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167]잉카의 파발꾼-챠스키

찰라777 2007. 2. 10. 03:16

까미노 델 잉카(4)

잉카의 인간 파발꾼-챠스키가 되어....

 

 

▲잉카의 길-까미노 델 잉카를 트레킹하고 있는 여행객들 

 

 

출렁다리를 건너…….
출렁거리는 외줄다리를 밑으로는 강물이 콸콸 흘어내리고 있다. 외줄다리를 건너니 트레킹 입장객들을 체크하는 관문이 나온다. 이곳에서 가이드들은 트레킹을 떠나는 전 최종 점검을 한다. 여행객들이 그룹별로 모여서 인원을 점검하고, 짐을 챙기고, 주의사항을 전달한다.

 

우리가 속한 그룹은  영국인 3명, 아일랜드인 1명, 미국인 2명, 아르헨티나인 3명, 우리부부 등 모두 11명이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하며 악수를 나누었다. 특히 아르헨티나에서 온 마리노가 멀리서 온 우리를 매우 친절하게 대해준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농산물을 수출하는 무역회사 근무를 한다는데 아내를 집에 두고 여자 친구와 함께 여행을 왔단다. 아내는 직장에 다니는데 시간을 내지 못해 그렇게 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

 

 

 ▲콸콸 흘러내리는 우루밤바 강물. 강물은 아마존으로 흘러간다. 

 

어네스토는 여기서 점심을 먹고 올라가야 한다고 하면서 준비한 도시락을 나누어 준다. 도시락 내용은 형편없다. 그러나 험한 산을 올라가려면 먹어야 한다. 달리 사먹을 가게도 없어 선택의 여지도 없다. 다른 그룹들도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점심을 먹는다. 동양인은 우리 부부뿐이다. 나이도 우리부부가 제일 많다. 우리는 마치 이방인처럼 서양인들 틈에 끼어 점심을 먹었다. 그러나 원주민 가이드들은 피부색만 조금 더 검을 뿐 우리와 매우 유사하여 형제 같은 친근감이 든다. 

 

 

▲잉카의 길 입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행객들 

 

영원한 젊음의 꽃…

11시 30분. 드디어 입산 체크인을 하고 우리는 트레킹 장도(?)에 올랐다. 좁은 길에 긴 행렬이 이어진다. 첫 번째로 보이는 곳이 차차밤바Chachabamba 유적지다. 유적지는 지붕은 없고 벽만 남아있다. 차차밤바 유적지는 마추픽추로 가는 두 번째 관문역할을 한다. 자연석을 깎아 제단을 만들고 주위에 둥그렇게 담을 쌓아 놓았다. 유적의 양쪽에는 다섯 개의 욕조가 만들어져 있다. 돌담이 꽤 잘 보존되어 있다. 차차밤바를 잠시 둘러본 뒤 일행은 언덕을 오른다.

 

▲잉카의 길에 핀 영원한 젊음의 꽃-위나이와이나

 

▲추추밤바 유적지에서 

 

 

“우와! 이 아름다운 꽃들!”
“정말 아름답네!”
“무슨 꽃이 이렇게 아름답지요?”
“어네스토, 이 꽃 이름이 뭐지?”
“우리는 이 꽃을 위나이와이나라고 불러요.”
“위나이와이나?”
“네, 케추아어로 영원한 젊음이란 뜻이지요.”
“영원한 젊음이라… 너무 특이한 이름이군.”

 

바위틈에 피어 있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분홍색 꽃이 너무 아름답다. 꽃 모양은 제비꽃처럼 생겼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오치드orchid(란蘭 일종)처럼 보인다. 처음 보는 꽃이다. 분홍 꽃의 향기에 듬뿍 취해 넋을 잃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싱그럽다. 꽃처럼 피어나는 마음,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영원한 젊음의 꽃’처럼 우리네 인생이 언제나 싱싱하다면 어떨까? 그러나 꽃은 시들어 지기에 더욱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언제나 시들지 않고 피어 있다면 그도 지겨울 것이다. 꽃과 같은 인생, 그래서 인생도 아름다운 것이다.

