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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땅 나다크를 가다(3)-창을 마시며

찰라777 2006. 9. 22. 10:16


 톈진의 집에서 이어지는 작은 축제

 

헤미스 가면축제의 기(氣)를 고스란히 안고 레로 돌아온 우리는 그 날 밤 텐진 부부와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텐진의 방은 2층에 있는 우리방과는 별채인 건너편 1층에 있다.

 

“줄레!”

 

텐진의 부인이 밝게 웃으며 부엌에서 물을 덥혀 양동이에 담아 2층까지 들고 온다. 난방시설은 물론 샤워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라다크의 밤은 여름인데도 고산지대라 영하로 떨어지며 추워진다.

 

텐진부인이 덥혀온 두 양동이의 물을 아껴 쓰며 목욕을 한다. 각자 한 양동이로 목욕을 끝내야만 텐진부인의 수고로움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턱을 덜덜 떨면서 조심스럽게 바가지로 물을 떠서 각자 한 양동이의 물로 목욕을 끝낸다. 물의 소중함을 온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날의 목욕은 내 생애 그 어떤 사우나나 찜질방보다도 매우 기억에 남는 잊을 수 없는 목욕이었다.

 

저녁이라야 보리빵에 야크 우유 한잔, 그리고 집 안의 밭에서 가져온 야채가 전부다. 그러나 보리빵을 찢어서 야크우유에 찍어먹는 맛은 씹을수록 새롭다. 마치 소가 되새김을 하듯 천천 씹어야만 목으로 넘어가는 딱딱한 보리빵이 이렇게 별미일 줄이야!

 

톈진의 집은 두 채의 작은 건물이 있고, 1층으로 된 집에서는 그들 가족이 거주를 하고, 2층으로 된 건물에서는 방을 몇 개 만들어 민박을 치고 있다.

 

집 앞에는 작은 밭들이 있는데 그들은 이곳에서 작물을 재배 하여 식량과 야채를 자급자족을 하고 있다. 충분치는 않지만, 작게 생산을 하고 소량으로 소비를 최소화 하며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땅을 밟고 살아가는 그들이 행복하게 보인다. 욕심이 없는 삶.

 

저녁식사가 끝날 무렵 텐진은 그의 부인에게 차와 라다크 전통 술인 ‘창’을 가져오게 했다. ‘창’을 나누어 마시며 텐진은 우리나라 육자배기 같은 창을 길게 내뿜는다. ‘창’을 마시며 ‘창’을 부른다고나 할까?

 

그 여유로운 풍경은 옛날 시골에서 멍석을 피고 막걸리를 마시며 풍요로운 밤을 보냈던 50~60년대 우리네 농촌 풍경과도 비슷하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더 바랄 것이 없는 행복한 밤의 정경이다. 라다크의 작은 축제가 한 소박한 가정집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아니 가장 행복한 작은 축제가….

 

나는‘창’을 더 마시지 않겠소

누가 푸른 하늘을 무릎에 안을 수만 있으면

그때에나 마시겠소

해와 달이 푸른 하늘을 안고 있소

시원한 창을 드시오. 마셔요, 마셔요!"

 

텐진의 풍요한 음성이 밤의 정적을 깨며 길게 울려 퍼진다. 술잔이 저절로 비워진다. 술맛이 절로 땅기는 분위기가 아닌가!

 

텐진은 잔이 비면 즉시 다시 창을 가득 채운다. 때는 마침 음력으로 보름인지라 달빛이 창 너머로 고고하게 빛나고 있다. 정말 달이 푸른 하늘을 안고 있다. 은하계에서 별똥이 길게 꼬리를 물고 사라져 간다.

 

과연 행복은 저 창 너머 달빛으로부터 오는 것일까? 아니야, 텐진의 세월을 잊은 듯한 저 노래 속에 있어. 행복은 한잔의 ‘창’속에 있고….

 

해와 달이 푸른 하늘을 안고 있소

시원한 창을 마셔요, 마셔요!

나는 창을 더 마시지 않겠소

누가 시냇물을 땋을 수 있으면 그때에나 마시겠소

금빛 눈을 한 물고기들이 시냇물을 땋지요

시원한 창을 드시오. 마셔요, 마셔요!

 

새록새록 행복이 울려 퍼지는 밤이다. 소리를 끝낸 텐진은 그 뜻을 간단하게 설명한다. 술을 따라 잔을 채우려고 하는 이와 이를 사양하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아름다운 노래라는 것. 라다키들의 술대접은 사양의 미덕이 숨겨있다. 주인이 술잔에 창을 따르려고 하면 몇 번을 사양을 해야만 한다. 술잔에 술을 따를수록 잔을 조금씩 끌어당기면서 사양을 해야 한다.

 

이 세리모니가 몇 번을 되풀이 하고 나서야 술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 이는 라다키들이 술을 마시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다. 이런 예절상의 거절을 주인과 손님 사이에 노래형태로 취한 것이 바로 이 노래다. 그런 의미가 있는 줄도 모르고 창을 덥석 마셔버린 나는 참으로 예의가 없는 자다.


잔을 비울수록 취기는 더해가며 흥은 점점 더 돋워 지는데, 밤이 깊다. 톈진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온다. 별이 총총히 빛나는 밤하늘이 더욱 아름답다.

라다키들은 빈약한 자원과 혹심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검소한 생활과 협동, 그리고 생태적 삶을 통해 공동체를 유지하며 천년을 살아왔다. 라다키들의 지혜는 숨 가쁘게만 살아가는 우리가 본 받아야할 점이 많다. 그들은 천년이 넘게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하며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아무도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고 살아오고 있다.

 

스웨덴의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갈파했듯이 라다키들의 생활은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도 정부에 의하여 1974년부터 외국인에게 개방되기 시작한 라다크도 이제 개방의 급물결을 타고 점점 변화하고 있다.

 

레의 거리엔 자동차와 오토바이로 시끌벅적하고, 주민들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거대한 힘이 들어 닥치면서 전통적인 삶이 무너질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거리엔 코카콜라와 독일빵집 간판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전기 줄이 어지럽게 거미줄처럼 걸려 있다. 불과 몇 전명에 불과 하던 조용한 마을에 인구가 3만여 명으로 늘어나고 델리에서 레까지 비행기가 다니면서 여름이오면 관광객이 들끓고 있다.

 

“제가 18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에는 레의 인구는 고작 5천명 정도였습니다. 무척 조용하고 아름다운 도시였지요.”

 

레에서 18년 동안이나 수행을 하고 있다는 레의 유일한 한국인절인 ‘대청보사’ 스님의 말이 다. 그는 레에서 물질적으로는 정말로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늘 행복하다고 했다. ‘부자가 천당에 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끼어 가기보다 어렵다’는 이치를 확실히 깨e닫게 되었다는 것.

 

행복이란 무엇일까?
최첨단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면서도 우리들은 슬프게도 늘 혼자라고 느끼고 있다. 또한 놀랍게도 우리는 아파트의 벽 하나 사이에 있는 가장 가까운 이웃조차 모르고 지낸다. 우리들의 문명사회는 닫힌 문, 닫힌 마음이다.

 

열려져 있는 대문,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 여유가 넘치는 한잔의 ‘창’과 노래….

 

"줄레! 줄레!"

 

텐진의 대문을 나설 때 텐진과 그의 아내와 딸들이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여주던 그들의 순진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라다크에 대한 추억은 오래도록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 아, 다시 축제의 땅 라다크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