왜 그리 파랄까? 하늘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금방이라도 파란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아름다움에 그만 정신을 아 찔해 지고 만다. 라다크는 마치 오래도록 꿈속에서 그려오던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명의 위태로움을 무릅쓰고 이곳까 지 오는가 보다.

다람살라에서부터 함께 버스를 탔던 유럽의 두 아가씨와 함께 우린 어느 허름한 민박집을 찾아갔다. 아가라라고 자신을 소개한 폴란드 아가씨는 크라쿠 프에서, 산드라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왔다는데, 이들 모두 달라이라마를 친견하러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라다크로 여행을 왔던 것.

그들은 동양의 정신세계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들은 다람살라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보름식이나 하였단다. 둘다 천주교를 믿는 그들은 그렇다고 자기네 종교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정신세계에 대한 체험이 그들을 매료시키고 있었던 것.

민박집 텐진의 대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이층으로 된 집의 재래식 화장실은 일을 본 뒤 삽으로 흙을 떠 덮어서 구덩이에 넣어 나무로 뚜껑을 덮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이를 다시 퇴비로 활용한다는 것.

▲ Leh의 곰파에서 만난 인도인 가족


일년에 약 300일 동안 해 빛이 내리쬐는 이곳은 건조해서인지 냄새도 별로 나지 않았 다. 집 앞에는 넓은 뜰이 있어 각종 야채와 보리, 농작물이 푸른색으로 자라나고 있었고, 이름모를 들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모든 것을 거의 자 급자족한다는 텐진의 말은 감격스러웠다.

“유토피아가 따로 없군요!”

아내는 고원지대에서의 여독도 잊은 듯 설산과 푸른 초원, 정원을 번갈아보며 넋을 잃은 듯 중얼거렸다. 여장을 풀고 유럽의 두 아가씨와 함께 우린 그 길로 헤미스 사원으로 갔다.

그 날 마침 헤미스 사원에서는 티베트 불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전설적인 인물 파드마삼바바의 탄생을 기념하여 가면축제가 열리고 있었던 것. 삐거덕거리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먼지 길을 달려가니 난공불락의 험준한 산비탈에 마치 고산식물처럼 매달려 있는 듯한 헤 미스 사원이 나타났다.

* Copyright by cha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