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155]잉카의 차, 코카티를 마시고 또 마시다

찰라777 2006. 12. 1. 09:12

지구의 배꼽, 쿠스코 

 

코카차를 마시며 고산증을 극복하다

 

 

▲마법(?)의 차 코카 티. 뜨거운 물에 코카잎을 띄워 마신다.

 


물 물 물…. 그리고 잠 잠 잠…. 그리고 시간마다의 배설….
고산병의 특효약은 없다. 낮은 지역으로 내려가거나 하루 종일 물을 마시고 누워 있어야만 한다.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치료약이다. 여기는 3399미터가 아닌가. 백두산보다 무려 655미터가 더 높다.

 

리마의 경찰서에서 여권과 돈 지갑을 몽땅 도둑을 맞고 하얗게 질려 있던 폴란드의 부부가 생각난다. 얼마나 고산증세가 심하면 이 힘든 길을 왔다가 다시 리마로 돌아갔을까? 그러나 잘 한 일이다. 아무리 여행이 좋더라도 생명과는 바꿀 수 없는 것 아닌가?

 

“이 물, 많이 마시고, 또 마시고… 가만히 누워있어야 해요.”

"무슨 물이지요?"

"이렇게 뜨거운 물에다 코카 잎을 넣고 마시는 코카 차랍니다."

"코카 차?"


비바라틴 호스텔 여자 지배인이 주전자에 펄펄 끓인물과 파랗게 말린 코카 잎을 가져다 준다. 코카티다. 뜨거운 물에 코카 잎을 띄워 마시라는 것.  마약성분이 있는 코카 잎, 이건 코카콜라의 원조가 아닌가!  그러나 페루인들에겐 마법의 차다. 마법의 차, 코카 티. 자, 이걸 마시고 기운을 차리자. 꼭 오누이처럼 생긴 그녀가 고맙기만 하다. 어디서 많이 본 듯 해. 저 여잔.

 

"맛이 떱뜨름 하군요."

"그래도 많이 마셔요. 어제 밤새 토하고 비운 속을 청소도 할겸."

 

밤새 토한 탓인지 아내의 얼굴이 노랗다. 휴대용 산소탱크 3개를 가지고 갔으나 아직 쓰지는 않고 있다. 아주 비상시에만 써야지 산소 호흡기에 너무 의존을 해도 고산증세가 평정되지 않는 다는 것. 가급적이면 그대로 천천히 현지 적응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카차를 마시고 누워있는 데도 천장이 뱅뱅 돈다. 마시고, 배설을 하고, 마시고, 또 배설을 하고…. 고산병에 걸리면 일반적으로 두통, 구토, 권태감, 졸림, 위통 등이 오는데, 나는 지금 두통을 수반하며 자꾸 졸림 증세가 나타난다.

 

이럴 땐 하여간 물을 많이 마시고 이뇨작용을 촉진시켜 소변을 자주 보는 것이 좋다. 산소가 부족하여 몸의 각 부위에 원활하게 피가 돌지 않으면 내수종이나 폐수종이 걸려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무서운 고산병! 빨리 극복하자.

 

▲호스텔 비바라틴 내의 레스토랑. 라면도 있다

 

 

뒷골 당기는 것이 한결 누그러진다. 오후 늦게 일어나니 배가 고프다. 코카 차을 많이 마신 덕분인가? 이제 뭘좀 먹어야지.


“여보, 여기 라면도 있어.”
“정말요?”


비바라틴은 원래 한국인이 경영하는 호스텔인데 지금은 한국인이 없고 쿠스코의 원주민 지배인이 경영을 하고 있다. 한국인 사장은 한국에 가고 없다는 것. 하여간 한국라면으로 요기를 하니 한결 기분이 전환된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하기야 멀리서 물을 건너왔으니 비쌀만도 하다.

 

잉카의 여인은 매우 친절하게 우리를 대해 준다. 넉넉한 웃음과 순박한 모습. 영어를 떠듬거리며 우린 손짓 발짓으로 의사를 소통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야. 희미한 불빛아래 비쳐진 저 여인의 얼굴.

 

그렇다고 옥경이는 아니다. 전생에, 먼 전생에 아마 이웃에서 살았던 여인이 아닐까? 그리고 그녀의 조상이 베링 해를 건너 아메리카로 건너가 남 쪽으로 남 쪽으로  남하하여 정착을 했던 우리와 같은 핏줄이 아닐까? 아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있는데, 윗니가 빠진 아이의 웃는 모습이 천진무구하다. 귀여운 아이다.

 

▲아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있는 비바라틴의 여자지배인. 어디서 많이 본 듯해...

 

 

 

지구의 배꼽, 쿠스코

 

“여보, 기운이 좀 나오?”
“이제 한결 나아 졌어요.”