 

 

인간파발꾼 챠스키Chaski...
여기저기 피어있는 ‘영원한 젊음은 꽃’을 바라보며 마치 잉카의 챠스키들처럼 잉카의 길을 간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점점 숨이 더 가빠진다. 그러나 어네스토는 우리보다 몇 배 무거운 짐을 지고도 전혀 숨이 가뿐 기색이 없이 앞뒤로 오가며 우리들을 보살펴 준다. 그는 마치 인간파발꾼 챠스키처럼 보인다. 잉카시대에 이렇게 험한 길을 인간파발꾼 챠스키들은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를 주파 하였다고 하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네스토, 당신은 마치 챠스키처럼 보이는군. 그렇게 무거운 짐을 메고도 전혀 힘든 기색이 없으니.”
“챠스키요? 어림도 없지요. 잉카시대 챠스키는 하루에 200km이상을 나는 듯이 달려 다녔답니다.”
“와, 그렇게도 빨라?”
“그럼요. 그들은 릴레이식으로 잉카의 길을 달리며 황제의 명을 전달했는데, 목적지에 가까워지면 키푸라는 전보 문자를 들고, 소라 고동을 불면서 자신의 도착을 알리지요.”

 

 

▲잉카의 인간파발꾼-챠스키chaski. 키푸라는 왕명을 들고 소라고동을 분다.

 

어네스토의 설명에 의하면 ‘챠스키Chaski(혹은 Chasqui)’는 ‘교환하다’라는 뜻인데, 그들은  릴레이식으로 황제의 명을 전달했다고 한다. 잉카의 길에는 탐보 Tambo라고 하는 간이 숙박시설이 20~30km간격으로 세워져 있었는데, 챠스키는 탐보 사이를 오가며 왕의 급보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

 

그들은 키푸Khipu라고 불리는 매듭을 지어 만든 짧은 문장을 들고 뛰어 목적지가 가까워지면 푸투투Pututu라고 하는 소라 고동을 불어 자신의 도착을 알렸다. 그들은 때로는 안데스의 5000~6000m 험준한 산을 넘어 에콰도르, 콜롬비아,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에 이르기까지 잉카제국의 파발꾼 역할을 했다. 16세기 세상에서 가장 빠른 방법으로 왕명을 전달함은 물론, 해안에서 잡은 생선이나 잉카제국에 있는 진기한 음식을 쿠스코에 있는 왕의 밥상에 싱싱한 상태로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와, 정말 대단하군. 그런데 우린 세상에서 가장 느린 챠스키가 되겠네.”
“느리기는 하지만 당신들은 가장 빠른 챠스키라고도 할 수 있지요.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와 잉카의 옛 길을 걷고 있으니 말이요.”
“하하, 그럴까? 어네스토, 당신은 참 재미있군요?”

 

심장이 좋지 않은 마리아…
어네스토의 설명을 들으며 걸어가니 지루한 줄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잉카의 길을 걸어 마추픽추로 가는가? 잉카 문화의 체험을 위한 길이라고는 하지만 무거운 짐을 어네스토에게 지게하고 잉카의 길을 걸어가는 내 자신과 여행객들이 사치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2시간 쯤 올라오니 길가에 갈대로 역어 만든 움막이 나온다. 일행 중에 영국에서 온 마리아가 얼굴이 빨개지며 숨을 가프가 몰아쉰다. 그녀는 길에 주저앉아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마리아 어디 아파요?”
“네, 조금. 심장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어네스토, 빨리 와 봐요.”

 

 ▲함께 트레킹을 한 일행들과 함께. 웃통을 벗고 있는 아르헤티나의 마리노의 익살

 

어네스토가 뛰어온다. 그는 달려와도 정말 심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나보다. 어네스토는 마리아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하산할 것을 권유한다. 마리아는 어네스토의 충고에 따라 일단 하산을 하기로 했다. 서양인들은 말을 참 잘 듣는다. 억지를 쓰는 법이 별로 없다. 이 상태로 산을 오르다간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하산을 하라는 가이드의 말을 마리아는 순순히 따른다.

 

“각하, 당신은 괜찮아?”
“문제없어요. 우린 이미 고도 적응을 해 왔는데요.”
“그래도 당신이 걱정이 되는 데?”
“당신이나 잘 견디세요.”
“헤이, 초이, 괜찮아?”
“아직은….”

 

위나이와이나, 영원한 젊음과 비밀스런 눈물…
아르헨티나에서 온 마리노가 숫제 웃통을 벗은 채 익살을 떤다. 길 오른쪽 밑은 가파른 낭떠러지다. 멀리 우루밤바 강이 흐르고 쿠스코로 가는 두 칸짜리 기차가 꽁지 빠진 새처럼 갑자기 기적을 울리며 강을 따라 느리게 기어간다. 가끔씩 헬리콥터도 계곡의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다. 편하게 마추픽추를 구경하려는 관광객을 싣고 가는 것이다.