“그럼 시내 구경이나 슬슬 나가 볼까?”


지배인에게 ‘잉카트레일Camino del Inca’ 과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 Valle Sagrado de Los Inca'에 대한 로칼 투어 예약을 부탁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작은 배낭에 큰 병의 물과 지배인이 준 코카 잎 봉지를 담고 슬슬 걸어서간다. 걸어야 한다. 걸으며 고산증세를 적응해야 해.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하니 역시 리마와 똑 같은 스타일의 콜로니얼식 광장과 대성당이 우측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주변엔 중앙광장을 가운데 두고 호스텔과 카페, 상점들이 둘러싸고 있다.

 

쿠스코는 케추아어로 ‘지구의 배꼽’이란 뜻이다.
전설에 의하면 ‘태양의 신’ 인티 Inti 는 그의 아들 망코 카팍Manco Capac과 딸인 마마 오크요 Mama Ocllo를 티티카카 호수의 ‘태양의 섬’에 내려 보낸다. 그리고 이들에게 황금 지팡이 하나를 주며, 이 지팡이가 박히는 땅에 정착하라는 계시를 내린다. 이 두 남매는 게시의 땅을 찾아 방황을 하다가 이곳 쿠스코에 도착하여 막대기를 던지니 막대기가 그만 땅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 인티는 우리가 이곳에 머물도록 명령하셨다. 지금부터 각자 헤어져서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모아 여기서 다시 만나자.”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태양의 아들과 딸들에게 몰려들었다. 태양신의 아들은 자기를 따라온 사람들에게 아난사야Hanasaya(윗마을)에 정착을 하게하고, 딸(망고 카팍의 아내)을 따라온 사람들에게는 우린사야 Hurinsaya(아랫마을)에 정착을 하도록 하여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후로 잉카의 땅에 세워진 모든 도시와 마을은 항상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누어지게 되었는데, 이는 오른손과 왼손, 즉 남자와 여자와 와 같은 관계라는 것.

 

멀리 산등성이에 있는 집들의 모습이 재개발되기 전의 신림동이나 상대원동, 하대원동이 있는 성남시와도 닮아 보인다. 이 자리가 바로 지구의 배꼽이라고 불리는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다. 도대체 지구엔 배꼽이 몇 개지?

 

 

▲'지구의 배꼽'이라는  쿠스코 시 전경. 꼭 피렌체의 지붕을 닮아...

 

 

“그런데, 이 동네는 꼭 피렌체의 모습과 비슷해요. 황토색 지붕, 좁은 뒷골목… 이런 것들이.”
“그러네! 허지만 숨이 가프고, 낭만의 베키오 다리가 없는 것이 다르군.”

"정말 숨이 차군요."

“자, 그럼 당신은 아랫마을로 가시오. 난 윗마을로 갈 테니.”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함께 가야지.”
“남자는 하늘이요, 여자는 땅이라. 하늘과 땅이 만나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지. 하하.”
“말 같지도 않는 소리에요.”

 

정말 크게 웃기도 힘드네. 쿠스코는 피사로가 점령을 한 이후로 옛 건물이 모두 파괴되고 에스파냐 식민지 풍의 건축물이 들어서게 되었는데, 기단 부는 잉카의 돌로 석축 된 담벼락이, 그리고 그 위상은 에스파냐식의 건축물이 올려 지은 기현상을 빚어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가지를 걷는 기분이 이상하다.
뭔가 겹겹이 포개진 문명의 흔적을 느낀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쿠스코는 3개의 문명이 공존하고 있다. 잉카이전, 돌을 자르지 않고 불규칙하게 배열시킨 건축, 잉카시대에 규칙적인 배열로 정교하게 쌓아올린 돌담, 그리고 에스파냐 식민지풍의 건물이 그것이다. 3세대의 건물이 겹겹이 공존하고 있는 곳. 이 겹쳐진 문명의 흔적은 갑자기 아홉 겹으로 이루어진 트로이의 유적을 생각게 한다.

 

원래 쿠스코는 십자가 형상의 네 방향의 도시로 설계되어 있다. 대성당이 있는 중앙광장은 비라코차의 신전을 모셨던 자리로 도시의 중추를 이룬다. 대성당 맞은편에는 여행사와 식당, 카페들이 늘어서 있고, 광장에서 이어지는 언덕 위에는 두 팔을 벌리고 시가지를 굽어보는 예수 상이 보인다.

 

찾아 오기도 힘든 지구의 배꼽!
다시 오기도 힘든 지구의 배꼽!

이제부터 좀 자세히 들여다보자.
천천히, 천천히… 슬로우 모션으로…
그렇지, 마법의 차 코카티를 마시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
저 작열하는 태양신에게 경배를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