 

움막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길을 오르니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다. 마리노는 환성을 지르며 물줄기 속으로 뛰어 들더니 물살을 손으로 떠서 일행들에게 뿌린다. 모두가 괴성을 지르며 한동안 폭포 근처에서 더위를 식혔다.

 

▲잉카의 길에서 만난 시원한 폭포

 

폭포를 떠나 나무로 된 다리를 건너 언덕을 조금 올라가니 곧 위나이와이나Winaywayna 유적지가 나온다. 케추아어로 영원한 젊음이라는 뜻을 가진 유적지다. 계단식 밭에 둘러싸인 유적지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가파른 언덕에 세워져 있다. 중앙으로 수로가 놓여 있고 수로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물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듯 수로를 타고 흐른다.

 

▲위나이와이나 유적지는 잉카의 길에서 가장 빼어난 유적지다.

 

 

위나이와이나는 카미노 잉카에서 가장 빼어난 유적지다. 원형이 매우 잘 보존 되어 있고 특히 주변의 계단식 밭이 일품이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돌집 지붕, 성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돌담에 솟아나온 분홍 꽃들이 너무 아름답다. 우리는 이 비밀에 싸인 유적지를 숨바꼭질을 하듯 이리저리 끼어 다녔다. 잉카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계단식 밭에는 곡식 대신 잡초만 무성하다. 보스턴에서 온 쇼는 아예 계단식 밭에 벌렁 누워 선팅을 즐기고 있다. 그녀의 옆에는 원주민 가이드가 누워있다. 마치 오누이처럼 다정하다. 멀리 베로니카의 설봉이 펼쳐지고 있다. 흰 구름이 만년설을 덮었다가 벗겨지곤 한다. 어네스토는 원래 이 산은 케추아 어로는 Willka Wequy라고 하여 ‘비밀스런 눈물’이란 뜻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비밀스런 눈물’의 산이란 지명은 ‘영원한 젊음의 꽃’과 퍽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게 신비스러워… 여긴.

 

▲위나이와이나에서 바라본 베로니카 산. 비밀스런 눈물이란 뜻음 담고 있다.

 

위나이와이나 바로 옆에는 Trekker's Hostel이 있다. 오늘밤 우리는 여기에서 야영을 하기로 되어있다. 호스텔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호스텔은 방이 3층으로 되어 있다. 방 하나에 10명이 자야 한단다. 호스텔 옆에는 줄줄이 텐트가 처져 있다. 방을 미처 예약을 하지 못하거나 텐트를 준비한 여행객들이 잘 숙소다. 텐트에서 자는 그룹은 포터들이 준비해온 음식재료를 씻어서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우리는 호스텔에서 제공한 저녁식사를 먹기로 되어 있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어 레스토랑으로 일행들이 모두 한 자리에 앉았다. 잉카의 시원한 맥주가 한잔씩 배달된다. 맥주잔을 든 우리는 모두 잔을 부딪치면서 여기까지 무사히 올라온데 대한 축배를 들었다. 식사를 하면서 일행은 여행담으로 꽃을 피운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어네스토가 마리아를 데리고 들어온다.

 

“와, 마리아 파이팅!”
“어서 와요. 마리아.”
“You are real winner!(당신은 진정한 승리자야).”

 

저마다 한마디씩 마리아를 격려하며 환영한다. 그녀는 우리와 헤어져 한동안 잔디 위에 한동안 누워 있다가 컨디션이 좋아지자 천천히 올라왔다고 한다. 여기까지 와서 도저히 잉카의 길을 포기 할 수 없었다는 것. 그녀의 볼에 인간승리 같은 기운이 상기되어 흘러넘친다.

 

“마리아, 사실 나의 아내도 심장이 썩 좋지를 않은데 여기까지 올라왔거든요. 정말 축하해요.”
“아, 그렇군요. 누구든지 죽기를 각오하고 포기를 하지 않는다면 올라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하. 죽기까지 해서는 안 되지요.”
“물론!”

 

▲위나이와이나에 있는 호스텔. 3층으로된 침대에  누에고치처럼 잠을 ....

 

말은 그렇지만 그리 쉬운 결단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력은 한계가 없어 보인다. 밤이 깊어지자 우리는 누에고치처럼 각자의 침대로 기어 들어가 잠을 청했다. 내일 아침엔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한다. 마추픽추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일찍 서둘러야 한단다.

사실 1박 2일의 간이 잉카 트레킹은 마추픽추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 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일 새벽 시야에 펼쳐질 마추픽추를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트레킹으로 인한 피곤으로 모두가 곧 잠에 떨어지고 만다.